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92화 (92/225)

092.

#진결제자 (2)

닷새가 더 지났다.

우문혁은 아직 호심당에 복귀하지 않았다.

그동안 진우선은 오전에 독행관에 들러 금선무를 깨우치는 데 애쓰고, 오후에는 만총과 함께 연무장에서 수련에 임했다.

오늘도 그러했다. 정오가 지나자 연무장에서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쐐애액! 푸욱!

만총의 창이 맹렬하게 허공을 찢었다.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반 시진 넘게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지친 기색은 하나도 없었다. 땀이 흩날리고 있는데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내 생각이 맞았어!’

강한 확신이 온몸에 깃드니 힘이 끝없이 마구 솟아났다. 창궁관에서 낙뢰창법을 택한 것은 훌륭한 결정이었다.

콰앙!

뇌정일기 신공에서 생성된 내력이 강한 파공음을 내며 허공을 진동시킨다.

그럴 때마다 만총의 얼굴에 시원한 미소가 그려졌다.

호심당에 들어왔을 때부터 실력이 제자리걸음하여 근심과 걱정이 많았는데, 그 답답한 마음이 펑펑 풀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낙뢰창법으로 중심을 잡는다!’

낙뢰창법은 뇌정일기신공과 호흡이 딱딱 맞았다. 혼원벽력창보다도 더욱 상성이 좋았다.

그러니 향후 자신의 무공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낙뢰창법을 세 무공의 중심으로 둘 계획이었다.

뇌정일기 신공으로 꾸준히 내공을 연마한다.

낙뢰창법을 기본으로 삼아 창에 뇌정일기의 기운을 담아낸다.

혼원벽력창은 상승의 절예로서 홀로 다 깨우치기 쉽지 않겠지만, 무공을 발전시켜가는 데 있어서 좋은 지침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셋을 하나로 녹여낸다면, 천뢰(天雷)의 창법이 탄생하리라.

어렸을 적 아버지의 서재에서 끌리듯이 뇌정일기신공을 선택했을 때부터 시작해온 자신만의 무학이 이렇게 구체화되고 있었다.

현재의 즐거움과 미래의 기대감.

그걸 원동력으로 만총은 반 시진을 더 창을 휘두른 뒤에야 멈췄다.

“엄청 즐겁나 보네. 시종일관 웃고 있더라.”

“생각대로 잘 되어가는 거 같아서 힘이 난다. 고마워.”

“고맙기는. 오늘도 쉽지 않을 건데.”

“그래. 네 말을 기다리고 있었어.”

만총이 물을 마시며 진우선에게 귀를 기울였다.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는 밑바탕에는 진우선의 도움이 있었다.

‘날마다 발전하는 믿음직한 친우, 진우선.’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진우선과 함께 해오며 그의 성취와 성장, 성정을 다 겪었다.

그랬기에 만총은 진우선의 안목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다.

“오늘도 느꼈지만, 총이 너는 대단해. 초식을 펼칠 때 흐트러짐이 없고 몸의 중심을 언제나 잘 잡아 내니 크게 흠잡을 게 없어. 하지만 창을 펼칠 때 내력이 한 점에 집중되지 못하더라. 그건 어쩌면…….”

진우선이 오늘 보여준 만총의 모습에서 자신이 느낀 점들을 몇 가지 말했다.

만총은 확실히 무재가 뛰어났다. 무공의 장단점과 초식의 중점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체득할 수 있었다.

거기에 똑똑하기까지 하니, 설명을 들으면 곧잘 흡수했다.

조언을 들은 만총이 다시 힘껏 창을 휘둘렀다.

콰쾅!

공력이 정확히 한 점을 찌르니, 기운이 더욱 크게 폭발했다.

만총은 조언 받은 내용을 단숨에 소화해내고 있었다.

‘이렇게 수련하다 보면, 결국 총이에게 부족한 건 경험밖에 없겠어.’

진우선이 만총의 수련을 다시 한 번 지켜보며 감탄했다.

[그렇구나. 실력과 경륜이 있는 스승을 만난다면 크게 대성할 자질이구나. 무학에 대한 집념만 조금 내려놓는다면 말이다.]

검노야도 진우선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었다.

다만 만총은 자신만의 집념이 있으니, 스승을 만나서 크게 성장하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게 무학의 전부는 아니니, 지금처럼만 계속 나아가면 강호에 한 획을 긋겠구나.]

‘그럴 것 같습니다.’

진우선과 검노야가 그렇게 만총을 보면서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음 날 정오 무렵이었다.

진우선과 만총이 연무장에 도착했을 때, 한 사람이 찾아왔다.

이결제자 천무결이었다.

그는 예전 목제자 시절에 독행관 앞에서 한 번 마주쳤던 괴팍한 사람이었다.

“오랜만이군.”

