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06화 (106/225)

106.

#사도련의 만행을 벌하다 (2)

“커헉!”

한 도객이 피를 토하며 길바닥에 처참하게 널브러졌다.

그 맞은편에서 날카롭고 괴팍해 보이는 인상의 검객이 다가오고 있었다.

검객은 한쪽 입꼬리만 씰룩이며 비열하게 웃고 있었다.

도객이 입에서 잔뜩 피를 게워내며 도를 지탱해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

“죽을래? 내놓을래?”

“이미 다 드렸지 않소!”

“아니. 다 주지 않았어.”

검객이 야비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합비 한복판에 문파가 있으니 땅도 있는 거 아니야? 그것도 내놔야지.”

“이미 재물을 내놓고 봉문하기로 했거늘, 인제 와서 왜 이러는 거요? 이건 약속한 바가 아니지 않소?”

“약속? 나는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도객의 얼굴에 어린 난처함이 더욱 깊어졌다.

그는 합비까지 쳐들어온 사도련에 문파의 재물을 내놓고 봉문하여 존속하기로 서약했었다.

하지만 검객은 그건 나 몰라라 하며 오직 자신의 주장만 내세웠다.

“내가 사도련에서 온 건 맞는데, 나도 돈이 필요해서 그래. 그러니 살려면 내놔.”

“그럴 수 없소.”

도객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단호히 거절했다.

“그래?”

“백 년을 이어온 정강도문을 내 손으로 내릴 수는 없소. 차라리 끝까지 싸우겠소!”

도객이 온몸으로 비장함을 뿜어냈다. 그는 피 토하며 죽을지언정, 더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백을 흘리고 있었다.

“이제 와서? 뭐 그럼 나는 문주를 죽이고 가져가는 수밖에.”

검객이 냉소했다.

“사실 나도 이걸 원했어. 그래야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잖아.”

그러더니 검을 들어 올렸다.

창문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진우선이 소매 안에 손을 넣었다. 비수를 꺼낼 심산이었다.

목단화가 조용히 물었다.

“가능하겠어? 저자는 사사천 십대빈객이야.”

“가능합니다. 다만 저자만 처리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럼 전부? 뭐,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좋기는 할 텐데…… 정말 가능해?”

사사천의 십대빈객은 파천문 파멸대주 적고성과는 수준이 달랐다.

사사천은 재물을 이용해 빈객을 많이 불러 모았는데, 그중에서 천하에 이름을 날린 엄청난 고수들이 열 명 있었다.

그들은 여느 문파의 문주들과 겨뤄도 부족함이 없을 자들이었다. 그래서 특별히 십대빈객이라 불렸다.

그리고 창밖에서 광포한 기운을 흘리고 있는 검객이 바로 사사천의 십대빈객 중 하나인 광검 좌무경이었다.

“선배님은 잠시 몸을 피하세요.”

진우선이 짧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좌무경이 슬슬 마무리할 태세를 보이는 까닭이었다.

“훗. 그럼 마지막 발악을 해보실까?”

그 말과 함께 좌무경이 검을 내리그었다.

아니, 그러는 찰나.

쐐애액-!

강렬한 파공음이 장내를 집어삼켰다.

타앙-!

좌무경의 검이 튕겨 나갔다.

“큭!”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날아든 비수를 피하지 못했다. 평생 검 하나를 수련해왔는데, 오히려 손아귀가 찢어지며 검을 놓친 상황이었다.

창피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엄습하는 두려움이 더 컸다.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는 그의 눈동자 속에 비수 한 자루가 새겨졌다.

비수에 실린 힘이 얼마나 강력했으면 그 칼자루가 땅에 박혀버렸단 말인가.

광검 좌무경은 감히 검을 주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주변에 외쳤다.

“고인께서 이곳에 계신 줄은 미처 몰랐구려. 소인 광검 좌무경이 인사드리오. 혹시 어느 방면의 고인께서 오셨소?”

“…….”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거리에 적막만이 감돌았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한 청년이 정강도문의 문주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사방이 기이할 정도로 고요해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문주께서는 잠시 몸을 챙기십시오.”

“아니, 누구시기에…….”

“이야기는 이따가 해도 괜찮습니다.”

“아, 알겠소.”

문주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청년이 뒤돌아서며 얼굴이 보였다.

