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
#만만치 않은 임무 (2)
선저정은 넓었다.
산 전체가 널따랗게 퍼져 있었다. 산 정상도 평평하다고 하니, 산의 생김새가 이런 듯했다.
산이 넓다 보니 다양한 지형이 다 있었다. 대나무숲도 있고, 온갖 나무가 우거진 숲도 있고, 초원이 있고, 절벽과 바위도 있었다.
그런 산속임에도 전투조와 구출 조는 목표한 곳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이미 다녀왔던 인도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여깁니다.”
정무맹 광동지부에서 온 두 사람이 한 아름드리나무 앞에 멈춰 서며 말했다.
“맞군. 광명이대가 이곳을 지나갔어.”
광명칠대의 대주 서영풍이 직접 나무의 밑동에 나 있는 표식을 살피더니, 확신을 내렸다.
진우선 일행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들의 눈에는 서영풍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특별한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표식을 찾을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어디로 이어졌는지도 확인했는가?”
“네. 저쪽 산등성이 너머에서도 보았고, 이 뒤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광명이대는 이 뒤쪽 어딘가에 몸을 숨기고 있을 겁니다. 표식이 그리로 이어져 있습니다.”
“혈련수라종은 저쪽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데, 추적을 어렵게 만들어 시간을 좀 벌어두었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리는 것에 짜증이 난 모양인지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바로 알아채실 수 있으실 겁니다.”
표식을 찾아낸 두 사람이 연이어 말했다.
각자 광명칠대의 흔적과 혈련수라종의 위치를 파악했던 모양이었다.
서영풍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갈라지지.”
전투조와 구출조가 이제 제 목적을 향해 가자는 뜻이었다.
서영풍이 척자경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척 부대주. 구출을 잘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구출조를 이끌기로 한 척자경 부대주가 굳은 얼굴로 재빠르게 대답했다.
서영풍은 이제 전투조에게로 눈을 돌렸다.
“저들은 지쳐 있을 것이고, 우리가 수적으로도 우세하니, 작전의 성패는 우리에게 있소. 나부터 먼저 갈 테니 뒤를 잘 따라와 주시오.”
“알겠습니다. 대주님.”
서영풍이 용맹한 모습을 보이자, 광명칠대의 대원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들에게 익숙한 순간인지, 어색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방가장의 무인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소속이 다르니 그런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진우선이 서영풍과 광명칠대의 모습을 보며 감탄했다.
결단력이 있고 과감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어떤 무리를 이끄는 직책의 사람들에게 있어 본보기가 될 만했다.
물론 그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광명각 안에서 서영풍을 만났을 땐, 마냥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너그럽게 인사하고 대화하지 않았던가.
광명칠대의 대원 중에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둘 다 서영풍의 모습일 것이다.
대원들의 모습이 대주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웠다.
‘지도력이 대단하시구나.’
진우선이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그 순간.
서영풍의 신형이 소리 없이 쏘아졌다.
그런 서영풍을 필두로 전투조가 혈련수라종이 있을 산등성이로 나아갔다.
***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을 무렵, 선저정의 한 산등성이 위에 전투조 서른 명이 잠시 멈춰 섰다.
“저기 보입니다.”
방 무사가 서영풍에게 보고하듯이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혈련수라종의 무리가 눈에 곧장 들어오고 있었다.
“추적 중이군.”
그들은 골짜기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흔적을 찾는 것처럼 보였는데, 전체를 보면 예닐곱 명 정도 될 듯했다.
진우선도 그들을 보았다.
‘마기가 짙다!’
눈으로 보이고 기운으로도 느껴졌다.
마기가 골짜기에서 진득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끈적거리고 불쾌한 기분이었다.
한데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마교도는 눈에 보이는 일곱 명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마공을 익혔기에 마기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당장 느껴지는 마기가 여덟이 더 있었다.
바로 골짜기 주변의 수풀 속이었다. 거기서 짙은 마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 그러했다.
