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36화 (36/225)

036.

#남회 (1)

남회에게만 거칠게 이는 화로의 불길.

남회의 대장간 주변에서만 생기를 잃는 나무.

남가철방에는 남지홍을 비롯하여 대장장이가 여러 명인데, 상황을 보니 유독 남회에게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무들을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안타깝다는 생각뿐이었는데, 불길마저 유별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의심쩍었다.

“저…….”

“네, 말씀하시지요.”

“혹시 제가 나무들을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진우선이 남지홍에게 부탁했다.

검을 수리하는 데 한 시진은 더 걸린다고 했고, 눈앞의 나무는 생기를 잃어가고 있으니, 보고 있기가 안타까웠다.

또한 이곳에서 벌어지는 괴이한 현상에도 의문이 들었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나무에 수기를 불어넣으면 어떨까?’

수기를 통해 나무의 기운을 북돋고, 돌아오는 목기를 통해 나무를 느껴본다면 무언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호심당 독행관 담벼락 아래에서의 경험을 비추어 떠올린 생각이지만, 왠지 가능할 듯했다.

“네, 그러셔도 됩니다.”

남지홍이 흔쾌히 대답했다. 딱히 어려울 게 없는 부탁이었다.

“아! 혹시 아까 부탁드렸던 것 때문이라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러다 갑자기 남지홍이 미안함에 말끝을 흐렸다.

손님으로 찾아온 진우선에게 부탁했던 순간이 떠오르면서, 자신의 말이 괜히 꼭 해야 하는 일로 들린 건 아닌지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나무에 관심이 많고, 조금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그러셨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남지홍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고마워했다.

사실 아까는 마음이 급해 처음 방문한 손님에게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는 실수를 했다.

나무에 관해 잘 아는 사람들을 초빙해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였는데 말이다.

정원 한쪽의 나무들이 계속 죽어가기 시작하니 너무 걱정했던 탓에 저도 모르게 말이 먼저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진우선이 먼저 제의를 해왔다. 남지홍은 그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이런 상반된 감정이 동시에 찾아왔다.

“혹시 잘 모르겠다 하셔도 괜찮습니다. 다들 고개를 저었던 일이었어요.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네. 그러겠습니다.”

남지홍은 진우선이 혹시나 불편해할까 싶어 말했다.

“그리고 저를 편하게 남 총관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제가 철방을 총괄하다 보니, 다들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남지홍은 진우선이 애매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알려주었다. 참으로 친절한 남지홍이었다.

“알겠습니다. 남 총관님.”

이윽고 진우선이 나무에 집중했다.

나무를 지그시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살폈다.

그렇게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수기도 흘려보냈다.

죽어가는 나무들 가운데, 애초에 그 크기가 제일 작은 나무를 정해 수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그러면 수생목의 이치에 따라 생기를 찾을 것이다.

나무의 자생력을 크게 일으키고 생기를 불어넣는 이치였다.

과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좋았어!’

죽어가던 나무에 생기가 조금씩 어리기 시작했다.

말라비틀어져 있던 나뭇가지의 거무죽죽한 색이 옅어지고, 활기가 돌았다.

바싹 말라서 쩍쩍 갈라진 표피에도 물기가 생기고 윤기마저 올라왔다.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변화가 보였다.

‘살아나고 있다!’

진우선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생각한 대로 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진우선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좀 전의 미소는 온데간데없고 낯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위급하고 심각한 기색마저 보였다.

느껴지는 게 있는 까닭이었다.

퍽-!

무언가가 나무를 쳤다.

퍽-!

잠시 후에 또 나무를 때렸다.

퍽-! 퍽-! 퍽-! 퍽-!

나무에 연이어 충격이 전해졌다.

둔탁한 힘이 끊이지 않고 규칙적으로 가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진동하여 충격을 전달하는 듯했다.

‘뭐지, 이건?’

외부의 충격이 올 때마다 묵직한 기운이 쑥쑥 밀려들었다.

그 기운이 나무를 흔들었다.

그러면 목기가 나무 안에서 튕겨 나갔다.

