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42화 (42/225)

042.

#남다른 실력의 소유자 (1)

마차들이 관도를 따라 장사를 출발하기 시작했다.

총 열 대의 마차 행렬이었다.

그들의 소속을 알리는 깃발은 두 개였다.

하나는 방가장의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정무맹의 것이었다.

열 대 중 한 대는 방가장의 귀빈을 태운 마차였고, 짐마차를 비롯한 마차들 아홉 대가 그 뒤를 따르는 모양새였다.

그런 마차 행렬을 중심으로, 방가장의 무인들이 전후좌우에서 에워싸듯 보호했다. 그들의 익숙해 보이는 모습은 노련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마차 사이사이로는 정무맹의 무인들이 두셋씩 위치했다. 그 덕분에 전체적인 대형이 더 촘촘해 보였다.

이 정도면 호위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하지만 모두가 다 숙련되어 보이는 건 아니었다.

마차 행렬의 후미에서 따라가고 있는 네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해 보였다. 초행길에 나선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진우선 일행이었다.

“다들 낯설어하시는군요. 하지만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이번에 일결제자가 되시고 첫 임무로 오셨으니, 오히려 그게 당연합니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한 사람이 그들을 다독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보니 호칭으로 어려워하시는 경우가 많더군요. 소협들께서는 저를 편히 양 대원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양 대원님.”

양 대원이라 자신을 소개한 남자의 이름은 양지명이었다.

양지명은 서른 즈음으로, 광명각 칠대의 대원이었다.

그는 칠대의 다른 대원들에 비해 언행이 부드럽고 친절한 편이었다.

그래서 임무 간에 호심당의 제자들과 함께해야 할 때면 그가 전담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지명은 이번에도 호심당 제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맡았다.

상당히 능숙하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광명칠대는 이번에 정무맹의 귀빈인 방가장의 총관님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참고로 호위 대상인 총관님은 방가장의 장녀이십니다. 이 점을 특별히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양지명은 정무맹 광명각 칠대를 줄여서 광명칠대라 부르고 있었다.

아무튼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점인, 호위 임무의 목적을 일결제자들에게 상기시켰다.

“혹시 아까 마차에 가장 먼저 타신 분이 총관님이십니까?”

“조금 전에 보셨군요. 맞습니다. 가장 먼저 타신 분이 방약빙 총관님이십니다. 그분이 이번 호위 임무에서 제일 중요한 귀빈이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상관적의 대답과 동시에, 진우선과 우문혁, 민연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임무 대상을 명심했다는 뜻이었다.

양지명이 행렬을 따라 걸음을 옮기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우리는 그분을 모시고 광동성 광주까지 호위하면 됩니다. 관도를 따라 약 이천 리 길을 가는데, 보름 정도 걸릴 거 같네요. 왕복으로 보면 한 달 정도 소요될 테니, 소협들께서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한 달 후에 맹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양지명이 호위 대상에 이어, 호위 기간과 목적지를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짧고 명확하여 이해하기가 좋았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군요.”

상관적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는 건, 변고를 의미했다.

호위 임무에서는 당연히 호위 실패를 의미할 테고.

“맞습니다. 그게 호위의 목적이며, 저희에게 맡겨진 임무이지요.”

양지명이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문혁이 신중하게 말을 더했다.

“최근에 강서성 쪽에서 맹에 큰 승전보가 전해졌다고 들었습니다. 천마교에서는 전세를 뒤집을 기회를 엿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자세히 알고 계시는군요. 부대주님도 그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호남성과 광동성은 정무맹과 방가장의 위세가 매우 큰 곳이라 우리를 상대로 경거망동할 자들이 거의 없겠지만, 천마교는 이해할 수 없는 족속이니까요.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천마교의 소행일 확률이 높겠습니다.”

매우 진지한 음성으로 상관적이 말했다.

약 한 달간의 임무는 정확한 예측이 존재할 수 없는 실제 상황이었다.

진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문혁도 그러했다.

“임무란 건 역시 실전이군요.”

“맞습니다. 임무가 늘 그렇지 않겠습니까? 북쪽으로 갈 때면 사도련이 조심스럽고, 남쪽으로 갈 때면 천마교와의 충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동쪽과 서쪽에서는 그들을 다 만날 수 있고, 산적과 수적도 있죠.”

“쉽지 않겠네요.”

“그렇지요. 하나도 쉬운 게 없습니다. 하지만 또 쉬우면 임무가 아닐 겁니다.”

임무를 받는 처지에서 보면, 정무맹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어디든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지명의 말대로, 그래서 임무가 있고 잘 수행할 필요가 있었다.

양지명은 대화를 나누던 상관적과 우문혁을 한 번씩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호심당에서 오신 분들은 다들 뛰어난 실력을 지니신 고수이시더군요. 소협들께서도 마찬가지일 테니, 충분히 잘 해내실 겁니다. 저는 그저 소협들께서 이번 임무의 중심이 귀빈의 호위라는 것만 잘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상관적과 우문혁이 대답했다.

양지명은 한 걸음 물러서 있는 진우선과 민연하를 향해서도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를 정확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진 소협과 민 소저께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과 민연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양지명은 처음 만나는 호심당의 제자들과 분위기 좋게 대화를 텄다.

진우선 일행도 왜 양지명이 안내를 맡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진우선 일행이 마차 행렬에 조금씩 녹아들기 시작했다.

***

마차 행렬은 빠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다.

딱 적당하다 할 만했다.

낮 동안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면, 해 질 무렵에는 하루 머물고 갈만한 마을에 도착했으니까.

