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37화 (37/225)

037.

#남회 (2)

‘형을 이룬 금기였군요!’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이루었다는 건, 기본적으로 그 기운이 매우 강성함을 의미했다.

진우선이 수기의 형을 이루었을 때, 수기는 스스로 천지간의 수기와 소통하여 힘을 잃지 않고, 다른 기운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

금기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지금 금기는 형을 이룸으로써 힘이 강력하나, 화기는 그러한 힘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구나.]

‘그러면 압도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겠습니다.’

[그렇지.]

형을 이룬 금기를 이기려면, 마찬가지로 형을 이룬 화기여야만 했다.

하지만 화로의 불길은 화기로서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금기를 보고도 성만 잔뜩 낼 뿐, 제압하지는 못하는 형국이었다.

다만, 더 뜨거운 불이 될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대장간에서 일하는 남회에게는 매우 큰 이점이 되었다.

불의 온도가 더 높을수록 쇠는 더 정순해지고 더 단련되는 까닭이었다.

질이 더 좋은 무기와 연장이 나오는 것이다.

[남회는 대야장이라 불리는 만큼 야장 기술이 매우 뛰어난데, 거기에 금기가 형을 이루었으니 금상첨화로구나.]

남회는 이미 쇠를 잘 이해하고 잘 다룰 수 있었는데, 거기에 금기와 상극인 화기가 성을 내며 돕는 모양새였다.

대장장이에게 최상의 조건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하늘이 내렸구나. 태어날 때부터 금기를 지니고 있었으니, 대장장이로서 천부적인 자질을 타고났어. 쇠를 좋아하기에, 노력으로 형을 이루어냈고.]

검노야는 지금 남회를 꿰뚫어 보고 있었다.

사실 남회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으나, 진우선이 스스로 깨닫게 하려고 말을 아꼈을 뿐이었다.

‘아!’

진우선은 검노야의 설명을 듣고 새삼 남회를 바라보았다.

한평생을 대장간에서 살아온 그는 지금도 쇠를 좋아하는 게 여실히 보였다.

거기에 금기의 형을 이루었으니, 쇠로 못 만들 것이 없었다.

정말 대장장이가 천직이었다.

[다만 그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구나. 애초에 금기를 얻고자 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무공 또한 모르니, 천지간의 기운을 어찌 알꼬.]

‘아! 그래서였군요.’

남회는 금기의 형을 이루었으되,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이게 답이었다.

나무들이 꽤 말라 죽었고, 지금도 죽어가고 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남회를 보며 검노야의 설명을 들으니, 진우선은 모든 인과관계를 정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와-!”

진우선의 검은 동공에는 남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새겨지고 있었다.

살갗을 녹여버리는 듯한 뜨거운 화로 앞에서, 남회는 온몸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주변을 잊은 채 오직 쇠만 두드리고 있었다.

금기의 형을 이루었기에 화기가 성을 낼 테고, 화로는 다른 대장장이들보다 더 뜨거울 것이다.

평생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남회는 강인한 정신력과 강철 같은 체력으로 묵묵히 불길을 견뎌내며 망치질을 해왔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더 뛰어난 야장 기술을 익히고 터득하며 쇠를 다스려왔다.

이제는 흰머리가 가득한 노인인데도, 전혀 약해 보이거나 지친 기색이 없이 굳건했다.

어쩌면 ‘대야장’이라는 세 글자는 남회의 삶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일지도 모른다.

새삼 그가 존경스러웠다.

그러던 중.

‘……!’

진우선이 무언가를 알아챘다.

어느 순간부터 느낌이 달라져 있었다.

‘거북함이 사라졌어!’

역겹고 불편하던 느낌이 종적을 감췄다.

머리를 지끈거리게 만들던 쇠 냄새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에 가득하던 금기가 없었다.

그 대신, 맑고 시원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수기구나!’

어느새 단전에서 일어난 수기가 전신으로 퍼져 은은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수기의 기운이 전보다 강성했다.

또한 계속 강해지고 있었다.

금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수기는 점점 더 힘이 넘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금기가 수기를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까?’

[잘 깨달았구나. 그게 바로 금생수의 이치일지니.]

