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04화 (104/225)

104.

#각자의 계획 (2)

만금전장은 중원 전체에 퍼져 있었는데, 장강 유역 근처에서 특히나 영향력이 컸다.

진우선은 그런 만금전장을 예전에 만총과 함께 몇 차례 들렀었다. 그의 집안이 만금전장을 운영하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혼자 방문했다.

“안녕하세요.”

“진 공자. 오셨습니까? 올해는 처음 뵙는군요.”

장사지점장 우국신이 웃으면서 진우선을 반겨 맞았다.

“제가 정식으로 월봉을 받게 돼서, 조언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도련님께 진 공자께서 진결제자가 되어 만상각으로 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알려드리겠습니다.”

우국신은 진우선에게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었다.

진우선은 그걸 잊지 않았다. 그래서 전낭을 꺼내며 대화를 이었다.

“이게 첫 월봉입니다. 특별수당까지 있어서 많이 받았어요.”

“꽤 많군요!”

우국신이 전낭을 살펴보니 백삼십 냥이었다.

진우선은 이번에 받은 월봉을 모두 모을 생각이었다. 수중에 있는 열 냥이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으니까.

“월봉이 상당하더라고요. 이런 금액은 처음 만져봐서 좀 떨렸네요.”

“그러실 수 있지요. 그런데 모아서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

“장사에 집을 마련할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리고 집이라면 또 저희가 주로 거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소개해드릴 수도 있고, 거래까지 다 해드릴 수도 있지요.”

우국신이 아주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확실히 금전적인 부문에서는 무엇이든지 다 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장사 외곽에 있는 집들은 얼마나 할까요?”

“장사 외곽에서도 괜찮은 집이면 이백 냥 정도 합니다. 그런데 급하신 게 아니라면 공자께서 조금 더 생활하기 좋은 집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무원주 이능운은 진우선에게 장사 외곽에 있는 작은 집이라도 사라고 했었다. 괜찮은 집이 이백 냥 이면 작은 집은 그보다 덜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우국신의 추천은 달랐다.

“집은 잘 쉴 수 있도록 편해야 하며, 접근성이 뛰어날수록 좋지요. 또한, 거주자의 사정도 잘 고려해서 살펴야 합니다.”

“그렇겠네요.”

“진 공자는 맹의 무인이시니, 장사의 중심가와 맹의 중간 지점 부근이 생활하기 편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맹에서 여기로 바로 오셨다면, 오신 길 중에 오석교 근처가 그렇습니다. 거기는 삼백 냥이면 꽤 만족스러운 집을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

우국신의 말에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던 길에 봤던 오석교 다리 근처라면 분위기도 조용하고 동네도 깔끔해서 절로 끌렸다.

“사실 백삼십 냥이면 엄청난 금액이고 삼백 냥은 더 큰돈이지만, 만상각의 월봉이면 올 한 해 정도 모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거기에 특별수당을 또 받으신다면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그런데 지금 집이 없어서 수련할 곳이 없는데, 그때까지 기다리는 게 나을까요?”

“그 점까지 고려해서 말씀드렸지요. 이백 냥은 되어야 연무실로 쓸 공간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물론 그냥 집이면 지금도 충분히 들어가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계신 곳이 불편하지 않다면 조금 더 모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집은 한 번 마련하면 새로 옮기기도 쉽지 않거든요.”

“음…….”

진우선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 우국신이 조심스럽게 다른 방법을 하나 내놓았다.

“그리고 혹시 바로 필요하시다면 저희가 빌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결정은 진 공자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아직은 크게 불편한 게 없으니 조금 더 모으는 게 좋겠습니다.”

진우선이 곧장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연무실로 쓸 공간이 딸린 집을 사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빌려서까지 집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돈을 빌리려니 거부감이 크게 들었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우선이 돈을 맡기고 만금전장을 나왔다.

그리고 마음속에 목표를 세웠다.

진우선의 내 집 마련 계획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

천도관의 한복판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강인한 인상의 사내가 있었다.

그는 운기행공을 쉬지 않았다. 밤에도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잠시만 잠을 청했으며, 그때도 운기를 절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만나야 할 사람이 많았다.

해야 할 일도 많았다.

