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09화 (109/225)

109.

#칠성홍옥 (1)

진우선과 목단화는 힘껏 말을 달렸다.

사도련의 무리가 맹렬히 뒤쫓아왔다. 죽기 살기로 경공을 펼치며 쫓아온 이들이 열댓 명이고, 재빨리 말을 타고 쫓아온 이들도 몇 있었다.

쐐액-!

그들에게 비수가 날아들었다.

“컥!”

“크윽!”

진우선이 비수를 던질 때마다 뒤쫓던 사도련 무인들이 두셋씩 쓰러졌다.

말을 타고서 던지는데도 백발백중, 빗나가는 경우가 없었다.

그렇게 열 개쯤 더 던졌을까.

더는 뒤따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말 달리는 소리만이 진우선과 목단화가 달리는 길에 울려 퍼졌다.

“이제 한숨 돌려도 되겠네요.”

“너 정말…… 놀랍기만 하다, 이제는.”

진우선의 말에 목단화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탄을 흘렸다.

“일단 빠르게 보고서를 써서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중요한 소식이니 얼른 만상각에 전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래. 그럼 안경지부에서 전서구를 날리는 거로 하자.”

“알겠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계획을 정하고 열심히 말을 달렸다.

***

“또 대법이라고?”

공야청이 경악을 터뜨렸다.

금청청이 가져온 보고서를 본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서 보고서를 빠르게 읽고는 금청청에게 말했다.

“사도련이 아주 작정했어!”

“그렇습니다. 우리가 파악해왔던 모든 정황이 대법을 위해서였다고 하니 다 맞아떨어집니다.”

“맞아, 그렇지. 하지만 대법을 또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

만상각은 여태까지 모은 정보들을 통해 칠사(七邪)의 존재와 구성원들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무엇을 위한 칠사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보고서를 보면서 그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대법을 이루면 칠사의 실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테니까요. 그래서 사도련의 미래라 불릴 만한 이들을 뽑았던 모양입니다.”

“하아, 그렇겠지.”

공야청이 땅거죽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앙천극사대법을 마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도련주의 행보가 아주 광폭합니다.”

“대법을 이루었으니 의욕이 불타는 거겠지. 단숨에 몰아치려는 거야.”

공야청과 금청청은 급변하는 사도련의 정세를 보며, 흡사 천하가 끌려가고 있는 느낌마저 받고 있었다.

“그런데 칠성홍옥은 무엇일까요?”

“그건 나도 처음 들었네. 술법의 하나가 아닐까 추측되네만.”

“저도 술법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우선이는 칠성홍옥이 대법을 일컫는 말인 거 같다고 써놨습니다.”

혁련패와 막소소의 대화를 직접 들은 진우선이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금청청은 그런 개인의 직감을 인정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공야청은 달랐다.

“일단 대법과 칠성홍옥을 따로 적어놨으니, 별개로 보도록 하세. 혁련패와 막소소가 대화할 때 언급을 극히 꺼렸다는 게 조심스러워.”

그는 상당히 신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물론 칠성홍옥이 사도련이 현재 계획 중인 대법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우리는 낭패라네. 우리가 하나를 대비했는데 그들이 둘을 펼쳐낸다면, 대비하지 못한 건 그대로 닥쳐올 테니 말일세. 성동격서를 당하는 거지.”

“그건 그렇지요.”

“그리고 그 사마광후라면 능히 두 개의 술법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어. 그는 경계해야 마땅할 자라네.”

공야청은 만에 하나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만상각주로서 최악의 상황마저 가정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금청청은 공야청과 생각이 달랐으나, 그의 신중함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도련의 움직임을 대법 하나와 칠성홍옥의 술법 하나, 이렇게 총 두 개를 염두에 두고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후우-! 사마광후의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심정이군.”

공야청이 한숨을 내쉬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악중뇌(惡中腦) 사마광후.

그는 사도련의 삼호법 중 한 명으로, 천하에서 각자도생하던 사파와 흑도를 모아 사도련으로 결집한 가공할 만한 지략가였다.

또한 술법의 대가이기도 했다.

방문좌도(傍門左道)의 술법에 통달한 건 물론이요, 그 극에 다다라 대법마저도 성공시켰다.

한 달 전 앙천극사대법의 성공의 그의 능력을 증명했고, 사실 그가 아니라면 앙천극사대법을 시도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즉, 악중뇌 사마광후는 적으로 만나고 싶지 않을 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그래서 공야청은 보통의 술법에서부터 극악의 대법까지 염두에 두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었다.

“일단 대법과 관련한 사도련의 행보에 대해서는 지금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로군. 또 들어오는 소식이 있다면 바로 알려주게나.”

“알겠습니다.”

공야청이 빠르게 화제를 전환했다.

