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17화 (117/225)

117.

#대법의 순간 (1)

‘스승님! 큰일 났습니다!’

[그렇구나! 사기가 너무나 강렬해!]

한밤중에 갑자기 대별산맥에서 엄청난 사기가 회오리치고 있었다.

진우선과 검노야는 끓어오르는 듯한 막대한 기운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우선아. 천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구나. 하늘에도 사기가 마구 요동치고 있어. 천지를 진동시킬 대법을 펼칠 모양이다.]

‘아! 그렇다면 칠성홍옥대법을 지금 하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아직 사흘이나 남았지만, 사도련에서 계획을 변경했나 봅니다!’

진우선과 검노야가 사태를 파악하며 급히 결론을 내렸다.

지금 벌어지는 사태는 칠성홍옥대법 말고는 달리 말할 게 없었다.

진우선이 재빨리 자신의 방을 나서서 탁운비의 방으로 건너갔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내공 수련을 하던 탁운비가 곧장 눈을 떴다.

“진 대협, 무슨 일이오?”

“탁 형. 큰일 났습니다. 지금 칠성홍옥대법이 펼쳐지려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아직 사흘이 남지 않았소?”

“사도련이 계획을 바꾼 모양입니다. 지금 대별산맥에 사기가 마구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진우선의 말에 탁운비가 대별산맥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별반 다른 걸 느끼지 못하는 듯, 표정에 미동조차 없었다.

하지만 탁운비는 진우선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었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소. 그러나 진 대협의 말이 틀릴 리 없지.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되는 거요?”

“양수객잔에 들러 얼른 소식을 전한 후, 출발하기로 하죠.”

“알겠소. 갑시다.”

탁운비가 벌떡 일어나 도를 챙겼다. 그리고 진우선과 함께 별채를 나섰다.

“뭐라고?”

양수객잔에 도착한 진우선이 종을 치던 중에 이능운을 만났다. 그는 진우선의 말이 믿기지 않아 반문하고 있었다.

“지금 대별산맥에서 대법이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녁까지만 해도 하나둘씩 떠날 준비를 한다고만 들었어. 이런 건 듣지 못했는데.”

“저도 몰랐습니다. 조금 전에 갑자기 사기가 몰아쳐서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능운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진우선이 조심스레 물었다.

“무원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얼른 각주님께 기별하고 오지. 그리고 우리도 당장 출발해야겠어.”

“제 의견에 따라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잘한 게 아니야. 사실 혜원주가 그러더군. 우선이 네가 무언가 직감적으로 알아채면 그대로 따르라고. 어쩌면 그녀는 이런 순간을 예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백무원주 이능운은 백혜원주 금청청을 상당히 신뢰하며 따르고 있었다.

“아무튼, 잠시만 기다려.”

이능운이 곧장 만상각주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 틈에 탁운비가 질문을 건넸다.

“진 대협. 대법이 펼쳐지는 장소까지 거리가 얼마쯤 되겠소? 대략 적으로라도 알 수 있소?”

“탁 형, 그곳은 남쪽으로 삼사십 리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아! 대별산맥으로 들어가야겠군.”

“맞습니다. 아마 백 년 전에 대법을 펼친 장소가 거기 있었겠죠.”

그때, 공야청이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남쪽 삼사십 리? 마냥 가깝지도 않군.”

공야청이 조금 전의 대화를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의관을 이미 갖추고 있었는데, 애초에 긴급한 상황을 대비해 벗지도 않고 잠든 듯했다.

“그렇습니다.”

“우선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공야청이 다급하게 물었다.

“대별산맥에서 사기가 회오리치며 거세게 일어난 걸 느꼈습니다. 그래서 대법이라 생각했습니다.”

“허. 그게 느껴졌단 말인가?”

“제가 기감이 꽤 뛰어난 편입니다.”

진우선의 그 말에 이능운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면 꽤 뛰어난 게 아니라, 천지와 감응한다고 말해도 믿겠어.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거든. 아까부터 계속 기감을 펼쳐보지만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이능운이 의아한 눈으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그때, 공야청이 머릿속으로 상황 정리를 끝내고 급히 방침을 정했다.

“어쨌거나 우선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도 지금 바로 준비해야겠군. 그들이 천천히 준비하고 있던 건 우리를 속일 목적이었어.”

공야청은 진우선과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며, 그가 거짓을 말할 리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게 해야 할 일이리라.

