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창궁관 (2)
강론이 끝난 후.
대정관을 나서는 일결제자들이 곳곳에서 웅성거렸다.
서로를 대하는 행동에 미묘한 긴장감이 어려 있으면서도, 눈빛으로는 열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특히 청색 무복의 일결제자 두 명은 꽤 들뜬 목소리로 감탄을 쏟아냈다.
“창궁관이라니! 말로만 들었던 곳인데!”
“나도 듣자 하니, 그곳에 보관된 책을 쌓아 올리면 하늘에 닿는다더군.”
“와-! 그 정도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춘추관은 저리 가라 할 정도일 텐데.”
“직접 보면 눈 돌아가겠지.”
창궁관(蒼穹館)은 초대 정무맹주가 ‘강호의 모든 서책을 모으라!’라는 명령으로 세워진 장서고였다.
지난 백 년간, 정무맹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음을 생각한다면, 창궁관에 수집된 책들의 양은 어마어마할 게 분명했다.
아마 강호에서 책의 모양만 하고 있어도 죄다 긁어모았으리라.
무공서는 물론이거니와, 역사서, 병법서, 천문지리, 진법서에 잡서까지 예외가 없었다.
또한, 책이 아니어도 죽간이나 목간 등 어딘가에 기록이 되어 있기만 하면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했다.
강호의 유구한 역사가 장강처럼 굽이굽이 흘러 모두 창궁관에 흘러들었다고. 거기서 고요히 잠들었다고.
이에 비하면 춘추관은 정무맹 소속 호심당의 작고 평범한 서고에 불과했다. 창궁관과의 비교 자체가 민망할 규모였다.
“그런데 창궁관은 맹주님과 장로님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지 않나?”
“그렇지. 근데 아까 들었다시피, 당주님이 우릴 위해 기회를 베푸셨으니까.”
정무맹 열 명의 장로, 즉 오당오각의 책임자만이 창궁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정무맹의 시초부터 정해진 규율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단 하나뿐이었다.
그들이 권한을 빌려주는 경우에만 대리인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 자격을 호심당주 호연강이 제자들에게 양보했다.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
“그러고 보면, 당주님도 참 대단하시네. 남가철방의 무기도 엄청나지만, 그래도 창궁관에 들어가는 건 더 비교할 수 없는 건데…….”
당주님은 도대체 어떻게 제자들을 위해 이리 희생하실 수 있을까?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없는 제자들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도 탄복하여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일결제자들은 이 순간 각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었다.
“세 명이라고 하셨지? 그럼 할 만하겠어. 세 손가락 안에만 들면 되니까.”
“아까 보니 진우선이 돌아왔더라. 전보다 더 여유 있어 보이는 게, 자신만만한 것 같더군. 아무래도 한 자리는 제외하는 게 맞을 거야. 그래도 두 자리는 해볼 만하겠어.”
“그건 그렇겠군.”
진우선의 무위는 이미 지난 시험 때 입증되었다. 실전에서의 모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도 다녀온 임무의 뒷이야기를 통해 알려져 있었다.
그에 더해 현재 모습을 보면, 한 자리는 그의 차지라고 보는 게 옳을 터였다.
그러나 이번 시험은 세 사람을 뽑는다. 진우선을 제외하고도 두 자리가 남았다. 희망을 품을 여지가 충분했다.
“꼭 들어가서 단천삼검에 비견되는 비급을 얻어야겠다!”
“나도! 나는 만약 금정도법 같은 비급을 발견하면 그날로 도를 들 수도 있어!”
흰색 무복을 입은 일결제자 한 명이 곁에서 묵묵히 걸어가다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뭐야! 단천검과 금정도 두 대협의 절세무공이 창궁관에서 나온 거였어?”
“어, 맞아. 엄청 유명한 얘긴데.”
“진짜?”
“진짜로. 너 설마 처음 들어?”
“어. 처음이야.”
흰색 무복의 일결제자는 정말로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궁금해했다.
그는 단천검과 금정도 대협을 알고 있으나, 그들이 어떻게 강해졌는지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단천검이라 불리는 마관은 대략 십 년 전쯤에 창궁관에서 단천삼검(斷天三劍)을 얻었다.
이 무공은 검 한 자루로 천하를 오시했던 단천객의 성명절기였다.
마관은 이를 얻고서 대성하여 강력한 무위로써 정무맹의 의를 높이 세울 수 있었다.
금정도 방의량도 마관과 비슷했다.
방의량은 십오 년 전쯤에 창궁관과 연이 닿았고, 그곳에서 금정도법(金頂刀法)을 얻었다.
금정도법은 오래전에 소실되었다고 알려진 뛰어난 상승무공이었다.