‘매복이구나!’
진우선의 뇌리에 싸늘한 두 글자가 새겨졌다. 가슴속도 서늘해졌다.
매복을 모르고서, 눈에 보이는 적만 인식한 채 접근한다면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할 터였다.
‘어쩌면…… 알아챘는지도 모른다.’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광명이대의 흔적이 어지러워져 추적이 어려워졌는데, 그때부터 이상하다고 느낀 것일까?
혹시 광명이대가 쫓기던 와중에 반격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여긴 것일까?
그게 아니면, 산에 들어오고 시간이 꽤 흘렀으니 추가 지원이 있을 거로 생각했을까?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든 혈련수라종으로서는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절반을 노출하고, 절반은 매복한 것이리라.
‘어쨌거나 중요한 건 매복이 있다는 사실이군. 우리는 저들을 제압해야 하고.’
진우선이 핵심을 다시 떠올렸다. 그러자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다.
그때, 서영풍과 광명칠대의 대화가 들려왔다.
“총 일곱 명입니다. 지금 모습으로 보아, 쫓아오던 흔적을 놓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 보여. 그래서 무리를 둘로 나누고, 나머진 다른 곳을 수색하는 건가? 수라객의 모습도 보이지 않고. 신경 쓰이는군.”
서영풍이 한 대원의 의견에 동조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눈살을 찌푸렸다.
“저희가 수적으로 우세하니 재빨리 저들을 제압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방법이기는 한데…….”
서영풍이 명령을 미루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서른 명 대 일곱 명.
인원수로만 따져도 네 배가 넘었다. 패배하기가 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찝찝했다.
혈련수라종을 이끌고 온 수라객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독 그랬다.
그가 ‘어딘가에서 뭔가를 획책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결정이 늦어지고 있었다.
돌발적인 상황이 닥쳐 혼란스러워지거나, 느닷없이 습격을 당하게 되면, 그래서 인원수가 확 줄어들면 수적 우세는 사라질 테니까.
특히 수라객은 비도술의 달인이지 않은가.
광명이대가 크게 당한 걸 떠올려 보면, 수라객이 아닌 일반적인 혈련수라종 마교도들의 실력도 주의해야 할 게 분명했다.
그런 점들로 인해 서영풍은 결단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 순간.
단호한 한 마디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작지만 명료한 음성이었다.
서영풍이 그걸 똑똑히 듣고 방금 말한 사람을 찾았다.
아니, 산등성이에 있던 전투조 인원 모두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우선이 보였다.
단호하게 말한 사람은 진우선이었다.
이목을 자신에게로 집중시킨 진우선은, 흔들림 없는 명확한 눈빛으로 서영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라고? 뭐가 아니지?”
“저들은 나눠서 추적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흩어진 게 아닙니다. 골짜기에 일곱이 드러나 있고, 지금 보이지 않는 나머지는 양옆의 우거진 수풀에서 매복하고 있습니다.”
“매복이라고?”
서영풍이 골짜기 양옆을 보았다.
원래 골짜기는 물이 있기에 추적의 기본이 되는 곳이다.
지금 보이는 곳도 얕게 흐르는 산속 물길이 있어 그 이치에 꼭 들어맞았다.
그런 골짜기 양옆으로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진우선의 말대로 매복을 하고 있다면, 너무나 좋을 환경이었다.
“음…… 그 말도 일리가 있군.”
서영풍의 머릿속에 매복의 가능성이 더해졌다.
추적의 전문가만 드러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매복하여 움직인다. 그러다 누군가 다가오면 역습을 한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계책이었다.
다만 중요한 건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는 것.
서영풍이 매서운 어투로 물었다.
“확실한가?”
“네, 확실합니다. 수풀 속에서도 마기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대답하는 진우선의 목소리가 확신에 차 있었다.
“뭐라고? 마기를 느낀다고? 그게 사실인가?”
