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40화 (40/225)

040.

#첫 임무를 받다 (1)

대정관 입구가 붐볐다.

강론을 듣기 위해 일결제자들이 모두 모여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이 모이니 대화가 피어났다.

친한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제는 다들 비슷했다.

첫 시험.

즉, 비무에 대해서였다.

시험일로부터 닷새가 지나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는 자리였기에, 그게 가장 큰 이야깃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 중에 네다섯 번째 비무에 올라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줄이야…….”

“나도 충격 받았네. 내 공부가 이토록 부족했나 싶더군. 무력감마저 들었네.”

“나 역시 마찬가지야. 이렇게 좌절될 줄은 몰랐어. 너무 비참하고 분해서 잠도 통 못 잤어.”

그들의 목소리와 말투에서 당황스러운 감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받아들이기 어렵고 속상한 마음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호심당에 오기 전에는 다들 각자 속한 무관이나 문파에서 최고라 불리던 이들이었으니까.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각자 자신의 무공에 자신 있던 사람들이었다. 종종 남들보다 특별하다고도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호심당에서 그들은 평범한 일결제자 한 명에 불과했다.

이번 비무를 통해 더는 특별하지 않음을 몸으로 겪으며 알게 된 것이다.

“천효, 자네는 어떤가? 나는 자네가 세 번째 비무에서 패한 것이 믿기지 않네. 분명 한 손에 꼽힐 실력이라 생각했는데.”

“하아-! 나는 잘 모르겠네. 그저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만 느꼈어.”

특히나 무공실력에 자신이 있던 봉천효는 더 큰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마음이 크게 꺾여서 말마저 아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패배감을 극복한 이들도 있었다.

상관적이 그들 중 하나였다.

“나는 이번 비무를 통해 많이 배웠다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익숙한 방식으로 수련하기만 했을 뿐이란 걸 깨달았지. 난 어느새 무공을 처음 배웠을 때의 기쁨과 치열함을 잊고 있었어.”

“대단하네. 적이 너는 그 상황에서 오히려 자극을 받았구나.”

“맞아. 좋은 경험이었어.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지. 그리고 여기서 좌절할 게 아니라, 더 정진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다짐했어!”

상관적은 비무에서 패한 뒤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았다.

사실 상관적은 시험이 있기 전까지 일결제자들 사이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했다. 다섯 손가락 안에 항상 꼽히던 사내였다.

본인의 생각도 그러했고, 호심당의 무사부들 역시 그럴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상관적은 세 번째 비무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상대가 진우선이었던 까닭이다.

모든 제자 가운데 최고가 된 진우선을 세 번째 비무에서 만났고, 상관적은 패했다.

기대했던 것보다 초라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관적은 속상해하지 않았다.

“진우선은 나보다 뛰어났네. 그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결과지.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밖에 패하지 않았어. 또한, 언젠간 반드시 진우선을 뛰어넘을 거고!”

상관적은 담담히 승부의 결과를 받아들였고, 전의를 가다듬는 계기로 삼았다.

“그래. 적이 넌 할 수 있을 거야.”

“나도 더 노력해야겠군.”

“무사부님께 더 많은 가르침을 내려달라고 말씀드려야지.”

상관적과 함께 있던 제자들은 저마다 의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끼리끼리 모이는 것인지, 그들 역시 상관적처럼 강한 호승심과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듣자 하니 만총은 정무맹의 전대 장로였던 벽력신창 탁 대협께 창을 가르침 받았다더군.”

“허! 벽력신창!”

“어쩐지……. 창 솜씨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이들은 만총을 시작으로, 이번 비무를 통해 드러난 뛰어난 일결제자들의 정보도 나누기 시작했다.

“노종해는 다들 봤으니 알겠지만, 무당파의 적전제자(嫡傳弟子, 적통을 잇는 제자)라네. 천마교와 맞서는 데 정무맹과 무당파가 뜻을 모으면서, 그가 호심당에 오게 되었다더군.”

