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
#푸른 불꽃 (2)
소무강이 떠난 후, 진우선의 하루하루는 그가 머물기 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수련하는 상황은 전혀 비슷하지 않았다.
‘완전히 바뀌었어.’
기운들의 관계가 예전과 달랐다.
예전에는 형을 이룬 금기를 중심으로 화기와 목기가 그 영향을 받았다.
평범한 화기가 형을 이룬 금기를 억누르기 위해 늘 분발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화기로 제어되지 못한 금기는 사방으로 힘을 뻗쳤다. 자연히 목기는 그 힘이 날마다 쇠해갔다.
그런데 형을 이룬 화기, 이화가 나타나 판세가 바뀌었다.
형을 이룬 화기가 형을 이룬 금기와 맞서기 시작했다. 둘 다 형을 이루었기에, 화극금의 이치에서 힘이 밀리지 않았다.
‘과연 이화가 불의 정화라 불릴 만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힘만이 아니라 절대적인 크기에서도 대등해지는 순간이 왔다.
그건 대장간에서부터였다.
“해냈다! 하하하하!”
남회의 환희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요 며칠 대장간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채 골똘히 몰두하던 게 있었는데, 드디어 해낸 모양이었다.
‘드디어 이화를 화로에서 피우셨구나.’
그럼으로써 이화의 기운이 더욱 많아졌다. 진우선은 화기의 흐름으로써 그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진우선이 흐뭇하게 웃었다.
곧이어 대장간에서 망치질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소리가 경쾌하면서도 힘찼다.
망치질이 신난 게 절로 느껴졌다. 천생 대장장이인 남회다웠다.
진우선은 그렇게 기운의 변화를 한 차례 더 느꼈다.
‘균형이 완전히 잡혔어!’
이제 대장간 안은 화기가 금기를 에워싼 형태였다.
금기는 이제 외부로 빠져나오지 않았고,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남회의 작업에 집중되었다.
‘어르신의 솜씨가 더욱 발휘되겠구나!’
이화로 인해 불이 더 뜨겁고, 금기로 인해 쇠의 성질이 더욱 살아난다.
남회는 대야장으로서 이미 강호에 위명을 떨치고 있었는데, 거기서도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갈 것이 자명했다.
경사였다.
이번에는 진우선이 사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원의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들도 남회의 망치질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제 기운이 떨리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앞으로는 나무의 기운도 상하지 않겠네.’
이화가 대장간에서 피어나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곳은 걱정될 게 없구나.’
진우선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이화를 온전히 느꼈다.
그러자 심상 수련이 더욱 깊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
오행에는 흐름이 있었다.
형을 이룬 기운이 있었고, 아직 형을 이루지 못한 기운이 있었다.
형을 이룬 기운은 상생하려 하니 돕는 형국이 되고, 상극하려 하니 자극하는 것과 같았다.
형을 이룬 기운은 수기와 목기였고, 그 둘이 오행진기의 근간이었다.
거기에 불의 길이 열리고, 금의 길이 열렸다.
이화의 불이 뜨겁게 인사하고, 남회에게서 전해진 금의 침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망치질 소리가 쩡-쩡- 울릴 때마다 화와 금이 몸 안으로 쏵- 쏵- 밀려 들어왔다.
목이 화에 힘을 더해주었다. 그러자 금이 목을 견제했다.
목생화요, 금극목이었다.
수가 화를 가로막았다. 그러니 화는 토에게 힘을 더해주었고, 토가 힘이 세졌다. 토는 그것으로 금을 더욱 밀어주었다.
수극화했더니, 화생토요, 토생금이었다.
오행의 기운은 그렇게 각기 저마다 순환을 만들었다.
작은 순환을 만들고, 큰 순환을 만들었다.
수에서 시작하니 수생목이며, 목에서 시작하니 목생화였다. 화생토, 토생금, 금생수의 이치에 따라 순환이 시작되었다.
순환은 흐름이다.
그들이 맹렬히 흐르기 시작하니, 흐름은 끝이 없었다.
흐름에서 각기 등을 밀어주며 마구 전진하니 상생이며, 악착같이 붙잡아 끌어내리려 하니 상극이었다.
오행의 흐름이 그러했다.
화와 금이 끝없이 밀려들어오니 그러한 순환이 계속되었다.
흐름이 더욱 빨라졌다.
빠르게. 빠르게.
휙. 휙.
오행이 마구 내달렸다.
누가 앞장서고 있는지 누가 꼬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어느 샌가부터 순서를 파악하는 일은 무의미해졌다. 잔뜩 뒤엉켜 있었으니까.
오행도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십이경맥과 기경팔맥을 내달리며, 그들은 오직 달리는 것에만 몰두했다.
더 빨리. 더 빨리.
좀 더 빨리.
