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83화 (83/225)

083.

#위험한 임무 (1)

-녹마봉의 기운이 쇠했다.

-죽음의 냄새가 짙다.

다음 날 아침.

엄소백이 진우선의 보고를 계속 보며,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

‘사기가 녹마봉에 가득하다고 봐야 한다!’

죽음의 기운, 사기(死氣)는 구유마라종의 흔적 중 하나였다.

구유마라종 마교도들의 특별한 성향에서 유래된 어떤 성질을 일컫는 말이었다.

사실 구유마라종의 음험함은 가히 끝이 없었고, 마교도들 가운데서도 잔악하기로 유명했다.

독을 쓰고 암기를 날리는 것은 예사요, 온갖 기괴한 술법과 차마 형언키 어려운 극악한 무공을 익히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 모든 바탕에 천마교의 마공이 있으니, 구유마라종의 마공은 온갖 것이 섞인 잡탕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서 악취가 났다.

악취라 하여 어떤 특별한 냄새가 아니라, 마주하고 있으면 혼백이 썩어들어 간다고 느껴지는 역겨운 기운이었다.

영혼에서 나는 시체 썩는 내[屍臭]라고 볼 수 있었다.

사람 자체가 품은 기운이 상대에게 썩어 문드러지는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이다.

한데 진우선의 보고에 따르면, 그 사기가 녹마봉을 죽음으로 빠트린 모양이었다.

‘땅의 힘과 나무의 기운이 모두 쇠했다고 했으니, 녹마봉에서 구유마라종의 종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십중팔구일 것이다!’

엄소백은 구유마라종의 마교도들을 수없이 경험했기에 자신의 판단을 확신했다.

‘역겨운 놈들!’

그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심혼까지 불쾌해지는 끈적끈적하고 매캐한 악취가 엄습하는 듯했다.

하지만 놓칠 수 없었다.

또한, 녹마봉이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현재의 모습이 과연 어떨까?

적들이 있다면 얼마나 모여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때, 운철산이 방에 들어와 묵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대주님. 준비를 마쳤습니다.”

“철산아. 녹마봉의 상태가 어쩌면 어제 회의했던 것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르겠다.”

엄소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심했던 내용을 전했다.

“……그렇소?”

“반응이 시원찮군. 내 말이 믿기지 않아?”

운철산이 공식적인 보고 때 높임 말을 썼던 것과 달리 편하게 자신의 의견을 던졌다.

“아니, 내가 대주와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그러겠소? 다만 대주의 걱정이 지나친 거 아닌가 싶소.”

“전혀 지나치지 않아.”

“그럼 알겠소.”

엄소백이 단호하게 말하자, 운철산이 다소 불퉁스럽게 대답했다.

“철산아. 내가 생각하기에 정말 중요한 일이다. 불만은 다녀와서 해도 늦지 않아. 그러니 바로 출발하자.”

엄소백이 운철산을 타이르고 집무실을 나섰다.

그 앞에 녹마봉을 탐색하러 함께 갈 인원이 대기 중이었다.

엄소백이 그들을 한차례 둘러보았다.

마일권을 비롯한 이 조 소속의 무인 열 사람은 적당한 긴장감으로 몸을 적시고 있었다.

호심당에서 온 염지광은 다소 떨고 있었다.

반면에 진우선은 매우 침착해서 두려움도, 흥분도, 긴장도 보이지 않았다.

‘진 소협이 가장 믿음직스럽구나.’

요동함이 전혀 없어서 어리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십육 세의 진우선은 한 살 많은 염지광은 물론이거니와 지금 모인 이들 중 가장 어렸는데, 무인으로서의 모습은 누구보다 나았다.

‘정말 탐나는군.’

그렇게 둘러보는 사이, 야수의 눈빛을 가진 운철산이 대열 맨 앞에 합류했다.

엄소백은 그렇게 탐색조의 모습에 큰 이상이 없는 걸 본 뒤, 진중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좋아 보이는군. 그럼 출발하자.”

“예!”

“진 소협. 자네가 선두에 서서 우리를 안내해주게. 옥당이 도와주고.”

“알겠습니다.”

진우선과 심옥당이 맨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탐색조가 녹마봉으로 출발했다.

