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49화 (49/225)

049.

#만만치 않은 임무 (1)

동이 틀 무렵.

정무맹의 무인들이 방가장의 대전 앞 넓은 뜰에 늘어섰다.

그들은 일제히 앞을 보고 있었다.

방가장의 총관이자 정무맹의 귀빈이었던 방약빙이 떠나기 전에 인사하고 싶다고 한 까닭이었다.

“소관에서의 일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더불어 지난 보름 동안 무탈하게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께서 밤낮없이 안전하게 호위해주신 덕분입니다.”

방약빙이 감사를 전했다.

차분한 색상의 격식 있는 옷을 입고 우아한 외모로 정중하게 말하니, 총관의 위엄이 절로 느껴지고 있었다.

아직 스물이 안 되었다던데, 그런 그녀의 나이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슬픔을 금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무사님들께서는 이제 바로 임무를 떠나신다고 들었습니다. 맹의 일이 곧 저희의 일이기도 하니, 방가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또한, 그들의 악행은 결코 좌시할 수 없기에, 저희 방가장도 힘을 보탤 것입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방약빙이 빠르게 말을 마치고,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바쁜 사람들을 오래 붙잡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러면서도 방가장의 입장을 다 전했다.

편치 않은 소식에 슬프고, 안전한 호위에 고맙고, 이번 일을 돕겠다고 했다. 모자람 없는 대답이었다.

방가장의 진심도 엿보였다.

이렇게 말한 것만으로도, 방약은 총관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고 보기 충분했다.

“총관님이 대단하시군. 결단이 이토록 빠를 줄이야.”

우문혁이 방약빙의 언행에 감탄하며 혼잣말을 흘렸다.

“혁이 너는 이렇게 될 걸 예상했었구나.”

진우선이 우문혁을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챘다.

“그렇소, 진 소협. 방가장은 그들의 터전인 광동에서 들려오는 혈련수라종의 극악무도한 행위가 탐탁지 않았을 것이오. 그러니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 예상했었소.”

우문혁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광동성의 방가장처럼 호남성에서 유명한 우문세가 출신이기에, 그는 방가장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다만 총관님의 결단은 제 예상보다도 정말 빠르오. 아까 말씀하신 모습을 보아하니, 이미 마음속으로는 어젯밤에 다 결정하셨던 거 같소.”

우문혁은 방약빙의 결정에 놀랐는데, 그중에서도 빠른 결단에 진심으로 탄복하고 있었다.

혼잣말로 “아직 약관도 안 되셨다고 들었었는데…….” 라고 중얼거린 것으로 보아, 자신과 비슷한 또래로 알고 있는 방약빙이 집안의 대소사를 혼자서 현명하게 대응했다는 것에 가장 놀란 모양이었다.

진우선은 왜 방가장이 방약빙에게 총관을 맡기고 힘을 실어주었는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그때 양지명이 진우선 일행에게로 다가오며 설명을 덧붙였다.

“방가장의 무사들이 소관까지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혈련수라종과 맞부딪칠 때도 힘을 보태겠다고 합니다.”

양지명이 방금 듣고 온 내용이었다.

이에 상관적이 반색했다.

“급히 충원되는 힘이라지만, 그분들까지 합세하면 혈련수라종의 암수에도 대처할 여력이 충분하겠군요. 든든합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진우선도 고개를 끄덕였다.

방가장의 힘도 더해진다면, 혈련수라종을 상대하기가 더 수월할 터였다.

임무의 성공적인 완수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이다.

“맞습니다. 이 근방에서 광명이대를 지원하러 갈 수 있는 게 저희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양지명은 당장 지원하러 갈 수 있는 게 광명칠대뿐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부담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는 소협들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가장 든든합니다.”

양지명이 슬쩍 미소 지으며, 호심당의 제자인 진우선 일행을 바라보았다.

이들은 꽤 여유 있어 보였다. 그게 양지명을 안심시켰다. 그의 말과 목소리에 꽤 안도한 느낌이 전해지는 게 그래서였다.

진우선이 멋쩍게 웃었다.

상관적이나 다른 이들도 표정이 비슷했다.

“그리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우선의 말에 양지명도 웃었다.

