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11화 (111/225)

111.

#칠성홍옥 (3)

백혜원의 인재들은 오늘도 정신이 없었다.

“저번에 흔적을 드러냈던 혈련수라종이 침주에서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호남성에 들어왔군. 지금 숭의각에서 쫓고 있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리가 조금씩 벌어지고 있어요.”

최근 천마교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구양기가 금청청에게 빠르게 보고했다.

금청청은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으로 정황을 떠올리며 답을 찾았다.

“진양각 몇 번째가 어제 영주에 있다 하지 않았어?”

“십양입니다.”

“맞아, 십양이었어. 영주면 가깝네. 십양에게 반대편에서 접근하여 양동작전을 펼치라고 하자.”

“그게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방책이 결정되었다.

백혜원에는 인재가 아닌 사람이 없기에, 보통의 일에는 두 사람이 결정을 내리면 그대로 진행하곤 했다.

그때, 사예설이 물었다.

“근데 초 대협이 그 근처에 계시지 않나요?”

“맞아. 초 대협은 현재 소관현에서 호위 임무를 수행하고 계시지. 아마 혈련수라종을 마주치셨겠지만, 그분의 성격상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흘려보내셨을 거야.”

“아!”

초무량의 임무를 주관하는 고명 경이 사예설의 질문에 곧장 답했다. 대답이 즉시 튀어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고명경의 말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아! 저번에 말한 거 잊지 않았지? 초무량과 진우선 말이야.”

“당분간 천마교 영역은 초 대협이 맡고, 사도련의 영역은 우선이가 대응한다는 말씀이라면, 잊지 않았어요.”

사예설이 금청청의 물음에 똑 부러지게 대답했다.

“맞아. 다른 임무는 두루 나눠줘도 최고수가 필요한 임무는 그들이 맡아줘야 해. 그래야 백무원의 무인들도 조금은 숨을 돌릴 수 있을 거야.”

“초 대협이 가장 숨을 돌리겠죠. 사실 그전에는 좀 안쓰러울 정도였어요.”

백하련이 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엔 정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우선이가 잠시 대기 중이었구려. 사도련의 기세가 만만치 않으니 말이오.”

뒤편에 앉아 있는 여의량은 운중헌 내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한 걸음 뒤에서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금청청의 뜻이 보였다.

그때였다.

운중헌의 문이 열리며, 조검명이 커다란 바구니 두 개를 들고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침샘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다들 출출하실 텐데, 좀 드시면서 하시죠. 자고로 머리싸움은 밥싸움입니다.”

“오! 향 좋다.”

“역시 검명 형이 최고입니다. 저 배고픈 줄은 어찌 아시고.”

“넌 항상 배고프지 않냐? 맨날 꼬르륵거리잖아.”

“크크큭!”

구양기가 너스레를 떨며 얼른 바구니로 다가가 음식을 살폈다.

그때 금청청이 피식 웃으며 조검명에게 물었다.

“넌 언제 또 다녀왔어?”

“아까 광명각 임무를 전달한 후에 바로 내려갔다 왔지요.”

“빠르다, 빨라.”

“사실 혜원주님을 위해 숙수님께 특별히 부탁한 게 있습니다.”

조검명이 바구니 안쪽에서 그릇 하나를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육수가 듬뿍 배인 만두들이 놓여 있었다. 금청청이 좋아하는 소롱포였다.

“잘했네.”

금청청이 웃으며 그릇을 건네받았다.

그 순간, 옆방에서 서찰 하나가 건네졌다. 새로운 정보가 또 들어온 모양이었다.

사예설이 얼른 받아서 살펴보았다.

모두가 음식을 먹으려다 멈추고 그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사중효 등자경이 섬서의 대흥선사에서 수미금강령(須彌金剛鈴)을 탈취했다고 합니다.”

“사도련의 행보가 역시 예상대로 가는군. 빠르게 대책을 찾아냈어.”

즉시 그 속뜻을 알아챈 금청청이 냉정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파사불주를 대신하려고 수미금강령을 탈취한 거겠죠. 날짜를 따져보면, 대법이 열흘 정도 늦춰진 셈이네요.”

백하련은 금청청보다 더 무감정하게 날짜를 세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열흘이 어디야. 사도련의 움직임이 어디에 쏠렸는지 분석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잖아.”

“맞아요. 그런데 아무리 살펴도 사도련은 지금 하남성 남쪽으로만 모여들고 있어요. 모든 정보 역시 칠성홍옥대법 하나만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고요.”