***

녹마봉(綠馬峰)은 봉우리가 말을 닮아서 붙은 지명이다.

하늘로 치솟은 거대한 바위는 누가 봐도 말이 투레질하는 형상이었다. 뒤편 산등성이에 나무들이 마구 뻗어 있으니, 말갈기 휘날리며 달리는 성난 말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그러한 산봉우리의 모습은 항상 변함이 없고, 오늘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녹마봉은 지금도 힘이 넘쳐서 당장이라도 앞에 늘어선 산들을 뛰어넘을 것만 같았다.

“저 녹마봉에 죽음의 기운이 어렸다고? 나는 잘 모르겠군. 힘차 보이기만 하는데.”

운철산이 보이는 그대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목소리가 퉁명스러운 것은 속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

무의대원들 몇 명도 그에 동조하는지, 눈빛에 불만이 어렸다.

“이봐, 진 소협. 혹시 착오가 있던 건 아닌가? 아무리 봐도 아니야.”

“착오는 없었습니다.”

“그럼 진짜라고? 믿을 수가 없는데?”

운철산이 빈정거렸다.

불퉁스러운 표정으로 녹마봉과 진우선을 번갈아 보는 꼴이 밉살맞기 그지없었다.

바로 그때,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운 부대주. 아직 녹마봉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정신 사납게 하지 마라. 네 말에 대원들이 선동되고 있는 걸 못 느끼느냐?”

엄소백이 운철산을 엄정하게 나무랐다. 그러더니 진우선에게로 말을 이었다.

“진 소협은 괘념치 말게. 나는 자네의 말을 신뢰하고 있다네.”

“알겠습니다.”

“그보다 녹마봉은 어떤가? 아직 멀기는 한데…… 혹시 여기서도 느껴지는 바가 있나?”

엄소백이 가볍게 물었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그래서 운철산과는 어조부터가 달랐다.

사실 엄소백의 말대로 녹마봉은 아직 멀었다. 이제야 시야에 그 모습이 들어왔을 뿐, 도착하려면 반 시진은 더 가야 했다. 지금 있는 곳조차 순찰 경로상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도 아니었다.

그러니 엄소백의 물음은 아마도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하지만 진우선의 대답은 예상한 바와 달랐다.

“여기서도 사기(死氣)가 느껴집니다. 비록 그 기운이 옅긴 하지만, 어제 보고 드린 내용과 다르지 않습니다.”

“……!”

엄소백이 눈을 부릅떴다.

가볍게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가볍지 않았다.

“어제 분명 땅과 나무가 쇠했다고 들었던 걸 기억하네. 근데, 이렇게 멀리서도 느껴진단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흐음…….”

엄소백이 녹마봉을 주시했다. 그 눈빛이 매우 심각했다.

“운 부대주. 서둘러주게.”

“대주님? 설마 그 말을 믿으십니까?”

운철산이 대뜸 엄소백에게 반문했다.

엄소백이 진우선의 의견을 한 점 의문도 없이 받아들이는 게 이해되지 않는 까닭이었다.

자신은 진우선의 말이 미덥지 못하기만 한데, 엄소백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리 신뢰한단 말인가?

그러나 엄소백의 반응은 여전히 운철산의 생각과 달랐다.

“운 부대주. 우리가 등잔 밑이 어두웠는지도 모르겠어. 출발 직전에도 말했었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도 있다네. 그러니 빨리 가봐야 해.”

엄소백이 찰나 간에 기백을 뿜어 내면서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운철산이 조용히 고개를 수그렸다.

“……알겠습니다.”

운철산은 이런 엄소백에게 반박하지 않았다.

진우선의 말은 믿을 수 없으나, 엄소백의 판단은 항상 옳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성질을 죽인 운철산이 바로 뒤돌며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다들 들었지? 가자. 이제부턴 모두 더 빠르게 경공을 펼치며 따라오도록!”

“네!”

무의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그들의 눈빛과 표정에서 단단한 각오가 흘러나왔다. 모두가 엄소백을 강하게 신뢰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때 운철산이 진우선에게도 역할을 주지시켰다.

“진 소협, 자네는 목적지로 정확히 가주게. 자네가 느끼는 곳의 근방에 다다르게 되면 신호를 줘야 하네.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신중해야 해.”

“알겠습니다.”

