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45화 (145/225)

145.

#암중의 적들이 밝혀지고 (1)

펄럭-!

옷깃이 바람에 마구 나부꼈다.

배는 아직 땅에 닿지 않았는데, 한 검객이 뱃머리에서 뛰어내린 까닭이었다.

그는 몸의 탄력을 이용해 마치 배에서 땅으로 화살을 쏜 듯이 직선으로 날아왔다. 상승의 경신법 중에서도 절예로 손꼽히는 궁신탄영(弓身彈影)이었다.

그러고는 착지하자마자 진우선에게로 다가왔다.

“련주님이 친히 인정하신 귀인께서 이렇게 직접 우리를 맞이할 줄은 몰랐소. 나는 사자검문의 문주 서도광이오.”

“진우선이오.”

진우선과 서도광이 통성명했을 때, 다른 두 배에서도 한 명씩 뛰어내렸다.

그들은 나란히 물 위를 달려왔다. 상승의 경신법인 등평도수(登萍渡水)였다.

둘은 경쟁하듯이 진우선에게로 다가왔으나, 거의 동시에 서도광 옆에 도착했다.

“장강신룡 추대공이 수룡방을 대표하여 인사를 청하오.”

“장강패룡 추영공이 장강이룡을 대표하여 인사를 청하오!”

“알겠소. 두 분이 장강이룡이고 수룡방을 대표한다는 거군. 나는 진우선이오.”

장강이룡인 추대공, 추영공 쌍둥이는 둘 다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도 험상궂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랐는데, 추대공은 머리를 질끈 끌어올려 뒤로 묶은 반면, 추영공은 민머리였다. 스스로 머리를 다 밀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무튼, 장강이룡도 도착하자 서도광이 진우선에게 본론을 꺼냈다.

“진 대인, 본 문의 소식을 들으셨으리라 생각하오. 사자검문은 이번에 큰 화를 당했소. 본인의 둘째 아들 륜이가 숨을 거두었소. 이는 정무맹의 행위가 분명하여 그 까닭을 묻고자 왔다오.”

“만상각의 인장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리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건 음모요. 우리가 한 게 아니오.”

“아무리 진 대인이라도 그리 말씀하시면 아니 되오. 염성방의 소방주가 어떻게 목숨을 잃었는지 우리가 모르겠소? 아니오. 그때에도 만상각의 인장이 발견됐다 하더이다.”

“우리가 했다면 만상각의 인장을 잃어버리고 갈 리 없지 않겠소? 게다가 강소성에서 두 개나 떨어뜨렸다? 이젠 척 봐도 수작인 걸 알겠소!”

“그렇다면 누구라도 그게 정무맹의 수작이라 생각할 거요. 만상각에서 강소삼정의 후계자들을 암살하려던 계획이라고 말이오.”

서도광은 진우선의 말에 반박하며 외쳤다.

그는 애초에 진우선의 기세와 명성에 눌려 먼저 배에서 내려와 대화를 열었으나, 그렇다고 진우선에게 바로 설득되진 않았다.

“서 문주는 어떻게든 정무맹의 탓이라고 할 모양이군. 하지만 염성방의 소방주를 살해한 게 사도련임이 밝혀졌소. 이를 어찌 설명할 거요?”

“뭐요? 사도련이 했다고? 정무맹이 발뺌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이리하실 수는 없소.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망자를 두고 역으로 뒤집어씌운다니!”

“하지만 이미 다 알아냈소. 염성방도 그렇게 알고 있소!”

“말도 안 되오! 아무리 진 대인이라 해도 이리 말하는 건 우리와 사도련 무인들을 대놓고 모욕하는 것이오!”

서도광이 노발대발하여 외쳤다.

“그렇다면 증거 있소? 증거 말이오!”

“증거는 없소. 하지만 명확한 사실이오. 내가 알아냈으니까.”

뒤에서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던 냉군상이 얼른 진우선에게로 다가오며 끼어들었다.

“귀하는 누구요?”

“신기수사 냉군상이오.”

“그랬군. 신기수사는 신묘한 무공을 얻어 천하를 꿰뚫어 보게 되었다지? 그 능력을 발휘한 모양이오.”

“나를 그만큼 알고 있었다니, 대화가 통하겠구려.”

“아니, 더 믿을 수 없소. 우리가 정무맹의 말을 어찌 바로 믿을 수 있겠소? 그러니 명확한 증거를 내놓으시오.”

