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65화 (65/225)

065.

#각자의 길 (1)

자정이 가까워져 올 무렵.

만총이 우문혁의 숙소를 방문했다.

우문혁은 수련을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그는 탁자에 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만총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우문혁은 고된 수련의 흔적을 다스리고 있었다.

“혁아. 손 괜찮은 거냐?”

“뭐, 괜찮아. 좀 따끔하긴 한데, 그래도 이 정도는 익숙해.”

우문혁이 멋쩍은 듯이 웃더니, 계속 손에 약을 발랐다.

오른손으로 왼손에, 왼손으로 오른손에 번갈아 가며 능숙하게 손 전체에 금창약을 발랐다.

손 전체에 바르는 건, 손등 손바닥 가릴 것 없이 피부가 짓이겨지고 터졌기 때문이었다.

손바닥은 망치로 마구 찧은 것처럼 뭉개져서 찢어져 있었고, 잔뜩 박여 있던 굳은살마저 쩍쩍 쪼개져 있었다.

그 사이로 핏물과 진물이 흘러나오니 손바닥을 헝겊으로 닦아도 금세 핏물이 고였다.

손을 뒤집으니 손등의 상태도 심상치 않았다.

송곳에 쪼인 것처럼 살점이 마구 찢겨나가 있었고, 더러는 움푹 파여 힘줄과 뼈도 드러나 보였다.

미리 약을 발라 간신히 피가 줄줄 새는 걸 막았을 뿐, 여전히 손가락으로 한줄기씩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손이 너덜너덜했다. 진작에 손이 부서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러고 보니 우문혁은 지금도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약을 바르고 있었다. 손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게 보였다.

이 상태라면 약을 놓쳐서 땅에 떨어뜨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터였다.

만총이 그런 우문혁을 지켜보다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리 줘. 그 손으로 바르느니, 내가 발라주는 게 빠르겠다.”

“괜찮아.”

하지만 우문혁의 거절보다 만총의 행동이 더 빨랐다.

만총이 얼른 금창약을 뺏어 들어 우문혁의 손 전체에 금창약을 꼼꼼히 발라주며 물었다.

“혁아. 요즘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냐?”

“아직은 무리 아니야. 괜찮아, 견딜 만하고.”

“무리가 아니긴. 툭 쳐도 부서지지겠구만. 이 손으로 숟가락은 들 수 있겠냐?”

만총이 우문혁을 타박했다.

손은 누구에게나 없어서는 안 될 신체의 일부이지만, 우문혁처럼 권법을 장기로 삼는 사람들은 특별히 더욱 신경 쓰는 게 마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우문혁이 손을 아꼈으면 하는 게 만총의 진심이었다.

그런 마음을 우문혁은 충분히 느꼈다. 그래서 넉살 좋게 대꾸했다.

“약 바르면 금방 낫더라.”

“아무리 좋아봤자 며칠은 걸리겠지. 게다가 손이 이리 크면 더 오래 걸릴 테고.”

만총의 음성은 여전히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그러나 우문혁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해야 해.”

목소리가 매우 단호했다. 눈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우문혁의 모습이 이렇다면, 말린다고 들을 단계는 지나 있었다.

그는 호방하지만, 때로 고지식했다. 좋게 말하면 우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집불통이었다.

호심당에 들어오기 전부터 알고 지낸 시간이 꽤 있기에 이미 경험한 적이 많았다.

“어휴!”

씨익.

만총의 한숨에 우문혁이 미소로 답했다.

“이 상황에서도 웃는 걸 보니, 성취는 있었구나.”

“응.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상처 속에서도 우문혁에게서 여유가 보였다. 기세도 한층 날카로워져 있었다.

“축하한다!”

“고마워.”

우문혁이 간단히 답했다.

원래 하고 싶던 말은 속으로 삼킨 채.

‘그래도 아직 멀었어…….’

우문혁에게는 숙원과 같은 무공이 있었다.

염왕신권(閻王神拳).

이백 년 전, 권왕이라 불렸던 우문곽의 진신절기였다.

