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05화 (105/225)

105.

#사도련의 만행을 벌하다 (1)

만상각 일층의 대전에 아침부터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사도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네. 이미 들어서 아는 사람이 있겠지만, 앙천극사대법을 성공한 사도련주가 하남성과 안휘성을 한바탕 휩쓸고 가서 맹의 힘이 다소 위축되었지. 합비지부, 여남지부를 비롯한 여러 곳이 지금 몸을 움츠린 상태고.”

만상각주 공야청이 강호의 정세를 간략히 전달하자, 무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무에 들어가기 전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사도련은 우리와 반대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네. 특히 안휘성 회남현과 강소성 회안현에서 대규모로 집결하는 게 포착되었지. 아무래도 회하강과 대운하를 거머쥐어 곡창지대와 물류를 선점하려는 것 같더군.”

회하강은 개봉에서부터 회남을 거쳐 강소성으로 접어드는 강이고, 대운하는 북경과 남경을 잇는 거대한 물줄기다.

그러니 사도련이 회남현과 회안현에 집결하는 건, 세력을 더 크게 키우려는 야심의 발로라고 할 수 있었다.

대전에 모인 무인들 모두가 그 점을 알아챘다.

“정무맹의 근간은 장강 일대에 있으니, 다들 예상하는 대로 안휘성과 강소성이 격전지가 될 거라네. 그런데 우리의 연락 체계가 무너진 곳이 많지. 복구에 박차를 가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어렵겠고…….”

공야청이 백무원의 무인들 전부를 한 차례 둘러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러니 여러분이 그들의 움직임을 직접 확인해주면 좋겠네. 중요 연락망들이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말이지. 우리는 한 달이면 될 거라고 보고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지부들은 어디까지 살아있습니까?”

우람한 체격의 사내, 담운이 임무를 생각하며 질문했다.

“안휘성은 안경지부와 무호지부를 중심으로 하면 되고, 강소성은 남경지부와 양주지부가 정상적으로 운용되고 있네. 이곳들은 아무런 타격을 받지 않은 곳이지.”

“그럼 장강변은 다 살아있는 거군요.”

“그렇네. 사도련이 위협적으로 내려왔으나, 우리도 마냥 놀고 있지만은 않았으니까.”

공야청이 의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이어서 목단화가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굳이 싸울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까?”

“일차적으로는 사도련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니, 그 점을 최우선으로 해주게.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될 수 있는 한 빠르게 후퇴하고.”

“그럼 적들을 누가 상대합니까?”

“그들을 상대하는 역할은 숭의각과 진양각의 무인들에게 주어질 걸세. 그러니 전체적인 동향 파악에 여러분의 귀한 목숨을 걸지는 말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누가 무엇을 위해 어떻게 움직이는지만 살피면 되겠군요.”

목단화가 핵심을 짚어냈다.

진우선을 비롯한 몇몇 무인도 그녀의 질문과 답변에서 명심해야 할 원칙을 찾아냈다.

은밀하고 조용하게 동향을 파악할 것.

그렇다고 목숨을 던지지는 말 것.

그때 눈동자에서 탁기가 느껴지는 무인, 한효기가 입을 열었다.

“수당은 어떻게 됩니까?”

“기존보다 위험수당이 더 붙을 거네.”

“좋군. 내 임무를 주시오. 가능하면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소.”

한효기의 말에서 욕심만 가득한 게 느껴졌다. 그의 몸이 취기로 약간 휘청거렸는데, 지금도 억지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듯했다. 등에 맨 도를 제대로 휘두를 수 있을까 싶었다.

공야청이 그 점을 지적했다.

“자네는 취기를 날리고 오게. 일 각 후에 다시 이야기하겠네.”

“알겠소.”

공야청의 말에 한효기가 즉각 만상각 밖으로 나섰다.

진우선은 문득 이능운이 말했던 주색잡기 하는 사람이 한효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대전의 한쪽에서 임무를 전달하던 금청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단화, 진우선. 두 사람은 이쪽으로.”

금청청의 말에 진우선과 목단화가 같이 움직였다.

“두 사람이 한 조야. 지난번에 같이 복귀했으니 초면은 아니지?”

“네. 구면이죠.”

“그렇습니다.”

