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송림의 노괴들 (3)
‘맹여립은 마공을 익혔다!’
진우선은 맹여립을 주의 깊게 살피며 그가 마공도 익혔다는 걸 거듭 확신했다.
그나마 그가 익힌 마공의 기운이 독처럼 번질 수 있는 마라혈기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그에 진우선은 장내의 상황에 주의하는 가운데 맹여립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맹 노사는 광서성 삼강현에서 장구오라는 고아를 데려와 삼 개월간 시종으로 가르친 뒤, 탁무위의 집에 들어가게 했소. 그 아이는 거기서 몰래 마공을 익히다 폭사(爆死)했고, 탁무위가 마공을 익힌다는 혐의를 뒤집어썼지.”
독고월이 상황을 설명한 뒤, 추상같은 호령으로 맹여립에게 죄를 물었다.
“맹 노사! 이게 다 노사가 꾸민 계략이니, 이제 그 죗값을 치르시오.”
“어처구니없는 모함이외다. 맹주가 오 년 전의 일을 왜 지금 꺼내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전혀 그런 적이 없소. 또한, 탁무위의 집에서 발견된 아이의 이름은 소삼동인가 그러지 않았소?”
맹여립이 너무나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독고월이 피식 웃으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 아이의 이름이 소삼동이라는 것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니, 과연 대단하구려. 하오문에서 맹 노사가 직접 구한 명패라 잊지 못한 모양이오.”
“맹주! 무슨 말을 그렇게 하오? 아무리 맹주라도 내 명예를 허황한 말로 깎아내려선 안 되오! 내가 천한 사도련 것들과 거래하기라도 했다는 거요?”
하오문은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명패를 팔기도 했다. 그 명패는 도적 떼가 휩쓸고 간 마을의 사체에서 훔치거나 하여 타당하지 않게 흘러나온 장물이었다.
“물론이오. 그때 맹 노사의 행적은 물론, 거래했던 하오문도의 신분과 증언까지도 모두 모아두었소. 그러니 발뺌할 생각 말고, 당시 노사가 저질렀던 일을 인정하시오. 이미 다 알고 왔소.”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는 모함이오, 모함! 명확한 증거도 없이 터무니없는 추측만으로 이리 죄인 취급을 하다니! 아무리 맹주라 해도, 맹에 한평생을 바친 원로를 이리 대할 순 없소!”
맹여립이 버럭 소리쳤다.
그에 장로원의 삼대봉공이자 중심축인 남궁무기가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맹주,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소. 하지만 그 일은 탁 전 각주의 잘못이었소. 그가 혈폭마강(血瀑魔罡)에 흑심을 냈고, 계림에서 마교도 소삼동을 데려와 가르치면서 시험해본 거로 결론 나지 않았소?”
그래서 탁무위가 각주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계림에서 온 마교도 시종 소삼동.
그의 집에서 발견된 혈폭마강의 비급.
탁무위는 그 아이를 통해 혈폭마강에 내재한 위험성을 알아보고자 했다는 죄목을 벗지 못했다.
“남궁 노사는 그때와 똑같이 말하는구려. 그렇게 우긴 건 장로원이었소. 우리는 분명 천마교의 계략이라고 말했으나, 장로원에서는 정무맹 십장로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무위를 내몰았지 않소?”
“맹주. 그 상황을 보면 누구나 탁 전 각주의 잘못인 걸 알 거요. 그는 혼원벽력창의 기운을 더욱 강하게 폭발시키기 위해 혈폭마강마저도 익히려고 한 거였소. 정무맹의 십장로가 자긍심을 잃고 마공에 손을 댄 거란 말이오. 게다가 천마교와 결탁했을지도 모르는 바였고.”
천마교의 음모인가, 탁무위의 타락인가.
이는 오 년 전에도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이 남궁무기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맹주의 목소리는 잊히기 시작했다.
남궁무기의 말이 참으로 그럴듯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퍼다 나르며 목청을 높이니 힘이 크게 실린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탁무위는 혼인조차 하지 않고 인생의 전부를 바친 정무맹에서 명예를 잃고 쫓기듯 떠나게 되었다.
다만 천마교와 내통했다는 걸 밝혀낼 수 없고, 마공을 펼쳐 누구를 해한 적도 없기에, 숭의각주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그쳤을 뿐이었다.
독고월은 이걸 바로 잡을 심산이었다.
“남궁 노사, 틀렸소. 당시에도 무위가 말했지만, 그는 이미 극경이 보이기 시작하는 절대고수였소. 그런 그가 혈폭마강을 왜 욕심냈겠소?”
“후우-. 맹주의 뜻은 그때와 같구려. 탁무위의 말도 쉬이 믿기지 않으나…… 아무튼 맹주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오.”
