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67화 (67/225)

067.

#창궁관 (1)

진우선이 남가철방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호심당에 복귀했다.

그 소식을 부당주인 석자풍이 당주 호연강에게 전했다.

“당주님, 방금 우선이가 돌아왔습니다. 이로써 일결제자는 전원이 복귀했습니다.”

“오! 그런가? 그러면 이번 시험에 일결제자는 빠지는 인원이 없겠군.”

“네, 그렇습니다. 우선이까지 포함해 일결제자 스물셋이 시험을 치를 수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활인당에 있는 네 명은 제외했습니다.”

호연강이 석자풍 부당주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결제자들의 시험이 닷새 앞으로 다가와 있었는데, 오늘 진우선이 도착함으로써 그 인원이 완전히 확정된 것이다.

총 스물세 명의 일결제자.

올해 호심당에 새로 들어온 일결제자가 서른한 명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수가 함께하지 못하고 있었다.

첫 임무 때, 넷이 죽고 셋이 크게 다쳤다.

얼마 전에는 한 제자가 수련 중에 무리하여 내상을 입었다. 임무 중에 생긴 가벼운 부상을 도외시한 채 욕심내어 무공을 연마하다가 내력이 엉키며 피를 토했다.

결국, 그도 활인당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네 명의 일결제자는 활인당에서 긴 시간 동안 치료에 전념해야 했다.

빠른 치료와 회복을 위해 석자풍은 그들을 이번 시험은 물론이며 곧 있을 임무에도 참여시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아마도 내년에 볼 수 있을 터였다.

그게 어딘가. 숨을 거둔 네 사람은 이제 결코 볼 수 없으니, 이에 비하면 참으로 다행이다.

그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다. 목숨을 잃고서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 전도유망하여 호심당에 왔으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심히 슬픈 일이었다.

여기서 석자풍이 큰 충격을 받았다.

임무에서의 피해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이렇게 제자들이 첫 임무에서부터 목숨을 잃으니 너무나 허망했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피해를 줄여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하여 지난 임무가 끝난 직후부터 과거의 기록을 살피며 새로운 시험을 열심히 계획하고 준비했다.

호연강은 석자풍의 의견을 승낙하고 지원하고 추진했다.

그 결실이 이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석 부당주. 협조를 구하는 건 어떻게 되었는가?”

“무사부들께서는 흔쾌히 도와주시기로 했고, 내당에서도 소속 무인들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잘 되었군. 애 많이 썼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호연강과 석자풍이 흡족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석자풍의 동공이 침잠된 것처럼 보였다. 그의 대답도 너무나 담담했다. 입가에 작은 미소 하나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준비가 차질 없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전혀 기쁘지 않은 모양이었다.

호연강이 그런 석자풍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석 부당주. 너무 자책하지 말게나. 자네 탓이 아니네. 지나간 일은 애석하지만, 죽음은 무인에게 있어 항상 곁에 있는 것이고, 헛된 희생은 하나도 없었네.”

“당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괜찮습니다.”

호연강이 석자풍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입으로는 괜찮다고 말하지만, 몸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은 슬쩍 그늘졌고, 눈 밑은 거무스름했다. 어깨도 다소 처져 있고, 어딘지 모르게 몸도 지쳐 보였다.

이번 시험을 준비하며 밤에 잠을 거의 못 잔 탓이었다. 죄책감을 그렇게 풀어내다 보니 제 몸은 상관치 않은 게 틀림없었다.

고강한 내력으로 버티니 지금 당장은 이상이 없겠지만, 그렇게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절대 좋은 게 아니었다.

호연강이 석자풍에 대한 이러한 마음을 가슴속에 잠시 새겼다.

그러면서 화제를 돌렸다. 석자풍이 다른 생각을 하게 하려 함이었다.

“우선이는 어떻던가? 남가철방에서의 수련을 청했었는데, 성과가 있었는지 궁금하군.”

“우선이는 이전보다 더 밝아진 듯했습니다. 미묘하지만 그리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많이 달라 보였다고? 자네가 봤을 때?”

“그렇습니다. 우선이는…….”

석자풍이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조금 전에 진우선을 마주쳤을 때, 그 순간의 느낌을 쉬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진우선의 눈은 고요했다. 짙게 검은 눈동자는 깊고 그윽했다. 또한, 단단했다. 끝을 알 수 없는 호수 같고, 품을 알 수 없는 태산 같았다.