검노야가 흐뭇하게 웃었다.

금생수(金生水).

이 또한 광영무의 이치 중 하나였다.

금기는 수기를 생하게 하니, 수기의 기운이 더욱 왕성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금기가 지금 진우선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몸으로 느끼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땅땅땅땅-!

망치질 소리가 울릴 때마다 금기가 전해지고.

콱콱콱콱-!

그때마다 혈도를 타고 도는 물줄기가 범람하여 터져나갈 듯이 수기가 불어났다.

[금기가 스스로 수기를 찾았구나. 여기서 형을 이룬 금기를 제대로 품을 수 있는 사람은 수기로 형을 이룬 우선이 너뿐이지 않으냐. 금기가 제 살길을 찾아온 것이야.]

‘금기가 저를 찾아온 것입니까?’

[그렇지. 아까 문밖에 있었을 때는 나무들이 먼저 금기를 감당하고 있지 않았느냐. 이곳에서는 화기가 자극을 받아 성을 내는 중이었고. 그러다가 우선이 네가 여기까지 들어오니, 그제야 널 찾아낸 듯싶구나.]

검노야는 금기가 제 살 길을 찾아왔다고 했다.

형을 이룬 금기가 본래 가진 금생수의 이치에 따라 행하면서 형을 이룬 수기를 발견한 것이다.

그러니 반쪽짜리였던 금극목, 화극금보다 먼저 금생수의 이치를 따르고 있었다.

진우선이 남회에게서 일어나는 현상에 집중하고 있다 보니, 잠시 의식하지 못했던 사이에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그때, 진우선은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재빨리 화로를 보았다.

얼른 불길을 확인했다.

‘화기가 조금 줄었어!’

현재 금기가 진우선에게로 몰려들었기에 그리 되었다.

그래서 남회가 검을 수리하고 있는 화로의 불길이 줄어든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남회의 작업에 지장이 있을 터였다.

더군다나 수리하고 있는 무기는 진우선의 검이었다.

그걸 진우선이 저도 모르게 방해하고 있었다. 의도치 않았으나, 상황이 딱 그랬다.

대책을 찾아야 한다.

수명이 다한 검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해야 했다.

‘혹시 목기라면?’

나무가 불에 잘 타니, 불을 강하게 할 목적으로 땔감을 더 넣는 방법이 있었다.

화기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리라.

목기를 불어넣는다면, 화기가 더 세게 타오를 것 같았다.

‘해보자!’

진우선이 즉시 목기를 움직였다. 목기가 화로로 들어갔다.

화르륵-!

불길이 크게 치솟았다.

‘된다!’

그와 동시에 진우선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이게 목생화구나!’

목생화(木生火)는 곧 목기가 화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치였다.

조금 전에 금생수의 이치를 체득한 상황과 흡사하게 상황이 흐르니 바로 확신했다.

[맞다. 잘 생각해냈구나.]

검노야가 흐뭇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생수를 알려주자 곧장 목생화를 깨우치니, 정말 가르치는 즐거움이 있었다.

바로 그때.

진우선의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목기를 불길로 계속 보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가진 기운은 한정되어 있어서 계속하기 어려워질 텐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남회의 대장간에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밖으로 나가면 해결 될 일이다.

그럼 원래대로 금극목과 화극금의 이치가 남회에게서 벌어질 테니까.

하지만 이곳에서의 상황은 무시한 채, 순수한 기운의 운용으로 본다면 다른 해결책이 필요했다.

급박하지 않은 순간이기에, 진우선은 그렇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검노야가 그런 진우선을 지켜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우선아. 좋은 모습이구나. 스스로 의문을 찾아내고 궁구하니, 이치들이 멀리 있지 않음이야.]

그렇기에 검노야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나서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힘으로 생각하고 깨우치는 게 공부의 가장 좋은 모습인 까닭이었다.

아무튼, 검노야가 그렇게 바라보고 있을 때.

새로운 방법이 진우선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목기를 계속 넣기보다는, 금기가 나에게 쏠리지 않게 해보자!’

진우선이 그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금기는 수기를 북돋우러 왔으니, 곧바로 수기의 운용을 멈췄다.

