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8.
#남회 (3)
금기를 느끼는 것도 의아한데, 그 놀람이 가시기도 전에 화기가 느껴졌다.
진우선은 이 상황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확인했다.
‘확실히 있어!’
결과는 똑같았다.
금기와 화기가 내력 속에 섞여 있었다.
그것들은 외부에서 느껴지는 것과 달랐다. 이미 진우선의 내력에 적응을 마친 상태였다.
그렇다고 잘못 판단했을 리도 없었다.
적응을 마친 금기와 화기는 그 안에서 자신의 성질을 고스란히 드러내놓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 양이 적을 뿐.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금세 놀란 심정을 다스렸다.
‘생각을 정리해보자.’
수기를 운용하자 곧바로 마음이 차분해졌다.
놀란 것은 잠시뿐이었다.
그리고 상황을 떠올려보았다.
일련의 과정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먼저 금기를 생각해보자.
금기는 수기를 발견하고 스며들었을 것이다.
검노야가 금기더러 제 살길을 찾아왔다고 했다. 그때 진우선에게 기운이 들어온 게 틀림없었다. 금생수의 이치였다.
이로써 금기가 자리 잡은 과정은 파악이 되었다.
그렇다면 화기는 어땠을까?
‘어쩌면…….’
생각을 집중해보니, 화기가 스며들 틈이 있었다.
목기를 화로에 던졌을 때, 화기가 번성해지며 일부가 돌아온 것 아닐까?
수생목의 이치를 경험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 힘들어하던 나무에 수기를 불어넣으니 목기로 되돌아왔다. 그것도 양이 같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 늘어서 왔다.
그렇다면 불길에 목기를 불어넣었을 때, 화기로 되돌아왔을 거라는 추측에 타당성이 있었다.
목기와 화기는 목생화의 이치대로 움직였을 테니까.
[그렇지.]
검노야가 이번에도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우선의 추측은 실제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
진우선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상황이 또 변하고 있었다.
내공 안에서 금기와 화기를 발견한 것이 끝이 아니었다.
‘금기와 화기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미세한 정도지만, 그 양이 끊임 없이 더해지고 있었다.
금기가 증가하는 건 당연하다. 금기는 진우선의 몸 안에서 수기를 강성하게 하고 있으니, 들어올 문이 열려 있었다.
한데, 그 문으로 잔뜩 피어오른 화기도 들어왔다.
진우선이 놀란 마음을 다스리며 기운의 흐름에 집중했다.
‘그렇구나. 이건 따라오고 있는 거야!’
화로 속의 화기가 남회의 형을 이룬 금기에 성을 내며 따라다니다 보니, 진우선에게까지 따라오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온 화기의 대부분은 곧바로 수기를 만나서 사라져버렸다.
수극화(水剋火)의 이치였다.
하지만 일부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수기보다 내력 속에 있는 화기를 먼저 만나서였다.
이미 내력의 일부가 된 화기를 만나 함께 하니, 수기에 휩쓸리지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외부의 기운으로서 수극화의 이치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순식간에 내부의 기운이 되어 안착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안착한 화기는 이제 진우선의 내력이 되었다.
[기이한 일이로구나.]
검노야는 진우선의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허허! 이치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이렇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거늘. 여러 이치가 한데 맞물리며 기연을 얻었구나!]
정리해보자면.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화극금.
이 이치들이 한데 엉키며, 진우선에게로 모조리 빨려들고 있었다.
‘기연입니까?’
[허허! 이런 상황을 두고 어찌 기연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느냐. 참으로 기이하다. 우선이 네게는 복된 일이구나.]
‘고맙습니다. 스승님.’
[허허.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다 너의 노력과 행동에 따라온 것이거늘.]
진우선의 감사에 검노야가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것은 진우선이 판단하고 행동하며 생겨난 결과였다.
이곳에 와서 나무를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면.
대야장인 남회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가 망치질할 때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그러면 지금의 상황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터였다.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없었을 일이었다.
‘그래도 이 모든 게 스승님 덕분입니다.’
진우선이 검노야에게 감사를 돌렸다.
그러자 검노야는 얼굴을 굳히며 진지한 음성으로 뜻을 전했다.
[우선아. 네 마음은 잘 알고 있으니, 지금은 일단 내공에 집중하거라. 자칫하여 내력에 스며든 천지간의 기운들이 엉키며 불안정해진다면, 우선이 네가 화를 입을 수도 있느니라.]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검노야의 말을 따랐다.