“역시 그렇지?”

“네. 거의 확실합니다.”

며칠 동안 사도련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백하련은 사도련의 계획이 칠성홍옥대법 하나라고 심증을 굳힌 상태였다.

“알았어. 그렇게 각주님께 말씀드려야겠군.”

금청청이 만상각주를 언급했다.

그때, 구양기가 한숨을 내쉬더니 볼멘소리를 토해냈다.

“하아-! 혜원주님, 할 말 있습니다.”

“뭔데?”

“사도련도 난리고, 천마교도 난리입니다. 우리 업무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일 층 식당도 내려가지 못하고, 여기서 밥 먹고 있는 게 말이 됩니까? 근데 그마저도 잘 못 먹고 있어요. 각주님께 우리의 상황을 보고해 주십시오. 몇 가지는 내당으로 보내야겠습니다.”

“그래. 그게 낫겠다. 나도 우리 식구들 쓰러지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아.”

금청청이 구양기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자 갑자기 구양기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웬일입니까? 제 말씀에 귀를 다 기울여 주시네요. 참으라 하실 줄 알았는데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기분이 좀 이상합니다.”

“웬일? 네가 웬일로 맞는 말 해서 그런다. 평소에도 그렇게만 말하면 내가 널 타박할까? 너는 일은 참 잘하는데, 왜 심보가 그 모양이냐?”

“제가 어때서요? 저 평범한데요?”

구양기가 억울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금청청은 그런 구양기를 안쓰러운 눈으로 잠시 쳐다보다가 모두에게 말했다.

“아무튼, 나는 각주님께 다녀올게.”

“잘 다녀오세요.”

고명경의 인사와 함께 금청청이 운중헌을 나섰다.

구양기가 맞은편에 서 있는 백하련에게 물었다.

“선배, 제가 이상합니까?”

“…….”

백하련이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시선을 홱 돌렸다.

등줄기에 서늘함을 느낀 구양기가 얼른 사예설에게 보았다.

그녀는 백혜원에서 유일하게 구양기보다 어렸고, 아직 신입이었다. 답을 해줄 가능성이 매우 컸다.

“예설아. 내 심보가 안 좋아?”

“글쎄요.”

하지만 사예설이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슬쩍 숙이며 제 자리로 얼른 움직였다.

구양기가 당황했다.

다들 자신을 피하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고명경에게 물었다.

고명경이라면 대답해 줄 것 같았다. 맑고 포근한 눈빛을 가진 그녀는 백혜원에서 가장 따뜻한 사람이었다.

“선배님. 제가 안 평범해요?”

“응, 좀 그래. 너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

바로 만상각주 공야청을 찾은 금청청은 보고사항부터 빠르게 말했다.

“칠사가 모두 파악되었습니다. 그들은……”

흑사공자 혁련패.

사운도 차무혼.

백의환객 모검원.

철사접 막소소.

천독신녀 화영정.

사군자 제무경.

사선녀 서문영화.

“아직 특별하게 위험했던 자는 없는 거 같군. 오대사파에서 다섯이고, 나머지가 둘인가?”

“그렇습니다.”

금청청이 이어서 보고했다.

“백혜원에서 여러모로 계속 살펴봤는데, 사도련이 준비하는 건 칠성홍옥대법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두 개의 움직임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알겠네. 그렇다면 칠대악인이 무엇을 어떻게 남겼느냐가 중요하겠군.”

공야청은 백혜원의 견해를 빠르게 수용했다.

“그리고 업무량이 많아서 다들 힘들어합니다. 밤늦게까지 종이 뭉치들을 뒤적이는 건 기본이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어요. 신경을 좀 써주십시오.”

“그건 정말 미안하군. 근래에 상황이 좋지 않았어. 그래도 다들 빈틈없이 잘해주니 고맙다네. 이에 대해선 내당주와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공야청이 금청청의 건의를 받았다.

금청청은 그렇게 말을 쏟아내고 나서야 공야청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공야청은 며칠 밤을 꼬박 새웠는지, 눈이 퀭하고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몸도 바짝 야윈 듯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빛나는 두 눈으로 금청청을 바라보며 물었다.

“혜원주에게 물어볼 게 있네. 탁운비가 날 만나자고 하더군. 칠성홍옥에 관해 특별히 알릴 게 있다고 하면서 말이야.”