“무원주, 모두에게 빠르게 준비하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이능운이 공야청의 말에 즉각 반응했다.

공야청은 얼른 창밖을 내다보며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립해 나갔다.

“밤이 깊었군. 오늘은 달도 밝지 않던데, 그들의 종적을 놓치기 십상이겠어.”

바로 그때였다.

“아-!”

진우선이 갑자기 경악하며 탄성을 흘렸다.

아주 거대한, 그리고 극악한 사기가 다가오는 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가?”

“북쪽에서 극사의 기운이 신양현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극사의 기운?”

“네. 아마도 사도련주인 것 같습니다.”

“허어-!”

진우선의 말에 공야청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신음을 흘렸다.

“사마광후가 작정을 했구나, 작정을! 그는 애초에 우리가 사흘 후를 기점으로 삼으리란 걸 예상하고, 역으로 준비한 거였어!”

공야청은 이 계획이 악중뇌 사마광후의 머리에서 나온 것임을 바로 깨달았다.

사도련과 정무맹이 수차례 충돌한 까닭에, 사마광후는 공야청의 행동방식을 알았다. 공야청이 그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허를 찌르기 위해 사흘을 앞당긴 것이리라.

공야청은 사마광후의 수가 보였다.

그러나 보여도 피할 도리가 없는 수였다.

“우리만 준비해서 될 게 아니었어. 맹주님께도 다 아뢰어야겠군.”

공야청이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급히 이것저것 명령을 내렸다.

그러던 중, 각자의 방에서 나온 여의량과 백하련이 공야청에게 바로 다가왔다.

“각주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지금 난리 났소. 남쪽에선 사마광후가 대법을 시행하고 있고, 북쪽에서는 사도련주가 접근하고 있소.”

“아!”

백하련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지금 모두 비상대책을 세워야 하오. 여 책사와 백 책사는 급히 비상계획을 짜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다급한 표정의 여의량과 백하련이 즉시 회의실로 달려 들어갔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천기를 헤아리던 검노 야가 벽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우선아. 천기가 심상치 않구나. 지금 출발하는 게 좋겠다.]

‘지금요?’

[그래. 지금 가야 해. 하늘에서 요동치던 사기가 뭉치려는 조짐을 보이는구나. 자칫하다간 커다란 사기가 악독한 형(形)을 이루어 하늘을 마구 헤집고 헐뜯을 것이니라.]

‘아! 대법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시군요.’

[맞다. 네 관점에서 보자면 그렇겠구나.]

진우선이 검노야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그 즉시 공야청을 찾았다.

“각주님. 대별산맥의 사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계획이 변경되는 것이라면, 저는 지금 바로 가도 되겠습니까?”

“뭐라고?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자칫하다가는 칠성홍옥대법이 성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럴 수가!”

공야청은 진우선의 말에 한 번 더 충격을 받았다.

상황이 급박한 걸 넘어서서, 숨 쉴 틈 없이 몰아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결단도 빨랐다.

“알겠네. 그럼 일단 자네가 먼저 가주게. 여기 상황을 얼른 정리한 후, 무원주를 그쪽으로 보내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남쪽 중에 정확한 방향이 어딘가?”

“저쪽입니다.”

진우선이 창밖을 보며 가리키자, 공야청이 방향을 확인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하네. 조심하게.”

공야청은 또한 진우선에게 만일을 대비해 한 가지 더 일러두었다.

“그리고 자네의 기감이 뛰어나니 혹시나 사도련주와 맹주님의 기운을 느끼거든 상황을 잘 판단해 주게. 맹주님은 맹에 꼭 필요한 분이시네.”

“알겠습니다.”

공야청이 그 당부를 끝으로 진우선을 보내주었다.

진우선과 탁운비가 양수객잔을 나섰다.

일련의 상황을 목격한 탁운비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

진우선과 탁운비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신양현을 가로질러 대별산맥의 산자락에 빠르게 접어들었다.

그 와중에 사도련의 무리가 곳곳에 자리 잡은 걸 목격했다.

“탁 형, 저들이 완전히 작정한 듯합니다. 산길을 따라서 올라갈 길목을 다 막았습니다.”

“그렇소. 내가 보기에도 사도련은 이미 우리를 막을 계획을 다 세워뒀던 모양이오.”

