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5.
#상서로운 나무 (2)
[벽조목이구나. 그것도 살아있는 벽조목이야.]
검노야가 바로 알아보았다.
진우선이 몹시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스승님, 그렇다면 이게 벼락 맞은 흔적입니까?”
[그렇지.]
검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벽조목(霹棗木)은 벼락 맞은 대추나무다.
진우선이 본 시커먼 줄기도 불길에 타서 그런 게 아니라, 벼락에 타버린 것이었다.
“근데 벼락을 맞고도 용케 살아 있을 수가 있군요.”
진우선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탄하며 놀란 마음이 반이고, 믿을 수 없어 얼떨떨한 마음이 나머지 반이었다.
벼락을 맞으면 죽는 게 당연한 까닭이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데 그 무엇이 살 수 있겠는가.
그런데 눈앞의 나무는 살아있었다.
[허허! 나도 놀랍구나. 신비로워.]
검노야도 탄성을 흘렸다.
눈앞의 대추나무는 세상에 유일한,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존재였다.
[이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 경이롭구나. 기적이라 말할 수밖에 없겠어.]
진우선이 검노야의 말에 깊이 공감하더니, 문득 깨달았다.
“상서로운 기운이 산봉우리를 덮을 수 있었던 게, 이 벽조목이 이렇게 살아있음으로써 가능한 것인가 봅니다.”
진우선은 벽조목에 관해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지니고 있으면 요사스러운 잡귀를 물리친다고 했다.
그래서 상서로운 기운이 이와 연관되어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지. 벽조목이 되며 사특한 것들을 물리치는 힘을 얻었는데, 살아있기에 그 기운을 주변에 퍼뜨려 상서롭게 하는구나. 대단한 귀물이야.]
검노야와 진우선이 나무에 집중했다.
결국, 오래전부터 터가 좋다고 알려진 건 눈앞의 살아있는 벽조목 때문이었다.
“스승님, 기운도 매우 맑습니다. 수기와 목기가 절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이구나.]
진우선은 단전 속에 쌓아왔던 천지간의 기운들이 환호하는 걸 느꼈다.
수기는 어느새 벽조목으로 흘러들어 상서로운 기운을 더 진하게 농축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보낸 것 이상으로 되돌아오는 벽조목의 기운은 진우선의 목기와 섞여 한층 정순하고 단단해지는 중이었다.
기운의 순환이 얼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변화가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진우선은 가슴을 활짝 펴며 벽조목을 바라보았다.
몸과 마음을 열어 기운의 소통을 더 확장해나갔다.
온몸을 휘도는 수기와 목기는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렬하게 그걸 원하고 있었다.
그 순간, 검노야가 넌지시 조언했다.
[우선아. 나무의 기운이 상당하니, 편히 앉아서 하는 게 좋겠구나.]
“맞습니다! 그래야겠습니다.”
진우선이 검노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진우선의 눈이 감겼다.
곧, 진우선 주변으로 맑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 기운은 묵직하고 거센 파도가 되어, 진우선에게로 끊임없이 몰아쳤다.
[좋구나.]
검노야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진우선에게로 어마어마하게 몰려들어 소용돌이치는 목기를 보면서, 나직이 혼잣말을 흘렸다.
[이로써 목기의 형을 이루겠어.]
진우선에게 앉아서 기운을 다스리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벽조목의 기운을 통해 목기의 완성이 이루어질 테니까.
살아있는 벽조목을 마주했던 순간에 알아본 사실이었다.
[대견하구나.]
검노야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러더니 덩달아 바닥에 앉았다.
마주 보이는 진우선의 모습이 눈동자 안에 담겼다.
그러다 문득 검노야는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어쩌면……?]
의문일까, 예감일까.
그 즉시 고개를 들었다.
하늘이 보였다.
밤중인데도 맑고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별들은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때 별빛 중 하나가 검노야의 눈동자에 내려앉았다.
직전까지 진우선이 머물던 그곳은 이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형을 이룬다.
기운을 완성한다.
말로만 들으면 무엇을 표현하는 건지 알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진우선은 그걸 이전에 경험한 적이 있었다.
수기의 형을 이루고, 단전에 터를 잘 다져놓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우선은 그때가 기억났다.
그리고 검노야의 가르침도 떠올랐다.
[수기의 본모습을 인정하면, 네 안에 항상 채워져 있을 것이니…….]
