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61화 (61/225)

061.

#귀검의 무공 (2)

귀검 소무강.

그는 진양각 십양의 우뚝 선 검이었다.

처음 진양각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는 이름 없는 평범한 무사에 지나지 않았다. 특별하거나 대단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무수한 격전을 치르고,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다.

그러면서 알려졌다.

귀신처럼 검을 부리는 자, 귀검이 있다고.

그의 검은 신묘막측했다.

상대해본 적들은 귀검에게 홀린 순간 당했다.

그렇기에 동료들에게 귀검을 마주하게 되면 절대로 정신을 잃지 말라고 했다.

귀기 서린 섬뜩한 눈빛에 정신이 혼미해진 순간, 목숨이 사라지게 될 테니까.

귀검의 명성은 그렇게 쌓이기 시작했다.

적들이 점점 더 두려워할수록, 십양에서의 그의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이제 그 이름은 진양각 전체를 아우르고 있었다.

“귀검은 진양각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라고 하더군요.”

“귀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싸늘한 한기만이 감돈다고 들었습니다.”

진우선이 소무강에 관해 물으니, 남가철방의 사람들이 감탄하며 들은 바를 전해주었다.

어쩌면 진양각의 귀검이라는 말로는 지금의 소무강을 다 담아내지 못할지도 몰랐다.

“천마교에서 귀검을 극도로 경계한다더군. 사도련에서도 예의주시한다고 하고. 대단하지 않은가? 여기 철방 한복판에서 잘 움직이지 않는 나도 그런 소문을 들었을 정도라네. 허허.”

남회마저도 탄성을 흘렸다.

“엄청나군요.”

“그렇지. 엄청나지.”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남회의 말에 동의했다.

아침에 만난 남지홍 총관부터 지금 만나고 있는 남회까지 모두가 한결같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진 공자, 자네가 보기에 어떻던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말을 붙이는 것도 조심스러워서요. 어제 잠시 마주쳤지만, 차갑다는 인상만 받았습니다.”

사람을 대하고서 무뚝뚝함을 느꼈고, 내력을 대하고서 서늘함을 느꼈다.

그러니 진우선이 소무강에 대해 가지게 된 생각에는 차가움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 생각할 만도 하겠군. 어제 봤을 때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그렇고, 나도 그에게서 살갑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니까.”

“소 대협이 오늘 아침에도 어르신을 뵈었습니까?”

“그랬다네. 어젯밤에 검명을 새겼는데, 그걸 아침에 받아갔거든. 내가 진 공자에게 약속했듯이 그에게도 말했는데, 그는 바로 이름을 새겨달라고 했었다네.”

“아!”

진우선이 탄성을 흘렸다.

어젯밤의 상황이 단박에 이해된 까닭이었다.

냉기가 힘을 압축시켜 빙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던 상황.

진우선은 그때 아마도 검이 있어야만 가능한 모양이라고 추측했었다.

그게 지금 사실로 확인되었다.

소무강이 검에 검명을 새기느라 하루 더 맡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어젯밤 상황이 단박에 짜 맞춰졌다.

검이 있으면 냉기를 빙기로 만들 수 있으니, 그는 굳이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그건 소무강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데 남의 도움을 받는 모양새이니, 내키지 않았을 터였다.

‘오늘 밤에는 소 대협의 내력이 검과 함께 자유로워지겠구나!’

반면에 기대감도 생겼다.

냉기를 빙기가 될 수 있게 만드는, 특별한 힘을 가진 검이 주인 소무강과 함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검을 받은 오늘 밤에 그의 기운이 다시 내원에 가득 찰지도 모른다.

빙기가 되는 것은 소무강이 염원하던 바를 이루는 일이니, 열심히 매진하여 얼른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으리라.

어제와 같은 상황이 다시 한 번 펼쳐질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검에 어떤 이름을 새기려고, 이런 검을 하루 더 맡겼을까?

진우선은 자신의 검에 아직도 이름을 못 붙여주고 있었기에, 그게 더욱 궁금해졌다.

“어르신, 소 대협은 검명을 뭐라고 지었습니까?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뭐, 안 될 것도 없지. 그는 자신의 검에 상담이라는 이름을 주었다네.”