“강호를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경험하라는 뜻이겠지.”

“무당파라면 지난번에 천마교의 마두들에게 암습을 당했지 않은가. 쯧쯧쯧! 딱하군.”

“맞네. 그건 정말 안타까웠던 일이지.”

“상심이 컸겠어.”

“한데, 그럼 노종해는 그런 와중에도 이만한 결과를 냈다는 말이 되는 건데…… 심지도 강한 모양이군.”

노종해는 네 번째 비무까지 올랐다가 만총에게 패한 사내였다.

하지만 그때까지 버틴 사람이 불과 네 명밖에 안 되니, 노종해 역시 한 손에 꼽히는 뛰어난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화설옥 소저의 검은 매서워 보였네. 강한 기세를 뿜어내면서도 힘의 배분이 어찌나 적당한지 놀라울 정도였어.”

“자네도 그렇게 느꼈나? 나도 비슷해. 그녀의 검은 너무 정확해서 섬뜩할 정도로 결점이 없어 보였다네.”

“맞아. 그래서 난 화 소저가 우리 중 최고가 될 줄 알았어. 그녀의 검법은 쉽게 패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

화설옥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그녀가 완전무결한 검법을 추구하는 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느껴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진우선이 이겼지.”

“신공절학이더군. 현기가 가득하니 정종무공이 진수가 이렇구나 싶었네.”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진우선으로 옮겨갔다.

“난 그가 목제자라 불릴 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호기심에 독행관에 구경까지 다녀온 한 사내의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소문이 있었지. 원단이 되기 직전에 벌어진 형산파 사태 때 대제자 맹두고 대협을 제압하며 가장 큰 역할을 했다지. 신공절학을 펼치면서 말이야.”

“그랬었나? 난 왜 못 들었지?”

“이게 딱히 퍼뜨릴 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때, 무리 중 누군가가 상관적에게 물었다.

“적아. 네 상대였잖아. 상대해 보니 어땠어?”

“힘들었네. 내 공격에 담긴 내력이 적지 않았는데, 그는 단단한 벽 같아서 빈틈조차 없었어. 게다가 검초는 어찌나 기묘한지 모르겠더군. 상대하는 내내 ‘이게 정녕 가능한가’ 싶었다네. 그리고 마지막에 날 꺾은 검초는…….”

상관적이 말끝을 흐렸다.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자 몸서리 나고 있었다. 눈가도 잘게 떨려왔다.

“…….”

말문이 막혀서 힘겹게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일결제자들은 숨죽여가며 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정말 끔찍했네. 비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죽는구나’ 싶었을 정도로.”

“…….”

“…….”

상관적이 간신히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 경험담에 다른 이들은 말을 함부로 잇지 못했다.

사실 상관적이 그들 무리 가운데 가장 뛰어난 실력자인데, 저리 말할 정도라니!

“무시무시했던 모양이군.”

그들은 섬뜩함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올랐다. 각자 진우선의 검 앞에 서 있다고 가정하니, 벌써부터 위축되는 듯했다.

상관적이 말을 덧붙였다.

“맞아. 그랬지. 압도되었어. 그는 아예 다르더군. 보는 대로 판단하면 필패네.”

“장난 아니군.”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비무를 청해 보라고 권하고 싶군.”

“그래?”

“이제야 이해되는군. 적이 네가 이렇게 크게 자극 받은 이유가 있었어.”

“맞아.”

바로 그때였다.

장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

수군거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한 사람이 걸어오는 까닭이었다.

청색 무복을 갖춰 입은 사내가 검 한 자루를 들고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진우선이었다.

진우선이 걸어가자 다들 대화와 행동을 멈춘 채 바라보았다.

“…….”

진우선이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이럴 땐 빨리 걸어서 얼른 대정과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을 터였다.

하지만 상황은 생각과 달랐다.

