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18화 (118/225)

118.

#대법의 순간 (2)

동굴 입구로 다가갈수록 사기(邪氣)가 점점 더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기운이 정말 악랄하군.’

탁운비는 심령을 옥죄어오는 사기에 너무나 놀랐다.

멀리서도 느꼈지만, 동굴로 들어서자 그 역함의 정도가 차원이 달랐다.

여태껏 사도련을 드나들면서 사람과 물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꽤 접했으나 이토록 심한 사기는 처음이었다.

‘진 대협은 영향을 안 받는 걸까?’

탁운비는 문득 함께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진우선을 쳐다보았다.

진우선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신중하게 함정이 있는지 살피며 나아갈 뿐이었다.

‘대단하구나!’

그러던 중.

“우욱!”

탁운비가 멈춰 서며 숨을 참았다. 속에서 신물이 올라왔다. 기운이 너무 역했다. 뒷골도 찌르르 울렸다.

요사한 기운이 온몸을 휘저으려는 듯했다.

‘벌써 이 정도라고?’

칠성홍옥대법의 사기가 내력을 진탕시키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잠시 기운을 고르고 가는 게 좋을 듯싶었다.

그때였다.

진우선이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탁운비가 그 손을 잡자 힘차게 맥동하는 상서로운 기운이 진우선에게서 전해졌다.

화아아-

‘맑구나!’

그 기운을 느낀 순간, 몸 안에 침투한 사기가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내력도 진정되었다.

“……!”

탁운비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진우선을 쳐다보았다.

내공만이 아니라 골수까지 헤집던 사기가 단숨에 소멸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싱긋.

진우선이 탁운비에게 웃어 보이며, 전음입밀(傳音入密)의 기예로 말을 전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조심하십시오. 사기가 심히 강합니다.]

[알겠소. 고맙소.]

탁운비의 전음에서 감격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제 반쯤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리고 며칠 앞서 대법을 끝내겠다는 계획 때문인지 함정은 없는 것 같네요.]

진우선이 간략히 상황을 전달했다.

그리고 다시 동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기 시작했다.

‘대법의 사기가 너무 짙다! 탁 형도 힘들어 할 정도이니, 사파와 흑 도의 무리는 기운에 크게 휩쓸렸겠구나.’

이런 이유로 대법의 순간에 수하들을 물린 게 틀림없으리라.

또한, 계획을 앞당기면서 누군가가 정확히 이곳으로 찾아올 거라고는 예상치 않았기에, 동굴에 아무런 방어책도 세우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진입에 어려움은 없지만…….’

그만큼 칠성홍옥대법이 어마어마하고, 악중뇌 사마광후의 사술이 강력하다고도 볼 수 있었다.

진우선이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며, 동굴 속 광장 앞쪽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

후웅-!

진우선에게서 금빛 광채가 솟아올라 전신을 뒤덮더니, 흐르는 듯 아닌 듯 은은하게 보호하기 시작했다.

또한, 눈부신 빛무리가 사방에서 구(球) 모양으로 맺혀 기막을 이루며 진우선을 감쌌다.

어디 그뿐일까.

휙- 휙- 휙-

기막 주위로 황금빛 빛줄기들이 호위하듯이 휘돌았다.

‘헛-! 아까 진 대협이 말한 좋은 방도라는 게 이것이었구나!’

탁운비가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속으로 경악했다.

진우선에게서 느닷없이 솟구친 금빛 기운의 순전함에 놀라고, 종전의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까닭이었다.

이는 패왕금룡신공이었다.

금빛의 둥근 기막은 호신강기(護身罡氣)이며, 전신에 흐르는 황금 보의는 호심진기(護心眞氣)였다.

그렇게 패왕금룡신공을 두른 진우선이 광장 한복판의 팔괘 석판으로 달려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석판 위 허공에 둥실 떠 있는 시뻘건 기운, 칠성홍옥대법에서 비롯된 홍옥기(紅玉氣)로.

그 순간.

“……!”

팔괘 중 한 방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사마광후가 눈을 번쩍 떴다.

흰자위가 사라진 시꺼먼 동공에서 섬뜩한 흑광이 뻗쳐 나와 홍옥기에 스며들었다.

그때, 진우선의 광륜검이 홍옥기를 때렸다.

퉁-!

묵직한 충돌음이 장내에 터졌다.

홍옥기가 더욱 시뻘게지며 크게 출렁거렸다.

그 진동이 기운과 연결된 여덟 가닥의 줄을 타고 석판의 팔괘로 전해졌다.