그러면서도 부드럽고 편안했다. 인위적인 것 없이 맑고 따스하고 포근했다. 햇볕 가득한 봄 같고, 바람이 잔잔한 가을 같았다.

이건 무인의 느낌이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대부분 특유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눈빛이든 몸에서든 뿜어져 나오는 게 당연한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도대체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석자풍은 한 단어로 진우선을 정의하지 못할 것 같았다. 이제 그는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대답을 위해 굳이 표현하자면.

“……우선이는 무인이라기보다는, 자연을 닮아 있었습니다.”

“자연을?”

“…….”

끄덕.

석자풍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만 위아래로 흔들었다.

“허허허.”

호연강이 웃으며 석자풍을 보았다.

석자풍의 눈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었다. 말은 추측하듯이 했으나 눈동자는 확신하듯이 빛나고 있었다.

“석 부당주, 자네가 이런 적은 처음이군.”

호연강 석자풍에게 놀라고, 그가 말한 내용에 반색했다.

석자풍은 실리적이며 정확하고 확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호심당에서 내로라하는 기재들을 오래 가르치며 생긴 모습이었다.

그게 어느 정도냐고 하면, 일결 제자들의 무위와 성향마저도 상당히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호연강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경탄할 뿐이었다.

석자풍이 호연강의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우선이는 이제 제가 살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허허. 그 정도인가?”

호연강이 또 웃음을 흘렸다.

석자풍의 저 말은 진우선이 호심당 제자의 범주를 넘어섰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호연강은 또다시 얼떨떨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남가철방에서 대단한 성과를 얻은 게 틀림없겠군. 한 달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으니까.”

“그렇겠지요.”

“쉽게 믿어지지 않지만, 어쨌든 그렇다면 우선이는 걱정할 게 없겠어.”

결국 호연강이 진우선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결론도 내버렸다. 본인이 묻고 답한 모양이 되었다.

석자풍은 애초에 호연강을 만나기 전부터 결론이 난 상황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다시 눈앞에 닥친 문제로 돌아왔다.

호연강이 물었다.

“다른 제자들은 십오행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던가?”

“일단 십오 일을 버틸 준비는 각자 착실히 하고 있습니다. 싸워 이길 계획도 따로 준비하더군요. 다들 생존과 경쟁이라는 목적에 대해 잘 숙지하고 있어 보입니다.”

“그렇군.”

호연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일결제자들의 준비가 나쁘지 않았다.

십오행(十五行).

열닷새 동안 나아간다는 뜻이다.

즉, 십오행은 열닷새 동안 이어질 비무 혹은 전투에서 살아남는 시험이었다.

실제상황처럼 정해진 기간에 끊임없이 적과 싸워 이기고, 힘든 순간에서도 강인한 정신력으로 생존해내는 능력을 배양하는 게 목표였다.

석자풍은 이와 비슷한 수련 과정을 사장된 기록에서 발견했는데, 어째선지 이삼십 년 전부터 그 맥이 끊겨 있었다.

아무튼 호연강이 십오행을 위해 직접 움직였고, 정무맹 소유의 산과 강, 숲 등을 시험장소로 쓸 수 있게 허가를 받아왔다.

석자풍은 십오행을 치를 지역이 넓고 시험 일정이 길기에, 날마다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내당에 추가 인력을 요청하여 승인받았다.

호심당 내부의 시험 하나가 이제 정무맹에서 상당한 인력과 물자를 소모하는 규모로 바뀐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호심당의 인재들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준비는 어느 정도 끝났다. 십오행을 잘 치러내는 일만 남았다.

호연강이 그 점을 석자풍에게 말했다.

“석 부당주. 그럼 일단 준비할 것은 거의 다 된 거 같은데.”

“맞습니다.”

“그간 고생 많았네. 이제 십오행을 잘 마치기만 하면 되겠군. 잘 부탁하네.”

“네, 당주님.”

“그리고 그때를 위해 지금부터 이틀은 푹 쉬게. 이건 명령일세.”

호연강이 석자풍을 위해 휴식을 명령했다.

석자풍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호연강을 바라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할 순간이기에, 그 명령은 부당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호연강은 단호한 눈빛을 내뿜었다. 뜻을 꺾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결국, 석자풍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

다음 날이 되었다.

