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03화 (103/225)

103.

#각자의 계획 (1)

‘과연 잘 풀리고 있을까?’

만상각주 공야청은 자신이 맡긴 임무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진우선에게 빙화곡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라고 임무를 주었다. 만약 잘 해결된다면 빙화보심단을 받아올 터였다.

‘빙화보심단 같은 신단이 지금 필요하다.’

공야청은 빙화보심단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임무를 나가는 진우선에게도 비밀로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빙화보심단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바로 맹주이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아무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되었다.

‘특히 내당주가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니,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군.’

내당주 신기수사(神機秀士) 냉군상.

그는 열 살에 창궁관에 들어 천문지리를 통달하여 천하의 이치에 밝았으며, 내당주로서 탁월한 능력을 보여 정무맹 무인들의 마음을 얻었다.

하지만 그는 만상각주인 만학수사 공야청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공야청이 무슨 일만 하려고 하면 사사건건 확인하려 들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철두철미한지 마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듯했다.

단순히 내당주의 일을 한다고 여기기에는 과할 정도였다.

그는 훼방꾼이었다.

바로 신정회(新正會)에 속한!

‘거슬려. 너무 거슬려.’

공야청은 신정회를 생각하기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신정회는 숭의각주 거력패도(巨力覇刀) 탁신이 만든 모임으로, 정무맹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더 나은 방책을 고민하기 위해 모인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말만 그럴듯할 뿐이었다.

그들의 기치는 어느새 정무맹의 낡은 가치관을 타파하고 새롭게 정의를 세우는 것으로 변했다.

탁신이 정무맹주의 자리를 노리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정무맹주 다음가는 고수로 알려져 있었는데, 실상은 자신을 추종하는 무리를 만들기 위해 신정회를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냉군상은 탁신의 장자방이었다.

공야청은 그런 냉군상이 항상 신경 쓰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냉군상, 그리고 신정회.

그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진우선을 혼자 보냈다.

고작 진우선에게만 맡기기엔 사안이 너무 큰 거 같아 고민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단호하게 결정을 내린 이유가 있었다.

-내가 우선이를 하루밖에 보지 않았는데, 알려줄 게 뭐가 있겠나.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하겠더군. 맹을 위한 올바른 일이라면, 그 아이보다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네. 장담하지.

-사람은 무공을 닮고, 무공은 사람을 닮는다고 맹주가 그랬던 걸 기억하네. 그런데 그 아이에게서 전해지는 현기는 맹주보다도 정심하더군.

창궁관주 하무백의 말이었다.

진우선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맹주와 자신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하 관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공야청은 정무맹을 사랑하고 지켜온 하무백을 믿기에 진우선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 믿음에 대한 화답이 전해졌다.

혜원주가 공야청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각주님. 회의에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선이의 보고서가 도착했습니다.”

“그런가? 줘보게. 얼른 확인해야겠군.”

-……빙화곡의 문제는 잘 해결되었습니다. 저는 빠르게 복귀하겠습니다.

공야청의 눈에 이 부분만이 확 들어왔다.

진우선은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행간에 담긴 의미를 느꼈다.

“다행이군.”

“또 임무를 달성했더군요. 이번에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벌어진 상황도 정말 복잡했었습니다.”

“그랬지. 그래도 나는 믿고 있었다네.”

“제가 생각이 짧았나 봅니다.”

“아니야. 혜원주의 생각은 정확했어. 나도 그랬거든. 다만 내가 더 믿었을 뿐이지.”

시일을 더 늦출 수도 없기에 믿는 걸 택했다. 그 믿음이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혜원주 금청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믿었다…… 잘 알겠습니다.”

***

사흘이 지났다.

“후우-.”

연일 열리는 회의를 다녀온 공야청이 힘겹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들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리는 듯하기 때문이었다.

-사도련주의 행보가 보이지 않으시오? 지난 한 달간 하남성에선 신양까지 몰아쳤고, 안휘성에서도 합비까지 내려왔소. 화북 지방을 단단히 품고, 화중 지방을 전장으로 만들려는 거요.

-그럼 다음은 어디겠소? 남양이오, 남양!

-말이면 다가 아니요. 남양은 우리가 지켜냈소. 그런데 계속 패해서 신양과 합비까지 내준 게 누구요?

