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4.
#상서로운 나무 (1)
출발은 순조로웠다.
의장현에서 이어진 길이 평탄한 데다가, 비도 오지 않았다.
마차의 속도가 늦춰질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련주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산길로 가야 하는 까닭이었다.
산에서 산으로 이어지는 비탈길은 경사져 있었고, 똑바로 나 있지도 않았다.
마차의 속도가 이전보다 느려졌다. 빠르게 나아가지를 못했다.
련주를 통하는 길이 소관을 거쳐 가는 것보다 이틀 정도 더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방가장의 주인은 그 길을 알면서 택한 것이며, 다른 이들도 예상 못 한 사람이 없었다.
대신 이 길을 가면 마교도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이 중요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길이 힘들어도 꾸준히 나아갔다.
“별일이 없다면 닷새 정도 후에는 방가장에 도착할 예정이라는군요.”
“닷새군요.”
“알겠습니다.”
양지명의 말에 진우선 일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묵묵히 산을 넘어갔다.
***
사흘이 지났다.
일행은 여전히 산길을 가고 있었다.
산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길은 이리저리 꼬불거렸다. 오르락내리락도 셀 수 없었다.
인적도 느껴지지 않았다.
련주를 떠난 첫날 밤에나 양산현에 들렀을 뿐이었다.
어제부터 마을은커녕, 누군가를 마주치는 일 자체가 없었다.
“길이 외지고 험하지요? 이렇게 가는 일이 익숙하지 않으실 텐데, 그래도 잘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지명이 함께하는 진우선 일행에게 물었다.
“감사는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임무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걷는 것만으로 임무의 완수에 가까워지고 있으니, 오히려 훨씬 부담이 덜해서 좋습니다.”
“상관 소협께서 그리 말해주시니 저도 마음이 한결 놓이네요.”
상관적의 대답에 양지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적이 없는 산길을 가는 게 쉽지 않지만, 바꿔 말하면 적도 마주 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임무가 잘 풀리고 있었다. 우문혁도 한마디 거들었다.
“길도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예전에 사천에 다녀온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거기에 비하면 훨씬 낫네요.”
“아! 사천을 다녀오셨었군요. 그렇죠. 거기는 아주 고역입니다, 고역.”
양지명이 ‘사천’이라는 말에 반응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몹시 험했던 산과 협로가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몸서리쳐질 정도였다.
사천에 갈 때와 비교해보면 지금 가고 있는 광동의 산길은 양호했다.
일행은 그렇게 사흘째 이어진 산 길을 계속 나아갔다.
하늘에 석양이 깔릴 무렵.
이윽고 양지명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이제 오늘도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저 산등성이 너머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라는데, 방가장 분들이 종종 찾으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 산길은 방가장이 가끔 이용하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루에 얼마만큼 나아가야 할지,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 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양지명은 지금 막 그것을 듣고 온 참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는 노숙을 하겠군요.”
상관적이 오늘 밤을 어떻게 맞이 할지 알아챘다.
“맞습니다. 여기는 인적도 없고 주로 이용하는 길도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합니다. 첫 임무이시니 노숙도 처음이실 텐데,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양 대원님께서 미안하실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딱히 상관없습니다. 저는 노숙도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양지명이 미안한 기색을 보이자, 상관적이 재빨리 손을 가로저었다.
일행은 어제 폐가가 된 정원에서 머물렀었다.
그곳은 담벼락이 있고 바닥이 있고 물이 있어, 편하다고 말하기 어려워도 하룻밤을 지내기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노숙은 그보다도 못했다.
차가운 밤공기와 새벽이슬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으니까. 불편한 건 당연하고, 잠을 설치는 것도 예사였다.
양지명은 예전에 호심당의 제자들을 맞이하면서, 이런 이유들로 불평과 불만을 받아냈던 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양해를 구하는 말을 먼저 한 것이다.
“저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문혁도 대수롭지 않아 하며 호기롭게 웃고서는 말을 이었다.