푸스슥-.

석판이 충격을 받아 어딘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크윽!”

사마광후도 고통에 찬 신음을 터트렸다. 한 줄기 기파가 그의 정수리로 파고든 까닭이었다.

하지만 사마광후는 일격을 당하고서도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은 채 진우선을 노려보았다.

파앗! 파파팟!

그러자 홍옥기에서 붉은 기운이 연거푸 쏘아졌다.

사기로 이루어진 화살이었다.

피이-.

사기의 화살이 꽂힌 바닥이 움푹 죽어 들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누구냐? 어떻게 여길?”

“…….”

진우선은 대답하지 않았다.

말할 틈에 검을 휘두르는 게 나았다.

진우선이 벽사의 기운을 한 번 더 실어 광영무의 검초를 펼쳐냈다.

투우웅-!

허공의 홍옥기가 크게 찌그러졌다. 움푹 파여서는 복구되지 않았다.

“크억-!”

사마광후가 검게 죽은피를 토했다. 홍옥기에서 강한 충격이 전해진 까닭이었다.

분명 줄이 여덟 갈래로 나누어져 있어 피해를 팔분의 일밖에 받지 않았음에도, 그 충격으로 심령이 찢어질 뻔했다.

두 번의 벽사.

사마광후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챘다.

“네놈이었구나, 진우선-!”

“…….”

하지만 진우선은 여전히 말없이 재차 검을 휘둘러갔다.

우웅-.

그 순간, 커다란 석판에서 팔괘의 문양이 허공에 떠오르면서 홍옥기가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진우선의 검이 허공에 뜬 팔괘의 문양과 충돌했다.

콰아앙-!

“내가 쉽게 당할 것 같으냐?”

사마광후가 악에 받쳐서 외쳤다.

팔괘의 벽.

이는 칠성홍옥대법을 더 유지하려다가는 목숨을 잃을 것이기에, 사마광후가 어쩔 수 없이 급히 꺼내든 술법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할 듯했다. 비록 준비 과정 없이 펼쳤다고는 하나, 그 힘의 근원이 칠대악인의 내단 전체인 까닭이었다.

하나만 있어도 기운이 거대한데, 그게 일곱이나 모여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마광후 자신의 내력까지 더해져 있었다.

그러니 간략히 펼쳤어도 진우선을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크하하! 받아라-!”

사마광후가 광소를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팔괘의 벽이 재차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원판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팔괘의 벽이 만들어낸 원판의 테두리에서 마치 창격(槍擊) 같은, 여덟 개의 굵직한 기운이 쏘아졌다.

피피피피피피피핏!

진우선이 재빨리 검을 휘두르며 기운을 튕겨냈다.

여덟 줄기의 사기가 마구 부서져 사방으로 터져나갔다.

그 와중에 찰나 간에 진우선과 탁운비의 시선이 교차했다.

‘가겠습니다!’

진우선이 탁운비의 눈빛에서 그의 뜻을 읽었다.

탁운비는 진우선이 패왕금룡신공을 두르고 사마광후와 잠시 공수를 주고받는 동안, 얼른 서문영화를 업고 한옆으로 피해 있는 상황이었다.

칠사로 뽑힌 일곱 사람이 대법을 위해 약을 먹고 혼절한 채로 각 제단에 누워 있었기에, 그는 순식간에 서문영화를 둘러업을 수 있었다.

‘가시오!’

진우선의 눈빛을 받은 탁운비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동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네놈은 결코 살 수 없을 것이다!”

사마광후가 악을 질렀다.

피피피피피피피핏!

회전하는 팔괘의 벽에서 종전보다 더 굵은 통나무 모양의 사기가 쏘아졌다.

하지만 진우선은 이제 걱정 없이 광영무를 펼쳤다.

광륜검에 어린 순백의 빛이 마구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퍼어어엉-!

그러자 시뻘건 사기 여덟 줄기가 그 굵직함을 자랑해보지도 못하고 날아오던 도중에 폭발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우선이 쏘아낸 빛줄기 하나에 혼절한 채 누워 있는 칠사의 여섯 사람이 단박에 반으로 베어졌다.

“으아악-!”

사마광후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절규했다.

눈이 찢어지라 부릅뜨니, 흑광만이 비치던 눈동자에 피가 죽죽 맺혔다.

“사마광후. 칠성홍옥대법은 너무나 위험하오.”

“웃기지 마라! 네놈이 뭘 안다고! 대법을 감히! 대법을 감히-!”

사마광후가 혼을 불사르듯 괴성을 질렀다.