내기에 집중하며 수기와 목기, 그리고 금기와 화기를 잘 살폈다.
그때, 검노야의 음성이 내면 깊숙한 곳을 울려왔다.
[광영무는 천지간의 기운을 담은 무공이니, 광영무의 이치 또한 자연을 닮았도다. 상생하며 상극하는 자연의 이치 역시 광영무의 이치에 속하니라. 상생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연의 섭리를 담은 질서로써, 우선이 네가 겪은 것처럼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등이 있어, 서로 돕고 강성하게 하며……]
검노야가 상생의 이치를 말했다.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 등이 이에 속했다.
또한 상생의 이치는 곧 천지간의 이치이며 광영무의 이치였다.
[……상극은 이와 반대로 완전히 억제하여 소멸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으니,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의 이치를 보았던 것처럼……]
검노야가 상극의 이치도 말했다.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 등이었다.
이 역시 천지간의 이치였다.
[……여기에 화생토, 토생금의 상생하는 이치가 더해지고, 목극토, 토극수의 상극하는 이치가 더해지면, 비로소 천지간의 기운이 모두 한데서 얽히고설키게 되리니. 그 충만함이 온몸을 적실 것이며, 더 나아가……]
광영무의 깊은 이치가 검노야에게서 진우선에게로 전해졌다.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에 화생토, 토생금을 더하고.
수극화, 화극금, 금극목에 목극토, 토극수를 더한다.
상생과 상극의 이치가 각기 다섯 개씩 어우러진다는 뜻이었다.
‘만약 금생수로 시작했는데 토생금이 된다면, 다시 금생수가 이어질 수 있겠구나. 수극화로 시작했을 때도 토극수까지 온다면, 다시 수극화가 이어질 수 있고.’
그 순간!
‘어라? 그렇다면 끝이 없는 것 아닌가?’
바로 그때였다.
검노야의 또 다른 한 마디가 진우선의 뇌리에서 떠올랐다.
[천지간의 기운이 모두 한데서 얽히고설키게 되리니…….]
얽히고설킨다.
모두 한곳에서.
‘……!?’
진우선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언가 깊은 이치가 온몸을 관통하는 듯했다.
그러자 지금의 상황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이 명확히 이해되기 시작했다.
[허허-!]
검노야가 소리 없이 웃었다.
하지만 그 음성은 진우선에게 들리지 않았다. 진우선은 지금 무아 지경에 빠져 있기에, 검노야의 말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진우선은 어느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광영무에 대해.
천지간의 기운에 대해.
깊게, 깊게, 더 깊게 사고하며, 궁구하고 또 궁구했다.
그러는 동안, 진우선의 전신은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수기와 목기, 금기와 화기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은 좋은 날이구나.]
검노야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껏 가장 환한 표정이었다.
“다들 살아났구나!”
***
남회의 말이었다.
그의 나직한 음성에서 기쁨으로 가득 찬 감격이 묻어나왔다.
주름살 가득한 시커먼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한가득 어려 있었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마다 다가가서 애정 어린 손길로 줄기를 매만지고 가지를 쓰다듬었다.
나뭇잎은 행여나 떨어질까 봐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그러면서 살금살금 걸었다.
생기를 회복한 나무들 한가운데에 진우선이 앉아 있는 까닭이었다.
그의 모습이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을 자아내니, 남회는 깊은 수양 중이라 여기고 있었다.
“진 공자가 나무를 살렸구나. 이렇게 애를 쓰면서…….”
남회가 중얼거렸다.
하늘에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한낮에 검을 수리하기 시작했으니, 따져보면 적어도 두 시진은 되었을 것이다.
아마도 진우선은 그 시간 동안 온 힘을 다해 죽어가던 나무들을 회생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진우선이 스윽 눈을 떴다.
남회가 그걸 보고 물었다.
“진 공자, 깨어났는가?”
“어르신!”
진우선이 남회를 보고서 즉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얼핏 하늘을 보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군요.”
“그렇지.”
남회가 그렇게 대답하고는 물었다.
“차 한잔하지 않을 텐가?”
“주시면 감사하지요.”
“감사는 무슨.”
진우선의 말에 남회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원탁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진 공자, 고맙네. 정말로.”
“아닙니다. 나무들을 죽지 않게 할 수 있어서 다행일 뿐입니다.”
