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58화 (58/225)

058.

#소중한 것 (1)

땅-! 땅-! 땅-! 땅-!

쇠를 두드리는 단단한 망치 소리가 쉼 없이 들려왔다.

그 소리는 특이했다. 강약이 없고, 고저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간격마저도 일정했다.

이 소리는 남가철방에서 나고 있었다.

남가철방 안에는 대장간이 여러 개 있고, 각 대장간마다 화로가 여러 개 있다.

또한, 화로마다 모루가 서너 개씩 앞에 놓여 있었다.

화로 속 뜨거운 불길이 쇠를 달구어 토해내면, 대장장이들이 모루에서 쇠를 두드렸다.

소리는 거기에 있었다.

수많은 모루에서 여러 소리가 태어났고, 그 소리들이 허공에서 하나로 모였고, 모이면서 거대한 선율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소리가 남가철방의 연주로 거듭났다.

땅-! 땅-! 땅-! 땅-!

망치들의 열정적인 연주가 이어졌다.

연주자들은 누가 듣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온몸으로 소리를 피워냈다.

남가철방의 이글거리는 열기 속에서도, 땀이 빗줄기처럼 흐르는 가운데서도, 그들의 연주는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쇠를 두드리는 데 몰두하여 주변을 모두 잊은 것이다. 본인의 숨소리마저도.

그래서일까?

진우선은 남가철방의 연주를 온 몸으로 느끼며 감동하고 있었다.

생생한 연주의 한복판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만끽하니, 심장부터가 절로 떨려오고 있었다.

짙은 쇠 냄새도 연주와 조화를 이루었다.

강렬한 쇳내는 역해서 메슥거릴 만도 한데, 그러지 않았다. 이질적이지 않았다.

도리어 휘몰아치는 감각의 향연 속에서 쇠의 노래를 더욱 부각했다. 더욱 진한 존재감이 드러나게 했다.

지금, 이 순간.

육체는 즐거워하고, 마음은 전율하고 있었다.

“어떤가? 아름답지 않은가?”

남회가 다가오며 물었다.

오랜 세월 동안 철방에서 살아온 사람답게, 진우선의 눈빛과 표정, 자세로 그의 마음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아름답습니다. 이곳을 가득 채운 모든 것들이…… 마치 거대한 합주를 하는 듯합니다. 황홀할 정도로 장엄합니다.”

“허허허! 합주라…… 좋군. 내 평생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너무도 멋진 말이야!”

남회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흡족한 마음이 온 얼굴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즐거운 마음이 그게 다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면서 정원을 봤는데 다들 벌써 힘을 찾았더군. 더욱 푸르고 더욱 빛나고! 아주 생기가 넘쳤어. 진 공자, 정말 고맙네.”

남회가 더 신나서 말을 이었다.

들뜬 표정과 한껏 과해진 억양에서 그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토록 좋아하는 남회를 보자, 진우선이 저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남회가 그런 진우선에게 물었다.

“진 공자. 자네는 어떤가? 여기가 온통 쇠붙이밖에 없지만, 그래도 지낼 만은 하지?”

“지낼 만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좋습니다. 방도 넓고 쾌적해서 제가 지내 본 곳 중 제일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허허.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지금 진우선이 지내는 방은 잠시 머물다가는 손님들을 위한 객당이 아니었다. 남가철방의 친척이나 중요한 사람들을 위해 마련한 처소였다. 남회가 특별히 신경 쓴 결과였다.

“수련하는 건 어떤가? 수련하기에도 불편함이 없었으면 좋겠는데.”

“수련하기에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사실 방은 괜찮아도, 수련하기에는 불편하지 않을까 싶었네. 철방이다 보니 손님이 끊이지 않고, 화로의 불은 밤에도 꺼지지 않으니까 말이야.”

남회의 주 관심사는 진우선의 수련 환경이었다. 귀한 손님이라 세심하게 마음 쓰고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정원에 머물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어제도 거기서 수련하며 성과가 좋았습니다.”

진우선이 남가철방에 온 이유는 오행진기의 수련을 위해서였다.

남회의 주변에서 짙디짙은 화기와 금기를 마주할 수 있으니, 진우선에게는 정원이 가장 수련하기 좋은 장소였다.