-그들은 대별산맥을 기준 삼아 그 주변까지 치고 내려올 심산인 거 같은데, 우리 식구들은 어떻소? 여남이나 회남 등지에서는 피해가 컸을 텐데…….

-사도련주가 멸문시킨 우리 쪽 문파들만 열 곳이오. 그나마 거액을 지급하면 봉문으로 그치게 했다고 하고. 하-! 이렇게 정파가 무너지는 동안 우리는 무얼 하고 있었던 거요?

-누가 막혔습니까? 지원하러 가다가 누가 무너졌습니까?

-사도련주의 무공이 완전무결했다고 다들 말하고 있소. 사공이 극에 이르렀다더군. 아무도 막지 못할 정도라, 살아 돌아온 게 용할 지경이라니!

-사도련주가 앙천극사대법을 성공했다고 들었는데, 그게 무엇인지 아시오?

-우리는 대책이 있소?

-그런데 이 시국에도 맹주님은 수련 중이란 말이오? 정무맹의 중심을 잡아주셔야 하지 않소? 사도련과 싸우는 데 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사도련주의 광포한 행보에 정무맹의 주요 인사들의 목청이 승천관(昇天館)의 대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게 메아리쳐서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오당오각의 주인들이 서로를 물어뜯었다. 그들 중 절반이 신정회에 포섭된 까닭이었다.

특히 가장 힘들었던 건 내당주인 신기수사 냉군상이었다.

“너무 답답하군. 냉 당주는 뭐가 가장 중요한지 알면서도 이렇게 나오다니.”

신정회에서는 냉군상이 가장 공격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공야청이 그를 상대했다. 어지간한 사람은 논쟁에서 그를 막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하지만 공야청은 거기서 너무나 많은 심력을 소모해 지쳐버린 상태였다.

‘정말 부끄럽군.’

둘 다 ‘수사’라고 불릴 정도로 똑똑하고 유능하니, 정무맹은 그들 두 사람을 축으로 운영된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둘이 편을 갈라서 싸웠다. 공야청은 어쩔 수 없이 개싸움을 받아냈는데, 그런 과정 자체에 너무 짜증났다.

“피곤하군.”

공야청이 뒷목을 주무르며 고개를 젖혔다.

그때, 혜원주 금청청이 공야청의 집무실에 들어왔다.

“각주님.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혜원주, 자네도 고생했네. 내당의 책사들이 아주 대놓고 물어뜯더구먼.”

“뭐,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한 거겠죠. 하지만 그 정도야 뭐 어렵지도 않습니다. 하다못해 예설이에게도 안 됐죠. 제갈영이든 남궁경이든.”

“맞아. 역시 혜원주의 눈이 정확했어. 속이 다 시원하더군.”

“사실 구경이나 한 번 하라고 데려간 거였는데, 예설이가 일당백의 기세로 눌러버려서 통쾌했습니다.”

“하하! 좋군.”

두 사람이 회의 때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한껏 웃었다.

그러더니 공야청이 지난 계획들을 평가했다.

“사실 우리 계획은 충분했네. 사파와 흑도는 이해타산이 심해 한데 모이기 어렵고, 진득하게 수련한 고수가 많지 않으니까. 다만, 사도련주가 올 줄을 몰랐을 뿐이지.”

“그게 패착이었습니다.”

“뼈아픈 패착이지. 하지만 개봉으로 돌아갔으니 쉽게 움직이지 않을 거야. 아직 사도련은 제각각이니까. 다만 보여준 것이네. 우리를 상대로 이만한 무력이 있다는 걸.”

“맞습니다. 우리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사도련 무리를 결집할 목적이기도 하겠죠.”

금청청이 공야청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각주님. 우선이가 조금 전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직접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들어오라고 하겠습니다.”

“아! 그렇게 하게.”

공야청이 반색하며 진우선을 맞이했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왔습니다.”

“수고 많았네. 정말 빠르게 돌아왔군.”

진우선이 공야청 앞으로 작은 목함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각주님과 약속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빙화곡주와 약속했었지. 미리 보냈던 보고서를 보니 상황이 정말 어려웠던데, 자네가 진짜 수고 많았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진우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공야청은 보고서를 천천히 복기하면서, 마기가 아니라 마라혈독이 빙화에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었다. 그가 준비한 방법은 무용지물이 된 까닭이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그걸 스스로 해결해냈다.