“노숙이라면 땅을 침상 삼고 하늘을 이불 삼고서, 별을 보며 잠드는 것이지 않습니까?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광동으로 가는 여정에서 강호를 온몸으로 느끼는 귀한 기회이니 오히려 반갑기만 합니다.”
강호(江湖)는 강과 호수인데, 크게는 천하를 뜻하는 말이었다.
우문혁은 그렇게 하늘과 땅과 별을 언급하며 자신이 가진 낭만을 표현하고 있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우문 소협.”
양지명이 덩달아 웃었다.
우문혁의 말을 들으니 미안한 마음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선두는 이제 꼭대기를 넘어서기 시작하네요.”
상관적이 산등성이를 보며 말했다.
그 말에 진우선 일행이 다 같이 전방을 바라보았다. 행렬의 선두가 어느새 가까워진 고갯마루를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오늘의 끝이 가까워졌음을 느낀 것이다.
한데 그런 일행들과 약간 다른 표정의 사람이 있었다.
진우선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진우선의 얼굴도 밝은 건 마찬가지인데, 다만 눈동자에는 의문이 가득 떠올라 있었다.
‘오후부터 점점 더 상쾌해지고 있어. 왜 그런 걸까?’
미약하게나마 느껴지는 기운이 있는데, 그 기운의 맑고 시원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짜릿한 청량감마저 들었다.
무슨 기운일까?
도대체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궁금증이 마구 일었다. 호기심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너머인 것 같은데…….’
산을 오를수록 기운이 짙어지고 있으니, 분명 산 너머에 무언가 있으리라.
더 이상 의문을 참지 못한 진우선이 곧바로 물었다.
“혹시 산등성이 너머는 어떤 곳입니까? 특별한 게 있습니까?”
“주변이 봉우리로 둘러싸여 있어 외풍이 적은 곳이라고 합니다. 신선이 잠시 머물다 갔다는 전설도 있다던데, 대대로 상서롭다 여기는 곳이라더군요.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편히 잘 수 있고, 상쾌한 아침도 맞을 수 있을 거라고 들었습니다.”
양지명이 회의에서 듣고 온 바를 말해주었다.
그건 진우선이 질문했던 의도와는 좀 달랐다. 그는 단지 노숙하는 곳이 어떤지 묻는 줄 알고 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상서롭다’는 말 하나가 진우선의 의문에 답이 되는 까닭이었다.
“그렇군요. 말씀하신 것처럼 확실히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집니다.”
“어? 정말입니까? 그게 느껴지셨습니까? 다들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라며 농담 섞어 말한 줄 알았는데요…….”
역으로 양지명이 물어왔다. 그는 믿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때, 우문혁과 상관적이 동시에 감탄을 표했다.
“오! 진 소협이 그렇게 느낄 정도라면, 확실히 터가 좋은 거 같소.”
“진짜야? 그럼 오늘 밤 노숙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그들 두 사람도 양지명처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우선이 확신하듯이 말하니, 태도를 바꿔 진실처럼 받아들였다.
그에 진우선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반응들이 그래? 부담스럽게.”
그러자 우문혁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진 소협이 거짓을 말할 리 없지 않소? 그리고 난 진 소협을 신뢰하오.”
“나도 그런 편이야. 우선아.”
우문혁과 상관적 두 사람에 이어, 민연하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말수가 적고 다소 소극적이지만, 진우선에게 신뢰를 보내는 일에는 뜻을 표하고 있었다.
“오호!”
탄성을 흘린 양지명이 분위기에 올라탔다.
“소협들께서 이리 말씀하실 정도면, 노숙할 곳이 확실히 터가 좋은가 봅니다.”
“네. 우선이는 허튼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으니, 분명 그럴 겁니다.”
상관적이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그들의 대화에 진우선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는 사이, 이들도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그러자 분지처럼 생긴 지형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군요.”