걷잡을 수 없는 속도가 되었다.
저들끼리도 마구 부딪치며 사방으로 튕겨냈다.
길이 좁다면 넓히고, 넓어져도 부족하니 더 넓혔다.
그러면서도 더욱더 속도를 냈다.
무엇도 그들을 늦추지 못했다.
‘이건 멈출 수 없어! 멈춰서도 안 된다!’
무의식적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도 절로 느껴졌다.
의식을 놓치는 즉시 폭주하는 그들을 잃어버릴 것이며, 그러면 언제 또 달릴지 알 수 없었다. 후유증도 만만찮으리라.
그렇기에 모든 의념을 그들에게 집중했다.
콰콰콰콰-!
질주하는 그들의 소리가 모든 길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광란의 질주였다.
쿵쿵거리는 떨림이 점점 강해졌다. 끝을 알 수 없었다. 그 진동이 점점 세차게 심혼을 흔들었다.
막는 것은 모두 뚫는다.
단숨에 부순다.
달리는 우리는 거침이 없다.
질풍처럼 달리며,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콰쾅-!
퍼엉-!
머릿속에서 막힌 무언가가 뻥 뚫린 소리가 들렸다.
아니, 느껴진 것일까?
중요한 건 아찔해졌다는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져 왔다.
‘흐름을 쫓다가는 내가 죽는다!’
저들을 따라가서는 급류에 휘말려 온몸이 바스러지고 말 것이다.
흐름을 놓아야 한다.
그걸 위해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때, 가르침 하나가 벼락처럼 뇌리에 떠올랐다.
[우선아. 반복하여 습득하는 형을 꼭 기억하거라. 구결을 명심하여, 글자가 아닌 네 안의 기운으로 만들어야 하느니.]
처음 광영무를 배울 때 들었던 검노야의 가르침인데, 지금 필요한 답이 여기에 있었다.
‘구결!’
반복하여 습득하는 것은 형만이 아니었다. 날마다 외웠던 구결도 있었다.
반복하여 습득한 형을 통해 초식을 내 것으로 만들 듯, 반복하여 습득한 구결을 통해 오행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구결을 외웠다.
그 순간, 구결 속에서 오행의 흐름이 느껴졌다. 오행이 구결 속으로 들어왔다.
아니, 구결은 애초에 오행을 품고 있었다. 단지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들은 상생에 따라 수, 목, 화, 토, 금이 둥글게 늘어서서 하나의 큰 원을 이루었다.
상극에 따라 멀리 떨어진 서로에게 관계하니 길을 이루었다.
상생상극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어진 채로 마구 휘돌았다.
이건 무엇일까?
의문을 떠올린 순간, 시야가 광활하게 넓어지며 단박에 전체가 보였다.
‘륜(輪)이야!’
오행은 하나의 거대한 원이 되어, 바퀴가 구르듯 쌩쌩 돌고 있었다.
이제 오행의 본체가 달리 보였다.
다섯은 하나이며, 하나지만 다섯이다!
그걸 느낀 순간.
번쩍!
‘아!’
빛이 일었다.
오행의 륜이 빛으로 화했다.
륜이 빛을 머금어 찬란하게 빛났다.
새하얀 오행의 륜이었다.
‘광(光)!’
빛을 찾았다.
찬란한 것은 광이며, 한없이 회전하는 건 륜이다.
그때, 아래쪽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도 보였다.
둥근 테의 그림자는 종잡을 수 없도록 사방팔방으로 번져나갔다.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마구 변하는데, 그러면서 무한히 증가하고 있었다.
‘영(影)!’
이건 그림자의 실체였다.
그리고 알았다.
광영무의 실체를 마주했다는 것을.
***
따뜻하다.
제일 먼저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온몸에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눈꺼풀 위로 햇빛의 온화함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 따스함에 눈이 절로 떠졌다.
푸르름이 보였다. 싱그러운 초록빛이 사방에 가득했다.
나무에 윤기가 흘렀다. 빽빽이 보이는 나무들이 모두 왕성한 생기를 뿜어댔다.
울창한 숲이 살아 있었다.
‘울창?’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곳은 남가철방인데, 울창한 숲이라니?
땅- 땅- 땅-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청각을 인식한 순간, 소리가 귓전에 전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었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내려왔다.
숲속 한가운데서 보는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었다.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뭐지?”
너무 이상하다. 도대체가 이게 다 무엇이란 말인가?
그 순간.
“깨어나셨습니까?”
나무들 저편에서 남지홍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의 걸음이 느껴졌다.
땅으로부터 전해지고, 허공중에 전달되었다.
그러면서 모든 감각이 단숨에 깨어났다.
오장육부가 크게 박동하는 게 느껴지고, 육신이 밖으로부터 안을 에워쌌다.