불쑥 다가온 한 사람 때문이었다.

“우선아, 반가워.”

“아!”

진우선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을 보더니 인사를 건넸다.

상관적이었다.

“상관 형이시군요.”

상관적은 열일곱, 진우선은 열여섯이었다. 상관적이 한 살 더 많기에, 진우선이 그에게 형이라 부르고 있었다.

“응, 우선아. 비무 끝나고 닷새 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상관적이 진우선의 옆에 바싹 붙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화에 물꼬를 트고, 함께 대정관으로 들어가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몇 사람이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상관적처럼 진우선에게 말을 걸고 싶었는데, 선뜻 나서지 못한 데서 나오는 탄식이었다.

***

석자풍이 대정관에 들어섰다.

그리고 강론에 앞서 진우선의 이름을 먼저 불렀다.

“진우선. 첫 시험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인 것을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부당주님.”

“무공이 정심하고 올곧더군.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라네.”

진우선이 석자풍의 칭찬에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석자풍은 그렇게 강론의 서두를 열며 지난 시험에 대한 총평을 전했다.

“여러분들이 각자 자신의 실력을 잘 발휘하여 비무에 임해준 것에 고맙네. 다들 공부가 깊은 까닭에 비무를 주관하면서 많이 감탄했다네.”

석자풍이 그렇게 운을 떼며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

우문혁은 자신의 왼쪽에 나란히 앉은 진우선과 만총을 보고 있었다.

‘내 옆에 최고가 있었어!’

우문혁의 눈에서 존경심과 부러움이 흘러나왔다.

사실 우문혁은 악록객잔에서부터 이들의 강함을 보았고 알았다.

그래서 뛰어나리라 예상은 했지만, 일결제자들 중에서도 최고일 줄은 몰랐다.

문득 진우선과 만총의 마지막 대결이 생각났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온몸에 전율로 남아 있었다.

‘진 소협, 멋있었소! 총이 너도.’

우문혁이 눈을 빛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는 진 소협과 만총의 실력을 따라잡는다!’

사실 우문혁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중간 이상은 되었다. 첫 시험에서 세 번째 비무까지 올랐던 게 그 증거였다.

하지만 호심당에서 함께 어울린 이들이 최고의 실력을 지닌 진우선과 만총이었다.

상대적으로 뒤처져 보일 수밖에 없는데, 그건 싫었다.

또한 우문혁이 각오를 다지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화 소저가 두 사람의 다음이라니…….’

일결제자 중 세 번째로 강한 실력자는 화설옥이었다.

우문혁이 화설옥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강론을 들으며 이지적인 눈빛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화 소저. 내 열심히 노력하여 그대에게 다가가겠소!’

우문혁이 거듭 다짐했다.

연모의 감정이 강한 원동력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때, 석자풍은 일결제자들에게 전할 중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여러분께 알려줄 것이 있네.”

석자풍이 말없이 잠시 좌중을 둘러보며, 시선을 자신에게로 완전히 가져왔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대로, 곧 임무가 있을 예정이네. 임무의 시작은 내일부터일세.”

“……!”

일결제자 모두가 눈을 번쩍 떴다.

드디어 올 게 왔다.

임무였다.

임무는 대개 정무맹 내부가 아니라, 강호에 직접 뛰어들어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여러분에게 임무가 주어지는 이유는, 정무맹의 일원으로서 소속감과 자부심을 품으라는 뜻 때문이네. 다들 그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하고. 또한, 오당오각의 일을 미리 다양하게 경험하는 목적도 있네.”

목적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석자풍이 제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나, 임무를 하는 과정에서 오당오각이 마음에 드는 제자를 미리 눈여겨봐 둘 수 있었다.

오당오각(五堂五閣)은 정무맹을 구성하는 열 개의 조직이었다.

이를테면, 호심당은 오당의 하나였다.