단단히 마음먹고 온 독고월을 보며, 남궁무기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맹 노사에게 이 일을 묻는 거요? 오 년이나 지난 일인데, 맹주가 가져온 증거를 어찌 믿고 맹 노사를 탓할 수 있냐는 말이오.”
그때, 독고월이 공야청을 한 번 바라보았다. 계획한 걸 하라는 눈빛이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지요. 남궁 노사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맹 노사가 접촉했던 하오문도를 비롯해 의심스러운 사람들이 다 종적을 감췄더군요. 죽은 이들도 여럿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게 있지요.”
공야청이 품에서 책자 하나와 서찰 하나를 꺼내며 말을 이었다.
“그때 발견한 혈폭마강의 비급에는 누군가가 필사한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찰은 맹 노사께서 진양각주로 계실 때 쓰신 것이지요. 필체가 놀라우리만치 똑같습니다.”
“헛!”
남궁무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때, 맹여립이 악을 질렀다.
“모함하지 마시오. 그거야말로 맹주가 꾸민 계략이외다! 조작이오, 조작!”
독고월이 그런 맹여립을 흘깃 쳐다본 뒤, 남궁무기에게 물었다.
“남궁 노사, 확인해보겠소?”
“아니요. 나는 되었소. 맹주의 의지가 이 정도라면 나는 중립을 지키겠소. 맹 노사가 인정한다면 맹주의 뜻에 따르겠소.”
남궁무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러자 삼대봉공의 일인인 제갈종도가 나섰다.
“맹주, 그럼 내가 확인해보는 건 어떻겠소?”
“그렇게 하시오.”
“맹 노사는 여기 있으면 신경만 번잡하니 방에 들어가 있도록 하게.”
“알겠소이다.”
제갈종도가 공야청 쪽으로 다가가면서 맹여립에게 명령했다.
이는 누가 봐도 맹여립을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끄아아아-!”
맹여립이 갑자기 악귀 같은 표정으로 괴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무언가에 질린 듯도 했다.
“뭐요?”
“왜 그러시오?”
원로들이 맹여립에게 급히 물었다.
“크윽-! 끄으윽-!”
맹여립이 괴음을 계속 흘렸다.
핏줄이 온몸에 울뚝불뚝 솟아나고, 얼굴에도 새파랗게 일어났다.
‘으윽-!’
그는 속으로 더한 고통을 참고 있었다. 단전 속에 그간 숨겨왔던 공력이 있는 까닭이었다.
태산 같은 압력이 그 공력을 짓눌렀다. 외부에서 물샐 틈 없이 옥죄니, 이러다가는 단전이 먼저 터지고 말리라. 그거야말로 내부로부터의 폭사였다.
“끄윽-!”
맹여립은 온몸이 떨려오고 몸도 저절로 굽어졌다. 머리끝까지 혹독한 고통이 치솟았다.
단전을 사방팔방에서 망치로 두들겨 패니 버틸 수가 없었다.
‘아, 안 돼!’
더 참아낼 수 없었다.
“으아아악-!”
퍼어엉-!
맹여립이 괴성과 함께 검붉은 마기를 폭발시켰다.
그 순간, 장내의 모두가 맹여립의 마공을 알아채며, 급히 내력을 끌어올렸다.
“이, 이놈이!”
“맹 노사!”
“이럴 수가!”
남궁무기와 제갈종도, 용화성이 맹여립을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 질렀다.
맹여립이 쏟아내는 마기가 지독했다. 마기를 극대로 끌어올린 탓이었다.
맹여립은 그 와중에 독기 품은 눈으로 정면을 보았다. 분노가 극에 달해 흑광마저 뿜어졌다. 살기가 풀풀 날렸다.
그러면서도 몸을 움찔거렸다. 무언가에 심히 짓눌리는 듯 보였다. 그것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살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발버둥치는 듯했다.
“이런 고얀 놈! 네놈이 마교도였어!”
남궁무기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맹여립에게 분노를 쏟아냈다.
맹여립이 이 정도로 마공을 익혔다면, 맹주의 말이 다 맞을 터였다.
소삼동 역시 본명은 장구오였을 테고, 맹여립이 그 아이를 탁무위의 집에 보냈으리라.
즉, 애초에 정무맹 장로의 명예를 저버린 건 맹여립이었다.
‘근데 왜 지금 여기서 마공을 폭발시켰지?’
남궁무기가 문득 의문을 가졌다.
그 순간, 한 줄기 청량한 음성이 들려왔다.
진우선의 목소리였다.
“노사님. 비켜주십시오.”
“……설마!”
진우선이 유도해낸 것이란 말인가.
진우선은 이리될 것을 예측이라도 했다는 듯, 맹여립에게 묵직한 현기를 뿜고 있었다.
그리고 남궁무기의 추측은 사실이었다.
제갈종도가 맹여립을 보호하려던 그 순간, 진우선이 결심을 내렸다.
