소설리스트

환영검전-146화 (146/225)

146.

#암중의 적들이 밝혀지고 (2)

“그럼 륜이의 죽음에 천마교가 관련되었단 말이오?”

“정황상 그럴 확률이 높지요.”

진우선이 말을 부드럽게 하며 서도광을 이해시켰다.

서도광이 바닥에서 끙끙 앓고 있는 구염과 서진립을 증오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저런 것들을 제자라고 키웠다니…….”

“서 문주, 이제 인장을 한 번 보여주시오. 내가 흉수를 확실히 알아보리다.”

냉군상이 차분하게 권유했다.

“후우-! 믿어도 되는 거요?”

“나는 인장을 부수지 않고 알아볼 수 있소.”

“……알겠소.”

서도광은 지금 처한 상황상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만상각의 인장을 건넸다.

“일이 일어난 게 정확히 언제쯤이오?”

“그것도 알아야 하오?”

“그걸 알아야 금방 파악할 수 있소.”

“어제 이맘때쯤이오.”

서도광의 대답을 들은 냉군상이 곧 바닥에 앉고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가 창궁관에서 얻은 서천여래신안(西天如來神眼)은 눈에서 신광을 뿜으며 사물을 관(觀)하는지라,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와 있으면 공력 소모가 막대하여 쉬이 감당할 수 없었다.

“크헉!”

“큭!”

그때, 구염과 서진립에게서 단말마의 비명이 새어나왔다.

“문주님! 이들이 독단을 씹어 숨을 끊었습니다.”

“뭐라?”

서도광이 눈을 치켜뜨며, 구염과 서진립에게로 얼른 다가갔다.

숨이 끊어진 게 맞았다.

그 순간, 냉군상이 일어서서 인장을 돌려주며 말했다.

“둘째 공자의 일은 천마교의 소행이 맞았소. 그런데 귀영이 이렇게 바로 숨을 끊었구려…….”

신광을 거둔 냉군상에게서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졌다. 서천여래신안을 연거푸 펼친 까닭이리라.

하지만 눈앞의 상황은 계속 골치 아프기만 했다. 진우선이 그들의 귀기를 일깨우니, 바로 죽어 버릴 줄이야.

“아-! 도대체 천마교가 우리를 왜……!”

서도광이 탄식을 흘렸다.

그에 진우선이 물었다.

“서 문주, 짐작 가는 바가 없소?”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소. 있었으면 당장 그들을 찾아갔을 거요!”

“귀영이 들어온 지 사오 년쯤 되었다고 했으니, 오히려 옛날부터 오 년 전쯤까지 귀 문에서 무슨 특별한 게 없었는지 고려해야 하는 게 맞을 거요.”

“허! 그때의 일을 어찌 일일이 다 생각해낼 수 있겠소?”

냉군상이 정확하게 짚어주었으나, 서도광으로서는 그걸 다 떠올리는 건 역부족이었다.

“그럼 서 문주께 한 가지만 묻겠소. 이번에 염성방과는 왜 다투셨소? 그들에게 물자를 왜 보내지 않았소?”

“그건 말할 수 없소. 아무리 정무맹이어도, 우리의 사적인 일에까지 관여하지는 마시오.”

냉군상의 질문에 서도광이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소삼정이 사이좋게 지낸다면야 우리가 관여할 일이 뭐가 있겠소? 하지만 궁가장이 우리에게 사자검문과 염성방을 중재해달라고 청했으니, 관여할 수밖에 없소.”

“그건 들었소. 궁가장의 곳간이 텅텅 비었으니, 그랬겠지. 하지만 그건 궁가장의 사정일 뿐, 우리와는 상관없소.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오.”

서도광은 냉군상의 말에 계속 고개를 저었다.

그에 진우선이 나섰다.

“서 문주, 강소의 물자가 천하로 흘러가야 하지 않겠소? 말해보시오. 염성방과의 일을 내가 풀어드리리다.”

“끙-!”

서도광은 진우선의 얼굴이 다시 눈앞에 비치자 절로 앓는 소리를 냈다.

냉군상에게는 마구 대꾸할 수 있었으나, 진우선에게는 쉬이 반박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도광이 눈알을 굴렸다.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다 진우선과 눈이 딱 마주쳤다. 그의 순전한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후우-. 염성방에게 물자를 보내지 않은 건, 그들이 우리에게 물건을 팔지 않았기 때문이오.”

서도광이 한숨을 내쉬며 내키지 않은 이야기를 꺼냈다.

“어떤 물건인데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물류를 막은 거요?”

“……천년설삼이오. 염성방주가 이번에 셋을 얻었다기에 하나만 팔라고 했소. 하지만 거절하더군. 아들에게 전부 먹일 거라면서.”

“허허-!”

옆에서 대화를 듣던 냉군상이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강소의 일이 이토록 꼬인 데에 이런 이유가 있었을 줄이야.

천년설삼(千年雪蔘)은 대자연의 기운을 천 년이나 머금은 영초로, 일반인이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무인이 먹으면 상당한 내력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희귀한 물품이었다.