“상담…… 와신상담이겠군요.”

진우선이 곧바로 알아챘다.

그런데 소무강이 그것을 바로 정했다는 점에 관심이 갔다.

원한을 잊지 않기 위해, 가시 많은 섶나무에서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핥는다는 그 말을 검의 이름으로 말이다.

그건 각오, 혹은 의지였다.

지금 어떻게 살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겠다고 뼛속에 새기듯이 자신에게 다짐한 것이다.

그 순간, 진우선은 퉁명스럽고 냉소적인 소무강의 모습이 조금 이해되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한이 소무강의 마음에 가득 들어차 있을지도 모른다.

“그 이름이 짊어진 무게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래서 더 물어보지 않았다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남회와 진우선 두 사람이 어느새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는 내일 떠난다고 하더군. 진 공자, 그때까지 잘 부탁하네. 현재 내원에 머무는 사람이 그와 자네 둘뿐이라 달리 말할 데가 없다네.”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남회가 당부하듯이 재차 말했다.

“괜찮다면 말이라도 한 번 더 걸어주라는 말일세. 자네도 물론 조심스럽겠지만, 그도 어쩌면 외롭지 않겠나? 편히 대화하는 사람도 딱히 없는 것 같던데, 답답할 수도 있고.”

“네 알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부탁하지 않으셔도 오늘 말을 걸어 볼 참이었습니다. 마침 소 대협께 물어볼 것도 있었습니다.”

진우선은 어젯밤 소무강과 보이지 않는 소통을 했었다. 서로의 내력으로 말이다.

“다행이군. 고맙네.”

남회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진 공자 자네도 얼른 이름을 지어주게. 본디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이름이 있어야 의미가 생기고 존재의 가치가 매겨진다네.”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남회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대장간을 나와 내원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 걸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

천지에 달빛이 내려앉았다.

달빛이 은은하니, 남가철방 전체에 고즈넉한 분위기가 흘렀다. 그에 맞춰서인지 낮 동안 가득했던 열기도 식어 있었다.

물론 땅-땅- 거리는 망치질 소리는 여전히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차분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규칙적으로 울리기에 편안하기도 했다. 다른 작은 소리 따위도 들리지 않았다.

침상에 눕는다면 잠들기에 좋고, 무언가를 한다면 집중하기에 좋은 상황이었다.

철방다운 평온함이며, 철방다운 밤이었다.

이게 남가철방의 밤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공간에서 철방답지 않은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내원이었다. 그곳에는 검을 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오셨습니까? 소 대협.”

“진 소협, 반갑소.”

진우선이 방금 막 내원에 들어선 소무강에게 인사를 건네자, 소무강이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대답해왔다.

그 대화에 어제와 같은 어색함은 없었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서로의 인기척을 이미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소무강은 다가오고 있었고.

진우선은 기다리고 있었고.

철방의 소리가 가득했었지만, 그들이 서로를 인식하는 데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

진우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는 죄송했습니다.”

“아니요, 괜찮소.”

소무강이 대답을 한 뒤, 어제보다 덜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진정 진 소협이었소?”

“맞습니다.”

“그랬군. 왠지 그럴 것 같았소. 새벽까지만 해도 믿을 수 없었지만, 진 소협에 대해 들을수록 진짜였구나 싶었소.”

소무강이 담담하게 자기 생각을 밝혔다.

사실 그는 새벽에 내원을 나설 때만 해도 진우선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진우선에 관해 듣다 보니 계속 놀라게 되었고, 인정하는 마음도 생겨 있었다.

“고맙소.”

“아! 아닙니다. 어제 그게 무슨 도움이 되었겠습니까? 심려를 끼쳤겠지요.”

“그게 아니요.”

소무강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어제 진 소협이 내 기운을 돕는 게 아니라, 억제하고 한바탕 뒤흔들어버렸다면 나는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오. 고맙소.”

“아!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알고 있소. 어쨌든 나는 진전이 더디고 답보하던 중에 오히려 진 소협 덕분에 새로운 실마리를 찾게 되었소. 그래서 정말로 감사하오.”

