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97화 (97/225)

097.

#능력을 보이다 (2)

첫 임무를 마치고 진우선에게 새로운 임무가 전해졌다.

-하남성 남양지부의 조사를 부탁합니다. 석연치 않은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몇 달 전부터 하남성으로 전해지는 정보가 사도련에 새나가고 있는데, 그 출처가 남양지부로 강력히 추정됩니다.

또한, 남양지부에서 전서구로 전하는 내용도 이후에 알려진 소식들과 다른 부분들이 꽤 있었습니다.

전서구가 통제되고 있으니, 용의자는 작게는 전서구 담당자부터 크게는 남양지부 수뇌부 전체에 이를 수 있습니다.

상황을 파악하고 일의 경중을 따져서 처리해 주십시오.

사도련은 하남성의 북쪽인 개봉에 그 본거지가 있었다.

하남성의 남서쪽에 있는 남양은 개봉에서 오백 리 길이었다. 정무맹의 본거지 장사에서는 천릿길이 넘으니, 남양 지역은 사도련이 더 가까운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도련의 종자들이 남양을 호시탐탐 넘보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남양 근방에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있어 섣불리 공격하지 못할 뿐이었다.

어쨌거나, 진우선은 이 임무를 받고 홀로 남양으로 가고 있었다.

“원단이구나.”

길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작년에는 친우들과 호심당에 들어갔었는데, 지금은 혼자서 백무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이번 임무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진우선이 곧 결심했다.

‘외부에서 한 명씩 살펴보며 파고들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첩자가 보일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지. 타초경사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서찰에는 ‘첩자’라고 직접 명시하지 않았으나, 사도련에 정무맹의 비밀을 누설했다면 그는 첩자였다.

진우선이 이능운과 악양지부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곧장 들어가서 찾아온 목적을 알린다면, 첩자는 숨어버릴 게 분명했다.

‘그런데 스승님, 즐거워 보이십니다.’

[허허. 그래 보이느냐?]

진우선은 검노야의 음성에서 살짝 들뜬 느낌을 받고 있었다.

[아마도 내 마음이 자유로워져서 그렇겠지. 그날 이후로 첫 번째 굴레를 벗고, 이제 너를 통해 천하를 보니 참으로 흥미롭고 신비롭구나.]

그날은 진우선에게 선무를 전수한 날이다.

검노야는 그동안 선무를 전하는 것까지가 자신의 천명인 줄로만 알았다. 진우선을 가르치기 위해 깨어났으니 말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조심스럽고 걱정스럽고 아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검노야의 천명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선무를 전하고 나니 오히려 깨달음이 찾아왔고, 하늘이 열리며 천기를 보게 되었다.

검노야에게는 더 큰 천명이 있었다. 혼천의 시대를 헤아리며 가는 일이었다.

물론 그날 이후로 천기를 볼 수 없었으나, 이제는 답답하지 않았다.

‘저는 여전히 배울 게 많습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진우선은 검노야에게서 혼천의 시대에 역천의 기운이 가득하다는 걸 전해 들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다. 느끼지도 못했다. 그건 진우선에게 허락된 부분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진우선은 검노야가 필요했다. 검노야의 경험을 계속 배울 수 있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장점이었다.

[허허. 그러자꾸나.]

검노야가 진우선의 심정을 이해하는지 인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정무맹 남양지부장 곽완은 근래 들어 걱정이 부쩍 늘었다.

하나뿐인 조카 곽호명이 중병을 앓는 사람처럼 핼쑥해지고 있는 까닭이었다.

“호명아. 어디 아픈 것 아니냐? 볼 때마다 혈색이 안 좋아지는 듯 싶구나.”

“아닙니다, 지부장님. 요즘 잠을 좀 못 자서 그런 것뿐입니다.”

곽호명의 몰골이 초췌했다. 눈도 퀭했다. 그런데도 예는 잃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일 있느냐?”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요즘 학문이 즐거워 새벽까지 책을 보게 되네요.”

“허허. 날마다 깊이 공부하고 있었구나. 좋은 일이지. 그래도 몸에 무리는 안 가도록 건강을 챙기면서 보려무나.”

“그리하겠습니다.”

“호명아. 무공을 익히는 건 어떠냐? 나는 네가 생각을 바꿨으면 좋겠구나. 무공을 익히면 체력도 증진되니, 공부할 체력도 더 늘어난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만, 부모님이 그리 돌아가셔서 무공은 아직도 썩 내키지 않습니다.”

곽완이 애틋한 눈으로 곽호명을 바라보았다.

곽호명은 무공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무공을 익혔던 부모가 사도련의 고수에게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목격한 까닭이었다.

그 이후로 곽호명은 책만 붙들고 살았다. 미친 듯이 읽었다. 책이 도피처였다.

곽완은 그런 조카에게 총기가 있음을 알고 남양지부에서 일을 시켰다. 예상대로 곽호명은 몇 년 만에 총관까지 오를 정도로 일을 곧잘 했다.

