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62화 (62/225)

062.

#귀검의 무공 (3)

남가철방이 어둠에 잠겨버렸다.

모든 불이 꺼지며 짙은 암흑에 갇혀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이제 빛이라곤 하늘에서 내려오는 어스름한 달빛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는 장원에 드리운 밤을 모두 밝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불이 사라진 이 순간, 남가철방은 큰 혼란에 휩싸이고 있었다.

“제기랄!”

“화로들이 모두 다 꺼졌소!”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대장장이들이 대장간을 뛰쳐나오며 저마다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불이 다 죽었습니다.”

“염병할! 산 불씨가 왜 하나도 없어!”

“말도 안 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데…….”

괴상한 일이었다.

대장간의 수많은 화로가 일시에 꺼지다니.

도대체 천지간에 무슨 조화란 말인가.

그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 거의 다 했었는데…….”

“나도 막바지였다고! 나도!”

“빌어먹을!”

여기저기서 짜증이 마구 터져 나왔다. 급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욕설도 쏟아졌다.

“누구라도 좀! 바로 불부터 피워 봐!”

“안 돼. 지금 하고 있는데 안 된다고!”

그리고 비단 화로의 불길만 사그라는 게 아니기에, 역정이 더 올라왔다.

“제길! 횃불도 젖었어!”

“뭐야? 그럼 지금 바로 못 붙여?”

“빌어먹을!”

횃불이 쉬이 붙지 않았다.

홰로 쓰인 나무막대기들은 하나같이 물속에서 막 꺼낸 듯이 축축했다.

나무에 먹였던 기름은 어디로 갔는지 아예 냄새도 없었다.

“아! 그럼 등불은?”

“어라? 등불도 다 꺼져 있었잖아!”

원래 이 시간이면 철방 곳곳에 등불이 켜져 있어야 했다.

하지만 모두 꺼져 있었다. 다만 지금 상황이 너무도 당황스러워 미처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진짜 이게 무슨 일이지?”

대장장이들이 다들 우왕좌왕했다.

몇몇은 마구 원성을 내다가 도리어 의문마저 던질 정도였다.

바로 그때, 남회가 입을 열었다.

“다들 침착하시게. 호들갑 떨지 말고. 원인은 모르겠는데, 모든 불이 다 꺼졌군. 그 외에 특별한 사항 있나?”

“아니요.”

“음…… 불이 꺼진 것 외에 별다른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대장장이들이 남회와 함께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살펴보니 갑작스레 모든 불이 꺼졌으나, 그 이외의 위협적인 요소는 없어 보였다.

남회가 상황을 통솔했다.

“그럼 일단 불부터 피우기로 하지. 불이 있어야 밤에 뭐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등불부터 켤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화로도 다시 피워야 하니 얼른 불 피울 것들부터 가져오게.”

그 순간, 어수선한 장내가 단번에 정리되었다.

“네, 대인.”

“알겠습니다.”

질서 없이 고개만 갸웃하던 대장 장이들이 남회의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지홍도 어느새 남회의 옆에 나타나서 한마디 덧붙였다.

“혹시 다치신 분 계십니까? 다들 별일은 없으시지요?”

“난 괜찮소.”

“몸이 생명인데, 설마 다쳤으려고.”

“망치질하다 제 손 찧은 놈은 대장장이 때려치워야지.”

흥분을 가라앉힌 대장장이들이 남지홍에게 대답해 주었다.

인제 보니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한결 완화된 분위기에서 모두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지홍은 남회와 함께 식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아버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요?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구나. 이런 적은 처음이다. 듣도 보도 못했어.”

남회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평생 남가철방을 지켜온 그로서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이었다.

바로 그때, 내원 쪽에서 빠르게 접근해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달빛을 등진 채 다가오고 있어, 그들의 형상은 새까맣기만 했다.

하지만 남회와 남지홍은 별반 놀라지 않았다. 예상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우선과 소무강이었다.

***

진우선과 소무강.

내원을 나선 두 사람은 빠르게 대장간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회나 남지홍이 거기에 있으리라 생각한 까닭이었다.

“소 대협. 역시나 철방 전체의 불이 꺼졌습니다.”

“후……. 대인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검을 맞대지 않았습니까?”

항상 불이 타오르는 철방에 차가운 물벼락을 끼얹은 사태.

소무강은 자신이 진우선에게 대결을 청했기에, 책임감도 자기에게 더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무강의 빙기를 깨뜨려서 산산이 조각나 흩어지게 한 건 진우선 자신이었다.

남가철방 전체에 끼얹어진 냉랭한 물방울들에 오행진기의 내력이 일조한 것이다.

그러니 이건 한 사람만의 잘못이 아니었다.

“고맙소. 진 소협.”

소무강이 진우선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을 느끼며 짧게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그들 둘은 아직 친하다고 할 수 없는 사이인지라, 말이 없는 이 순간은 서먹해 보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소무강이 입을 열었다.

“진 소협,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소?”

“네. 물어보십시오.”

“대체 어떻게 한 것이오?”

“아, 그건…….”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소 대협의 무공은 너무 강맹해서 몸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초식에 빙공이 바탕이 되다 보니, 겹겹이 중첩될 때마다 위력이 한없이 배가되어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그 근본이 된 빙기가 완전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제 무공이 그 점을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음-!”

소무강이 나지막하게 탄성을 흘렸다.

그의 내력은 한령신공(寒靈神功)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한령신공은 극한, 극음의 기운을 날카롭게 뿌리며 쉼 없이 몰아치는 상승의 공부였다.

대성하면 흐르는 장강마저 얼어붙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신공이라 불렸으리라.