진우선도 다부진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형을 날렸다.

일행도 뒤따라서 더 빠르게 나아가기 시작했다.

엄소백이 적당히 속도를 내어 일행과 발맞추어 나아갔다. 그러면서 의문에 찬 눈으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정말 여기서도 사기(死氣)가 느껴졌단 말인가? 나도 아직 느껴지지 않거늘…….’

어쩌면 진우선의 실력은 자신이 추측하는 것 이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공도 뛰어나군.’

그러고 보니 진우선은 경공도 매우 훌륭했다.

그냥 뛰어난 정도가 아니었다. 걸음이 가벼워 보이는 게 몸놀림에 군더더기가 없고, 앞으로 나아가는 중에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조차 일지 않았다.

그 모습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관심 있게 보면 무의대원들보다 나았다.

엄소백이 그렇게 진우선을 살펴보며 나아갈 때였다.

딸랑-.

딸랑-.

작지만 청명한 방울 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청죽령이 울렸다!’

엄소백이 즉각 허리춤에 매달고 있던 방울, 청죽령을 들어 올리며 소리를 잠재웠다.

그리고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군청색의 방울, 청죽령(靑竹鈴)은 선기(仙氣)가 어린 푸른 대나무로 만들어진 청죽령은 마기를 느끼면 스스로 울리는 신령한 방울이었다.

마교도와 자주 접하는 엄소백에겐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보물이었다.

‘청죽령에 마기가 닿았어!’

마기 중에서도, 구유마라종의 흔적을 쫓고 있으니 죽음의 기운인 사기가 닿았다고 판단하는 게 타당하리라.

즉, 구유마라종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에 다다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에 엄소백이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운철산을 흘깃 바라보았다.

“여기서부터인가 봅니다.”

운철산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진한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청죽령의 방울 소리에 담긴 의미를 아는 까닭이리라.

끄덕.

엄소백이 고갯짓을 했다.

운철산에게는 더 말할 게 없다. 그와 대원들은 알아서 대비한 채로 나아가고 있으리라.

엄소백도 몸과 마음의 감각을 곤두세우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고 보니 진 소협은 청죽령보다도 먼저 사기를 느꼈다는 말이 되는군.’

청죽령은 극소량의 마기에도 반응하는 기물인데, 이보다 빠르다면 정말로 진우선이 항마의 능력을 가졌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를 달렸을까.

‘……!’

죽음의 기운이 엄습해오자, 엄소백이 저도 모르게 눈을 찡그렸다.

온몸이 무거워지더니, 심령은 육신보다도 더 아래, 지하의 깊은 흑암으로 빨려드는 듯했다.

상당한 농도의 사기(死氣)였다.

엄소백이 재빨리 내력으로 온몸을 두르고, 전신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다들 내력을 바짝 끌어올려라! 방심하면 안 된다.”

***

그 시각.

골짜기와 골짜기가 겹쳐 음산한 그늘이 진 곳이 있었다.

그곳은 태양 빛이 한 점도 닿지 않은 채, 시커먼 수풀이 하늘을 가리며 잔뜩 우거져 있을 뿐이었다.

그 아래에는 진토마저 물러져서 늪이 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지금 작은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뽀륵.

거품이 늪 위로 올라와 터졌다.

푸스슥.

곧 시커먼 이파리 하나가 바스러지며 떨어졌다.

그런데 기포는 하나가 아니었다.

뽀륵.

뽀르륵.

뽀그르르.

늪에서 거품이 연이어 마구 끓어 올랐다.

표면 위로 파문도 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가 수면 위로 서서히 올라왔다.

스윽-.

한 사람의 머리가 천천히 늪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고, 드러난 얼굴이 먹처럼 검은 괴인이었다.

번쩍-

괴인이 눈을 뜬 순간, 핏빛 안광이 번뜩였다.

늪 위에 절반만 떠오른 머리통에서 시뻘건 빛을 뿜어대다니.

어찌 이리 흉측하고 기괴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는 이제 눈을 떴을 뿐이다.

곧 목까지 늪 위로 드러났고, 입이 열렸다.

“크흐흐흐!”

지저에서 울렸을까 싶을 만큼 혼백을 암흑으로 끌어당기는, 절로 오싹해지는 광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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