“우선이가 파사의 기운을 가진 염주를 탈취했다는군. 그게 대법에 쓰일 물건이었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련에서 파사의 능력을 지닌 기물이 왜 필요할까요?”

“그러게 말일세.”

공야청도 알지 못했다.

그렇다고 이 성과가 의미하는 것마저 모르지는 않았다.

“그래도 최소한 대법은 지연시켰을 거네. 어떤 대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차질이 생겼을 거야. 사마광후의 성격이나 사도련의 전반적인 움직임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 대책을 찾아서 대법을 강행하겠지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앙천극사대법 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대처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렇지.”

공야청과 금청청이 서로 눈을 빛냈다.

파사의 기운을 가진 기물이 천하에 어디 하나뿐이겠는가. 사도련이라면 염주를 대체할 기물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쓸 물건을 가져왔으니, 다른 기물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급박한 와중에 이만큼 시간을 벌었다는 것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일단 사중효 등자경의 지난 행적을 파악해주게.”

“알겠습니다. 염주의 출처를 찾아보겠습니다.”

금청청이 공야청의 말을 바로 알아채고 대답했다.

이제 공야청은 마지막 화제로 넘어갔다.

마지막 화제는 진우선이었다.

“근데 우선이는 용케도 그걸 뺏었군. 등자경도 있었던 상황인데 말이야.”

“그 상황에서 이걸 빼앗을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부터 특별합니다.”

“맞아. 근래에 이토록 의기가 충만한 사람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네.”

웬만한 무인이었다면 그리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터였다.

만약 생각을 했더라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정탐 임무를 나갔으니 적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 한 셈이었다. 사중효 등자경의 위세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도 탓할 게 없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생각했고, 움직였고, 이뤄냈다.

이는 진우선의 의기이며 협심이었다.

공야청은 그 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건 정무맹주인 의천무제 독고월과 함께했던 시절 이후로 오랜만의 감정이었다.

진우선과 목단화가 올린 보고서에는 허투루 흘릴 만한 내용이 하나도 없었다.

또한, 이게 정탐이 맞나 싶을 만큼 거침없는 행보를 보였다. 보고서를 읽는 내내 뿌듯하면서도 통쾌할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진우선의 활약은 백미였다.

광검 좌무경을 베어 강호에 의기와 협심을 세우며 정무맹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를 시작으로 칠성홍옥과 대법 등을 파악했고, 사중효 등자경을 비롯해 혁련패와 막소소를 쓰러뜨리며 사도련의 계획을 가로막았다.

굵직하지 않은 게 한 가지도 없었다.

정탐을 나간 백무원의 인재들 가운데 이만큼 해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선이의 무공을 조금 더 높게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등자경은 흑괴보다 한 수 높을 거라 예상되는 고수이니까요.”

“그래야겠지.”

“정황상 한두 초식밖에 펼치지 못했을 텐데도 내상을 입힌 걸 보면, 등자경과도 능히 겨룰 만하다고 보입니다.”

백무원 인원들의 무공 수위를 예상해두는 건 백혜원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래야만 임무마다 최적의 인원을 배정할 수 있고, 더 많은 임무를 완수해낼 수 있으니.

“승산은 얼마로 보는가?”

“육 할을 봅니다.”

“조심스럽게 판단했군.”

“각주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나는 팔 할은 된다고 생각해.”

“그건 너무 높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맹에서도 열 손가락에 꼽힐 거 같은데요.”

“그냥 내 느낌이 그렇다네. 보고서를 보면서 힘겨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말이야.”

“그건 그렇습니다.”

“아무튼, 이건 혜원주가 잘 결정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보고서에 관한 대화를 마쳤다.

잠시 후, 금청청이 조용히 각주의 집무실을 나와 운중헌으로 향했다.

백혜원의 인재들이 모인 운중헌은 만상각주의 집무실보다 여러모로 자유로운 편이었다.

분위기도 편하고, 무언가를 두루 생각하는 것에도 정해진 틀이 없었다.

그래서 사예설이 자신의 추측을 가감 없이 말하고 있었다.

“칠성홍옥. 칠사. 둘 다 칠(七)이 들어가잖아요. 둘이 뭐 있지 않겠어요? 계속 생각해봤는데, 저는 아무래도 칠성홍옥이 칠사를 위한 모종의 대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오! 소름 돋았어, 방금. 그게 그렇게 이어져도 말이 되네.”

구양기가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사예설의 말이 일리가 있는 까닭이었다.

그건 구양기만이 아니었다.

백하련도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그럼 지금 사도련에서 대법 두 개를 준비하는 게 아니라, 칠성홍옥이라 추정되는 대법 하나만 계획하고 있다는 생각이야?”

“맞아요.”

“너는 우선이의 의견대로 생각했구나.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그 다음요?”