‘빙화의 영기를 북돋우며 항마의 능력을 전달해서 해결했다고 했었지.’

말이야 간단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까?

곱씹어보면, 진우선은 빙화의 영기와 소통할 수 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건 능력이 대단한 것이며, 정말로 수고한 일이었다.

공야청이 진우선을 보고 뿌듯해하며 목함을 집어 들었다.

“이게 무엇인지는 들었지?”

“네, 그렇습니다.”

“고맙네. 어쩌면 자네가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야.”

“괜찮습니다. 각주님이 중요한 곳에 쓰시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진우선은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을 얻었다.

다름 아닌, 철벽이었다.

“알겠네. 내가 중요한 곳에 쓰도록 하지.”

진우선의 대답에 공야청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혜원주를 따라가게. 이번에 다녀오느라 첫 월봉을 못 받았더군. 월봉과 함께 특별수당이 있을 걸세.”

“감사합니다.”

헤아려보니 만상각에 들어온 지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간 바쁘게 다니다 보니 만상각에 부임하고 처음 받는 월봉임에도 잊고 있었다.

잠시 후.

혜원주의 집무실에서 진우선이 황색 전낭을 건네받았다.

매우 크고 묵직했다.

“이건 월봉. 호심당에서는 두 냥 정도 받았지? 품위를 유지하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럼 깜짝 놀라겠네. 아예 무게가 다르니까.”

진우선이 곧장 전낭을 열었다.

헤아려 보니 서른 냥이었다.

‘……!’

진우선의 눈의 화등잔만 해졌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하긴 했으나, 막상 큰돈을 손에 쥐니 적응이 쉽지 않았다. 서른 냥을 월봉으로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까닭이었다.

문득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고서점에서 일하며 한 달에 두 냥을 받을 때, 얼마나 기뻤던가.

한 냥이면 한 달은 굶을 걱정을 안 해도 되었기에 마냥 행복했었다. 그래서 무관에 다닐 생각도 할 수 있었다.

호심당에 와서도 한 해 동안 스물네 냥을 받아 필요한 걸 다 살 수 있었다. 그러고도 수중에 열 냥이 남았다.

그런데 서른 냥이라니. 이능운이 왜 처음부터 돈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며,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만상각의 임무는 특별하고, 급하고, 위험한 게 많아. 그래서 보통 한 달에 열댓 냥에서 스무 냥 정도가 월봉으로 지급돼. 생명수당과 위험수당 등의 항목들을 다 셈하거든.”

“네.”

“우선이 너는 이번에 임무를 빠르고 완벽하게 잘 해줘서 서른 냥이 됐어. 근데 다음 달에는 줄어들 수도 있어. 열댓 냥에서 스무 냥 정도 받더라도 허탈해하지 말라고 미리 알려주는 거야.”

“알겠습니다.”

금청청은 이 일을 꽤 해온 터라 사람들의 의문이나 불만 등을 알고 있기에 처음부터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러고는 홍색 전낭 하나를 더 꺼내서 진우선에게 건넸다.

“자, 이것도 받아.”

홍색 전낭은 황색 전낭보다 배로 크고 훨씬 묵직했다.

금청청이 곧장 설명을 덧붙였다.

“백 냥인데, 빙화곡 임무를 잘 해결한 것에 대한 특별수당이야. 빙화보심단을 잘 가져와줘서 고마워.”

“당주님께도 말씀드렸었지만, 제 임무였으니까요.”

“그래도 사실 빙화보심단 같은 영약은 가치가 어마어마하니까 종종 이런저런 사건이 생기기도 하거든. 견물생심이라고, 사람 마음까진 우리가 다 알지 못하니까.”

“그런 생각은 딱히 안 해봤는데……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전 만족합니다.”

진우선이 두 전낭의 묵직함을 느끼며 순수한 얼굴로 웃었다.

“각주님이 널 믿은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네.”

금청청이 그 웃음을 보며, 담대하게 결정을 내린 공야청이 대단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거금을 한 번에 받았는데, 생각해둔 건 있어?”

“네. 월봉을 받게 되면 어떻게 할지 계획해놨습니다.”

진우선은 목표해둔 바가 있었다.

그걸 도와줄 사람도 있었다.

곧 만상각을 나온 진우선이 만금전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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