하지만 반 년 정도 전부터 모든 대외관계를 최소화한 채 운기조식하고 있었다.

그는 정무맹주, 의천무제(義天武帝) 독고월이었다.

“맹주님.”

“자네들 왔군.”

공야청의 말에 독고월이 눈을 떴다.

그의 눈에 만상각주 공야청과 수석장로 여문탁이 들어왔다.

정무맹 오당오각의 수장들을 십장로라고 부르는데, 낙일무정검(落日無情劍) 여문탁은 현청각주로서 수석장로를 맡고 있었다.

공야청이 품에서 조심스레 목함 하나를 꺼내며 말했다.

“맹주님. 빙화보심단입니다.”

“오! 그걸 구해온 거요? 그럼 빙화곡의 염원을 해결한 모양이구려.”

“네. 진우선이 그들의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었습니다.”

“호연 장로와 하관주가 극찬했던 그 청년이구려.”

“맞습니다.”

“정말 고맙군. 공 각주도 고생했소.”

독고월이 흐뭇하게 웃으며 공야청에게도 격려의 말을 건넸다.

“요즘 분위기는 어떻소?”

“사도련주가 대법에 성공한 후, 안휘와 하남의 영역을 확고히 다져두고 돌아갔습니다. 사공이 극에 이르렀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그의 행보로 맹의 피해가 컸습니다.”

“앙천극사대법이라 했던가? 사도련주라면 대법에 성공했으니 힘을 한 번 과시하고 싶었을 거요. 그는 욕심이 많으니까.”

“피해가 큰 게 문제입니다. 그나마 사도련주가 남양까지는 오지 않아서 저희가 막아낼 수 있었는데, 조만간 거기에도 나타날 것 같습니다.”

공야청이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했다.

독고월은 그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여태껏 이런 추측은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그가 달리 만학수사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그때는 내가 나서야 한다는 말이겠군. 신단을 구해와 줘서 고맙소. 곧 회복할 수 있을 것이오.”

“다행입니다!”

공야청이 독고월의 말에 크게 안심했다.

그가 생각하기로 현재 정무맹에서 사도련주와 맞설 수 있는 인물은 정무맹주만이 유일한 까닭이었다.

“그나저나 신정회가 꽤 골치를 썩였겠구려. 내가 없느라 모든 화살이 각주에게로 향했을 텐데, 정말 고생 많았소.”

“괜찮습니다. 그들이 하루 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번 사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으니 그들도 한없이 몰아붙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 각주님도 애 많이 써주셨습니다.”

“여 각주도 고맙소. 나를 대신해 정말 수고가 많소.”

“아닙니다, 맹주님.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강직한 인상의 여문탁이 짧게 대답했다.

현청각은 정무맹의 모든 것을 지키는데, 특히 맹을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여문탁이 냉정하고 냉철해 보이는 게 그래서인 듯싶었다.

“여 각주. 여태까지처럼 탁 각주를 잘 견제해주시오. 그를 감당할 사람이 지금 맹에 그대밖에 없구려. 부탁하오.”

“그건 제 할 일입니다.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소.”

현재 정무맹에서 거력패도 탁신과 무위를 견줄 사람은 낙일무정검 여문탁밖에 없었다.

독고월은 이런 여문탁의 말이 참으로 든든했다.

“두 사람은 저들을 너무 적대시하지 마시오. 신정회가 이름을 점점 더 떨치는 게 우리로선 불리해질 수 있겠지만, 외부에서 본다면 그래도 모두 다 정무맹이오. 그들이 한 일도 우리 정무맹이 한 일이지.”

독고월은 이제 공야청과 여문탁 두 사람에게 의견을 전했다.

“또한, 탁 각주가 내 자리를 넘보고 있다고는 하나 기본적인 사리분별도 못할 위인은 아니니, 위급할 때면 그에게 맡기시오. 물론 내가 얼른 회복하고 나갈 테니, 그전까지만 말이오.”

“자칫하다가는 신정회에게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곧 숨죽이고 있는 장로원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공 각주의 말이 맞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무맹을 통해 강호의 의기를 지켜 중요한 가치들을 잃지 않는 것에 있소. 나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오. 그러니 공 각주에게 각별히 부탁하겠소.”

“아! 알겠습니다.”