그는 진우선이었다.

“뉘시오?”

광검 좌무경이 물었다.

“굳이 말할 필요 있겠소? 잘 가시오.”

“웃!”

좌무경은 진우선의 말을 들은 순간, 눈을 번쩍 뜨며 얼른 자신의 검을 집었다.

진우선은 그가 검을 집어든 후에 곧장 달려들며 검을 뽑았다.

스읏!

좌무경에게 찔러 들어가는 검에서 새하얀 빛과 맑은 기운이 뿜어졌다.

벽사의 기운은 쓰지 않았다.

광검은 사사천의 인물이나 사기가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는 사공을 익힌 게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상대할 방법이 없는 게 아니었다.

광륜을 이룬 오행진기가 광영무에 스며들었다.

진우선의 검이 아름다운 초식 하나를 그려냈다. 허공에서 빛이 맺혀 꽃처럼 보일 정도였다.

채챙-!

좌무경이 검을 뿌렸다.

검에 어린 서늘한 기운이 허공에 묵빛의 흔적을 남겼다.

채채챙-!

허공에서 검이 마구 부딪쳤다.

멀리서 보면 흑과 백의 대결이라 하며 놀랄지도 모른다. 상반되는 선명한 잔상이 눈동자에 남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좌무경은 다급했다.

‘어떻게 이런 검법이……!’

진우선의 검과 충돌할 때마다 손이 부르르 떨리고 내공이 끊어졌다.

빛의 검 뒤에 그림자의 공격이 이어지니, 검을 더 빠르게 휘둘러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금방 한계가 찾아왔다.

스걱-!

꽃을 빚어낸 빛이 좌무경의 상반신을 난도질하고 지나갔다.

쿵!

좌무경의 몸이 굳어버리며 땅에 쓰러졌다. 불과 몇 초식을 펼치지도 못한 채 그는 생을 마감했다.

“…….”

주변에 적막이 흘렀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모두가 잠시 말을 잃었다.

하지만 곧 그곳을 둘러싼 사파와 흑도 무리가 크게 외쳤다.

“대, 대협!”

“대협! 살려주십시오!”

“저희가 한 게 아닙니다.”

좌무경을 따라왔던 사파의 무인 일곱 명이 즉각 무릎을 꿇었다.

조금 전만 해도 좌무경을 따라 정강도문을 핍박하고 갈취했던 자들이 순식간에 태도를 바꾸고 있었다.

그들은 진우선의 신위에 감히 대응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의 과오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진우선은 그들을 봐주지 않았다.

스윽!

진우선의 검이 그들을 베고 지나갔다.

그리고는 뒤돌아서서 멍하니 서 있는 정강도문의 문주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직접 보고도 쉬이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문주님. 고생하셨습니다.”

“귀인이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맹에서 나왔습니다. 진작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

문주가 탄성을 흘렸다. 정무맹에서 왔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정강도문의 문주 능조운입니다. 맹의 귀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능 문주님. 맹에서는 지원 세력을 보냈으나, 사도련주가 나타나는 바람에 돕지 못했습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얼른 정양부터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진우선이 그렇게 말하며 능조운을 부축했다.

“정강도문은 어디에 있습니까?”

“저쪽입니다.”

능조운이 손을 들어 방향을 가리켰다.

진우선이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정강도문이 보였다.

정강도문은 촉산객잔의 맞은편에서 오십 장쯤 떨어져 있었다.

그때, 저 앞에서 사내 몇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스승님!”

조마조마하게 바라보던 정강도문의 제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진우선과 목단화가 정강도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단화가 웃으며 능조운에게 말을 건넸다.

“능 문주님. 저희가 맹에서 나온 건 맞지만, 소속을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걸 양해해주세요.”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안휘성을 살피는 임무를 수행하고 계신 모양이군요.”

요상단으로 급히 내상을 다스린 능조운이 힘겹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와 비슷합니다. 대신 한 달 안에 정무맹의 타격대가 올 겁니다.”

“다행입니다.”

진우선이 능조운에게 정무맹의 계획도 전했다.

그러고 나서 목단화가 부탁을 건넸다.

“혹시 가능하다면 한 분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능조운이 정강도문의 대제자를 불러주었다.