그러고는 주변을 보더니 출발을 알렸다.

“이제 가시지요.”

그러자 진우선 일행과 양지명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다들 잠시 긴장을 풀었을 뿐, 완전히 해소된 게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광명이 대를 구출하고 혈련수라종을 상대해야 한다.

방가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할 임무였다.

***

정무맹과 방가장의 무사들이 힘차게 길을 내달렸다.

그들은 빨랐다.

일전에 장사의 정무맹에서 광주의 방가장으로 올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때는 상행과 겸했기에 짐을 실은 마차의 빠르지 않은 속도에 맞춰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장기간 이동할 것을 대비할 필요도 없었다.

방가장의 힘이 광동 전체에 퍼져 있기에, 들르는 마을마다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빠르게 나아가기만 했다. 그거면 충분했다.

***

정오 무렵.

일행이 영덕현에 있는 방가장 소유의 장원에 도착했다.

영덕현은 방가장에서 소관까지 이어진 길의 중간쯤 되는 곳이었다.

또한, 선저정(船底顶)이라 불리는 산의 입구이기도 했다.

선저정은 아마도 광명이대가 몸을 숨기고 있으리라 추측되는 곳이었다.

“잠시 머물며 준비해주시오. 오후에는 바로 산에 들어가서 광명이대를 찾아야 하니.”

광명칠대의 대주인 서영풍이 장원에 들어서자마자 말했다.

그리고 광명칠대와 방가장에서 온 무인들 몇몇이 회의에 들어갔다.

장원의 식구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외상에 바를 금창약과 내상 입은 사람에게 쓸 요상단 등의 약은 물론이며, 산에서 필요한 필수품 들을 재빠르게 준비했다.

진우선이 그 짐을 챙겼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나왔다.

“광명이대 분들과 해가 지기 전에 만나야 할 텐데…….”

“진 소협, 나도 그게 걱정이오. 빨리 갈수록 도움이 될 텐데…… 산이 너무 넓소.”

우문혁이 진우선의 말을 받았다.

그의 시선은 장원 너머로 보이는 산에 닿아 있었다.

진우선도 우문혁을 따라 산을 바라보았다.

산이 꽤 높았고, 산자락은 방대했다.

산꼭대기가 배의 바닥처럼 평평하다고 해서 선저정(船底顶)이라는데, 그래서인지 산의 아랫부분까지도 매우 넓게 퍼져 있었다.

광명이대가 몸을 숨기기에 좋은 장소였다. 추적자가 있다면 찾기가 어려울 테니까.

대신 아군도 찾는 게 쉽지 않아 보였다.

우문혁은 그걸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표식만 찾으면 행적을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거야.”

상관적이 말했다.

진우선 일행은 아직 정무맹, 그리고 광명각의 표식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런 게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었다.

만약 표식을 남겼다면, 이번 구출 임무는 마냥 산을 다 헤집고 다니지 않아도 될 터였다.

그렇게 의견을 나누고 있을 때, 장원으로 두 사람이 급히 들어왔다.

“아! 오셨군요!”

광명칠대의 무인들이 두 사람을 알아보았다.

정무맹 광동지부의 사람들이었다.

“대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광명칠대의 무인 하나가 두 사람을 곧바로 안내했다.

잠시 후, 서영풍이 회의를 마치고 나왔다.

안색이 몹시 어두웠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보다 훨씬 심각해 보였다.

“방금 광동지부에서 소식을 전해 왔는데, 선저정의 동남쪽에서 광명이대의 표식이 발견되었다고 하오.”

선저정이 너무 넓어 걱정되었는데, 우려를 한 방에 날려버리는 소식이었다.

광동지부에서 선저정에 미리 발이 빠르고 추적에 능한 사람을 보내 탐색한 결과였다.

그걸 보니, 영덕현 근처라는 사실과 선저정 쪽이라는 사실도 광동지부의 재빠른 대처에서 나온 결과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랬구나!’

진우선이 감탄하며 임무의 과정 하나하나를 살폈다.

정무맹의 눈이 천하를 두루 살핀다더니, 과연 그런 말이 나올 만했다.