“네, 오랜만입니다.”

“진결제자가 된 걸 축하한다. 흑괴와 싸웠다면서? 흑살마장은 스치기라도 하면 몸이 녹아내린다던데, 다행히 별 이상은 없어 보이는군.”

“축하는 감사합니다.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런가?”

진우선이 간단히 대답하자, 천무결도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과 화법을 가지고 있었다. 진우선은 이미 한 번 겪어봤기에 어떻게 대화하면 되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아무튼, 좋네. 한 판 뜨자.”

“비무요?”

천무결이 느닷없이 요청했다. 그에 진우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래. 우리 그때 다음에 보기로 이야기했잖아. 깜빡한 사이, 벌써 한 해가 저물어가더군.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찾아왔다.”

“저는 약속한 기억이 없습니다.”

천무결이 다짜고짜 말하자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을 되짚어보니 그때 천무결이 혼자서 비무를 결정짓고, 시간이 없다고 혼자서 미루자고 말한 게 전부였다.

“그랬나? 뭐, 상관없지. 그럼 지금 너에게 비무를 신청한다.”

진우선이 입을 열려는 찰나, 만총이 한 걸음 나서며 천무결의 앞을 가로막았다.

“약속된 게 아니니 이만 물러나 주시죠.”

“만총이지? 반가워. 일결제자의 삼인방 중에 두 번째 실력자라고 들었다. 너와도 한 번 겨뤄보고 싶었어.”

“저는 싫네요.”

만총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표정에 미동 하나 없는 게 어떤 말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걸 느낀 천무결이 슬쩍 웃으며 능글맞게 대꾸했다.

“왜? 너는 기운이 참 강력한데, 나와 좋은 승부가 될 거야.”

“그건 더 말하고 싶지 않으니 돌아가시죠.”

“너.”

만총의 냉담한 반응에 천무결이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진우선이 입을 열었다.

“총아. 잠깐만.”

진우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비무 신청을 받겠습니다.”

“오-! 고마워!”

천무결이 히죽거리며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이상하군. 네 기운이 잘 느껴지지 않아. 벌써 상승의 공부를 마친 건가?”

“그때 목제자 수련은 지나갔습니다.”

“하긴, 여름부터는 보이지도 않았으니 이미 마친 게 당연한 걸 괜히 물었군. 그래서 흑괴와 동수를 이룰 수 있었던 거였어.”

천무결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일련의 상황을 정리했다. 그 모습이 똑똑하고 합리적이기보다는 외골수적인 느낌을 자아냈다.

어쨌거나 주변의 연무장을 바라보던 천무결이 바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바로 해도 괜찮겠군. 어때?”

“좋습니다.”

진우선이 동의했다.

그러자 천무결이 재빨리 연무장 위로 뛰어 올라갔다.

진우선이 뒤따라 올라가려는 찰나, 만총이 말을 걸었다.

“네가 번거롭게 됐네.”

“괜찮아. 엄청난 무공광인 것 같은데, 별일 없을 거야.”

“되게 불편한 사람이군.”

“예전에 마주쳤을 때도 그랬지. 천성이 그런 것 같아.”

“그랬군.”

진우선은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만총의 걱정과 달리 평온해 보이 기까지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우선은 이 비무에 의도한 바가 있었다.

“총아. 내가 비무할 때 나를 잘 살펴봐. 며칠 동안 네 수련을 보면서 조언했었지만, 말하지 않은 것도 있었어. 너라면 언젠가 느끼게 될 테고 해결해낼 테니까. 근데 지금 한번 봐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다 말한 게 아니었구나.”

“시간이 필요하고 경험이 쌓여야 하는 부분들이었으니까.”

만총은 현재 혼원벽력창과 낙뢰창법 두 가지를 하나로 녹여내고 있었다.

둘이 아무리 비슷하다고 해도 근원이 다르므로 어느 순간부터는 충돌이 올 터였다.

다만 지금은 낙뢰창법을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아 느껴지지 않을 뿐이었다.

거기에 진우선에게 말하지 않은 내공심법도 있었다. 뇌정일기신공이었다.

진우선은 처음부터 세 번째 무공의 존재를 알았다. 굳이 묻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니 만총의 목적은 세 개의 뛰어난 무공을 익히며 하나로 만드는 것이리라.

셋은 근원이 다르니 언뜻 조화롭게 섞인 것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에는 하나로 엮이지 못하고 균열이 올 게 당연했다.

진우선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건 시간이 흐른 후, 그때 가서야만 말할 수 있고 풀어나갈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일까. 경험적인 면에서도 만총은 고민할 게 많았다.

혼자서 창법을 연마하니 초식의 깊이는 날로 더해질 수 있으나, 상대의 변칙적인 상황에서는 손발이 어지러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진우선이 그렇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빠르게 정리해갔다.