이건 내 몸이었다. 그걸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여태껏 나는 무엇이었을까? 자연과 하나였던 거 같은데…… 그게 정말일까?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와 동시에 얼굴이 한껏 일그러졌다.
“……!”
코를 마비시킬 정도로 고약한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후각을 막고 싶었다.
그런데 그 냄새가 내 몸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때, 가까이 다가오던 남 총관마저도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와 친절하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총관님.”
남지홍이 진우선을 살피려 시선을 마주한 순간!
“헛-!”
그가 눈을 부릅떴다.
갑작스레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고, 얼굴에 잔 경련이 일어났다. 자세도 부자연스러웠는데, 온몸이 뻣뻣해진 게 틀림없었다.
진우선의 눈을 마주한 순간, 어찌 말할 수 없는 아득한 느낌에 압도된 것이다.
그에 진우선이 바로 마음을 가다듬더니, 끔뻑-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후우-!”
진우선이 숨을 크게 몰아쉬더니 다시 말을 걸었다.
“총관님, 죄송합니다. 괜찮으십니까?”
“진, 진 공자!”
남지홍이 거칠게 숨을 토해냈다. 그러더니 뜨거운 감정을 쏟아냈다.
“대성을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진우선이 멋쩍게 웃었다.
그러면서 남지홍이 온 길 뒤로, 남가철방의 모습을 보았다.
‘철방은 똑같아 보이는데…….’
익숙하지만 낯선 기분 속에서, 이와 같은 확정적인 사실로부터 마음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총관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하하. 진 공자께서 제게 물으시면 어찌합니까? 사실 엊그제부터 정원이 부쩍 커지고, 나무가 급격히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진 공자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 것입니까?”
진우선이 엉겁결에 되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반문하면서, 남지홍의 말뜻을 깨달았다.
남가철방에는 이처럼 정원을 급작스레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혹시 제가 며칠 동안 여기에 있었습니까?”
“오늘로 일곱 날이 됩니다. 진 공자께서 이레 동안 밤낮을 미동도 없이 계셨습니다.”
단 칠 일만에 도대체 누가, 도대체 무엇이 나무들을 이렇게 급속히 자라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진우선은 자신의 추측 하나만이 답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랬군요. 아무래도 제 내력이 급격히 성장했는데, 그 영향을 받아 나무들도 크게 성장했나 봅니다. 그런 거 같아요.”
“역시 그랬군요! 저도 사실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진 공자께서 예전에 정원의 죽어가던 나무들을 살리셨던 것처럼요.”
남지홍이 손뼉을 쳤다.
그는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타당한 답을 찾아놓은 상태였다.
실제로 그것은 정답이었다.
“잘 보셨습니다.”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제가 어찌 다 알았겠습니까? 아버지께서 진 공자가 무아지경에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무슨 변화가 있어도 놀라지 말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조금 전은 놀라지 않으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네요.”
“절대 의도한 게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남지홍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정말 맑고 편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눈 밑이 푹 패이고, 다소 피곤해 보였다.
“혹시…… 총관님께서 정원 앞에 계속 계셨습니까?”
“제가 좀 피곤해 보이겠군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원래 대장장이들은 체력이 좋아서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이 있었습니다. 진 공자가 무아지경에 들었으니, 정원에 아무도 들이지 말고 저더러 지키라고 하셨거든요.”
진우선의 말 속에 담긴 미안함을 읽었는지, 남지홍이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총관님과 어르신께서 신경을 많이 써주셨군요. 이 감사함을 어찌 전해야 할지…….”
“하하하.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화로도 충분할 겁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날마다 자랑하시니까요.”
남지홍이 힐끗 고개를 돌려 남회의 대장간 쪽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진심을 전하면서, 당부가 생각난 모양이었다.
“진 공자의 소식에 아버지께서도 정말 좋아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진 공자가 깨어나면 알려달라고 하셨는데, 지금 바로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남지홍이 빠르게 정원을 나섰다. 왔던 길을 거꾸로 나갔다. 나무가 빼곡해져서 그런 것이리라.
이제 다시는 예전처럼 여기저기 자유롭게 가로질러서 걸어 다니기 힘들 듯했다.
“완전히 달라졌네.”
그런데 완전히 달라진 건 나무들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렇고.”
정기신(精氣神)이 새로운 지경으로 나아갔으니, 세상이 달리 보인다.
그건 오행의 합일에서 비롯되었다. 오행은 각자의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오행진기의 끝을 보았으며, 광영무의 온전한 깨달음이 뒤따랐다.
문득, 눈을 뜨기 전에 검노야와 나눴던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허허허. 다 보았구나.]
“보았는데…… 모르겠습니다.”