아침에 진우선이 숙소를 나섰다.

오랜만에 호심당에서 눈을 뜨니 익숙하면서도 어색했다.

임무로 꽤 오래 호심당을 떠나 있었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남가철방으로 가서 다시 한 달여를 보낸 까닭이었다.

그사이 숙소에서 짧게 며칠간 머물렀지만, 돌아보니 그때의 감흥은 기억나지 않았다.

어쨌든 푹 잔 느낌이었다.

어젯밤이 최근 들어 가장 편안했던 밤 같았다.

“햇살이 참 좋네.”

따사로운 아침 해가 전신에 온기를 더했다.

진우선이 고개를 들었다.

청명한 하늘이 오늘따라 더 높아 보였다.

바람도 참으로 상쾌했다.

“후읍-! 하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공기가 폐부에 가득 들어차고 빠져나갔다. 가슴에서부터 신체의 모든 끝부분까지 순식간에 시원해졌다.

호흡을 통해 산천초목 대자연의 숨결도 느껴졌다. 천지간의 기운이 함께였다.

충만하다.

그리고 든든하다.

이런 기분이면, 오늘 하루의 시작이 꽤 만족스럽다.

그렇게 세상을 느낀 진우선이 고개를 내렸다. 여유를 만끽한 탓에 온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두 눈동자에 호심당의 전경이 들어왔다.

여러 전각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오늘의 할 일이 떠올랐다.

‘십오행 전에 마지막 강론이겠군.’

십오행을 치르기까지 나흘 남았으니, 오늘은 시험 전 마지막으로 듣는 강론이었다.

진우선은 십오행에 대해 우문혁으로부터 전해 들어 알고 있었다. 우문혁이 남가철방에 직접 찾아와서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때 우문혁은 십오행을 한마디로 표현했다.

열닷새간의 실전 전투.

실제 싸움처럼 임하라고 호심당이 전장을 펼쳐놓았다고 했다. 그에 따라 일결제자들은 거기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혁이와 총이의 기도가 남달라져 있었지.’

우문혁과 만총의 모습은 한 달 전과 달랐다. 눈빛이나 표정, 풍기는 기세 등이 더 강인하고 굳세져 있었다.

‘다른 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다른 제자들도 궁금해졌다. 우문혁과 만총처럼 달라졌을 것이다.

그걸 알아보려면 강론에 가면 된다.

그리 생각한 진우선이 대정관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진우선이 가장 먼저 대정관 문을 열고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일결제자들이 두셋씩, 혹은 혼자서 대정관에 들어왔다.

그들은 진우선을 보고 잠시 눈을 마주치거나, 딱히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

대정관에 적막이 흘렀다.

다른 일결제자들은 특별한 대화가 없었다.

애써 말하는 사람도 없고,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도 없었다.

“오! 우선아. 돌아왔구나. 한 달 만인가?”

“상관 형. 오랜만입니다.”

상관적이 진우선에게 아는 척을 해왔다.

뒤이어 들어온 우문혁과 만총, 그리고 민연하 정도만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후, 대정관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

숨 막힐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십오행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일결제자들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고,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문득 다른 이들의 모습이 원래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주변에 관심이 없었구나.’

돌이켜보니 여태껏 다른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고 대화한 적이 거의 없는 듯했다. 타인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았었다.

진우선은 다른 이들의 모습을 살피다가,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론을 맡은 석자풍 부당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다 왔군.”

부채꼴 모양의 좌석에는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였다. 현재 일결제 자가 모두 스물세 명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예전에는 서른한 명이었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 수가 줄어 있었다.

아니, 알고 있었다.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을 뿐.

진우선이 그렇게 상념에 빠져 있는 동안, 석자풍이 말을 이었다.

“그럼 강론에 앞서, 십오행에 관한 소식부터 전해주겠네. 이번 십오행에서 주어질 상은 창궁관일세. 가장 뛰어난 세 사람이 창궁관에 하루씩 들어가는 것이지. 이번에도 당주님께서 자신이 받으실 것을 베풀어주셨네.”

“……!”

상의 진가를 아는 제자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창궁관의 이름을 들어본 자라면, 그 안에 천하의 모든 책이 다 있음을 알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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