이외에도 만총을 위한 것이지만 지금 말할 수 없는 것들이 꽤 있었다.

“아-!”

만총이 그런 진우선의 말을 듣고, 그의 복잡한 눈빛을 보며 무엇을 원하는지 바로 느꼈다.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문제라면, 지금 말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진우선은 지금 보라고 하고 있었다. 스스로 보고 기억하여 훗날 깨달음이 올 수 있도록 양분으로 쓰라는 뜻이었다.

진우선은 그걸 위해 천무결과의 비무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럼 어떤 걸 봐야 하는지도 물어보면 안 되겠군. 내가 보고 느껴야 할 테니까.”

“맞아.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잘 아네.”

“잘 알기는.”

만총이 피식 웃었다. 진우선의 깊은 배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알았다. 집중해서 봐야겠군. 네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니, 다치지나 마라.”

만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진우선이 연무장 한가운데로 갔다.

천무결이 목검을 든 채로 물었다.

“준비는 다 됐나?”

“네. 다 됐습니다.”

“선공을 양보하거나 그런 건 없어. 알지? 그냥 붙는 거다.”

끄덕.

진우선이 고개로 대답하고 검을 세웠다.

그리고 섬전처럼 빠르게 검을 찔러 들어갔다.

***

차가운 바람이 두 뺨을 스친다.

초겨울에 접어들었다.

진우선이 이전보다 한 겹 두꺼워진 옷을 여미며 독행관을 나와 숙소로 향했다.

걸음이 매우 빨랐다. 오전 수련을 마쳤을 때 우문혁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혁아.”

“오, 진 소협! 잘 지내셨소?”

진우선이 방으로 들어오자, 우문혁이 짐을 풀다 말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오래 걸렸네? 별일은 없었고?”

“연속임무가 내려와서 좀 힘들었을 뿐, 별일은 없었소. 광명각에 속해 안휘성 합비로 호위 임무를 받아서 갔었는데, 그곳에서 하남성으로 긴급지원 임무가 떨어졌소. 진양각의 무인들이 때마침 준동한 사파 무리에 포위당하고 있는 상태였소.”

“안휘에서 하남까지 다녀왔으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겠네.”

진우선이 안도했다.

우문혁이 그런 진우선을 보며 물었다.

“그런데 본인이 도착하자마자 진 소협이 찾아오다니, 무슨 일 있소?”

“아! 나도 별일은 없어. 그냥 친우라 할 사람을 생각해보니 너와 혁이가 생각나더라고. 그래서 복귀하기를 기다렸지.”

“하하. 본인을 생각해줘서 고맙소. 호심당에 들어왔을 때 친구가 되었지만, 지금 진 소협에게 또 들으니 감개무량하구려.”

“하하. 그랬지 참.”

우문혁의 말에 진우선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총이는 잘 복귀했소?”

“총이는 잘 돌아왔고, 지금은 독행관에서 수련에 매진하고 있어.”

진우선이 만총의 최근 소식을 전했다.

진우선이 천무결과의 비무에서 승리한 이후, 만총은 홀로 집중하며 수련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진결제자가 되어 이번에 이결제자들과 함께 호심당을 마치게 되었어. 진결제자는 일결제자와 이결제자의 과정을 빠르게 올라간 사람에게 주는 신분이고.”

“오! 도착한 지 얼마 안 돼서 그건 처음 들었소. 새로 생긴 모양이구려. 진 소협, 정말로 진심으로 축하하오.”

“고마워.”

우문혁이 활짝 웃으며 본인의 일처럼 매우 기뻐했다.

“사실 본인은 이미 예전부터 진 소협에게 호심당은 너무 작다고 생각했소. 진 소협의 실력을 보았다면, 천하에서도 이름을 떨칠 거라고 누구나 느꼈을 것이오.”

우문혁은 진우선이 진결제자가 된 게 당연한 일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또 고맙소. 명옥기의 효능을 이번에 크게 느끼고 왔소.”

“역시 네게 잘 맞았구나. 다행이네.”

“하하. 다 진 소협 덕분이오.”

우문혁이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진우선의 말 속에 담긴 묘한 느낌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런데 진 소협, 왜 말을 영영 못 볼 사람에게 하듯이 하시오? 호심당을 떠나게 돼서 그렇소? 정무맹에 있으면 소속이 달라도 언제든 만날 수 있소. 그러라고 정문 근처에 태화관이 있다오.”

“태화관? 아, 그렇겠네. 그러면 되겠네.”

우문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 것에 비해, 진우선은 입을 떡 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처 생각지 못한 바였다.

“하하하. 진 소협, 그런 건 잘 몰랐던 모양이구려. 아예 내년에 태화관에서 만날 날짜를 잡아두는 게 낫겠소. 어떻게 생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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