“그래도 고맙지.”
짧은 한마디임에도, 진우선에게로 남회의 진심이 한가득 전해졌다.
두 사람이 원탁에 도착했다.
남회는 차를 마시기에 앞서, 원탁에 올려두었던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 공자. 자네의 검은 여기 있네. 오늘따라 불이 더 좋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잘 다듬어졌더군. 아마 올겨울까지는 버티지 않을까 싶네.”
“아! 감사합니다.”
진우선이 검을 들고서 뽑아보았다.
검에서 단단하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칼날에서 뿜어지는 날카롭고 굳센 기세도 전보다 확실히 좋았다.
“어르신, 이게 정말 제 검이었습니까?”
“물론이네. 당연히 자네의 검이었지. 철을 잘 두드리면 그렇게 될 수 있다네.”
진우선은 검이 망가지기 직전에서 수리만 된 게 아니라, 절삭력이나 균형 등 검으로서의 능력 자체가 나아진 걸 느꼈다.
남회는 죽어가는 검을 살리고 이전보다 더 강하게 만든 것이다.
과연 대야장이었다.
그때, 남회가 나무들로 시선을 돌리며 진우선에게 말을 꺼냈다.
“진 공자. 나무에 윤기가 흐르더군. 생기가 마구 느껴졌네. 살려줘서 고마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진우선이 손사래를 쳤다.
남회는 그런 진우선을 보더니 찻잔에 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지홍이에게 들었네. 내게 쇠의 기운이 있다지? 그게 나무와 상극이고.”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였군. 나무들이 힘겨워했던 게.”
남회는 나무들을 보며 예전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사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지. 내 주변에서만 그런 일이 일어나니까.”
목소리에서 씁쓸함이 전해졌다.
쇠를 만질 때는 눈빛이 그렇게 강해 보였는데, 거기에 나무들이 담기니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남회는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평생 쇠만 만졌더니 언젠가부터 나무를 보고 싶었네. 그래서 나무를 심었지. 정말 좋았네. 나무를 볼 때면 눈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했거든. 그런데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도 나무들은 잘 자라지 않았네. 오히려 지홍이가 가끔 물을 주는 나무들이 더 잘 자랐어. 나한테서는 죽어가고 말이야.”
남회는 은연중에 자신에게는 나무가 맞지 않음을 느꼈었다.
그러나 나무를 가꾸게 되면서 안정감이 생겼으니, 멀리할 수가 없었다.
진우선은 그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바로 알아챘다.
남회가 가진 강성한 쇠의 기운을 나무가 감당해낸 것이다.
“진 공자. 자네는 나와 반대겠군. 내가 있음에도 나무를 살려낼 정도이니, 자네에게는 나무가 살아나게끔 하는 기운이 있겠구먼.”
남회는 진우선이 말하지 않은 것도 유추하여 파악해냈다. 예리한 통찰력이었다.
“네, 그렇긴 합니다.”
“그렇군. 그게 내공이겠지? 내 평생에 무기를 만들며 많은 무공을 보고 들었지만, 알면 알수록 무공은 참 신기해.”
남회가 감탄을 흘렸다.
문득, 진우선은 이 상황이 꽤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쇠의 기운은 나무와 상극이었다.
금극목의 이치였다.
하지만 수기가 있다면 달랐다.
금생수와 수생목의 이치가 이루어진다.
금극목이 아니라 금생수와 수생목이 되어, 종극에는 금생수생목이 되는 것이다.
그 이치가 참으로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어딘가 모순된 거 같지만, 모순이 아니라 실제였다. 남회가 물었다.
“내가 쇠를 계속 만지면서 나무를 키우면, 또 힘들어하겠지?”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남회는 자신이 야장일을 하는 동안, 나무가 죽지 않게 할 수 없음을 단박에 알아챘다.
“진 공자. 부탁 하나 해도 되겠나?”
“어떤 부탁이신지요?”
진우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려운 일 아닐세. 시간이 된다면 자주 놀러와 주게나. 함께 나무도 가꾸고 이야기도 하세.”
“아!”
“수련이 바쁠 테지만, 그래도 여유가 된다면 부담 없이 찾아와줬으면 좋겠네.”
“네, 그러겠습니다.”
“고맙네. 허허허.”
남회가 행복하게 웃었다.
진우선은 그렇게 약속을 남기고 남가철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