“탁운비가요? 왜죠?”

“이걸 보게.”

공야청이 자신에게 직접 온 서찰 하나를 건넸다.

탁운비는 숭의각주 탁신의 아들로, 만상각과는 접점이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의 아버지가 만상각과 불화가 있는 신정회 소속이니 적장의 아들이라 해도 과하지 않다.

“이틀 후로군요. 남양에서 출발한 모양입니다. 필체를 보니 상당히 다급한 듯합니다.”

“그렇지. 근데 탁운비는 왜 나를 보려는 걸까. 그리고 칠성홍옥에 관하여 특별히 알리려는 건 무엇일까.”

“각주님께서도 아시다시피 탁운비는 종종 역용을 하고서 사도련 영역을 드나들었다고 보고된 바가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 얻은 것이 아닐까요?”

“나도 그 생각은 했다네. 하지만 우리가 잠입시킨 자들이 가져온 내용에서도 특별하다고 할 만한 건 없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공야청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른 걸 물었다.

“탁운비의 주변 관계는 어떤가?”

“딱히 사람을 많이 만나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정인이 있다는 소문은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는 알려진 바 없고요.”

“혜원주도 그 정도만 알고 있었군.”

“그렇습니다. 이외의 내용은 각주님께서 직접 물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만나라는 말인가?”

“애초에 그를 만날 거라서 제게 물어보신 게 아니었습니까?”

***

이틀 후.

만상각주는 악록객잔의 별채에서 탁운비를 만나고 있었다.

“후우-. 각주님.”

“탁 공자, 말씀하시오. 이 정도 뜸을 들였으면 이제 말할 때도 된 것 같소.”

탁운비는 평소에 부리부리한 눈에서 정광이 넘쳤는데, 지금은 눈빛이 시들어 있었다. 나오는 건 오직 한숨뿐이었다.

“하아~! 그렇지요. 맞습니다.”

“정 말을 못 하시겠다면, 나는 이만 가보겠소.”

공야청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에 탁운비가 마음을 먹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각주님.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저는 사선녀와 깊이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사선녀? 설마 사도련의!”

“맞습니다.”

탁운비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사선녀(邪仙女) 서문영화.

그녀는 사도련에 속한 서문세가의 사람으로, 최근 칠사에 뽑힌 여인이었다.

그런데 탁운비는 다짜고짜 그녀와 만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말이었다.

“허-!”

공야청이 저도 모르게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러고 재빨리 물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된 거요?”

“삼 년 되었습니다.”

“허허…….”

공야청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말문이 열린 탁운비가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마도 아시겠지만, 저희 가문은 남양에 작은 장원이 있습니다. 저는 장사에서 아버지께 도를 배우고, 남양에 가서는 퉁소를 배웠지요. 영화는 금을 잘 탔는데, 그렇게 서로 연주를 하면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탁 공자가 한 달에 닷새 씩은 남양에 머물렀던 모양이구려.”

“맞습니다.”

탁운비가 본론을 꺼냈다.

“각주님. 사도련이 칠성홍옥대법을 준비 중인 걸 혹시 알고 계십니까?”

“그 정도는 우리도 파악하고 있소. 백혜원에서 이미 칠성홍옥대 법이 칠대악인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 밝혀냈지.”

“맞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거기에 가게 되었습니다.”

탁운비가 한숨을 내쉬며 비탄에 젖은 음성으로 말했다.

“칠사로 뽑혔으니 가겠지.”

“각주께선 칠성홍옥대법에 대해 정확히는 모르시는군요.”

탁운비는 공야청이 칠성홍옥대법을 잘 아는 줄 알고서 대화를 빠르게 진행할 생각이었다.

한데 그게 아닌 듯했다.

“칠대악인은 백 년 전에 대법을 펼쳐서 자신의 내력을 응축해 내단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칠성홍옥은 그걸 받아들이는 대법입니다.”

공야청은 내심 놀랐으나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에서도 최대한 머리를 썼다.

‘특별한 내용이 이거였어. 칠성홍옥은 칠대악인의 내단을 뜻하고 있었구나.’

즉, 사도련의 목적은 칠성홍옥대법을 통해 칠사에게 칠대악인의 내단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대법을 치르면, 육신의 주인은 이지를 잃게 된다고 합니다. 영화의 혼백이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탁운비가 갑자기 공야청에게 매달렸다.

“각주님! 도와주십시오! 그녀를 구해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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