흰자위 없는 눈에서 원한 서린 검붉은 광채가 줄기줄기 솟구쳤다.

그는 이제 실성한 듯했다.

“네놈! 내가 널 저승으로 보내주마-!”

사마광후가 울부짖는 것과 동시에, 팔괘의 벽이 그의 몸으로 들러붙었다.

이제 쓸 곳이 없어진 칠대악인의 사기를, 사마광후는 자신의 육신에 사용할 생각이었다.

‘당장 막아야 돼!’

진우선은 섬찟한 느낌이 들자마자 곧장 사마광후에게 광영무를 펼쳤다.

스앗-!

새하얀 빛과 그 뒤를 따르는 그림자가 사마광후의 몸을 때렸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났다.

광영무의 힘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듯했다.

‘막혔어?’

진우선이 눈을 부릅떴다.

팔괘의 벽을 온몸에 입은 사마광후가 섬찟한 미소를 지었다.

“크크크. 넌 이미 죽은 목숨이다!”

***

아직 새벽이 오지 않은 시각.

신양현 북쪽의 넓은 평원에 한 사내가 두 사람을 마주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문득 착각이 들었다.

동이 트기 직전의 가장 짙은 어둠이 사내를 감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었다.

그래서 너른 벌판이 더 스산하게 느껴지는지도 몰랐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그건 예상치 못했는데.”

“극악한 사기를 풀풀 날리는데 어찌 모를 수 있을까?”

“하긴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는 둘이 왔군. 소문이 빨라. 지난번엔 혼자였잖아.”

여유 있는 표정의 사내, 사도련주 섭무악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정무맹주 독고월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하지만 독고월은 긴장한 기색이 가득했다.

“닥쳐라, 섭무악! 네놈은 기어코 천기를 해쳤더구나!”

“맹주. 나는 천기를 해치지 않았어. 단지 사령(邪靈)의 길을 열었을 뿐이지.”

“그게 천기를 해친 것이다!”

독고월의 말에 섭무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맹주도 알다시피 나는 극사(極邪)의 경지에 너무 오래 있었어. 항상 그다음이 궁금했지. 하지만 우리는 사공(邪功)이든 사술(邪術)이든 극사를 뛰어넘지 못하는 거야. 너희들은 깨닫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지. 물론 넌 등봉조극에 아직 다다르지 못했으니 이 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섭무악이 슬쩍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

“도가는 등봉조극에 올라선 뒤 선도로 접어들고, 불가는 등각(等覺)을 이룬 뒤 묘각(妙覺)으로 나아가지. 패도(覇道) 역시 무극(武極)을 넘어 생사경(生死境)으로 가잖아. 깨닫기만 하면.”

“그게 무슨 상관이오? 사도는 애초에 올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고,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 편법을 쓰며 지름길을 택한 것이지 않소! 그러니 오히려 극사를 넘어서지 못하는 게 맞는 거 아니오?”

독고월의 우측에 있던 숭의각주 탁신이 반박하여 소리쳤다.

“자네가 정무맹의 두 번째로군. 후후. 아직 힘이 팔팔해.”

이제 서른 즈음으로 보이는 섭무악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탁신에게 하대하며 말을 이었다.

“사도가 편법이라고? 우리를 너무 모르는군. 우리에게도 우리의 길이 있어. 그래서 극사를 넘어서는 것도 사도답게 하려고 했지. 방법이 있더라. 앙천극사대법을 통해 사령의 길로 접어들면 되는 거였어.”

사도(邪道)이니 술법으로 길을 열었다는 말이었다.

독고월과 탁신은 그 말이 궤변 같았으나, 그게 또 사도의 본질이기에 쉽게 반박하지 못했다.

그에 섭무악이 싫증이 난 표정을 지었다.

“뭐, 이런 이야기는 재미없지? 그냥 내 한풀이니까.”

“섭무악, 우리는 네게 동조하지 않을 거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우리는 어차피 적일 뿐이니까.”

“그 말이 맞지.”

섭무악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두 사람의 앞에 편히 섰다.

독고월과 탁신이 각자 기세를 끌어올리며 섭무악을 마주 보았다.

섭무악은 혼자이나, 그에게서 뿜어지는 위압감은 전혀 작지 않았다. 천지를 요동케 하는 기세가 뿜어지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저 멀리 뒤편의 사도련 무인들에게서 일말의 걱정도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씨익.

섭무악이 소리 없이 웃으며 가볍게 말을 던졌다.

“모처럼 오랜만에 극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리 한 번 놀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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