서도광이 냉군상의 말을 반박했다.

“그러지 말고 서 문주께서 인장을 보여주시오. 내가 확실하게 살펴보리다. 그럼 사자검문의 흉수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을 거요.”

“됐소! 듣자 하니 각인되지 않은 내공을 가하면 부서질 거라던데, 우리 인장도 없애고 말려는 것 아니오?”

서도광이 길길이 날뛰었다.

바로 그때, 진우선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서 문주. 타협의 여지가 없는 모양이오. 혹시 이리 대화를 질질 끄는 건, 저들이 모두 내릴 시간을 벌려는 생각 때문이오?”

그 말에 다들 잠시 포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타고 온 배 세 척에서 무인들이 잔뜩 긴장한 채 내려오고 있었다.

서도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를 뭐로 보는 거요? 그럴 의도는 없었소. 나는 우리가 당한 일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뿐이오. 지금 저깟 수를 쓴다고 해서 죽은 아들이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잖소!”

“그 마음은 진심인 것 같군. 하지만 저들이 내린 사실은 변함없지 않소? 당신의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 명확한 증거가 없는데 어찌 믿는단 말이오?”

진우선이 종전에 서도광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그에 서도광은 너무나 치욕스러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리고 모두 내리길 원했는데, 다행이오.”

“진 대인! 아무리 진 대인이라 해도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소?”

서도광이 불을 토하듯 진우선을 윽박질렀다.

진우선은 그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장강이룡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그들을 자극했다.

“해봅시다. 그런데 장강이룡 중 누가 형이오?”

“나요!”

“내가 형이오!”

“둘 다 대답하면 누가 형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소. 나는 누구라도 좋은데, 일단 형이 먼저 오시오!”

“이익!”

콰앙-!

그에 민머리 사내 장강패룡 추영공이 재빨리 권격을 날리며 짓쳐 들었다.

섬전 같은 일격이었다. 자신이 형이어야만 한다는 강력한 의지이리라.

퍼펑-!

그에 뒤질세라 장강신룡 추대공도 장력을 마구 쏘아댔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걸 확연히 드러내기 위해서인지, 그는 강기(罡氣)로 초식을 전개하고 있었다.

추대공, 추영공 두 사람은 쌍둥이로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질시하여 늘 우위에 서기 위해 이토록 강력한 무공을 익혔다.

하지만 이로 인해 얕은 도발에도 쉽게 넘어오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의 무위마저 허술한 건 아니었다.

휘휘휙-!

진우선이 광륜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단박에 추영공의 권격을 산화시키고, 추대공의 장강(掌罡)마저 잘랐다.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이었다.

그때, 어느새 뒤편으로 물러나 있었던 냉군상이 외쳤다.

“모두 적들을 상대하시오!”

채채챙-!

서도광은 잠시간에 벌어진 상황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제길!”

서도광이 얼른 검을 뽑더니, 세 사람의 공방에서 생긴 빈틈을 파고들었다.

퍼퍼퍼퍽-!

네 사람이 일으키는 격전의 소리가 맹렬하게 울렸다.

진우선은 검의 궤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렀다. 그저 검에서 순백의 빛이 뿜어지니 흐릿한 잔상이나마 드러날 뿐이었다.

그 검은 셋을 상대하고 있었다.

한 명은 장강(聖)을 쏟아내고, 한 명은 권강(拳罡)을 날리고, 한 명은 검강(劍罡)을 마구 펼쳤다.

장강이룡과 서도광 세 사람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품(品) 자의 가운데에 진우선을 붙잡아두며, 강기로만 공격해왔다.

이에 진우선이 광륜검을 휘두르다가, 별안간에 몸을 크게 회전시키더니 검을 땅에 꽂았다.

그 순간!

땅거죽이 쩍쩍 갈라지며, 검에서 일어난 거친 기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다.

세 사람은 미처 피할 새도 없이 기파에 고스란히 두들겨 맞았다.

또한, 발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강력하고도 맑은 내력에 속이 진탕되었다.

“컥-!”

“끄억!”

“억!”

기파는 광(光)의 줄기요, 침투한 내력은 영(影)의 줄기였다. 진우선은 광영창파(光影滄波)의 초식을 응용하여 세 사람을 단박에 압도하고 있었다.

그때, 장강패룡 추영공이 입가로 피를 흘려대면서도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외쳤다.

“강하군! 하지만 형으로서 너를 벌하겠다!”

촤촤촤촤-!