방의량은 금정도법을 완성해 정무맹의 부러지지 않는 도가 되었고, 사마외도를 수없이 물리쳤다. 금정도법의 옛 명성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두 사람은 현재 호심당 출신의 외당 고수였다. 성장 과정이 비슷하고 소속도 같은데, 직급도 부당주로 동일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외당의 두 부당주 단천검 마관과 금정도 방의을 한꺼번에 가리켜 좌검우도라 부르고 있었다.
“이런 소식은 아예 모르는 거 같은데? 그럼 신기수사 냉 대협의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겠네?”
“진짜? 냉 대협도?”
“너 진짜 하나도 모르는구나. 귀를 막고 산 것도 아닐 텐데.”
청색 무복의 사내가 어찌 이리 모를 수 있냐는 듯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신기수사(神機秀士) 냉군상.
그는 삼십 년 전, 불과 열 살의 나이에 창궁관에서 기연을 얻어 천문지리를 통달했으며, 천하의 큰 이치를 깨달았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 후 뛰어난 두뇌를 활용하며 내당에서 승승장구하여 당주가 되었다. 그는 당주를 맡고서 맹도들에게 존경받고 맹주에게 신임 받을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창궁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냉군상이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좌검우도보다도 더욱 많이.
“와-!”
“정말 하나도 몰랐나 보네.”
“정무맹의 역사를 살펴보면 더 많을 거야. 창궁관과의 인연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찾으면, 더더욱 많을 테고.”
“소문에는 정무맹을 세우신 무천 조문신 대협의 비급도 숨겨져 있다더군.”
“……!”
흰색 무복의 일결제자가 눈을 부릅떴다.
너무 놀랐는지 감히 말을 잇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렸다.
“나는 냉 대협만큼 되는 건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아.”
“나도 마찬가지야. 단천검 금정도 두 대협의 인연 정도만 생겨도 소원이 없겠어.”
일결제자들이 소망을 드러냈다.
그들은 언감생심 초대 정무맹주 무천 조문신의 무공은 꿈도 꾸지 않았다. 작은 인연이어도 만족할 수 있었다.
신기수사 냉군상이 얻은 정도의 기연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좌검우도 마관과 방의량이 얻은 정도의 비급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아무튼 창궁관은 들으면 들을수록 더 대단한 곳이었다.
“이리 말해보니, 정말 욕심나네.”
“꼭 들어가 보고 싶다.”
“나도.”
세 명이 동시에 갈망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그들의 눈동자가 간절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
그 순간, 눈빛이 싸늘해졌다.
냉기가 그들 사이로 흘렀다. 순식간에 기류가 바뀌어 있었다. 착 가라앉은 표정에서 좀 전의 열기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들은 모두 경쟁자였다. 코앞으로 다가온 시험에서 꺾어야 할 적이었다.
“난 그만 가봐야겠네. 급하게 할 일이 있는 걸 깜빡했어.”
“아! 나도 선약이 있는데, 촉박하군. 나중에 보세.”
“그러지. 다들 무운을 빌겠네.”
그들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신 안 볼 사이처럼 고개를 돌리고 곧바로 뿔뿔이 흩어졌다.
경쟁자는 스물셋.
창궁관에 갈 수 있을 사람은 셋, 혹은 둘.
자리가 모자라니, 눈앞의 상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들의 열망은 순식간에 쟁투가 되어 있었다.
다음 날이 되었다.
이제 십오행이 사흘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해가 저물었을 때, 진우선은 독행관 앞에 서 있었다. 연공을 마치고 나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곧, 한 인영이 독행관 밖으로 나왔다.
“혁아.”
“진 소협!”
우문혁이 문을 나서자마자 진우선을 발견하더니 빠르게 다가왔다.
우문혁은 수련을 많이 했는지 꽤 지쳐 보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진 소협, 혹시 본인을 기다리셨소? 그렇다면 영광이오.”
“하하. 영광일 것까지야.”
“아니요. 진정으로 영광스럽소. 진 소협이 날 기다려준 건 오늘이 처음이기 때문이오.”
“처음이라고?”
씨익.
진우선의 물음에 우문혁은 웃음으로 대답했다.
“아……. 정말 그랬나 보네.”
이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그때, 우문혁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진 소협은 괘념치 마시오. 본인은 괜찮소. 오히려 기분이 정말 좋소. 하하하!”
우문혁이 호쾌하게 웃었다. 진심으로 기쁜 모양이었다.
“진 소협, 그보다 시내에는 잘 다녀오셨소?”
우문혁이 새로운 화제로 질문했다.
어제 대화하며, 진우선에게 낮에 장사 시내에 다녀오라고 했었다. 십오행을 치르려면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잘 다녀왔지. 다 팔더라.”
“역시! 진 소협은 타고 난 강호인이니 수월하게 준비하실 줄 알았소.”