말 그대로 수기의 본모습을 느껴서 알고 인정하니, 수기가 형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목기도 그러지 않을까?’
추측건대, 목기의 본모습을 인정하면 안에 항상 채워져 있을 것이다.
천지간의 기운은 다들 그럴 것 같았다.
제대로 느끼고, 제대로 알고, 그리하여 제대로 인정하기만 한다면.
‘제대로!’
이게 핵심이다. 그 핵심을 되새기며 진우선이 목기에 더욱 집중했다.
단전에서 솟구쳐 오르는 목기의 느낌이 혈도를 따라 온몸으로 번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외부에서 한없이 감싸고 있는 벽조목의 목기도 느껴졌다.
벽조목의 목기는 끝없이 외부에서 내부로 파고들었다.
이른바 내부의 목기와 외부의 목기였다.
벽조목의 목기가 혈도를 휘도는 진우선의 목기와 섞였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하고, 도왔다.
그러더니 움직임이 점점 강렬해졌다.
진우선은 약동하는 몸짓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몸 안에 스며든 천지간의 기운은 여러 종류였지만, 지금만큼은 목기만이 눈부시게 그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로 박자를 맞추고 소통하며 같은 호흡으로 움직이더니,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다.
곧 둘은 하나가 되었다.
이제 내부의 목기와 외부의 목기는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러면서 각각의 장점이 더해졌다.
내부의 목기는 진우선의 단전에 스며들며 내공으로써의 쓰임새가 있었고, 외부의 목기는 살아있는 벽조목이 가진 상서로운 힘이 있었다.
그게 융화되었다.
이제 목기는 하나였다.
그리고 진우선에게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나라고.
더 나아진 모습의 나라고.
‘그래. 너는 목기야.’
진우선이 인정했다.
그 순간.
펑-!
퍼퍼펑-!
내부에서 폭죽이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목기의 환호성이다.
거센 물결의 목기가 기뻐하며 온몸을 휘돌았다.
그러더니 머리 위로 솟구쳐 올랐다.
쑤우욱-!
마치 나무기둥이 쭉쭉쭉 자라나는 것처럼 기운이 치솟았다.
기둥에서 사방으로 줄기가 뻗어 나갔고, 수많은 나뭇가지가 자라났고, 잎이 솟아났다.
환상 같았다.
그러나 감각이 확장되고 있으니, 그 환상이 무작정 허상이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곧구나. 단단하고.’
확장된 감각이 그렇게 전해주었다.
형을 이룬 목기의 성질이었다.
그리고 그건 벽조목의 성질이기도 했다.
벽조목의 단단하고 굳건한 정도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데, 그게 벽조목의 목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더불어서 살아있으므로 생의 기운마저 품고 있었다.
바로 그때.
나무의 형상이었던 목기가 확 타오르더니, 어딘가로 쇄애애액- 쏘아져 날아갔다.
그리고 무언가로 스며들었다.
‘모닥불!’
눈을 감고 있지만 느낌이 왔다.
산봉우리를 감싼 벽조목의 기운이 다 알려주고 있었다.
‘목생화구나.’
놀라지 않았다. 수생목과 같은 현상일 뿐이었다.
목기는 형을 이루었으며, 진우선에게 그 존재를 인정을 받았다.
그렇기에 수기가 목기를 생하게 하듯, 목기는 화기를 생하게 하러 떠난 상황이었다.
이제 제 할 일을 찾아 나서고 있었다.
‘곧 보러 갈게.’
급하게 생각할 게 없었다.
처음 겪는 상황이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진우선은 차분히 형을 이룬 목기의 여운을 느꼈다.
그러면서 슬며시 눈을 떴다.
진우선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머금어졌다.
***
밤이 깊어가는 시각.
한 인형이 새까만 숲을 헤치며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곳에 누군가가 있었다.
“진 소협, 여기 계셨구려.”
“혁아.”
진우선이 우문혁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문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을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잘 시간이 지났는데, 자리에 안 계시기에 찾아왔소.”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보네. 슬슬 가야지. 근데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헤매지도 않았던데.”
“아! 본인은 진 소협께서 저녁에 이쪽을 살피던 걸 봤었소.”
우문혁은 진우선에 관심이 많았다. 어디에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는 기본적인 관심이었다.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우문혁은 항상 진우선을 의식하고 있었다. 친구여도 존경하는 까닭이었다.