우문곽은 염왕신권으로 명성을 쌓고 우문세가를 세웠는데, 그 이후로 대성하는 후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무공의 위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그만큼 익히기가 어렵고 끝을 보는 건 더 어려운 까닭이었다.

얼마나 난해했으면, 우문곽 사후 직계자손들조차도 익히기를 꺼렸을까.

그러다 보니, 강호는 염왕신권의 우문세가를 잊어갔다. 언젠가부터는 우문세가도 염왕신권을 잊어가고 있었다.

우문혁은 그런 염왕신권을 제대로 익혀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손이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더라도 익혀내고 말겠다는 각오였다.

‘염왕신권을 익혀낼 수만 있다면!’

뭐를 더 못할까. 이보다 더한 수련도 해낼 것이다.

임무에서 돌아온 후로 수련에 매진했던 지난 한 달 동안 항상 그런 마음이었다.

아니, 염왕신권을 익히기 시작했을 때부터 스스로 다짐한 바였다.

이게 가문의 숙원을 가슴 깊이 새긴 장자 우문혁의 모습이었다.

그런 염왕신권에 소기의 성과가 있었다. 밤낮없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루어낸 것이다.

그렇기에 우문혁은 ‘아직 멀었어…….’라는 말을 참았다.

지난 한 달을 충분히 잘 보냈으니까.

손이 욱신거려도 기쁘고, 찢어진 살 틈으로 핏물이 배어 나와 따끔거려도 행복했다.

그렇기에 만총의 축하를 있는 그대로 받았다.

만총의 한마디는 짧았지만, 죽도록 힘들었던 시간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문득, 그가 생각났다.

그라면 어떻게 말해주었을까?

내가 이렇게 성취를 얻는 동안, 따로 수련한다던 그는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

때마침, 만총도 화제를 돌렸다.

“내일이지? 네가 남가철방에 간다고 한 날이.”

“맞아.”

“같이 가자.”

“총이 너도? 저번에 물었을 땐 못 간다더니.”

“원래 춘추관에서 좀 살펴볼 게 있었는데, 그냥 바람 좀 쉴까 싶어서. 겸사겸사 우선이도 보고.”

만총이 무덤덤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우문혁은 만총의 마음이 내뱉은 말과 다르다는 걸 눈치챘다.

아무래도 춘추관에서 살펴보던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과연 우문혁의 추측대로, 만총의 실상은 정말 그러했다.

만총은 최근에 깊이 고민하는 바가 있어 춘추관의 무공서들을 탐독하고 있었다.

혼원벽력창(混元霹靂槍)을 수련하다가 벽에 부딪힌 까닭이었다.

계속 노력하다 보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혼원벽력창의 주인인 탁무위에게서 직접 배울 땐 이런 상황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어보면 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상세히 답해줄 탁무위가 없었다. 그렇다고 호심당의 무사부들에게 선뜻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스스로가 풀어내는 방법밖에 없는데, 중요한 건 아직 그 실마리를 얻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만총이 시무룩해 보이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우문혁이 그런 만총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잘 생각했어.”

그리고 곧바로 화제를 돌렸다.

“진 소협은 수련 많이 했겠지?”

“아마도 그럴 거야. 우선이는 무공밖에 모르니까.”

만총이 그간 봐온 진우선의 모습을 떠올렸다.

진우선은 하루 열두 시진 모두 무공만 생각하고 수련하는 사람이었다. 무공 이외의 생각은 아예 하지를 않는 것 같았다.

“맞아. 진 소협이라면 그랬을 거야!”

우문혁이 맞장구치며 눈을 빛냈다.

그는 사실 지난 한 달간 수련에 매진했을 때, ‘진우선이라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며 마음을 붙잡았었다.

또한, 같이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봤었던 진우선의 무위와 활약을 떠올리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에게 진우선은 동료이자 친구이며, 존경하는 사람이자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사람이었다.

“내일이 기대돼. 하핫!”

우문혁이 들뜬 목소리로 웃었다.

그러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부당주님이 시험을 발표하셨으니 진 소협도 돌아와야겠군. 수련도 더 못 하고 아쉽게…….”