그는 진우선과 목단화의 허락 아래 좌무경 일당이 지녔던 전표를 정리하고 있었다. 부족하나마 정강도문이 사도련에게 빼앗긴 제물 대신이었다.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제게 물으시면 아는 바를 다 말씀해드리겠습니다.”

대제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목단화는 그를 통해 합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사도련주가 어떤 신위를 보였는지 건네 듣게 되었다.

저녁이 되었다.

진우선과 목단화는 정강도문을 나와 촉산객잔으로 돌아와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자.”

“그래야 할 거 같네요.”

정강도문에서 귀빈으로 모시겠다고 했으나, 진우선과 목단화는 임무를 언급하며 그들의 뜻을 거절하고 촉산객잔으로 온 상태였다.

“우선아. 네가 오늘 정말 수고 많았으니, 보고서는 내가 올릴게. 거절하지는 마. 안 그러면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없어지니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목단화는 파멸대에 이어서 사사천 십대빈객을 압도하는 진우선의 신위를 목격했다. 그걸 비롯해 정강도문의 일과 합비에서 벌어진 일들을 적어 보낼 참이었다.

정무맹이 이용하는 촉산객잔으로 온 게 그래서였다. 합비지부는 잠시 문을 닫았으나, 촉산객잔에서 보낸다면 느리게라도 전달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전해지는 게 중요하니까.

“우선이는 무공이 정말 엄청나구나.”

보고서를 쓰는 내내, 목단화의 입에서 진우선에 대한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

다음 날이 밝아왔다.

진우선과 목단화가 아침에 합비를 출발해 회남현으로 말을 타고 나아갔다.

별일이 없다면 정오 무렵에 도착할 듯했다. 합비와 회남은 이백 리 길이라 그만큼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정무맹에 회남지부는 없고, 합비지부에서 총괄했었다. 하지만 회남에 거의 다 왔을 때 문제가 생겼다.

“……길을 아예 막고 있네.”

회남은 회하강변에 위치해 나름대로 물자를 운반하며 번화한 곳이지만, 합비보다는 작았다.

그런데 사파와 흑도 무리는 여전히 많으니, 진우선과 목단화는 마을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그들이 서성이는 걸 볼 수 있었다.

“돌아갈까?”

“마을의 다른 어귀로요? 비슷할 거 같은데요.”

“그것도 그럴 거 같네.”

진우선의 말에 목단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사도련에 도적들도 섞여 있습니까?”

“맞아. 녹림이지.”

“사도련은 사파와 흑도가 다 모여 있다는 말이 이래서였군요.”

녹림(綠林)은 산도적을 의미하는 말이며, 그들은 흑도에 속했다.

“맞아. 녹림은 사도련 흑요궁 소속이야. 흑요궁은 흔히 흑도와 요도가 모였다고 하고.”

사도련은 구성이 꽤 복잡해 보였다. 아무래도 정무맹 같은 일사불란한 모습은 기대할 수 없을 듯했다.

어쨌거나, 진우선과 목단화가 회남현으로 점점 더 가까이 갔다.

그러자 녹림의 무리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진우선과 목단화를 막아 세웠다.

“멈춰라. 어디서 오는 길이지?”

진우선은 그들이 누구인지 묻지 않고 어디서 왔는지부터 묻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준비했던 것과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금채현에서 오는 길입니다. 육안현 옆에 있습니다.”

“거긴 좀 멀잖아. 이 시간에 온 거면 합비에서 왔을 텐데.”

안휘성의 지리를 아는 녹림도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합비는 이백 리 길이다. 육안현은 삼백 리 길이 넘고, 그 옆의 금채현이라면 아마도 사백 리 길은 될 터였다.

“아닙니다. 새벽부터 달려왔습니다.”

“그래?”

녹림도가 진우선과 목단화의 행색을 한 번 살펴보더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통과.”

진우선의 기지로 두 사람이 검문을 통과하여 회남에 들어섰다.

“아무래도 합비에서의 일이 전해진 거 같지?”

“그런 거 같았어요.”

“나도 그렇게 느껴지더라. 근데 금채현은 어디야? 어떻게 알았어?”

“제 고향입니다.”

금채현이 고향이기에 진우선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묘한 느낌이 들었다.

고향인 금채현 남촌.

그곳을 습격하여 모든 마을 사람을 죽이고 불까지 지른 도적들.

그리고 녹림.

‘혹시 이들이 관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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