“그것 때문에 철기신편과 철검무영 같은 고수들까지 나서서 세 차례나 싸운 거였소?”

“처음 부딪쳤을 때 설삼 하나만 넘기면 완만히 합의하려 했으나, 염성방은 그러지 않았소. 그 뒤로는 자존심 싸움이 되었지. 무를 수련하는 본 문이 고작 상인집단 따위에 얕보일 순 없지 않겠소?”

“그래서 강소성이 이 지경이 되도록 염성방과 싸운 거였소?”

“그놈들 꼬락서니가 아주 가관이기 때문이오. 화동일검을 데려다가 아들을 가르치고, 영약을 복용시켜 단숨에 고수로 만들려고 했소. 도대체 정사 간에 끼어들어 사업하면서 얼마나 돈을 벌었단 말이오? 그리고 무공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니오?”

서도광은 내상을 입었음에도 자중하기는커녕, 거침없이 화를 토해냈다.

“진 대인은 어찌 절대고수가 되었는지 모르나, 상승의 내공심법에 천년설삼 하나면 단숨에 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소. 셋을 다 소화해낼 수 있다면, 강기를 펼칠 내력도 갖게 될 테고 말이오. 실로 돈으로 절대고수를 만들어내는 거잖소!”

“서 문주께서 그런 마음이셨구려.”

“그렇소. 우리와 당신네가 서로 추구하는 바는 다르다고는 하나, 무의 길을 가는 건 마찬가지요. 나는 저들이 무학을 이리 쉽게 생각하는 것도 못마땅하오.”

냉군상이 호응하자, 서도광이 속내를 허심탄회하게 다 쏟아냈다.

그에 진우선이 서도광에게 자기 뜻을 밝혔다.

“나는 여태껏 영약이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는 줄은 몰랐소. 그리고 어쨌거나 서 문주의 마음은 알겠는데, 그렇다고 많은 사람에게로 전해질 물류를 다 막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오.”

“……알겠소. 염성방에 물자를 전하겠소.”

서도광은 진우선을 계속 바라보다가, 그의 단호한 눈빛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

“고맙소. 그리고 하나 더 궁금한 게 있소.”

“물어보시오.”

서도광은 반기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진우선은 또 물었다.

“염성방에 자객을 보낸 건 사자검문이오? 화중일검이 있는데? 문주가 직접 가셨소?”

“후후-. 진 대인은 정말 예리하시구려. 염성방에서 물건을 확보하면 련에 드리기로 하고서 도움을 받았소. 련에서도 절대고수가 필요하기 때문이오.”

“그랬군. 서 문주는 방금 영약으로 절대고수가 되는 걸 싫어한다고 말했는데, 잘도 이 협조는 받기로 했구려.”

“그게 뭐 어때서 말이오? 련에는 절대고수가 필요하오. 그리고 염성방과의 일전은 이제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소!”

서도광이 진우선에게 반박했다.

그의 표리부동한 모습에 진우선은 웃음만 났다. 괜히 사파에 속한 게 아니었다.

“아무튼, 알겠소. 일단 억류했던 물자부터 잘 풀어주시오.”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한 입으로 두말하진 않소.”

서도광이 진우선에게 확답을 건넸다.

그때였다.

사자검문과 맞서 싸우기 위해 포구에 함께 왔던 궁가장의 서무대주 궁목위가 당혹한 얼굴로 급히 냉군상을 찾았다.

“내당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오?”

“궁가장에 변고가 터졌습니다. 궁표가 살해당했는데, 만상각의 인장이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게 정말이오?”

“……!”

냉군상이 잔뜩 놀라서 되물었고, 진우선은 눈을 부릅떴다.

‘설마!’

지금 상황은 백하련과 이야기했던 최악의 상황이지 않은가.

진우선이 얼른 그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뒤편에 잠시 물러나 있던 백하련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옆에 선 한효기와 만총도 다시 긴장하고 있었다.

진우선이 퍼뜩 서도광을 쳐다보았다.

서도광이 지레 놀라 마구 손사래쳤다.

“진 대인, 나도 지금 듣고서 황당할 지경이오. 이건 우리가 한 게 아니오. 그러니 한 번 제대로 확인해주시구려.”

“그러겠소.”

냉군상이 잠시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진우선에게 말했다.

“진 무사, 궁가장으로 가봅시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곧장 대답하더니, 매서운 눈길로 서도광을 쳐다보았다.

그에 서도광이 지레 놀라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손사래 쳤다.

“진 대인, 우리는 배와 근처 객잔에서 쉴 거요. 사상자가 여럿 나왔기 때문이오. 그러니 우리에 대해선 전혀 생각지 않으셔도 되오. 궁 가장과는 피차 좋은 사이가 아니지만, 오늘 밤에는 아무 짓도 하지 않겠소. 믿어주시오!”

“……알겠소. 한 번은 믿어보겠소.”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진우선이 서도광과 대화하는 사이 일행들은 얼른 궁가장으로 갈 태세를 하고 있었다.

그때, 장강이룡이 진우선에게로 다가왔다.