“그랬군. 어제는 내가 못 봤었지만,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것 같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수련한다는 말이지?”

“네. 맞습니다.”

남회는 진우선이 나무들을 소생시켰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진우선은 정원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게 진우선이 수련하는 모습이었다.

“역시 그랬군. 뛰어난 무인은 심상 수련에 상당히 힘을 쏟는다고 들었었는데, 자네의 모습을 보며 그 말이 떠올랐지.”

“하핫! 과찬이십니다.”

남회가 자기더러 뛰어난 무인이라고 말하니, 진우선이 몸 둘 바를 몰랐다.

하지만 남회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엊그제 석 부당주에게 들었네. 자네가 이미 상승의 경지에 들어섰다고 하더군. 그래서 아마도 수련하는 문제로 서로 불편할 일은 없을 거라 했었지. 그래서 생각해 본 것이었다네. 허허허.”

남회가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확인한 후, 가볍게 당부했다.

“그래도 내가 준 검을 너무 녹슬게는 하지 말게. 가끔은 사용해야 익숙함이 떠나지 않는다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하루에도 몇 번씩 검을 꺼내 보고 있습니다. 검이 너무 좋아서 자꾸 살펴보게 됩니다.”

“다행이군. 자네가 검을 아끼는 사람이라서.”

남회의 말에서 검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장인의 마음이었다.

“그러면 혹시 검에 이름도 붙여 주었는가?”

“아! 이름은 아직입니다. 이거다 싶은 게 잘 떠오르지 않아서요.”

진우선은 아직 검명(劍名)을 정하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훌륭한 검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의 검이었다.

그래서 이름을 잘 지어주고 싶지만, 여러모로 생각해봐도 가슴에 확 와 닿는 게 없었다.

남회가 그런 진우선의 모습을 보며 그럴 수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진 공자, 검의 이름이 정해지면 알려주게. 새겨주겠네.”

“감사합니다.”

그날 밤.

검노야도 자신의 검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추억에 잠긴 것일까?

그의 눈빛과 얼굴에서 아련한 감정들이 묻어나왔다. 때론 기뻐하고, 때론 회한에 잠기는 듯했다.

진우선은 검노야의 그런 모습이 처음이었다.

진우선이 새로 검을 얻는 걸 보면서, 아마 검노야도 감회에 젖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던 중.

진우선은 문득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무언가 전과 다른 생소함이 있었다.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검노야의 검이 새로운 까닭이었다.

“스승님, 검이 달라진 것입니까?”

[잘 보았구나, 우선아. 너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겠지만, 이게 원래 내 검이란다.]

그렇게 답하는 순간, 검이 두둥실 허공에 떠올랐다.

검노야의 잿빛 검이 허공에서 담담히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냈다.

잿빛이지만 역설적이게도 탁해 보이지 않았다. 진하고 힘 있어 보였다.

그 검이 방 안에서 특유의 빛깔을 발하며, 고고한 위용을 내보이고 있었다.

“아! 그때 그 검이군요.”

진우선이 손뼉을 쳤다.

목각인형이 들고 있던 검이 딱 이 모습이었다는 걸 떠올린 순간이었다.

[현월.]

검노야가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검이 부르르 떨었다.

[내 평생을 함께했던 이름이지. 그립고…… 반갑고……소중했던.]

검노야가 흘리듯 하는 말이 아련하게 울렸다.

여운이 있었다. 그 여운에 검노야의 소회도 담겨 있었다.

“아…….”

진우선에게 검노야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검을 잊고 있었으나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이름을 부르게 되었고.

그러자 검이 완전히 나에게로 왔고.

…….

그 과정 속에 담긴 형언키 어려운 떨림까지 온전히 느껴졌다.

“스승님. 다시 만나신 걸 축하드립니다.”

[고맙구나.]

검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도 어려 있었다.

그리고 진우선에게 말했다.

[우선아. 이름을 잘 정하거라. 네 평생을 함께할 검이 될 테니.]

“네. 그러겠습니다.”

진우선이 진심에 진심이 더해진 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노야의 바람이 이미 전해진 감정에 더해져 크게 와 닿은 까닭이었다.

“그런데 스승님. 스승님의 검이 제 검과 비슷합니다.”

