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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검전-60화 (60/225)

060.

#귀검의 무공 (1)

파앙-!

한순간, 기운의 폭발이 있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나, 분명히 느껴진 바가 있었다.

북풍한설 같은 차디찬 기운이 온몸을 한 차례 강타하고 지나갔으니까.

‘……!’

진우선이 눈을 부릅떴다.

‘빙기(氷氣)다!’

몰아친 한기는 그저 차가운 느낌만 준 게 아니었다. 기운 안에 무언가 단단하고 응축된 힘이 있었다.

그건 빙기가 가지는 특성이었다.

일전에 경험한 바가 있으니 틀림없었다. 비록 그 세밀한 느낌은 조금 달랐지만.

그러고 보면, 찬 기운이 강렬하게 터진 건 빙기의 폭발이 틀림없었다.

냉기가 특별한 모양으로 응축된 게 빙기이니, 빙기의 폭발은 일반적인 기운의 폭발보다 더 큰 게 당연하리라.

찰나 간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리고 진우선은 점점 더 진실에 접근해갔다.

‘빙기가 힘을 얻었어!’

얻은 힘도 그저 조금 더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탄력을 받은 수준이었다.

‘아마도…… 어르신께서 훌륭한 무기를 만드신 거겠지.’

기운이 폭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는 남회의 대장간 부근이었다.

그곳에서 있을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었다.

어떤 무인이 좋은 무기를 얻은 것이다. 그에게는 경사나 다름없을 터였다.

진우선의 머릿속에 대장간에서 벌어진 일련의 상황이 자연스레 그려지고 있었다.

‘역시 대단하시구나.’

절로 감탄이 나왔다.

남회는 과연 명장(名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의 손에서 탄생하는 무기들은 예사롭지 않으니까.

그와 동시에 진우선이 허리춤을 내려다보았다.

남회가 만들어준 자신의 검이 있었다. 이 검도 예사로운 검이 아니었다.

검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걸 느꼈다.

이 검은 오행진기를 모두 담아내고, 그 힘을 더욱 북돋아 주는 뛰어난 검이었다.

‘네가 더 좋은 검이다.’

진우선이 검을 너로 부르며 뿌듯한 마음을 드러냈다.

다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검은 너무 흡족하다.

근데 너무 흡족해서, 그에 걸맞은 이름을 못 짓고 있었다.

아무튼, 그때 검노야가 진우선을 불렀다.

[우선아.]

‘네, 스승님.’

진우선이 허공에서 뜰로 내려오는 검노야의 환영을 보며 대답했다.

[이제 기운의 본질을 파악하기 시작했구나. 그럼으로써 실체를 실체로 보았고.]

검노야가 진우선을 칭찬했다.

기운을 다루고 느끼는 데 있어서, 진우선이 또 한 걸음 더 나아갔기 때문이다.

‘…….’

하지만 진우선은 오히려 멈칫했다.

무엇이 기운의 본질일까?

너무도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그러나 검노야가 없는 말을 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답이 있을 것이다.

“……아!”

진우선은 방금 전 상황이 떠오르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빙기를 느낀 순간, 빙기의 강력한 폭발에서 냉기가 응축되었다는 걸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냉기는 수기가 찬 성질을 머금었을 때의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수기와 냉기와 빙기는 마냥 다른 존재가 아니었다.

‘천지간의 기운이…… 이렇게도 느껴질 수 있군요!’

놀라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이 확 트였다.

머릿속이 하나의 방이라면, 사방팔방에 위아래까지 일제히 확 열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는 동안, 진우선이 생각을 하나로 집중했다.

천지간의 기운!

그 바탕을 이루는 오행진기는 서로 간에 대등하다.

그들은 상생하고 상극하지만, 같은 높이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테면 평면에 오행진기의 기운 다섯이 원을 그리며 둘러앉은 형국이었다.

하지만 인식에 변화가 생겼다.

변화는 그중 하나인 수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수기를 둘러싼 공간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며, 빙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기와 빙기 사이를 이어주는 냉기의 존재도 인식되었다.

이런 식이라면 다른 오행진기들에게도 한없이 다채롭게 공간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이제 평면에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무한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관계하고 있었다.

‘이렇게 뻗어 나가는 것도, 서로 얽히고설켜 있는 거야!’

바로 그 순간.

수기만이 아니라 목기, 화기, 금기, 토기의 모든 공간마저 보이지 않아도 열린 느낌이 들었다.

천지간의 기운에 대한 인지의 체계가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싱긋-.

검노야가 가볍게 웃었다.

말로 풀어서 전하지 않아도, 진우선이 잘 깨치고 있는 까닭이었다.

[기운의 본질을 알고, 본질로부터 비롯되어 실제로 드러나는 실체를 잘 보았구나. 직접 느꼈겠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으며 실체는 여러 모습이 될 수도 있느니라.]

수기는 본질이요, 냉기와 빙기는 실제로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천지간의 기운은 저마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으나, 그 근원은 오행진기에서 시작되었군요. 그런데 오행진기라는 것은 원래 서로 얽히고설켜 있으니, 어쩌면 저마다 힘을 합칠 수도 있고 멀리할 수도 있겠습니다.’

[허허. 잘 보았다.]

검노야가 활짝 웃었다.

하나를 알려주었는데 셋까지 헤아리고 있으니, 어찌 흐뭇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대견했다.

그러나 이번 가르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선아.]

‘네, 스승님.’

[빙기가 힘을 얻었으나, 완전해지지 못했지. 나는 네가 그것도 느껴 보았으면 좋겠구나.]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질문을 명확히 이해하고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여태껏 인지의 체계를 확장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각각의 깊이를 세밀하게 살피라는 가르침이었다.