“잘됐네. 두 사람은 안휘성 회남현으로 가줘. 합비지부는 지금 최소한으로만 운영되고 있으니, 들러봤자 아무도 없을 거야. 요청을 남기면 하루 이틀 이후에나 보고 될 거란 뜻이지.”

진우선과 목단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각주님이 언급하시진 않았지만, 사도련의 동태가 좀 묘해. 분명 회남과 회안에 거점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면서도,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파와 흑도 무리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어. 꿍꿍이가 있는 건지, 연막작전인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주의하면서 살필게요.”

“저희의 정보가 모여야 파악이 잘 되겠군요.”

“두 사람은 척하고 알아듣네. 괜찮군. 단화가 눈치 빠르면서 시야가 넓고 생각이 깊어서, 우선이가 도와주면 딱 맞을 거라고 생각했어. 우선이는 책임감 있고 무위가 상당하니까. 그럼 두 사람, 이번 임무를 잘 부탁할게.”

금청청이 말을 마치며 진우선과 목단화에게 임무가 적힌 서찰을 건넸다.

그렇게 정식으로 임무를 받은 진우선과 목단화가 만상각을 나섰다.

“우선아. 반 시진 후에 정문 앞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목단화의 말에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반 시진 후에 장사를 떠났다.

***

장강을 따라 배가 흘러가고 있었다.

장사에서 출발해 악양을 지나 안경을 거쳐 남경으로 가는 배였다.

배에 탄 진우선과 목단화가 갑판 위를 몇 차례 둘러본 뒤 선실로 내려왔다.

“분위기가 잔뜩 가라앉았네. 갑판에 나와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아무래도 다들 마음이 편치는 않은 거겠죠. 많이 타지도 않았고요.”

“그러게.”

진우선과 목단화는 적막감을 피부로 느꼈다.

상인들은 저마다 긴장하고 있고, 배를 이용하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상행이야 이어가겠지만, 한동안 다들 움츠러들 게 뻔했다.

“근데 우선아. 전에 보니까 검 한 자루만 가지고 다니던데, 그게 끝이야?”

목단화가 지난번에 파멸대를 전멸시킨 진우선의 모습을 떠올리며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검 한 자루만 있으면 괜찮아요.”

“그래? 혹시 비수(匕首)는 쓸 줄 알아?”

“간단하게 익히긴 했어요.”

진우선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목단화가 자신의 짐 속에서 비수 한 보따리와 팔뚝에 두르는 가죽대를 꺼냈다.

“이거 받아.”

“비수네요.”

“네 거야.”

“제 거요?”

“맞아. 너 주려고 챙겨왔어.”

목단화가 비수를 주자, 진우선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네 실력이 뛰어난 건 알아. 하지만 비수는 꽤 유용해. 이번 같은 일에는 비수를 휙 던져서 못 쫓아오게 하고 도망가는 거지. 물론 네 실력이면 그들 다 쓰러뜨리고 갈 수도 있겠지만, 가는 곳마다 적을 죽이게 되면 눈치채는 이들이 생길 거야.”

“아! 그렇긴 하군요.”

목단화의 설명에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명쯤 다치는 일이야 사소한 일이나 강호의 은원쯤으로 생각될 수 있다.

또한, 못 쫓아올 정도로 멀어지면 사건이 유야무야 처리될 터였다.

하지만 적들 여럿이 상처를 입거나 죽게 되면, 조사를 본격적으로 착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되면 사도련의 움직임을 정탐하고 정보를 전하는 임무에 큰 제약이 될 것이다.

진우선이 비수를 살펴보았다.

“저기다 한 번 던져볼래?”

목단화가 선실 구석에 놓인 나무 통을 가리켰다.

진우선이 가볍게 던졌다.

휙!

비수가 나무통 한가운데에 꽂혔다.

“정확하네. 강하고.”

“익숙해지면 편하겠네요.”

진우선이 감상을 말했다.

비수는 가벼우면서 날카로우니 기습하기에 딱 알맞았다.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용도로도 좋을 듯 했다.

“잘 쓰겠습니다. 고마워요.”

“내가 더 고맙지. 저번에 내 목숨 구해줬으니까. 그래서 뭐 하나 주고 싶었어. 그렇다고 비수를 막 아끼지는 마. 던져서 쓰고 버리는 용도니까, 싼 거로 샀어.”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가죽대를 팔뚝에 두르고 비수를 하나씩 꽂았다.