공야청이 속에서 치솟는 말들을 누르며 독고월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원래 의천무제 독고월은 이런 사람이었다.

그는 대의(大義)를 따르며, 천하를 품을 큰 그릇을 가진 대협이었다.

그러니 내상을 입어서도 공야청과 여문탁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하는 것이리라.

공야청은 이런 독고월이 답답했다. 속 터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독고월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었다.

강호에 필요한 딱 한 사람이 있다면, 의천무제 독고월이라 생각하면서.

“맹주님을 뜻을 받듭니다.”

여문탁은 가타부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힘든 부탁인데도 이해해줘서 정말 고맙소. 맹을 위해, 강호를 위해 뜻을 모아주시오.”

독고월이 공야청과 여문탁에게 다시 한 번 진심을 표현했다.

“그럼 이제 물러가겠습니다.”

“알겠소. 그리고 나가면서 왕 당주를 불러주시오.”

“그리하겠습니다.”

공야청과 여문탁이 독고월에게 인사한 후 천도관을 빠져나갔다.

잠시 후.

활인당주 왕약수가 천도관을 찾았다.

“맹주님. 부르셨습니까?”

“왕 당주. 잘 오셨소. 이 목함에 빙화보심단이 들어 있다고 하오. 그래서 모셨소.”

“아!”

활인당은 정무맹의 무인은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도 의술을 펼치는 곳이었다.

맹에서는 활인당주 왕약수를 활인성자라고 불렀는데, 그는 애초에 만초신의(萬草神醫)라고도 불릴 만큼 명망이 높았다. 온갖 초목을 사용하여 펼치는 의술이 대단한 까닭이었다.

“빙화보심단이 맞군요. 아주 귀한 신단을 구하셨습니다.”

“공 각주가 애를 많이 써주었지.”

독고월이 그렇게 말하더니,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이거면 어떻게 되겠소?”

“허허. 정말 빙화보심단 같은 신단을 구해올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왕약수가 안타까움이 짙게 배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맹주님의 화후가 높아 정력(定力)이 깨졌음에도 내공을 유지하고 계시지만, 빙화보심단 역시 그보다 더 큰 역할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신단이니만큼, 맹주님이 신공으로 정력을 유지하지 않으셔도 닷새에서 열흘 정도는 문제없겠지요.”

“하! 그럼 빙화보심단으로도 며칠간 무공을 펼치는 것이 전부란 말이오?”

“맹주님의 경지에서는 신단이 아니라 어떤 영약도 큰 역할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치를 맹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무공의 경지가 높아질수록 영약으로 볼 수 있는 효과가 작았다.

물론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면 위기를 넘기는 큰 역할을 하겠지만 말이다.

“결국 등봉조극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는 말이군.”

“맞습니다. 극에 이르러야만 신체가 천지간에 소통하기 쉽게 다시 구성될 것입니다. 맹주님께는 그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등봉조극(登峯造極)은 도가 무공을 익힌 사람이 극에 이른 걸 일컫는 말이었다. 그리되면 천지간에 하나가 되고, 대자연의 힘이 정기신에 깃든다.

독고월은 도가 계열의 신공인 태청무진신공(太淸無盡神功)을 익혀 대성했고, 그 후로도 정진하여 등봉조극의 경지에 가까워져 있었다.

그래서 왕약수는 독고월에게 극에 다다르라고 말한 것이었다.

“그럼 신단은 정 급할 때 쓰는 것에 불과하겠군.”

“그렇습니다.”

“후우. 너무 답답하오.”

“저야말로 답답합니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 이런 사술에 당하신 것입니까? 제가 도리어 묻고 싶습니다.”

등봉조극의 경지가 얼마 남지 않았던 독고월이 사술을 당했다면, 도대체 상대는 어떤 수준이어야 했을까.

사도의 무공으로 극에 이르면 극사의 경지고, 마도의 무공으로 극에 이르면 극마의 경지였다.

왕약수는 천하의 사술을 모두 안다고 할 수 없으나, 이들 정도는 되어야 독고월의 정력을 깨트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아-! 모르겠소. 사도련주는 얼마 전에 대법을 끝냈다고 하니 말이오.”

깊이를 알 수 없는 근심이 천도관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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