[검을 받았을 때 그래서 나도 눈이 번쩍 뜨이더구나. 정말 닮았지.]

진우선의 새로운 검.

검노야의 현월.

두 검은 외형이나 전체적인 빛깔이 유사했다. 고결해 보이는 분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스승님께 무공을 배웠기에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진우선의 생각이 타당해 보였다.

사제가 모두 광영무와 오행진기를 펼치니, 무공에 맞는 무기도 엇비슷한 것이다.

“현월……. 현월……. 참 좋은 이름 같습니다. 검에 먹빛이 감도니 현월이기도 하지만, 광영무와 오행진기를 담아내는 검이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깊고 오묘하니 현월이라 할만하군요.”

현월(玄月)의 월은 검(劍)을 의미했다.

하지만 현(玄)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현(玄)은 검은빛을 일컫고, 하늘을 일컫기도 했다.

또한, 현(玄)은 지극히 현묘한 이치를 뜻하기도 했다.

그러면 진우선이 말한 대로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불러도 어감이 참 좋습니다. 저도 스승님처럼 꼭 좋은 이름을 지어야겠습니다.”

진우선이 목표를 세웠다.

검노야의 검에 새겨진 ‘현월’이라는 이름이 그토록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러자꾸나.]

검노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진우선의 모습에 절로 흐뭇해졌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제자인 진우선과 닮은 게 무공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향도 닮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일지도…….

***

금기와 화기.

이 둘은 진우선이 남가철방에서 얻었던 오행진기의 기운이었다.

‘금기와 화기는 여전히 앙숙이고, 견원지간이구나.’

정원 한쪽에 자리를 잡은 진우선이 정신을 집중하여 내력을 느끼며 판단했다.

금기와 화기는 오행진기 속에서도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과 같이 서로 견제하고 억누르려 하는 까닭이었다.

기질이란 게 애초에 타고난 것이 기에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크게 걱정되지는 않았다.

한 줄기 기운이 용솟음치며 올라왔으니까.

‘토기!’

상서로운 향기를 머금은 토기가 단전에서 솟구쳤다.

모습을 드러낸 토기는 화기 속으로 스르륵 스며들었다.

그러자 서로 쫓고 쫓기며, 다투고 반발하던 화기와 금기가 멈칫거렸다.

충돌이 멎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서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화극금이지만…… 화생토이며, 토생금이니.’

진우선은 오행진기의 신묘한 이치를 되뇌며 몸 안을 관조했다.

화기와 금기는 상극이다.

하지만 토기가 둘 사이에 어우러진다면 그들은 서로 다투지 않는다. 토기는 화기와 금기의 중재자인 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제 화기와 금기는 토기와 함께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었다.

토기 하나로 상극 가운데서 상생의 이치가 일어나고 있었다.

‘상극하는 화극금의 이치보다, 상생하는 화생토, 토생금의 이치가 앞서는구나.’

진우선은 내기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또 하나를 느꼈다.

상생과 상극은 성질이 다른 것들 사이에서 기본적인 움직임이며,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오행진기는 상생의 이치를 상극의 이치보다 우선시하고 있었다.

‘한 곳에서 서로 존재하니 오행진기는 상생을 더 추구하는구나.’

이런 생각은 처음이었다.

검노야에게 들은 적이 없으며, 오행진기의 구결도 아니었다.

그저 저절로 알게 된 바였다.

한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천지간의 기운은 상극하고 상생하면서 모두 한데 얽히고설키는 것이니…….’

‘오히려 그럼으로써 기운이 약할 때 서로 북돋아 항상 충만할 수 있고, 기운이 적을 때에도 서로 자극하여 충만해질 수 있으니…….’

‘천지간에 기운이 충만한 가운데 내가 충만하니, 비로소 안과 밖의 구분이 필요 없어지게 될 때…….’

글귀가 허공에 떠올랐다.

눈을 감고 있음에도 사방에 글귀가 날아다니고 있었고, 글귀들이 온몸을 휘감으며 몸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모양이 느껴졌다.

그 글귀들을 자세히 보니 사이사이로 상세한 묘리가 채워져 있었다.

행간에 숨겨진 이치가 실체화되어 빈틈없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뇌리에 스며들었다.

“아-!”

깨달음의 순간이 이렇게 찾아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