탁운비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진우선이 계속 살피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탁 형. 아무래도 우리는 산 능선을 가로지르며 직진하는 게 좋겠습니다. 저쪽 길로 가는 건 답이 안 나옵니다. 시간을 꽤 잡아먹을 것 같습니다.”

“진 대협의 말이 맞소.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소? 할 수만 있다면야 나는 괜찮소. 경신술(輕身術)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럼 저 산등성이를 가로질러 넘는 거로 하겠습니다.”

“좋소. 그럽시다.”

탁운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선이 다급한 것만큼이나 탁운비 역시도 마음이 급했다.

칠성홍옥대법이 이루어진다면 서문영화의 영혼도 사라질 것인 까닭이었다.

“하아-! 인제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다행인 건, 사도련에 드나들며 숙련된 것들뿐인 모양이오.”

탁운비는 문득 허탈한 생각이 밀려왔다. 그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게 사도련에 드나들며 사용했던 역용술과 보신경(步身輕)뿐인 까닭이었다.

“탁 형, 그 두 가지가 어느 때보다도 가장 필요합니다. 오히려 정말 다행이죠.”

“그리 말해줘서 고맙소. 우리 얼른 갑시다.”

“알겠습니다.”

진우선과 탁운비가 길을 벗어나 곧장 남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둘의 경공이 빛을 발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빠르게 산등성이를 마구 넘었다. 숨이 차오를 만도 한데 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당연히 그들을 발견하는 사도련 무리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아! 이거였구려!”

“사기가 느껴지셨습니까?”

“그렇소. 정말 기운이 악독하오!”

“저 산등성이 너머에 대법의 장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칠성홍옥대법에서 피어나는 사기를 느낀 탁운비는 문득 진우선에게 경외감이 들었다.

“그런데 진 대협은 이걸 신양에서부터 느낀 것이지 않소? 상상을 초월하는군.”

“과찬이십니다.”

“아니요.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오.”

“제가 익힌 무공에 벽사의 힘이 있고, 항마의 힘이 있습니다. 그 덕이 컸던 것 같습니다.”

“허허. 진 대협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구려.”

탁운비는 진우선에 대해 알아갈수록 감탄만 더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대화하면 달리다 보니, 둘은 마지막 산등성이에 올라섰다.

진우선이 잠시 멈춰 섰다. 그에 탁운비도 경신술을 그쳤다.

산 아래 골짜기 부근에 동굴 하나가 보였기 때문이다.

[사기가 들끓는구나. 극악할 정도야!]

검노야가 통탄을 금치 못했다.

진우선 역시 절로 오만상을 찌푸렸다. 동굴에서 흘러나오는 악기에 온몸이 오싹할 정도였다.

“저기군요. 심령을 어지럽히는 사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나도 느꼈소. 벌써부터 풍기는 기운이 심상치 않구려.”

진우선이 잠시 상황을 살피더니 탁운비에게 말을 건넸다.

“탁 형, 아직 대법이 완성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다른 사람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는군요. 이 정도 기운이라면 아무래도 사도련의 무인들 역시 대법에 휩쓸릴 테니, 미리 접근을 막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다행이겠군.”

“그렇지요. 또한, 지금 보아하니 아직 서문 소저를 살릴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따가 대법 장소에 가면 제가 사마광후를 막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 대협, 괜찮겠소?”

탁운비가 느닷없는 진우선의 말에 되물었다.

상황이 급한 까닭에 사전의 계획대로 할 수 없는 게 당연하겠으나, 진우선은 마땅히 자기 일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그를 상대할 좋은 방도가 떠올라서 해볼 만할 것 같습니다.”

“알겠소. 고맙구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도우면 되겠소?”

탁운비가 무엇이든지 힘껏 거들 기세로 물었다.

“탁 형은 서문 소저를 찾으면 바로 구출하여 신양현 쪽으로 피하십시오. 그때쯤이면 우리를 지원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제 들어가면 뭐라 설명할 틈이 없을 것 같아 미리 말씀드립니다.”

“그리하겠소.”

“탁 형, 무운을 빕니다.”

“진 대협도 무운을 비오. 아! 그럼 혹시 목격자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칠사도 있을 텐데.”

“어떻게든 해야지요. 어떻게든.”

진우선의 안광이 빛났다.

그 속에 담긴 강렬한 의지를 느낀 탁운비는 문득 모골이 송연해졌다. 섬뜩했다.

‘아! 진 대협은 숨을 끊을 생각이었구나. 모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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