광영무를 통해 천지간의 오행진기를 하나씩 알기 시작했는데, 오행진기를 완전히 이루어 광영무를 깨닫고 보니 이 모든 게 천지간에 있었다.
역설적이면서도 지극히 순리를 따르는 이치였다.
[우선아. 무엇을 모른다는 말이냐? 너는 이미 다 알고 있느니라.]
그림자는 어디에 지는가?
빛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오행은 륜이 되어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바닥 삼았다. 그 가운데에 오행이 가득했다. 그들은 상생하고 상극했다.
그것이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었다. 허공중에 빛이 존재하고, 그림 자는 땅에 드리워졌다. 그것들은 모두 하늘 아래 있었다.
이 모든 게 천지간의 형상이었다.
이 이치를 몸소 알았다.
그게 답이었다.
하지만 답이 모든 걸 말해주는 건 아니었다.
삼라만상을 느끼며 큰 흐름을 느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갈 뿐이다.
그래서 공허했다. 채워지지 않는 게 있는 까닭이었다.
진우선이 모른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때, 검노야의 음성이 전해져 왔다. 그의 뜻이 심령에 가득 메아리쳤다.
[그렇다면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나!’
나는 어디에 있는가?
광영무의 빛과 그림자 앞에서, 질문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이제야 보였고, 이것이 나아갈 목표였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진우선은 온 마음을 다해 검노야에게 예를 표했다. 이 순간에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으니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게 회상하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허. 진 공자, 드디어 깨어났구만.”
남회가 기뻐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고 있었다.
***
“허허허. 여전히 낯설군.”
남회가 가벼운 놀람을 흘렸다.
진우선이 수련에서 깨어난 지가 벌써 닷새건만, 볼 때마다 낯선 까닭이었다.
남회는 아직도 진우선이 깨어난 직후 마주친 바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심유(深幽)한 눈빛.
진우선의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새까맣게 짙은 동공만이 보였다.
그 안에서 오롯이 서 있는 빛에 온 신경이 쏠렸다.
그것은 현기였다.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기운이었다.
그 깊고 그윽함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부족한 모양입니다.”
“많이 괜찮아지긴 했다네.”
이 말에는 남회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사람이 빛나는 걸 어찌 감출 수 있겠냐마는, 그래도 진우선이 날마다 노력하니 성과가 꽤 있었다.
이제 하루 이틀만 더 지나면, 진우선의 눈빛만으로 놀라는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어쨌든 남회가 진우선을 보며 용건을 물었다. 오늘은 용건이 있어 보였다.
“그래, 무엇 때문에 왔는가?”
“검을 맡기려고 왔습니다.”
“이름을 정했나 보군.”
“네, 광륜(光輪)이라 하고 싶습니다.”
광륜.
진우선이 자신의 검에 주는 이름이었다.
검노야의 현월(玄月)과 소무강의 상담(嘗膽)을 참고하여 지은 이름이었다.
검노야의 검, 현월.
처음에는 깊고 오묘한 이치를 담아낸다고 하여 현월인 줄 알았다. 하지만 광영무의 끝자락에서 보니, 현월은 검은 달이었다.
달은 밤에 뜨며 옅게 빛난다. 그런데 달이 검기까지 하니, 세상에 밝은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온 천하에 그림자가 내려앉은 모습이었다.
‘스승님은 그림자를 많이 보셨겠구나.’
그림자를 많이 본 것만이 아니라, 그림자 같은 삶을 사셨는지도 모른다.
소무강은 상담이라 했다. 와신상담하겠다는 마음을 검명에 새겼고, 그것을 잊지 않으며 살고 있었다.
그걸 떠올리며, 진우선도 검명을 정할 수 있었다.
오행진기의 끝에서 빛의 륜을 보았다.
그건 진우선이 본 천지간의 중심이었다.
진우선은 이제 그곳에서 존재하고 있었다. 무언가 느끼고 사유하는 모든 것의 중심이 빛의 륜에 있었다.
그곳이 자아가 있는 곳이며, 앞으로 나아갈 길의 시작점이었다.
“광륜이라…… 빛의 수레바퀴인가 보군. 좋구만.”
남회가 진우선에게서 검을 건네 받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광륜이 무엇을 뜻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하지만, ‘광륜’이라는 두 글자와 진우선을 보며 제대로 유추해내고 있었다.
“허허허. 때마침 다행이군. 이화로 그 이름을 새기고 두드릴 수 있으니 말이야. 진 공자, 사흘 정도 걸릴 걸세.”
“네, 괜찮습니다.”
남회가 화로 안을 가득 채운 이화를 보며 눈을 빛냈다. 검을 제대로 다듬을 심산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
갑자기 남회가 몸을 세우고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바로 지금, 남회의 눈에 경륜이 엿보이고 있었다.
“진 공자, 빛을 잃지 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