“임무는 크게 보면 세 가지일세. 누군가를 호위하거나, 어떤 물건을 전달하거나, 어딘가를 조사하는 것이지. 여러분들 모두 임무에 처음 나서는 만큼, 적응에 우선을 두고서 배정했다네.”

석자풍이 그렇게 말한 뒤,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일결제자 가운데 셋에서 다섯 명씩 짝을 지어 임무를 하나씩 정해 주고 있었다.

“삼조는 상관적, 진우선, 우문혁, 민연하, 이렇게 네 명이네.”

그들은 삼조였다.

“자네들은 호위 임무일세. 내일 진시(辰時, 오전 7-9시) 전에 광명각(光明閣)에 도착하게. 조장은 상관적이네.”

조장은 나이순인 모양이었다.

***

저녁 무렵, 한 사람이 진우선을 찾아왔다.

선이 굵은 외모를 지닌 그 사람은 바로 형산파의 대사형인 맹두고였다.

“진 소협. 반갑소. 나는 형산파의 맹두고라고 하오.”

“맹 대협.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진우선이라고 합니다.”

초면이 아닌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니 어색함이 감돌았다.

맹두고가 웃는 얼굴로 말을 건네며 애매한 분위기를 먼저 깨뜨렸다.

“진 소협, 정말로 고마웠소. 기천극 장로님이 말을 전했다고 하셨지만, 지난 한두 달 동안 내가 꼭 진 소협에게 말하고 싶었다오. 정말로 진 소협 덕분에 내가 살았고, 형산파 식구들도 구함을 받았소. 이렇게 말로 해서 어찌 그 태산 같은 고마움을 다 표현하겠냐마는, 그래도 너무너무 고맙소! 진심이오!”

맹두고가 한 마디 한 마디에 심정을 꾹꾹 눌러 담아 절절하게 말했다.

“그때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된 일이라, 저만 이런 감사를 받기는 쑥스럽습니다. 아무튼, 다행입니다. 이제 몸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보는 대로요. 물론 아직 다 회복된 게 아니지만, 천천히 움직이는 건 상관없소. 그래서 닷새 후면 본산으로 돌아가기로 했소.”

맹두고가 팔을 휘적거리며 자신이 멀쩡함을 보였다.

그러니 닷새 후에 형산파로 다시 돌아갈 계획을 세웠으리라.

어쩌면 진우선을 찾아온 것은 형산파로 복귀하기 전에 꼭 한번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축하드리오. 다들 호심당에 엄청난 신진고수가 나타났다고 하며 진 소협을 말하더이다. 이미 이곳에선 적수가 없다고도 들었소.”

“하핫!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니라, 나는 사실만을 말한 거요. 그리고 그건 당연하기도 하오. 내가 광기에 휩싸여 미쳐 있을 때도 제압한 실력인데, 그게 가려질 리 있겠소?”

“그렇습니까? 그래도 그때 맹 대협께서 마기에 홀려 본 실력을 다 펼치지 못하셔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쉽지 않았고요.”

진우선이 은은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맹두고가 자신에게 보이는 커다란 호감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말을 참 따뜻하게 하시는구려. 고맙소. 장로님께 들었지만, 진 소협은 정말로 어질고 의로운 사람이오.”

“감사합니다. 그런데 맹 대협이야말로 인망이 높으시지 않습니까? 강호에서는 함부로 대협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진 소협, 나는 대협이라는 말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오. 많은 분이 나를 높여주셨지만, 나는 앞으로 갚아야 할 게 많소.”

맹두고의 음성에서 깊은 회한이 느껴졌다. 강인한 얼굴에도 잠시 그늘이 졌다.

하지만 좌절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그간 심적으로 아주 힘들었을 테지만, 가야 할 길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 태도가 이어지는 말에서도 나타났다.

“진 소협, 내가 오늘 이렇게 온 건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하려는 뜻도 많지만, 마교도에 대해서 알려드리기 위함이오. 진 소협은 천마교에 대해 잘 아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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