하지만 총관의 자리는 바쁠 수밖에 없는데, 여전히 책을 좋아하니 밤을 새우는 모양이었다.

곽완은 그런 조카가 걱정되면서도 너무나 대견스러웠다.

“열심히 하는 건 넌데 무슨. 허허. 오늘 일도 거의 마쳤으니, 얼른 들어가 보아라.”

“감사합니다.”

곽완이 곽호명을 조금 일찍 들여보냈다. 어차피 날이 저물고 있어 곧 일이 끝날 텐데,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좀 쉬라는 배려였다.

곽호명이 읍을 하고 남양지부를 빠져나왔다. 걸음걸이가 참으로 힘이 없었다.

그러던 중.

곽호명이 대로변의 좁은 골목으로 쑥 들어가더니, 빠르게 걸어 나갔다.

‘드디어 움직이는군요!’

[그렇구나!]

진우선과 검노야가 눈을 빛냈다.

남양지부에서 유일하게 수상한 사람이 바로 곽호명이었다.

다른 이들은 평범하게 맡은 일만 했다. 심지어 남양지부장 곽완도 그러했다.

하지만 전서구와 관계 지으면 수상한 인물이 몇 사람으로 특정된다.

그중에 날마다 신시(申時, 15-17시)에 직접 들러 전서를 확인하고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총관 곽호명이었다.

물론 진우선은 이 사실만으로 곽호명을 첩자로 단정 지은 게 아니었다. 총관으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했을 수도 있으니까.

곽호명에게는 진우선만이 알아챌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증거가 있었다.

바로 그의 몸에서 사특한 기운이 묻어난다는 점이었다.

‘저기로 들어가는군요. 과연 첫 번째 장소로 가는 모양입니다.’

[기운이 벌써 요사스럽구나.]

곽호명은 제 말마따나 그 어떤 무공도 익히지 않았다.

하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았어도, 사기에 노출되면 신체에서 묻어날 수 있었다.

진우선과 검노야는 곽호명을 본 즉시 사기가 묻어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 후 몇 가지 조사를 마친 뒤, 그 꼬리를 잡기 위해 기다린 상태였다.

[쯧쯧. 도박에 빠진 인생이었어.]

남양에는 사특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장소가 몇 곳 있었다.

지금 곽호명이 향하는 곳은 그중 가장 사기가 짙었던 도박장이었다.

곽호명이 그곳에 들어갔다.

진우선은 은밀하게 도박장에 숨어들었다.

“왔어? 오늘은 좀 빨리 왔네.”

눈이 뱀처럼 찢어진 칠척거구의 사내가 탁자 뒤쪽에 앉은 채로 곽호명에게 아는 척했다.

실내는 감각을 교란하는 연기가 자욱한데, 그는 용케 곽호명을 바로 알아보고 있었다.

“바로 한 판 할 거야?”

“아니요.”

곽호명이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제 빚이 얼마나 있죠?”

“삼백하고 싶한 냥 됐었지. 기억 안 나?”

“제길. 그새 늘었군요.”

곽호명이 한숨 쉬며 말했다.

남양지부 총관으로 한 해에 백이 십 냥씩 받으니, 삼백오십일 냥이면 근 삼 년치 봉급이나 다름없었다.

근데 그게 전부 빚이었다.

“에휴. 우리도 답답하다. 왜 너는 돈을 주는데도 자꾸 빚을 늘리냐?”

거구 사내가 곽호명을 가볍게 나무라자, 곽호명의 얼굴에 주눅이 들었다.

거구 사내가 씩 웃었다.

“오늘은 뭐 괜찮은 소식 없어 있으면 잘 쳐줄게. 열 냥 넘는 거면 일 할을 더 붙여주고.”

“오늘은…….”

곽호명이 말끝을 흐렸다. 손이 덜덜덜 떨리고 있었다.

“없으면 말아. 당장 돈만 있다면야 한 판 할 수 있으니 상관없지.”

거구 사내는 곽호명을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해, 곽호명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었다.

“……낮에 온 게 하나 있는데.”

곽호명이 어렵게 입을 열려는 찰나,

타탁-!

“……!”

거구 사내가 눈을 부릅뜬 채로 굳었다. 무언가 번쩍인다고 느꼈을 뿐인데, 의자에 앉아 있던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곽호명은 코앞에서 눈이 뒤집힌 채 졸도한 거구의 사내를 목격했다.

“헉!”

그는 확실히 거구 사내보다 한 박자 늦게 놀라고 있었다.

그때, 옆에서 진우선이 말했다.

“곽 총관님. 그 이야기는 안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누, 누구시죠?”

“맹에서 나왔습니다.”

“맹에서요?”

곽호명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정신이 혼미해져 이성적 판단이 잘 안 되는 듯했다.

“일단 이곳에 미혼향이 가득하니 밖으로 나가서 이야기합시다.”

이곳의 미혼향은 악양 일송문에서 엽초희가 피웠던 것보다 짙어서, 일 각만 지나도 사람이 아예 맨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 정도였다.