“축하드립니다.”

진우선이 멋쩍게 웃었다.

소무강의 말을 들으며 어젯밤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알게 된 까닭이었다.

그에 더불어 어떤 안 좋은 상황을 불러올 수 있었는지도.

그때, 소무강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있소.”

“말씀하십시오.”

“지금 한 번 더 맞상대해주실 수 있겠소? 어제와는 다를 것이오.”

소무강이 진지하게 부탁해왔다.

그에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습니다.”

“고맙소.”

잠시 후.

내원에 냉기가 자욱하게 깔렸다.

소무강의 음한기공이 본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스릉-!

그의 검도 모습을 보였다.

‘저 검이구나.’

상담(嘗膽)이라고 손잡이 위에 새겨진 두 글자가 눈에 또렷이 보였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온 것과 동시에 한기도 덮쳐왔다.

스아아-!

검에서 온몸을 시리게 만드는 시퍼런 기세가 뻗쳐 나오고 있었다.

살을 엘 듯한 차가움이었다. 만년설산에 오른다면 이럴까 싶었다.

쩌엉-!

그와 함께 냉기가 얼어붙는 소리가 났다. 주변에서 쌀알 같은 얼음덩이가 맺히고 있었다.

동시에 소무강의 검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빙기!’

진우선이 소무강의 기운을 직시했다.

팔뚝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았다.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뒷골이 섬뜩했다. 빙기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러했다.

소무강의 빙기는 얼음 칼날처럼 차갑고 뾰족했다.

‘하지만 불완전해.’

어젯밤보다 더욱 자세히 느껴졌다.

주변의 기운을 느끼면 느낄수록, 흐름이 불규칙하고 결이 일정하지 않아 불안정했다. 자연스럽지 않았다.

‘억지로 뽑아냈다.’

검이 지닌 특별한 기세에 그저 힘을 실었을 뿐이다.

‘소 대협은 왜 이렇게…….’

진우선이 의문을 가질 찰나, 소무강이 한마디를 던졌다.

“가겠소.”

“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소무강의 검이 달빛을 머금으며 허공을 휘저었다.

쐐액-! 쐐애액-!

검초가 펼쳐질 때마다 빙기가 서릿발처럼 마구 뿜어져 나왔다.

빙기가 허공을 쩍쩍 가르며 쇄도해 들었다.

검의 모든 움직임이 위협적이었다. 검이 아니라 기운에 스치기만 해도 뼈까지 갈릴 듯했다.

예사 위력이 아니었다.

‘이걸 위해서였어!’

소무강이 ‘상담’을 쓰고자 했던 이유가 보였다.

이제 진우선은 물러서 있을 게 아니라, 검을 마주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응-!

진우선이 검을 뽑았다.

오행진기가 마구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광영무의 신위가 흘러나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상황이 변했다.

진우선의 검이 소무강의 무공을 마주쳐낼 때마다 빙기의 맥이 툭툭 끊겼다.

“이익-!”

소무강이 신음소리를 냈다.

어느새 이를 악문 그는 낯빛마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지막 힘까지 끌어올리는 모양이었다.

진우선도 형을 이룬 수기를 더욱 집중하여 펼쳐냈다. 그걸로 소무강의 검을 마주쳐냈다.

그러더니.

서걱.

빙기를 베며 결을 깨트렸다.

째째재쟁-.

소무강의 빙기가 산산이 조각나며 깨져나갔다.

촤아아악-.

수기도 수많은 물방울이 되어 날려 흩어졌다.

그 순간!

“……!”

남가철방의 모든 불이 꺼졌다.

물벼락이 남가철방을 덮어 화로 속의 작은 불씨마저 모두 죽어버렸다.

낭패였다.

동시에 남가철방 전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진우선과 소무강 두 사람도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

진우선이 몹시 당황했다.

소무강도 차가운 얼굴에도 당혹스런 기색이 어렸다.

불이 생명인 곳에서 불이 한순간에 사그라졌으니, 철방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한밤중에도 열심히 풀무질하고 대장일하던 야장들이 작업을 모두 그르칠 상황이었다.

실로 큰일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화라락-!

어딘가에서 격렬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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