이는 호위 임무에선 크게 느끼지 못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정무맹의 뛰어난 능력에 마냥 감탄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이어진 서영풍의 한마디가 장내에 찬물을 끼얹은 까닭이었다.

“한데, 꼬리가 붙었소. 수라객이 혈련수라종의 절반을 이끌고 그들을 뒤쫓고 있소.”

위기였다.

혈련수라종의 절반이 추격하고 있었으니까.

서른 명의 혈련수라종 중 절반이니, 열다섯씩이나 뒤쫓고 있었다.

반면에 광명이대는 부상자를 포함하여 당장 낼 수 있는 전력이 오 할이니, 열셋 정도였다.

맞상대할 상황이 아니었다.

광명이대가 몸을 숨긴 채 이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래서 지금 광명칠대가 준비하고 있었다.

정무맹은 소속된 무인을 함부로 죽음에 내몰지 않는다. 소관에 곧바로 현청각의 무인들이 도와주러 온 것도 그래서였다.

놔두고 가면 죽임당할 게 뻔한 부상자와 함께 움직이는 광명이대.

그런 광명이대를 지원했던 현청각, 이제 그리로 달려갈 광명칠대.

그들은 모두 한뜻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정무맹의 의(義)였다.

“현재 소관에서는 현청각의 고수들이 혈련수라종의 나머지 절반을 잘 막아내고 있다고 하오. 그래서 우리는 광명이대를 구출하고, 그들을 뒤쫓던 혈련수라종의 절반을 격퇴할 것이오. 그런 다음에 곧장 소관으로 향하고.”

서영풍이 전략의 개요를 먼저 밝혔다.

진우선이 그의 말에 신중한 기색으로 귀를 기울였다.

혈련수라종이 추적하고 있다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을 지금 처음 들은 까닭이었다.

상황이 그만큼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모두 궤멸시킬 작정이었어!’

진우선은 즉시 혈련수라종의 목적을 알아챘다.

악독한 놈들이었다.

진우선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서영풍이 말을 이었다.

“이제 인원을 둘로 나누겠소. 구출조와 전투조로 나눌 것이오. 척 부대주와 방 무사는 아까 이야기했던 대로 해주시오.”

방 무사는 방가장의 무인들을 이끄는 책임자로 보였는데, 서영풍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방가장의 무인들을 두 조로 구분하기 시작했다.

척자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얼른 광명칠대의 무사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진우선 일행에게도 짧게 말했다.

“자네들은 네 명 모두 전투조로 가도록. 지명이 너도 함께다.”

“알겠습니다.”

이윽고 인원이 모두 분류되었다.

구출조는 총 열다섯 명이고, 전투조는 진우선 일행을 포함해 총 서른 명이었다.

전투조는 혈련수라종을 상대해야 하기에 두 배의 인원을 배정한 모양이었다.

전투조를 이끄는 건 광명칠대의 대주 서영풍이었다.

선저정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진우선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아까 챙겼던 약을 비롯한 짐은 구출조에 넘긴 채, 긴장한 표정으로 출발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서영풍이 전투조 전원에게 당부의 말을 건넸다.

“현재 선저정에 들어온 혈련수라종의 추격대는 수라객이 이끌고 있소. 그는 구련마장(九蓮魔掌)으로 유명하지만, 비도술 또한 매우 뛰어나다고 하오. 물론 수라객은 내가 맡을 것이오. 다만 비도는 내가 다 막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 점을 꼭 유의하시오.”

목소리가 자못 심각했다.

수라객이 그만큼 위험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혈련수라종을 격퇴할 수 있다면 그럴 거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구출이오. 구출조가 광명이대를 발견해서 구출할 때까지 혈련수라종의 발을 묶는 게 가장 중요하오. 맞붙게 된다면 수를 줄이는 것도 좋지만, 명심할 것은 반드시 아무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오.”

“알겠습니다.”

수라객의 장법도 무섭지만, 산에 들어가면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비도도 조심해야 했다.

서영풍은 그것을 꼭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전투조 전원을 둘러보았다.

진우선과 눈이 마주쳤다.

찰나였다.

그러더니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누가 눈치챌 새도 없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외쳤다.

“이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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