“뭘, 이런 걸 가지고. 사기만 하면 되는데.”
“하지만 개인별로 준비하다 보니 준비부터 쩔쩔맨 이가 많았다고 들었소. 진 소협에게는 대수롭지 않았겠지만 말이오.”
“그랬을 수도 있겠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닷새 동안 야외에서 지내야 하는 십오행의 규칙이 있기에, 제자들은 각자가 알아서 채비하고 있었다.
진우선은 풍찬노숙에 익숙해서 어려워하지 않았는데, 임무를 함께 다녀온 우문혁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대화하며 걷던 중, 위태롭게 흔들리던 우문혁의 손이 진우선의 시선에 잡혔다.
“혁아. 너 근데 손이 왜 이래? 피 투성이네.”
“하하. 수련에 열중하다 보니 그렇소. 근데 진 소협이 걱정할 만한 건 아니오. 수련하다 보면 자주 있는 일이고, 익숙하오.”
우문혁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손을 휙 뒤로 돌렸다. 손놀림이 매우 날랬다.
“아니, 잠깐만.”
하지만 진우선이 우문혁의 손목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그리고 손을 살폈다. 피멍이 잔뜩 들어 있고, 여러 군데가 찢어져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였다. 손등이든 손바닥이든 가릴 것 없이, 성한 곳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이거 괜찮은 게 아닌데?”
심각해 보였다.
이건 패도적인 힘이 뭉개고 간 흔적이었다. 그게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외상이 다가 아닐 것이다.
진우선이 우문혁의 눈을 마주 보았다.
우문혁이 눈을 껌뻑거렸다.
“혁아, 근데 네가 익힌 무공이 원래 패도적이었던가?”
아니었다. 우문혁의 기운은 이러지 않았다. 지난여름의 임무에서도 이러지 않았다.
강맹하되 난폭하지 않았다. 묵직하여 폭주하지 않았다.
한데 지금은 흉포하고 잔악했다.
무공에 무언가 변곡점이 있다는 뜻이었다.
“진 소협, 갑자기 왜 그러시오?”
“혁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무공이 너무 패도적이야. 통제가 안 되는 거 같고. 혹시 최근에 새로 익힌 거라도 있어?”
“그게 정말이오?”
진우선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문혁의 표정이 몹시 어두워졌다. 무엇 때문인지 바로 알아버린 모양이었다.
만약 진우선의 말이 맞는다면, 원인은 최근의 성취에 있었다.
“사실은 얼마 전에 염왕신권이 칠 성의 벽을 열었소.”
우문혁이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순간, 진우선은 모든 걸 이해했다.
염왕신권이라면 이백 년 전 강호를 제패한 권왕의 무공이었다. 그런 강력한 무공이라면 지금의 상황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무공이 너무 강력하여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진 소협, 혹시 무엇이 문제가 된 거요?”
우문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에 초조함이 어렸다. 염왕신권이 한 걸음 나아간 것에 대한 기쁨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진우선이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무공의 힘을 내력이 온전하게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내공심법이 말이오?”
“어. 버텨내지 못하는 느낌인데.”
“아무래도…… 짝이 달라서 생긴 문제 같소.”
우문혁이 입술을 슬쩍 깨물었다.
속상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
“짝이 다르다고?”
이번엔 진우선이 물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깨달은 우문혁이 진우선에게 짧게 설명했다.
“진 소협도 알다시피, 염왕신권은 세가를 여셨던 권왕 우문곽 시조님의 무공이오. 그래서 우문세가를 대표하기도 했고……”
권왕 우문곽.
그는 염왕신권으로 천하를 떨쳐 울리며, 인의대협(仁義大俠)이라 불릴 만큼 강호의 기치를 바로 세웠다.
후손은 열심히 권왕의 무공을 익히려 노력해왔다. 그러나 염왕신권을 대성하는 이가 없었고, 칠 성을 넘는 이조차 보기 드물었다. 너무나 난해한 까닭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도전하는 이조차 극소수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도중에 염왕신권을 위한 염왕심법마저 소실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우문곽은 염왕신권을 택했다.
그리고 노력하고 있었다. 짝이 맞지 않는 우문세가의 내공심법으로.
“……그래서 본인은 본가의 상승 내공심법으로 염왕신권을 뒷받침하고 있소. 한데…… 육 성까지가 한계인가 보구려.”
서로 모양이 맞지 않을 테니, 육 성까지 버텨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여겨야 했다. 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우문혁이 씁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본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소?”
“다른 방법을 찾으면 좋겠어.”
“버텨내지 못하겠군. 그럼 부서지겠구려.”
“…….”
우문혁이 핵심을 짚자, 진우선은 섣불리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문혁의 얼굴에 찬 수심이 더 깊어졌다.
더불어 진우선의 마음도 더 불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