“그런데 선배님은 장법이나 수법을 주로 쓰시나요? 무기는 비수밖에 안 보여서요.”

“맞아. 정확해. 눈썰미가 상당하네. 거리가 있으면 비수를 쓰고, 가까우면 장법과 수법을 쓰지.”

“손을 보니, 권법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목단화가 진우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서로 간에 약간의 대화를 더 나누고 나서 진우선이 자신의 선실로 이동했다.

잠시 후.

“뭐야? 이건 왜 안 가져갔지?”

목단화가 나무통에 꽂혀 있는 비수를 보았다. 진우선이 던졌던 비수였다.

“깜빡했나 보네.”

목단화가 비수를 뽑는 순간.

쩌적-.

투투툭-.

나무통이 결대로 쩍쩍 갈라지더니, 나뭇조각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헛! 아까 한 번 던진 거로 이렇게 됐다고?”

목단화는 당황했다.

진우선은 분명 특별할 것 없이 가볍게 던졌을 뿐인데, 목표물을 아예 부숴버린 것이다.

“간단하게 익혔다더니 나보다 더 대단한 거 같네.”

목단화가 한숨을 흘렸다. 그 속에 부러움도 담겨 있었다.

***

진우선과 목단화는 안경현에서 내렸다.

이제부터는 육로로 합비를 거쳐 회남현까지 올라가는 게 빨랐다.

둘은 말을 타고 관도로 나아갔다.

“선배님. 배에서 내릴 때와는 다른 사람 같아요.”

“역용술로 변장했지. 혹시나 내 인상착의를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아! 파천문 때문이군요.”

진우선이 목단화의 말을 이해했다.

파천문은 사도련의 오대사파 중 하나로, 지금 안휘성과 강소성 일대에도 많이 들어와 있을 게 분명했다.

“맞아. 내가 파천문에 잠입해 있었으니까. 거기서도 변장했었는데, 파멸대에 쫓기면서 다 지워졌었거든.”

“그들은 없습니다.”

“물론 그렇긴 하지. 어쨌든 파천문에서와는 다른 얼굴이야.”

진우선은 목단화가 꼼꼼한 성격이라고 느꼈다. 또한 그동안 들어 보기만 했던 역용술을 직접 보니 신기하기도 했다.

“근데 확실히 합비에 가까워질수록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 같습니다.”

“그러게.”

장사는 생기 있지만 차분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합비로 다가갈수록 어딘가 어수선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다음 날.

합비에 도착한 두 사람은 촉산객잔에 들렀다.

객잔은 식사하는 사람들로 절반쯤 차 있었다.

두 사람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돼지고기볶음이랑 볶음밥으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목단화가 익숙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진우선이 조금 전에 목단화에게 들었던 바를 떠올리며 음식을 기다렸다.

이곳은 정무맹에서 이용하는 객잔이었다. 그래서인지 거리에서보다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사파 무인들이 꽤 있었어.’

안경현에 도착해 배에서 내릴 때까지는 딱히 이질감이 드는 사람이 없었는데, 합비로 접어들면서 그들을 종종 마주쳤었다.

그리고 합비로 들어오니, 사파와 흑도 무리가 거리에 꽤 많았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점소이가 음식을 들고 다가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그때 목단화가 점소이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빨리 나오는군요. 대단하네요.”

“감사합니다. 시장하신 분들을 위해 빠르게 요리합니다. 사실 숙수님은 저희 촉산객잔의 자랑이죠.”

점소이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대꾸하고는 돌아갔다.

“맛있겠네요.”

“천천히 먹어. 여기 잘해.”

진우선과 목단화가 식사를 시작했다.

목단화가 찻잔을 비웠다.

그러자 점소이가 한 번 더 다가왔다.

“차가 더 필요하실 것 같아서 드립니다.”

“감사해요.”

목단화가 찻주전자 밑바닥을 받치듯이 들며 손으로 한 번 훑더니, 진우선에게 눈 깜짝할 동안만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작은 종이가 있었다.

-사사천의 십대빈객인 광검(狂劍) 좌무경과 사도 무리가 합비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때였다.

객잔 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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