진짜 아쉬울 사람은 진우선인데, 우문혁이 어느새 그의 처지에 몰입하여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지금 보니, 우문혁은 진우선을 존경하는 걸 넘어 아예 추종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 지난 한 달간 진우선을 찾아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수련을 방해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또한, 지금 진우선을 직접 찾아가는 건, 호심당의 두 번째 시험이 있는데 그걸 몰라서 불이익을 당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총이 무언가 떠오른 바를 슬쩍 물었다.

“그런데 너, 며칠 전에 또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면서?”

“어, 그랬지.”

우문혁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희망에 부풀었던 그의 표정이 일순간에 싸늘해졌다.

“다들 진 소협의 무공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수군대더라. 사파나 마교에서 온 거 아니냐고도 하고. 다들 진 소협의 무공을 봤고, 무공에 담긴 현기를 느꼈을 텐데. 그게 말이나 돼?”

“말 안 되지.”

“그러자 누가 예전부터 속인 게 아니냐고 하더군. 청운무관에서 배운 거로는 절대 이럴 수가 없다면서 말이야. 호심당에 와서도 무사부가 없지 않냐고 비꼬기나 하더군. 기가 찬 생각이지. 다들 제 관점에서밖에 생각할 줄 몰라.”

“거기서 진 소협은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한 거야?”

“너도 들었나 보네. 맞아. 다들 의심만 하고, 반대로는 생각 못 하니까 바로 알려줬지. 오히려 그래서 진 소협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진 소협은 스스로 무공을 깨닫고 가는 중이며, 무공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보면 놀랄 정도라고!”

우문혁이 안광을 뿜으며 단호하게 쏟아냈다.

“맞아. 우선이는 정말 대단하지. 네가 애썼다. 수고했어.”

만총이 우문혁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진 소협을 얼른 뵙고 싶군.”

우문혁의 눈동자에서 뜨거운 의지가 타올랐다.

그의 시선은 이미 내일을 보고 있었다. 마음은 이미 남가철방으로 향했고.

만총이 피식 웃었다.

이럴 때면 우문혁은 정말 못 당하겠고, 말릴 수도 없었다.

우문혁은 분명 무공도 뛰어나고 성품도 괜찮았다.

그러나 진우선에 대한 지극한 존경은 때때로 집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우문혁이 이러는 게 이해가 갔다.

그렇기에 만총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다음 날.

우문혁과 만총이 남가철방에 도착했다.

총관인 남지홍이 두 사람을 곧바로 정원으로 안내했다.

정원은 푸르른 나무로 가득 차 있었다.

만총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을 터뜨렸다.

“대단합니다! 철방 안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볼 때마다 놀랍습니다.”

남지홍의 말대로 정원은 정말 놀라웠다.

굵고 곧게 쭉쭉 뻗은 나무는 그 기상을 크게 떨치고 있고, 진초록의 무성한 잎사귀들은 생기가 마구 넘치고 있었다.

정원을 보고 있는데, 울창하고 빼곡한 숲을 마주한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니리라.

만총은 문득 정원을 가꾼 이가 궁금해졌다.

정원 전체를 이렇게 살아 숨 쉬듯이 가꾸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청운무관에서 청풍재를 직접 꾸몄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나무 사이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나무들 잘 자랐지?”

곧이어 소리가 지나온 길을 따라 한 청년이 나무 사이로 걸어 나왔다.

“진 소협!”

우문혁이 진우선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곧바로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문성을 흘렸다.

“어?”

“……!”

만총의 얼굴도 급작스럽게 놀라서 굳었다. 웃으며 반기려다 온몸이 멈춰버렸다.

진우선 때문이다.

그를 마주하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기 때문이다.

그의 맑고도 깊은 두 눈동자에 심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진우선이 탄식을 흘렸다.

“거의 다 되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부족하구나.”

무엇이 아직 부족하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두 눈동자는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우문혁이 그렇게 잠시 혼미한 가운데서 간신히 한마디 내뱉었다.

“정녕…… 진 소협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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