그 순간.

금기가 끊어져 나가더니 화로 주변에서 머물렀다.

잠시 살펴보니 다시 남회 주변에서 머물 듯했다. 멀리 뻗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진우선에게 끈덕지고 불편하게 달라붙어 있는 금기도 있었지만, 그건 일부일 뿐이었다.

그리고 남회 주변의 금기는 곧 다시 화기를 자극했다. 원래의 모습대로였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도 되는구나! 다행이다.’

목표한 대로 되었다.

그때였다.

남지홍이 긴장한 목소리로 진우선에게 물었다.

“진 공자. 어떻습니까? 아버지께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지요?”

“걱정하실 일까지는 아닙니다. 혹시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어르신께서 기가 세십니다. 그 기운이 쇠의 기운이라 나무에게는 상극인데, 망치질하실 때 강한 힘을 퍼져나가는 상황입니다.”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그렇습니까?”

남지홍이 혼잣말하듯 묻더니, 눈을 번쩍 뜨며 말을 풀어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지께서는 쇠를 정말 잘 아시고 잘 다루셨는데, 진 공자의 말씀대로라면 그게 쇠의 기운 때문이었나 봅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무리 계속 배우고 노력해도 그 정도로는 안 되었거든요.”

그는 진우선의 말을 금세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버지와 평생을 같이 살며 쇠를 두들겼기에, 그간 봐왔던 모습들이 바로 짜 맞춰지고 있었다.

“맞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제가 나무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아! 정말입니까?”

“네. 바로 확신할 순 없지만, 일단 한 번 해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러시지요.”

두 사람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문밖으로 나섰다.

진우선이 나무 앞에 선 뒤, 단전에서 수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금기가 확 쏠려오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나무에 끈덕지게 붙어 있던 금기가 진우선에게로 파고들었다.

‘이렇게도 되는구나!’

그 금기를 필두로 남회의 대장간 안에서 진우선에게로 금기의 끈이 이어졌다.

보이지 않는 금기의 끈이 한 가닥, 두 가닥씩 늘어났다.

그러더니 곧 대장간에서 바깥으로 뿜어지는 금기의 상당량이 진우선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반대로 나무에게 가는 금기는 드물어진다.

‘조심스럽게…….’

진우선이 수기를 세심하게 운용했다.

화로에서 불을 자극하는 대장간 내부의 금기는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그 노력이 빛을 보는지, 곧 금기들이 딱 좋을 만큼만 움직였다.

‘됐어!’

진우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를 살리기 위한 첫 단추를 잘 끼워서였다.

이제 두 번째 단추를 실행에 옮겼다.

진우선은 몸 안에서 불어나는 수기를 살피더니, 그것을 나무들에게로 보내기 시작했다.

‘수기가 계속 이렇게 넘친다면, 서너 그루에도 동시에 보낼 수 있겠구나.’

예전보다 수기의 양이 서너 배 늘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금생수의 이치에 따라 수기가 강성해지는데, 그걸 수생목의 이치로 나무에 보내면 더 많은 나무의 힘을 북돋을 수 있는 원리였다.

그러던 중!

‘어?’

진우선이 새로운 걸 느꼈다.

자신의 내공 속에 딱딱하고 비릿하며 편하지 않은 이질적인 기운이 있었다.

‘이건 금기인데, 이게 왜 내 몸속에 있는 거지?’

금기라면 분명 수기를 강성하게 하는 일에 제 몸을 쓰지 않던가.

하지만 몸 안에 스며든 금기는 그러지 않았다.

그건 마치 진우선의 내기가 된 것처럼 독자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진우선이 내력을 돌리며 가만히 살펴보았다.

대장간에서 온 금기를 받아들여 수기를 북돋고 나무로 보내는 순간마다, 내력에 스며든 금기의 양이 조금씩 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

또 다른 기운이 몸 안에서 발악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기운이었다.

하지만 그 기운은 급하고, 격정적이고, 뜨거웠다.

크기가 작다고 해서 존재감마저 약한 게 아니었다.

화르르-!

기운이 맹렬히 타올랐다.

이 느낌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화기는 또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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