‘상황이 길어지고 불편해지는 것보단 이게 낫겠어!’
진우선은 즉시 항마의 힘으로 맹여립의 마기를 자극하고 적당히 짓눌러, 폭발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이에 그치지 않고, 항마의 힘을 더욱 끌어올렸다.
“크으으윽-!”
맹여립이 삼 장 앞에서 뿜어지는 진우선의 치명적인 힘에 온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허리는 곧장 접히고 부서질 것 같았다.
“커헉.”
급기야 맹여립이 땅바닥에 주저앉으며 죽은피를 토해냈다.
흑광도 잠시 눈에서 빠졌다. 실핏줄이 터져서 피눈물이 슬쩍 고이는 게 보였다.
“이익-!”
맹여립이 눈을 치켜뜨며 소리 질렀다. 그러더니 검붉은 마기를 줄기줄기 뽑아내며 진우선에게로 짓쳐 들었다.
콰아앙!
“미친!”
장내의 사람들이 욕을 내뱉으며 덮쳐오는 마기를 쳐냈다. 맹여립이 사방으로 마기를 뻗쳐낸 까닭이었다.
스윽!
이능운도 앞으로 나서며 얼른 검을 뽑아 마기를 베어 독고월과 공야청, 금청청을 보호했다.
하지만 이들은 곁다리였다.
맹여립은 누군가 자신을 방해할까 싶어 마기 가닥을 사방에 날렸을 뿐, 진정한 내력은 정면으로 모은 상태였다.
맹여립이 두 주먹을 힘껏 떨치며 마공 초식을 쏟아냈다.
초식에 실린 상당한 마기가 진우선을 덮쳤다.
그 순간, 진우선이 허공에 우아하게 검초 하나를 펼쳤다.
후욱-.
검이 지나는 궤적을 따라 마기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마치 종잇장 찢듯이 충격파조차 없이 마기를 베어갔다.
그러더니 진우선이 땅을 박찼다.
동시에 공간을 격하고 나타난 손이 맹여립의 목을 움켜쥐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크윽-!”
땅바닥을 뒹군 맹여립이 고통에 신음했다.
몸을 채 일으키지 못한 채, 입에서 연거푸 피를 게워냈다.
진우선이 맹여립에게 다가갔다.
“진 호위! 잠시만 기다리게!”
그때, 독고월이 외치자 진우선이 바로 멈춰 섰다.
“진 호위, 이 정도면 되었네. 이제 맹 노사에게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해야지.”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고 뒤로 물러났다.
“허-! 진우선이었구나!”
장내에 있던 원로 채양륜, 이옥환, 장학림, 추일풍이 감탄하여 술렁거렸다.
그들은 이번에 신양의 격전을 여기저기서 건네 들으며 등봉조극의 고수 진우선의 이름에 가슴이 뜨거워졌었다. 실물을 보는 게 처음일 뿐이었다.
그리고 남궁무기와 용화성은 그들이 살아오면서 전혀 경험한 적 없는 광경에 감탄하고 있었다.
“남궁 형, 저게 말이 되오? 저런 능력 본 적 있소?”
“아니, 처음이다. 대연신검조차 저러진 못했어!”
대연신검 황우립은 정무맹의 전전대 맹주로, 등봉조극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었다.
남궁무기와 용화성과 제갈종도는 삼사십대 시절, 황우립을 근처에서 모시며 강호를 누볐었다. 그는 무공 실력만이 아니라 명망도 높아 역대 최장인 이십오 년이나 맹주직을 맡았었다.
하지만 그런 황우립도 지금 진우선처럼 해낸 적은 없었다.
그때, 독고월이 원로들에게로 다가가며 물었다.
“남궁 노사, 제갈 노사. 이 정도면 누가 범인이고 죄인이었는지 나온 것 같소만.”
“그렇군. 맹주의 말이 맞겠네.”
“‘맞겠네’가 아니라, 이게 맞는 거요. 증거들이 잔뜩 있지 않소? 이 자를 봐도 알 테고 말이오.”
“그렇지. 맞네. 맹 노사가 마공을 익혔다니…….”
남궁무기가 인정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제갈종도는 차마 뭐라 말을 못 하겠는지 고개만 끄덕였다.
독고월이 그런 제갈종도에게 퉁명스럽게 말을 던졌다.
“오늘도 어쩌면 한참을 말씨름했을지도 모르겠구려. 남궁 노사가 적당히 물러서서 상황이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제갈 노사가 이럴 줄이야. 차라리 진 호위에게 무공부터 한 수 펼치라 할 걸 그랬소.”
“맹주…… 미안하네.”
제갈종도가 한숨을 내쉬며 독고월에게 사죄했다.
그때, 진우선이 독고월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맹주님. 이 자의 집에도 가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뭔가 있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