서영풍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숨고자 한 마기마저 느끼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고, 듣도 보도 못한 능력이었다.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이겠지만.
서영풍이 여태 경험했던 바로는, 그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에 진우선이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대답했다.
“제가 익힌 무공에 항마의 능력이 있습니다.”
“……!”
서영풍이 눈을 부릅떴다.
항마의 능력이라니.
‘항마(降魔)’는 말 그대로 마를 굴복시키는 데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마공을 상대할 때면, 매우 유리한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정도였다.
마기를 세밀하게 느낀다거나, 흔적마저 다 찾아낸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확신하고 있었다.
특히나 매복이라면 마기를 흔적이 거의 없게 숨겼을 것인데도, 그는 매우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진 소협.”
서영풍이 진우선을 부르면서 다가오더니, 두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진우선의 눈동자는 미동도 없었다. 완전한 사실만 말한 것처럼 보였다.
여태껏 한 말이 거짓이 아닌 듯했다.
‘사실일지도 모른다!’
서영풍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믿을 수 없는 일이며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 왠지 그럴 것만 같은 예감이었다.
‘사실이라면…….’
적이 매복해 있어도, 위치를 미리 알기에 기습할 수 있다.
예상된 적의 수보다 전투조의 인원이 더 많으니, 압승을 거둘 수도 있었다.
매복의 효과는 없어지며, 오히려 뿔뿔이 흩어져서 각개격파를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영풍이 진우선에게 물었다.
“나한테 확인시켜줄 수 있겠는가?”
“네, 가능합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면 조금만 가까이 가보시겠습니까? 저기쯤 가면 눈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지.”
진우선이 산비탈의 한 부근을 가리키자, 서영풍이 눈으로 확인했다.
“다들 여기서 기다려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 다녀온 서영풍의 입가에 미소가 어려 있었다.
***
“계획을 전하겠소. 현재 우리는 수적으로 유리하고, 적이 매복한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
전황이 매우 유리해졌다.
그렇다면 계획은 복잡할 필요가 없었다.
“총 세 무리로 나눕시다. 골짜기와 좌측, 우측으로. 수라객은 현재 좌측에 있는데, 내가 진 소협과 이쪽으로 먼저 향하겠소.”
서영풍이 방가장의 방 무사와 광명칠대의 대원 하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방 무사가 우측을 맡아주시오. 그리고 골짜기는 보이는 곳이니 자네가 맡게.”
“네, 알겠습니다.”
임무를 맡은 대원이 충심으로 대답했다.
방 무사는 대답을 하기 전에, 서영풍 뒤에 서 있는 진우선을 먼저 바라보았다.
“진 소협의 말이 사실이었군요.”
“맞소. 정확했소. 진 소협이 마교도들의 위치도 알려줄 것이오.”
“알겠습니다.”
방 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전투조에 속한 방가장의 무사들은 우측에 있는 수풀 속의 적을 상대할 것이다.
나머지는 골짜기와 그 좌측의 적을 상대할 테고.
서른 대 열다섯이라는 인원 차이가 이런 작전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수라객의 비도를 묶는 순간, 공세를 시작하기로 합시다.”
“네, 대주님.”
“알겠습니다.”
“각개격파를 마치면 빠르게 적의 수를 줄입시다. 혈련수라종의 무공이 마교도들 가운데서도 제일 패도적이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피해 없이 이길 수도 있을 것이오.”
그 말에 다수가 수긍했다.
피해 없는 작전.
생각한 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최상의 결과라 할 수 있었다.
“진 소협은 내가 수라객과 마주하면, 곧장 다른 이들을 도와주게나. 변동사항이 있다면 바로 살펴봐 주고.”
이번 계획은 진우선이 중심이었다.
진우선의 특별한 능력으로 세운 계획이며, 혈련수라종에서 변화가 있다면 바로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이 진우선밖에 없었다.
“진 소협, 여기에서 자네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 잘 부탁하네.”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두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