퍽- 퍽- 진동이 느껴질 때마다 나무에 스며든 목기가 픽- 픽- 사라졌다.

흔적조차 없었다.

그와 동시에 나무에 깃든 생기가 팍팍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목기가 자취를 감추니, 나무에 어리기 시작하던 활기가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거였어!’

진우선의 눈이 빛났다.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진동을 따라 밀려드는 기운이 목기를 방해하고 소멸시키니, 나무의 생명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면 지금의 모습처럼 죽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앞뒤가 딱 맞았다.

‘여기에 집중해보자!’

진우선이 목기를 한껏 끌어 올린 채 내면을 관조했다.

그러자 느낌이 왔다.

퍽- 퍽- 퍽- 퍽-!

규칙적인 진동이 울리며 몸을 두드렸다.

다행히 목기는 진우선의 것이라 사라지지 않았다. 그저 현상만이 몸에 남을 뿐이었다.

진우선이 몸 안에 작게 전해지는 진동에 집중했다.

톡- 톡- 톡- 톡!

외부의 강한 진동이 내부에선 작은 떨림이 되어 울렸다. 목기가 떠나지 않아서였다.

그때, 귀가 열렸다.

톡- 톡- 톡- 톡-!

땅- 땅- 땅- 땅-!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던 중, 외부의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망치질 소리가 딱 맞잖아!’

박자가 딱 맞았다. 소리의 호흡이 같았다.

그 순간, 나무를 바라보자 나무의 떨림도 느껴졌다.

톡톡톡톡-!

땅땅땅땅!

퍽퍽퍽퍽-!

‘설마…… 이거였어?’

답을 알아낸 진우선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첫째로 망치 소리와 나무의 생장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

둘째로 망치질 소리는 대장간에서 울려온다.

그리고 셋째로 유독 대장간 앞쪽 나무들이 죽어간다.

이 세 가지 상황이 가리키는 바는 하나였다.

남회.

‘어르신에게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진우선이 남회의 작업 공간으로 가는 나무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저 안에서는 남회가 열심히 검을 수리하고 있을 터였다.

남회의 망치질에 무언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거기에 어떤 기운도 담기는 게 분명했다.

남회의 공간으로 들어가면 더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을 듯했다.

바로 그때, 정원에 놓인 원탁에서 진우선을 바라보고 있던 남지홍이 얼른 달려왔다.

“진 공자. 혹시 무언가 느끼셨습니까?”

“네.”

“오! 도대체 그게 무엇입니까?”

남지홍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아무래도…… 어르신께 무언가 특별한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의 망치질 소리에 나무들이 기운을 잃고 있습니다. 여기 문 주위로만 나무들이 죽어가는 게 그래서일 겁니다.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저 나무들까지인 것 같습니다.”

진우선이 신중하게 추측한 바를 설명했다.

마음은 확신에 차 있었지만, 아직 밝혀진 건 아무것도 없는 까닭이었다.

남지홍이 얼른 나무들을 살폈다.

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는 범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문을 중심으로 부채꼴 모양이었다.

“정말 그렇군요!”

남지홍이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진우선의 추측에 크게 공감하면서 놀라고 있었다.

그때, 진우선이 남지홍에게 물었다.

“혹시 이 안에 지금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괜찮습니다. 들어가고 나오는 정도는 아버지께 방해되지 않습니다.”

남지홍은 괜찮다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아예 문을 열며 같이 안으로 들어섰다.

진우선이 방에 들어섰다.

그러자 이전보다 더 후끈해진 열기가 진우선을 맞이했다.

코끝으로는 진한 쇠의 냄새도 그를 반겼다.

진우선은 곧장 남회를 바라보았다.

열기와 냄새가 지독하게 느껴졌지만, 그런 불편한 상황들이 진우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남회는 여전히 힘 있게 망치를 내려치고 있었다.

땅땅땅땅-!

망치질 소리가 일정한 속도로 규칙적으로 났다.

힘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내려치는 순간마다 더 강해지지도 않았고, 더 약해지지도 않았다.