다만 신공은 요구하는 바가 하나 있었다.

반드시 빙기를 근간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빙기로 펼쳐야만 한령신공의 위력이 제대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만약, 적당한 음한의 내력으로만 펼친다면 본래 위력의 반도 내지 못했다.

‘그러면 한령기공에 불과할 뿐이지.’

소무강이 수년간 체감해보니, 반이 아니라 반의반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빙기에 집착하고 얻으려 했었다.

그런데 진우선은 이러한 사실 단번에 파악하고 있었다.

강호에 나선 이래로, 이 무공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빙기가 완전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어쩌면 내력의 속사정마저 꿰뚫고 있는 건 아닐까?

진우선의 신공을 겪어보니, 그럴 수 있을 듯했다.

그 순간, 소무강의 마음이 담담해졌다.

“진 소협이 정확히 보았소. 운이 좋다고 했지만, 그게 어찌 운이겠소.”

“소 대협의 신공은 쉬이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게, 기운의 흐름을 끊는 거였습니다. 그러니 운이지 않겠습니까?”

“진 소협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알겠소.”

소무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진우선이 작게나마 당부하는 말을 건넸다.

“그런데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어제처럼 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그때는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처럼 냉기를 빙기로 변화시키는 수련이라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순리였다.

반면에, 아까처럼 검의 힘을 빌려 단숨에 빙기를 끄집어내는 건 상당한 무리가 따랐다.

소무강의 얼굴이 금세 백지장처럼 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으리라.

‘역시!’

예상대로 진우선은 소무강의 상황을 다 아는 듯했다.

하지만 소무강은 진우선의 의견에 따를 수 없었다.

“고맙소. 다만 나에게도 사정이 있소. 또한, 내일은 임무가 있다오.”

“아! 그렇지요. 소 대협께서는 진양각에 계시니. 바쁘실 걸 깜빡했습니다.”

“아니오. 괜찮소. 그리고 고맙소, 진 소협.”

소무강이 진심을 담아 이야기했다. 어젯밤의 상황을 떠올려보자면 놓치기 아까운 기회였다.

하지만 당장은 썩 내키지도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대화하며 나아가다 보니 대장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앞에서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두 사람의 얼굴도 보였다.

남회와 남지홍이었다.

“어르신! 괜찮으십니까?”

“우린 괜찮다네.”

진우선이 근처로 다가오며 먼저 물었다.

남회가 짧게 대답하더니, 진우선과 소무강이 함께 온 것을 보며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동시에 함께 왔군. 혹시 내원에도 불이 다 꺼졌나?”

“네, 그렇습니다. 대인.”

“그랬군. 보면 알겠지만, 여기도 마찬가지라네. 예기치 못한 일이라 우리도 지금 경황이 없어.”

소무강의 말에 남회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장간의 상황을 전했다.

그에 뒤이어 남지홍이 조금 전처럼 안부를 물었다.

“혹시 두 분께서는 별일 없으셨습니까?”

“네. 저희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진우선이 대답을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남회는 진우선이 평소와 달리 상당히 겸연쩍어하는 게 느껴졌다.

“진 공자, 왜 그러는가?”

“그게…… 어르신. 죄송합니다.”

진우선이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러자 남회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저와 소 대협이 대련하던 도중 서로의 기운이 충돌하고 폭발하며 철방 전체를 뒤덮으며 불을 다 꺼뜨렸습니다.”

“……!”

그 순간, 남회가 잠시 멀뚱히 바라보더니.

“허허.”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난 줄 알았는데, 그 원인이 진우선과 소무강 두 사람에게 있었을 줄이야.

생각지 못한 데서 뒤통수 맞은 느낌이었다.

“엄청난 수련을 했나 보군.”

남회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진우선과 소무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소무강이 대답했다.

“맞습니다. 진 소협 같은 고수는 오랜만이다 보니, 다소 무리한 게 있었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대인.”

“그랬구나. 그리고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게.”

남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상황이 다 파악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중에 다친 사람이 없어 다행일세. 다음에는 좀 더 조심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네. 어르신.”

남회가 당부의 말을 건넸다.

지은 죄가 있는 진우선과 소무강은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홍이 너도 앞으로 내원에 머무실 분들께 이 말을 잘 전해드리고.”

“네, 알겠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남지홍도 곧바로 대답했다.

그때,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화제를 하나 더 꺼냈다.

“어르신, 그런데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남회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또?”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쪽에 지금 강렬히 타오르는 게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 저쪽에는 그럴만한 게 없을 텐데……. 철방 식구들의 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네. 보다시피 대장간은 모두 이쪽에 있고.”

진우선이 손으로 가리키는 쪽.

남회는 그쪽에 집들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불이 있을 리 없는데…….”

“어르신. 그게 지금도 타오르고 있습니다. 평범한 것 같지도 않구요.”

“평범하지 않다고?”

그 말에 남회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진우선이 허튼소리를 할 인물도 아니었다. 이쯤 되면 정말 무언가 있다고 봐야 하리라.

“진 공자. 그럼 나를 그곳으로 안내해줄 수 있겠는가?”

“알겠습니다.”

잠시 후.

진우선과 남회 두 사람이 문이 닫혀 있는 어떤 집 앞에 도착했다.

“여기입니다.”

“여기는 사당인데. 정말 여기가 맞는가?”

남가철방에서 조상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었다.

“네, 맞습니다. 이 안에서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진우선의 말에 확신이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알겠네.”

남회가 짧게 대꾸하며 사당의 문을 확 열었다.

그 순간.

“……!”

남회가 눈을 부릅떴다.

오래되어 낡은 화로 하나.

거기에서 신비스러운 푸른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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