“연상되는 게 있으면 얼른 말해 봐. 지금 네 감이 좋은 거 같아.”

백하련이 사예설을 독촉했다.

하지만 사예설은 그 다음까지 생각하진 않았는지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중년인 여의량이 입을 열었다.

“이런 건 어떤가? 일곱 명이고 일곱 별이니, 특별한 일곱 개가 있을 거네. 가령 신단이라거나 영물과 영초라거나, 혹은 오독교의 어떤 독일 수도 있지.”

마흔 즈음의 여의량은 백혜원에서 이십 년가량을 보낸 사람이었다. 그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열었다.

“사도의 술법들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지. 가령 내력을 단숨에 얻는다거나, 강제로 몸에 무언가를 한다거나 하니까.”

“나도 이 생각에 동의. 무언가 특별한 일곱이 있을 거야. 그들이 중요시할 만한.”

여의량의 말에 금청청이 동조했다.

바로 그때, 고명경이 뇌리에 번뜩인 생각을 그대로 외쳤다.

“칠대악인!”

그 순간, 장내가 술렁거렸다.

“칠대악인? 설마…….”

“맞아! 칠대악인이 있었어.”

특별한 일곱 개가 있을 거라며 여러 방향을 제시하던 여의량조차 고명경의 말에 공감하며 탄식했다.

“칠대악인이라면 백 년 전에 강호를 피투성이가 되게 짓밟은 악귀들 아닌가! 만약 그들이 무언가를 남겼다면…… 아!”

“만약 그렇다면 애초에 칠성홍옥이 대법이겠군요! 사도련은 하나만 준비하고 있을 거고요.”

고명경이 추측들을 정리하며 결론을 내렸다.

다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늘 차분하게 살피며 정확한 결단을 내리는 성격이어서 운중헌의 식구들은 그녀의 의견을 상당히 존중하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반박하는 이가 없었다.

“생각만 해도 너무 두렵네요.”

오히려 다들 소름이 돋는지 얼굴을 잔뜩 굳혔다.

칠사, 칠성홍옥, 칠대악인이 깊은 연관성을 가진 게 틀림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맞아. 백 년의 세월을 거슬러 무언가 해낼 수 있다면, 그건 마땅히 대법이라 불러야겠지. 쉽지 않을 테니까.”

금청청마저도 고명경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백혜원의 업무 방향을 정했다.

“일단 우리는 칠대악인까지 연관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더 조사해 보자. 물론 각주님은 조심스럽게 생각하고 계시니까, 대법과 칠성 홍옥이 다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해.”

그녀는 만상각주 공야청의 뜻을 언급하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두 가지 방면으로 더 생각해볼게요.”

고명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 주제에 대한 토의가 일단락되었다고 느낀 금청청은 화제를 바꿨다.

“좋아. 그건 그렇고. 각주님은 진우선이 등자경과 겨룬다면 팔 할 정도는 이길 거라고 보셨어. 어떻게 생각해?”

“그 정도라면, 맹에서 실력이 드러난 사람들만 따져 봐도 여덟아홉 번째는 간다는 말이지 않습니까?”

“무원주님과 실력이 비슷하다는 거네요.”

“그러네?”

“이제 열일곱이던데…….”

제각기 한마디씩 던졌다.

다들 만상각주의 생각에 의아해하고 있었다. 그가 가장 경험 많고 식견이 높다지만, 쉬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때 백하련이 냉정한 어조로 결정 내렸다.

“그럼 우리는 일단 칠 할로 두고 가죠.”

일 할을 낮췄다. 진우선의 실력이 더 드러난 게 없으니 신중하게 가고 있었다.

“그래도 맹에서 내로라하는 고수군요. 초무량과도 막상막하일 거 같습니다.”

“우리가 생각했던 육 할의 승률보다는 높지만, 일단 그 정도로 보고 가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몇몇이 백하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중효 등자경과의 승부에서 칠 할의 승률이 예상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무맹 내에서는 특출난 고수였다.

“그래도 광검 좌무경을 순식간에 압도했는데, 팔 할이 맞지 않을까요?”

“예설아. 동기라고 너무 높게 보는 거 아니야? 계속 보니까 너는 우선이만 나오면 평가가 후해.”

“아니거든요!”

사예설이 발끈하자 구양기가 피식 웃었다.

사예설은 아침에도 진우선의 승률이 팔 할은 될 거 같다고 말했었는데, 여전히 의견을 굽히지 않는 까닭이었다.

“동기 챙기는 모습이 보기 좋네. 저런 동기라도 있는 게 어디야.”

고명경이 웃으며 말했다. 구양기는 여전히 너스레를 떨었다.

“근데 이번 신입들은 장난 아니네. 예설이도 예사롭지 않은데, 진우선은 정말…… 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