남회는 똑같은 힘으로, 똑같은 속도로, 똑같은 박자로 망치질하고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대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이걸 느끼려고 들어온 게 아니었다.

툭툭툭툭-!

정원에서 느꼈던 그 기운이 진우선을 두드렸다.

이미 목기를 운용하고 있었기에 분명하게 체감되고 있었다.

‘확실히 여기서 받는 진동이 더 강해!’

망치질 소리가 더 크니 진동이 더 크고, 그에 따라 전해지는 기운도 거센 듯했다.

한데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 눈이 무언가 발견했다.

그냥 봤을 땐 전혀 몰랐던 게 화로의 불길에도 있었다.

땅- 땅- 땅- 땅-!

화악- 화악- 화악- 화악-!

망치를 두드릴 때마다 불길이 일렁거렸다.

불길이 그저 남회를 집어삼킬 듯이 활활 타오르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망치질 소리에 맞춰 춤추고 있었다.

진동이 전해질 때마다 몸집이 더 불어나며 사납게 불꽃을 뿜어대고 있었다.

‘저것도 무언가에 반응하고 있다!’

그게 무엇일까.

무엇이기에 불길이 망치질 소리에 반응하고, 나무의 생기도 다 소멸시키는 것일까.

‘어르신을 살펴봐야 해!’

진우선이 결심을 하고 조심스럽게 남회에게로 다가갔다.

미지의 기운이 점점 더 묵직하게 마주쳐왔다. 몸에 전해지는 진동이 더 잘 느껴졌다.

진우선이 한 걸음씩 더 나아갔다.

그렇게 앞방에서 화로가 있는 방으로 들어섰다.

바로 그 순간.

“헙!”

진우선이 놀라서 눈을 부릅뜬 채 몸을 멈췄다.

숨이 턱 막혔다.

단단한 기운이 온몸을 팡팡 쳐대고 있었다.

딱딱하고, 까슬까슬하고, 불편하고, 역겨운 기운이었다.

속이 너무 거북했다.

머리도 어지러웠다. 기분도 매우 좋지 않았다.

‘마치 쇠의 냄새가 나는 거 같다. 어르신에게서…….’

쇠비린내가 이 기운에서 풍기는 듯했다. 아니, 남회에게서 뿜어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검노야의 청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허허. 금기로구나.]

“……!”

금기(金氣).

쇠의 기운을 일컫는 말이었다.

검노야는 남회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금기라고 했다.

진우선이 단박에 상황을 이해하여 물었다.

‘스승님! 그렇다면 여기서 일어나는 현상들도 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잘 보았구나.]

‘아!’

진우선이 입을 쩍 벌렸다.

일순간 찾아온 깨달음이 있었다.

그걸 검노야가 간단하게 말해주었다.

[금극목이요, 화극금이니.]

금극목(金剋木).

금기는 목기를 이기고.

화극금(火剋金).

화기는 금기를 이긴다.

‘맞습니다. 그러면 모든 상황 맞아떨어집니다!’

핵심은 금기였다.

남회에게서 금의 기운이 뿜어지니, 나무와 불에 괴이한 현상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자세히 보자면, 남회의 단단한 금기가 나무의 목기를 압도하여 밀어냈다. 그래서 나무는 자신의 생기를 잃었다.

또한, 남회가 망치질하면 금기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그때 금기와 싸워 이기고 싶은 화기가 마구 성내며 분을 냈다.

그래서 불길이 거세게 피어올랐다.

[잘 보았다. 그 이치로 이곳이 돌아가고 있었구나.]

검노야가 진우선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하지만 우선아. 지금 화기가 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있음도 눈여겨보거라.]

‘아! 그러고 보니…….’

검노야의 말을 들은 후, 진우선은 자신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화극금이니, 이치대로라면 화기가 금기를 이겨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눈앞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화기가 담긴 불길은 계속 남회를 집어삼킬 듯 피어올랐으나, 금기를 뿜어내는 남회는 크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화기가 금기를 이기는 게 당연하나 이 상황이 그렇지 않은 것은, 금기가 이미 그 자체로 형을 이루었기 때문이니라. 우선이 네가 수기의 형을 이룬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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