애초에 대략 하루 거리의 위치마다 마을이 세워진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그렇게 엿새가 흘렀다.

촤아아아-!

요란한 빗소리가 아침을 두들겼다. 물방울이 땅에 부서지면서 아우성쳤다.

한밤중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칠 줄 모른 채, 오히려 더 거세져 있었다.

그 빗소리가 사람들을 잠에서 깨웠다.

진우선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쏟아지네.’

진우선은 우두커니 의자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산등성이가 저 멀리에 흐릿하게 보이고, 그마저도 짙은 운무로 가려져 있었다.

그 모습에 진우선은 살며시 미소지었다.

창밖의 광경은 또렷하지 않건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적당한 안정감을 전하고 있었다.

‘멋있네.’

아침 풍경이 꽤 운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신기했다. 딱히 피로가 남아 있던 것도 아니지만, 비가 내리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더 샘솟는 기분이었다.

‘수기구나.’

수기가 천지간에 충만하니,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몸 전체로 숨 쉬며 피부가 호흡하는 듯했다.

이를테면 수기가 온몸을 적시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들의 충만함을 느끼게 되면…… 이렇겠구나.’

수기만 이런 게 아닐 것이다.

목기, 화기, 금기, 토기.

전부 이와 같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다만 아직 만나지 못했을 뿐이겠지.

그때였다.

“진 소협, 일어나시었소?”

방 밖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문혁의 목소리였다.

“응, 깨어 있어. 들어와도 돼.”

허락을 받고 방 안에 들어온 우문혁은 진우선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걸 알아챘다.

“진 소협도 비가 내리는 걸 보고 계셨구려. 빗줄기가 예사롭지 않소. 이리 쏟아질 줄이야.”

“맞아. 너무 심해서 오늘은 출발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어.”

“안 갈 것이오.”

우문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소. 비가 이 정도로 계속 오면 마차도 사람도 나아갈 수가 없소. 길 위에 발이 묶이게 되오. 그러면 안 가느니만 못하오.”

우문혁은 확신에 차 있었다. 어릴 적에 숙부들을 따라 상행하러 다닌 경험에서 나온 확신이었다.

그리고 우문혁이 확신한 대로 출발이 연기되었다.

진우선과 우문혁이 객잔 일 층에 내려와 일행을 만나서 식사를 할 때 양지명이 찾아와 말했다.

“비가 쏟아져서 길을 나서는 게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주님과 총관님께서 여기 의장현에서 더 머무르기로 하셨습니다. 비가 언제 그치는지 봐야겠지만, 일단 오늘은 출발하지 않을 거라고 합니다.”

“아! 역시.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마침 저희도 비가 꽤 거세다고 말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렇지요. 어쨌든 오늘 하루는 자유롭게 보내셔도 됩니다. 다만 너무 멀리 가지는 마십시오. 그럼 저는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습니다.”

상관적의 말에 양지명이 씨익 웃으며 당부를 건네고 돌아갔다.

진우선 일행의 식사가 다시 이어졌다.

잠시 후.

상관적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아침을 다 먹은 모양이었다.

“다들 잘 먹었지? 일단은 혁이가 예상한 대로 오늘은 쉬게 되었는데. 아까 들은 것처럼 자유롭게 보내기로 하자.”

“네.”

진우선과 우문혁, 민연하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조장인 상관적이 그렇게 조원들에게 명확히 방침을 전한 뒤, 곧이어 개인적인 질문을 던졌다.

“우선아. 혹시 너는 뭐하면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야?”

“상관 형. 저는 수련을 할까 생각 중입니다.”

진우선의 대답에, 우문혁이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진 소협은 그리 말할 줄 알았소.”

우문혁이 미소 지었다. 상관적도 반색하며 기대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오! 우선아. 그렇다면 비무를 한 번 부탁해도 될까?”

“비무요?”

진우선이 다소 당황하며 되물었다.

상관적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그의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지만, 갑자기 무슨 비무란 말인가.

우문혁도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상관적에게 바로 질문을 던졌다.

“상관 형은 얼마 전 시험 때 진 소협과 비무하셨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때 비무하며 우선이에게 많이 배웠고, 많이 자극받았어. 그래서 오늘도 그때처럼 더 많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진심 어린 상관적의 말이었다.

그에 진우선은 거절하지 않았다.

“네, 알겠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비가 이렇게나 많이 오는데, 비무할 만한 곳이 있겠습니까?”

“아! 정말 고마워. 장소는 아침에 객잔을 둘러보다가 발견한 곳이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네.”

진우선이 미소로 답했다.

그때 갑자기 우문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매우 진지한 얼굴로 진우선에게 포권하며 정중하게 말했다.

“진 소협. 혹시 무리가 안 된다면 본인에게도 비무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소?”

“어? 혁이, 너도?”

“그렇소. 부탁드리오.”

“어, 그래.”

진우선은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우문혁의 부탁도 받아들였다.

어차피 장소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비무도 좋은 수련 방법 중 하나인 까닭이었다.

“진 소협, 본인에게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오.”

우문혁이 감격하며 고마움을 드러냈다.

그렇게 대화가 오가던 중.

“저기…… 진 공자. 저도 가능할 까요?”

“……!”

그 순간,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말이 들려온 곳으로 쏠렸다.

말한 사람은 민연하였다.

진우선과 우문혁, 상관적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민연하가 지금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를 밝히고 있어서였다.

그녀는 여태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며 대화한 적이 없었고, 임무든 숙식이든 그 무엇에서도 호불호조차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원체 말수가 적은 데다가, 주변과 친해지는 걸 불편해한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때, 진우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민 소저도 가능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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