추영공의 힘을 끌어올리는 순간, 옆쪽에 있던 장강의 물결이 회오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곧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공력이 잔뜩 담겼는지, 살벌한 위력이 느껴졌다. 이는 사람의 내력만이 아니라 자연의 힘이 묵직하게 더해진 까닭이었다.

한데 그게 하나가 아니었다.

“수룡강기는 내가 더 낫지!”

추대공도 추영공과 비슷하게 생긴 물기둥을 장강에서 뽑아 올렸다.

이는 물이 많은 곳에서 강력한 위력을 뿜어내는 무공, 수룡강기(水龍罡氣)였다.

촤아아악-!

두 가닥의 물줄기가 진우선에게로 쏘아졌다.

‘토는 수를 극하니!’

진우선이 검을 땅에 한 번 더 꽂았다.

이미 쩍쩍 갈라지고 부서져 있던 땅거죽이 크게 들썩이더니, 기파를 타고 전방으로 빠르게 흙줄기가 쏘아졌다.

촤촤촬-!

촤촤촬-!

퍽-!

수룡강기 둘이 단박에 흙줄기에 맞아 부서졌다.

그리고 또 다른 흙줄기 하나가 반대편에서 기운을 뻗치려던 혈사자 서도광에게 꽂혔다.

이 역시 일광삼점파(日光三點破)의 초식을 응용하여 펼친 한 수였다.

“크억-!”

“으으-!”

“크윽-!”

세 사람에게서 숨이 끊어질 듯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이제 내력을 끌어올리는 건 어려우리라.

그때, 진우선이 남궁경 쪽 방향을 살폈다.

남궁경은 남궁세가의 창천대와 함께 사자검문의 정예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저깄군!’

진우선이 사자검문의 무인 둘을 찾아냈다. 배가 들어올 때부터 주시했던 자들이었다.

‘스승님, 아무리 봐도 귀기(鬼氣) 같습니다.’

[맞다. 마공으로써 귀문을 열었구나.]

마기를 바탕으로 한 섬뜩한 귀기가 두 사람에게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귀기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으나, 진우선의 감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우선은 배가 포구에 들어올 때부터 이들 둘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정화의 힘인 이화(離火)가 귀기를 바로 느낀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사자검문에는 천마교의 암수가 뻗친 것 같습니다.’

[그렇게 봐야겠구나!]

진우선이 몸을 훌쩍 날려, 그들 둘을 붙잡았다.

싸움은 곧 끝났다.

진우선이 두 사람을 단박에 붙잡은 뒤, 서도광을 설득한 까닭이었다.

“서 문주, 이 자들을 아시오?”

서도광은 진우선이 제압해둔 두 무인을 바라보았다.

“으으…….”

“끄으으…….”

서도광은 신음을 흘리는 두 사람을 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이 둘은 구염과 서진립으로, 본 문에 들어온 지 사오 년쯤 되었을 거요. 그런데 왜 그러시오?”

“이들은 마공으로써 귀문을 열었소!”

“뭣이!”

서도광이 너무 놀라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내상을 입어 안정이 필요함에도 저도 모르게 격하게 흥분한 까닭이었다.

냉군상도 화들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진 무사, 그럼 이들이 천마교의 귀영이란 말이오?”

“귀영이라 불립니까? 아무튼, 그렇습니다.”

“천마교의 귀문탈백종이 부리는 사람들을 그리 부르오.”

냉군상이 그렇게 말하며 재빨리 구염과 서진립을 살폈다.

백하련도 얼른 진우선에게로 다가오며 물었다.

“진 무사님, 저들이 귀영이라구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지금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군요. 귀영은 기운을 발하면 귀신이나 다름없다고 하던데요.”

귀영(鬼影)은 기운을 발하면 사람이되 사람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바로 알아볼 수가 없으니, 내당주님이 직접 살펴보시나 봐요.”

냉군상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들은 귀영이 맞소.”

일어서며 말하는 냉군상의 눈에 신광(神光)이 어려 있었다.

“그게 정말이오? 대체…….”

서도광은 신기수사 냉군상의 신광을 보고서도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그때였다.

진우선이 그들에게 내력을 잠깐 쏘았다.

“끄악-!”

“컥!”

구염과 서진립이 비명을 지르더니, 눈에서 도깨비불 같은 안광을 흘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섬뜩한 느낌도 전해졌다.

아직도 믿지 못하는 서도광을 보며 진우선이 쐐기를 박았다.

“저게 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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