그래서 산등성이를 넘을 때 진우선의 눈길이 이곳을 향하고 있음을 보았었다.
“그런데…… 본인이 오는 걸 알고 있었소?”
우문혁이 느낀 그대로 물었다.
“응, 맞아.”
그러면서 밤의 색깔보다 더 새까만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았다.
“이거 벽조목이거든. 이거 주려고. 너한테 한 조각 선물해도 된다고 하네.”
진우선이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쥐고 가볍게 흔들었다.
우문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선물해도 된다고?’
분명 나뭇가지를 진우선이 잡고 있는데, 말로만 살펴보면 나무에게서 허락 받았다는 말투였다.
“와서 봐봐.”
진우선이 머뭇거리는 우문혁에게 손짓했다.
우문혁이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살폈다.
“벽조목이 맞는 것 같소.”
확실했다. 그는 예전에 할아버지가 지니고 있던, 잘 다듬어진 손가락 두세 개 크기의 벽조목 조각을 본 기억이 있기에 판단할 수 있었다.
한데 눈앞의 벽조목은 그것보다 좋아 보였다.
짙은 검은빛에는 윤기가 흘러 별빛에 은은하게 빛났고, 향기도 맑고 그윽했다.
“어때? 좋지?”
“매우 좋소. 조부께서 액운을 막아준다며 벽조목 한 조각을 귀히 품고 다니시는데, 그것보다 좋아 보이오.”
“조부님께서?”
“그렇소. 벽조목은 매우 귀해서 구하기 어려운데, 운이 좋게 한 조각 얻으셨다고 들었소. 그 후로 조부님은 병마에 시달리신 적이 없고, 우리 집안은 화를 입은 적이 없다고 하셨소.”
우문혁이 할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때, 진우선이 나뭇가지 하나를 더 쥐었다.
“그럼 두 개를 꺾어가. 그래도 된대. 그럴래?”
“……혹시 누가 있는 것이오?”
“어?”
자꾸 누군가의 뜻을 대변하는 듯한 진우선의 말투에 우문혁이 반문했다.
그 순간, 진우선이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느껴진 것을 말하다 보니, 우문혁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보기엔 이 상황이 무척이나 괴이할 터였다.
“아! 이 벽조목은 살아있는데, 이야기를 듣더니 허락해준 거야.”
“진 소협! 설마…… 나무와 대화하는 것이오?”
“대화까지는 아니고, 그냥 알 수 있어. 뜻이 전해진다고 보면 맞겠지.”
“허-!”
우문혁이 차마 말을 잊지 못했다. 그러더니 곧 우문혁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역시 진 소협! 대단하시오.”
우문혁은 진우선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벽조목이 액운을 막아 주고, 요사스러운 잡귀를 물리칠 수 있다는 말도 사실이겠구려.”
“그럴 거야. 이 산봉우리를 감싼 상서로운 기운이 이 벽조목에서 나는 거니까.”
“아! 그래서!”
우문혁의 뇌리에 산등성이를 넘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진우선이 상서로운 기운을 주목하지 않았던가.
그게 이 나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니!
“진 소협, 고맙소.”
우문혁이 진심어린 목소리로 고마움을 표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더니 쥐고 있던 벽조목 나뭇가지를 꺾었다.
“자, 받아. 조부님이 가지신 것보다 지금 얻은 게 더 좋을 거래.”
“아!”
우문혁이 탄성을 지르며 나뭇가지 두 개를 건네받았다. 확실히 손에 쥐어 보니 신령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우문혁이 놀라는 사이, 진우선도 자신의 몫으로 가느다랗고 길쭉한 나뭇가지 하나를 꺾었다.
아직 남아 있는 산길에서 지팡이로 쓰기 딱 좋은 모양이었다.
“고맙습니다.”
진우선이 나뭇가지를 다 챙긴 뒤 벽조목을 향해 감사를 올렸다.
그러자 우문혁이 덩달아 벽조목을 바라보며 허리를 숙였다.
“저도 고맙습니다.”
둘이 그렇게 인사를 하고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
진우선은 왠지 모를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우문혁도 함께 행동했다.
두 사람이 벽조목을 바라보았다.
휘잉-!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나무는 굳건한데 나뭇가지만 살랑살랑 움직였다.
‘잘 가.’
그 모습이 마치 떠나는 사람을 위한 손 인사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