“진 대인, 아까 우리를 꺾은 무공이 무엇인지 알려주시오.”

“수룡강기를 뭐로 막아낸 거요? 강기가 아닌데 어찌 파훼할 수 있었소?”

죽자 사자 싸울 땐 언제고, 이들 둘은 지금 적에게 와서 무공을 묻고 있었다.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데 더 믿을 수 없는 건 두 사람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는 점이었다.

“강기는 기운을 유형화시키는 하나의 모습일 뿐이지, 그게 전부가 아니지 않습니까?”

진우선은 길게 대화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간단히 반문한 후 자리를 떠났다.

***

냉군상의 무리가 재빨리 궁가장에 돌아왔다.

궁목철은 아들을 잃은 슬픔에 침통한 표정으로 문간에 앉아 하늘만 보고 있었다.

“가주님!”

“오셨소?”

“이게 대체…….”

냉군상이 궁목철의 발치 앞에 놓인 시신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가지런히 정돈된 주검은 그의 아들 궁표가 분명했다.

“가주님, 이건 우리가 한 행동이 절대 아닙니다. 직전까지 사자검문과 일전을 치렀습니다.”

“당연하오. 애초에 그럴 뜻이었으면 이걸 흘렸겠소? 버젓이 바로 옆에 놓고 갔더이다.”

궁목철이 생기 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소매에서 인장 하나를 꺼내어 건넸다.

“바로 확인해보겠습니다.”

냉군상이 즉시 앉아서 서천여래신안을 펼쳤다.

잠시 후, 그가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으로 일어나며 말했다.

“천마교의 짓입니다. 그들이 궁 공자를 살해한 후, 인장을 던져두고 갔습니다.”

“그랬군. 사자검문의 흉수는 누구였소?”

“그들도 천마교였습니다.”

“냉 당주. 아침에 남경지소에 다녀왔을 때, 인장이 둘이라 하지 않았소? 이러면 셋이 되는데?”

궁목철이 힘없는 목소리로 무심하게 툭툭 던지듯 말했으나,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그에 냉군상이 백하련을 바라보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만상각의 백하련이에요. 이번에 저희가 정무맹에서 대규모로 첩자를 색출했는데, 아무래도 그때 도망친 자의 인장으로 생각돼요.”

“그렇소?”

바로 그때였다.

퍼억-! 쿠쿵-!

궁가장 어딘가에서 굉음이 연이어 터졌다. 벽이 부서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궁목철이 소리치자, 주위에 있던 궁가장의 무인들이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그들이 채 십여 장을 가기 전에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볼 필요 없습니다.”

“진 대협!”

궁목철이 외쳤다.

그 순간.

퍽퍽퍽!

좌중의 앞쪽 땅바닥에 세 사람이 내던져졌다.

“귀기!”

냉군상이 그들의 모습을 보며 바로 알아챘다. 세 사람의 눈에서 귀화(鬼火)가 흐르는 까닭이었다.

“내당주님. 흑의인은 상당한 고수였습니다. 수라객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으니, 일반 귀영이 아닐 겁니다.”

“알겠소!”

그렇다면 흑의인만 자세히 살펴도 될 것이다. 냉군상은 그들이 이번엔 자결하지 않도록 신경 쓸 참이었다.

진우선이 궁목철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궁 가주님. 조금 전에 사자검문에 자초지종을 물으니, 염성방에 천년설삼이 있어서 이렇게까지 일을 벌인 모양이었습니다.”

“천년설삼!”

궁목철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응했다.

“하지만 만상각의 인장이 세 개나 나타났습니다. 사도련이 염성방에 하나를 던졌고, 천마교가 어제오늘 일을 벌였습니다. 아무래도 시작은 사도련이 했으나, 획책은 천마교가 하는 것 같습니다.”

진우선의 말이 매우 타당하게 들렸다.

“그런데 저들 셋은 방금 궁가장의 비고로 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혹시 가주님께서는 천마교가 이곳에서 노릴 만한 걸 알고 계십니까?”

“그 말들이 정말이오?”

“정말입니다.”

“허……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궁목철의 눈동자가 초점 없이 마구 떨렸다.

“뭔가 있군요!”

“삼십 년 전쯤에 아버지가 내게 선물해주신 도가 한 자루 있소. 도신이 새까맣고 칼등에는 빗금이 도드라져 있으며, 예기가 섬뜩하여 꿈에 나올까 겁날 정도였지. 내가 도법을 열심히 익혔음에도 함부로 들지 못할 정도라, 아예 깊이 숨겨두었소. 설마 그것까지 알 사람은 없을 텐데…….”

그때, 일행의 뒤편에서 떨리는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혹시…… 빗금이 칼날 끝까지 수십 개 도드라져 있었습니까?”

좌중이 고개를 돌려보니, 제갈영이었다. 그녀는 짐작 가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소. 정확하오. 그래서 이상하다고 여기기도 했지. 그게 무엇인지 아시오?”

“그렇다면 그건 흑우신마도(黑雨神魔刀)일 겁니다! 오십 년 전에 천하를 공포에 떨게 한 흑우신마(黑雨神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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