상관적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봉우리들로 둘러싸인 분지 안쪽은 나무로 울창했는데, 한가운데에 길이 쭉 뻗어 있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왼쪽에 커다란 원형의 공터가 있었는데, 이곳이 목적한 장소였다.
일이백 명이 쉴만한 크기였다.
“방가장에서 몇 분이 자리 잡고 계신 걸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양지명이 동의를 표했고, 다른 일행들도 그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우선의 시선은 그곳을 향하지 않았다.
공터 반대편.
울창한 나무숲의 한가운데에 단연코 시선을 끄는 게 있는 까닭이었다.
‘저 나무였어!’
여태껏 느껴온 청량한 기운이 그 커다란 나무에서부터 나오고 있었다.
공터의 사람들은 분주했다.
몇 명은 오래된 모닥불 터에 불을 피웠고, 다른 이들은 마차를 천으로 이으며 바람을 막는 구조를 만들었다.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있었고, 잘 곳을 만드는 자들도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노련하고 능숙하여, 어수선한 게 전혀 없었다.
한데 그건 진우선 일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협들께는 제가 알려드릴 게 별로 없군요.”
“이 정도는 거뜬합니다.”
양지명은 감탄했고, 상관적은 어깨를 으쓱했다.
노숙을 배웠다는 우문혁은 물론이고, 진우선도 행동에 막힘이 없었다. 민연하 역시 수월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이만하면 이들도 노숙 경험이 꽤 있는 숙련자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진우선 일행이 준비를 마친 후, 함께 식사도 끝냈다.
“불침번은 방가장의 무인들께서 수고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내일 밤이면 청원현에 도착할 것이며, 그곳은 방가장과 하루 거리의 마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만 노숙하면 된다고 합니다.”
“오! 듣던 중 좋은 소식입니다.”
상관적의 말에 양지명이 가볍게 웃었다.
“취침은 대략 한 시진 후쯤에 이루어질 겁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양지명이 일정을 알렸다.
그 순간 진우선이 뜻을 정했다.
‘얼른 다녀와야겠어!’
이런 일정이라면 따로 나무를 볼 기회가 없을 테니까.
잠시 후.
진우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숲으로 향했다.
걸음걸음마다 크게 호흡하니 천지간의 기운이 몸에 들어찼다.
그러기를 몇 번 했을까.
곧 숲의 한 장소에 도착했고, 홀로 우뚝 선 커다란 대추나무를 볼 수 있었다.
‘이 나무다!’
진우선은 나무를 올려다보며 확신했다.
정말 큰 대추나무였다.
그 밑동은 서너 사람이 두 팔을 다 펼쳐도 과연 껴안을 수 있을까 싶고, 나무줄기도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어 나가 있었다.
그 위용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
진우선이 감탄을 흘렸다.
대추나무에서 쏟아지는 청량한 기운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끝없는 전율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득히 높고 한없이 거대한 폭포에서 물이 온몸을 때리는 느낌이랄까.
이 정도쯤 되니 산봉우리 전체를 자신의 기운으로 감싸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목기가 밀려들어온다!’
온몸이 짜르르 울리고, 황홀감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그 짜릿함 속에서도 정신을 붙잡았다.
그러자 나무에게서 오는 목기가 내력으로 스며들었고, 가진 내력을 한층 더 단단하고 밀도 있게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엄청나구나!’
무한한 감탄을 흘리며, 진우선이 나무를 바라보았다.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어스름한 달빛에 무언가가 보였다.
굵은 줄기 하나가 쩍 갈라져 있었는데, 그 속에 새까맣게 그을린 부분이 있었다.
진우선이 손을 뻗었다.
손끝으로 만져보자 까슬까슬한 게 느껴졌다.
숯덩이 같았다. 불에 확 타서 시커메진 것일까.
그러던 중, 나무의 박동이 미약하게나마 전해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살아있어?”
그때, 검노야의 음성이 들렸다.
[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