진우선이 곽호명의 팔을 잡고 기운을 슬쩍 흘렸다.

벽사의 힘이 곽호명의 몸속에 들어온 사기를 씻어냈다. 그러자 정신이 맑아진 곽호명이 탄성을 흘렸다.

“아……!”

그의 음성에 절망감이 가득했다.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바로 알아챈 까닭이었다.

***

만상각 운중헌.

사예설이 방금 막 도착한 전서구를 가져와서 읽었다.

“남양지부의 일이 다 해결됐다고 합니다.”

“벌써 왔어? 거기 진우선이 혼자 갔잖아. 닷새쯤 된 거 같은데 빠르네.”

구양기가 책자를 읽다 말고, 진우선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진우선의 해결이 더 빨랐다.

“누구였어?”

“남양지부 총관 곽호명이었다고 합니다.”

“역시 곽호명이었군.”

금청청이 그 이름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후보가 있었으나, 처음부터 가장 유력하게 예상했던 인물이 곽호명이었다.

애초에 남양지부에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겠는가. 지부장의 조카쯤 되니 그렇게 행동할 수 있었겠지.

금청청이 질문을 이었다.

“사유는?”

“흑요궁이 운영하는 도박장에 빠져들어서 큰 빚을 지고, 정보를 팔아서 빚을 갚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빚은 늘어났고요.”

“그래도 책 좀 읽어서 똑똑한 줄 알았더니, 맹보다 빚이 더 무서웠나 보군.”

“똑똑했으면 아예 도박하지 않았겠죠.”

구양기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순백의 옷을 입고 머리를 가지런히 묶은 백하련도 비슷한 어조로 말했다.

“도박에 빠져들었군. 못 끊겠네. 손이라도 자르지 않으면.”

그 말에 아무도 부정하지 않았다. 다들 도박하는 사람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했는지 많이 접한 까닭이었다.

금청청이 사예설에게 다시 물었다.

“처리는 어떻게 했대?”

“맹의 법규에 따라 남양지부의 감옥에 가뒀다고 합니다.”

“깔끔하네. 법규도 지키고, 사람도 챙기고. 남양지부장이 조카를 많이 아낀다고 했으니, 충분히 잘 돌봐주겠지.”

“네.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사예설이 그렇게 말하며 보고서를 다시 말아서 정리했다.

“동기가 실력이 뛰어나네.”

구양기가 사예설을 놀리듯이 말했다.

그는 사예설이 호심당 제자로 백혜원에 왔을 때 손발을 맞추며 친해졌는데, 장난기가 많은 게 흠이었다.

“그가 뛰어난 거죠, 뭐.”

사예설이 대충 대꾸했다.

바로 그때였다.

“급보가 왔습니다.”

운중헌 옆방에서 전서구들을 담당하는 무인이 뛰어 들어오며 서찰을 건넸다.

문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예설이 얼른 받아서 읽었다.

“여남지부에서 왔는데, 목단화가 파멸대에 쫓기고 있어 급히 지원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사도련을 빠져나오다가 꼬리가 밟혔구나!”

금청청이 재빨리 상황을 파악해냈다.

목단화는 백무원의 일원으로, 지난 몇 달간 사도련에 잠입해 정보를 보내왔었다.

이번에 발각된 모양이었다.

“정확한 위치는?”

“천중산(天中山) 부근이라고 합니다.”

“근처에 누가 있지?”

“진우선이 있죠.”

백하련이 곧장 진우선을 언급하자, 구양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 동조했다.

“지금이 술시(戌時, 19-21시)니, 진우선은 아직 남양에 있을 겁니다. 떠났어도 멀리 가지 않았을 테고요.”

“그래. 진우선이 제일 낫겠군.”

금청청이 재빨리 결정을 내렸다.

그때, 사예설이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을까요? 이제 세 번째인데, 구출 임무를 가기에는 경험이 부족할 거 같아요.”

진우선이 현재 가장 가까이에 있다는 건 사예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경험이 적었다. 구출 임무처럼 중요하고 어려우며 실패해서는 안 되는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금청청이 그런 사예설의 생각을 헤아리며 물었다.

“파천문 파멸대가 뒤쫓는다는데, 흑괴가 그들을 상대한다면 어떨까? 흑괴가 질까?”

“그건 아니겠죠. 파멸대 정도로는 흑살마장의 위명에 미치지 못하죠. 근데 혜원주님 말씀은 알겠지만, 구출 임무는 처음인데 어려워하지 않을까요?”

“별걸 다 걱정하네. 흑괴랑 싸운 것도 처음 겪은 일이었는데, 뭐.”

“그거야 그렇긴 하죠.”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는 실력이 뛰어나니, 처음이어도 잘 해낼 거야. 분명.”

사예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청청의 말은 이치에 어긋난 게 없었다.

그때, 구양기가 놀리듯이 말했다.

“누구는 동기 있어서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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