[장하구나. 너는 잘하리라 믿으니.]

검노야가 인자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검노야의 환영이 옅어지며 뒤쪽이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투명했던 그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검노야가 진우선에게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러자 남가철방과 내원의 풍경이 진우선의 눈동자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이전과 다른 하나가 있었다.

한 사내가 멀리서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저 사람은?’

진우선의 시선이 저절로 그에게 향했다.

그는 요 며칠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그는 날이 바짝 서 있는 칼 같았다. 눈빛도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 모습이 단박에 뇌리에 자리 잡았다.

“선객이 계셨군. 반갑소.”

사내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반갑습니다.”

진우선이 마주 인사하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이 사람이었겠구나.’

아마도 이 사람이 빙기를 뿜어냈으리라.

그에게는 지금도 은은하게 전해지는 한기가 있었다.

어쨌든 그런 사내가 다시 짧게 말을 건넸다.

“머무는 동안 잘 쉬시오. 그럼 이만.”

그러고는 몸을 휙 돌렸다.

사내는 딱히 통성명할 생각도 없어 보였다.

진우선에게도 서로 관심 가지지 말자는 뜻을 통보하고 있었다.

“아! ……네. 쉬십시오.”

진우선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는 어느새 내원의 한 곳으로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내원의 위치와 구조에 꽤 익숙해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진우선이 그런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무뚝뚝한 사람이구나.’

***

무뚝뚝한 사람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도 정다운 면이 없었다.

그는 방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 자신만의 방식대로 움직였다. 홀로 볼일을 보러 다녀오고, 식사도 혼자 해결했다.

진우선이 있어도 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저기…….”

그리고 지금도 진우선이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퉁명스러운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진우선은 밝게 웃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차 한잔하시지 않겠습니까?”

“나는 괜찮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오.”

무뚝뚝한 사내가 불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는 싸늘한 흔적만을 남기며 몸을 돌려 순식간에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말 한 번 걸기 무섭네.’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속 마주치니 통성명이라도 할 생각이었으나, 이래서야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는 사람 자체가 ‘말 걸지 마시오!’라는 느낌을 잔뜩 풍기고 있지 않은가.

한 마리 고독한 늑대였다.

‘이름이나 알 수 있으려나…….’

그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저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부류의 사람은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고, 대화조차 나누려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에 여러 일을 하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알아가기 어려울 듯했다.

그런데!

막 잠이 들 무렵.

침상에 누웠던 진우선이 몸을 벌떡 일으키며 어깨를 한 차례 떨었다.

“하핫…….”

진우선이 싱거운 웃음을 흘렸다.

이 무슨 서늘한 기운이란 말인가.

무더운 여름날 밤, 게다가 밤새도록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는 철방에서 어찌 이런 찬 기운이 갑자기 내려앉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 이유는 하나였다.

맞은편 방에서 머무는 무뚝뚝한 사내가 음한기공을 수련하기 때문이었다.

한데 진우선이 알아챈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건 빙기가 아니야. 냉기가…… 스스로 얼지 못하고 있으니, 빙기가 되지도 못해!’

진우선은 내원에 드리워진 기운이 가진 의지를 읽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선지 냉기는 빙기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스스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낮에 있었던 일은 아마도 뛰어난 검을 얻으며 그 순간에만 가능했던 모양이었다.

‘아!’

진우선은 문득 빙기의 기운이 폭발했던 게 이해가 되었다.

‘그 검이 있어야만 빙기가 펼쳐지는 거겠구나.’

단숨에 검노야의 질문도 이해해 버렸다.

그래서 검노야가 빙기가 완전해지지 못했다고 한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의 빙기는 완벽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 순간, 진우선의 뜻을 타고 수기가 움직였다.

수기가 냉기 사이로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냉기가 점점 짙어져갔다.

곧 금기도 움직였다.

수기에서 비롯된 냉기를 금기가 도왔다. 금생수의 이치였다.

그러자 냉기가 더욱 자신의 성질을 또렷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스스슥-!

차갑게 내려앉은 냉기가 서로 결집하기도 하고, 부딪치기도 했다.

츠측-!

한데 모인 냉기들이 몹시 충돌하던 중, 이전에 없었던 소리가 났다.

무언가 깨지기보단, 한데 뭉쳐지며 나는 소리 같았다.

바로 그때!

수우우…….

기운이 힘을 잃고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버리더니, 존재를 잃었다.

단 한순간이었다.

이건 진우선이 한 게 아니었다.

‘기운을 거둬들였어!’

진우선의 얼굴에 허무한 빛이 드리워졌다.

내원에는 삭막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밤은 소리 없이 지나갔다.

***

다음 날 아침.

남지홍 총관을 만난 진우선이 물었다.

“내원에 머무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아! 인사를 나누셨을 줄 알았는데, 못하신 모양이시군요. 그분은 같은 정무맹의 고수이신 소무강 대협십니다. 진양각의 십양에서 무위와 전적으로 손에 꼽히는 분이시지요.”

남지홍이 자랑하듯이 말하며 소개를 이어나갔다.

“소 대협은 보통 사나흘 정도 머물다 가십니다. 이번에도 사흘간 머무를 거라고 하셨으니, 내일이면 떠나실 겁니다.”

“짧게 머무시는군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맹의 사방에 적들이 있으니, 소 대협 같은 의인들께선 늘 바쁘신 것 같습니다. 어찌나 바쁘신지 사나흘의 휴가도 두세 달에 한 번뿐이고, 그것도 간신히 주어질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남지홍은 철방의 총관답게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렇게 소개를 해주면서 물었다.

“그런데 간밤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지금 진 공자처럼, 새벽에 소 대협께서도 진 공자에 관해 물어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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