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
#첫 시험 (1)
대연무장 한가운데서 두 깃발이 휘날렸다.
한 깃발에는 정무(正武)가 쓰여 있고, 다른 깃발에는 호심(護心)이 쓰여 있었다.
정무맹과 호심당의 깃발이었다.
그 깃발 앞에서 호심당의 제자들이 비무를 치르고 있었다.
“승자는 양무청이다. 무청이는 이제 다음 비무를 기다리도록.”
승패를 내리는 무사부가 외쳤다.
이번 비무는 양무청의 승리였다.
양무청은 일결제자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은 일결제자의 첫 번째 비무가 연이어 펼쳐지고 있었다.
곧이어 기록을 맡은 무사부가 다음 비무를 치를 두 사람을 불렀다.
“정소명. 그리고 서원. 다음 비무는 그대들 두 사람이니, 지금 바로 준비하거라.”
그러면 정소명과 서원의 비무가 이어졌다.
그런 식으로 무사부들이 능숙하게 시험을 진행했다.
석자풍과 엄초양, 두 명의 부당주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대연무장 전체를 살폈다. 비무가 공정하게 치러지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 없이 주시하고 있었다.
제자들도 진지하게 비무를 지켜보았다.
일결제자와 이결제자는 각기 나뉘어서 대연무장의 좌측과 우측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로 마주 보는 구조였다.
양측의 분위기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모두가 입을 꾹 다문 채 비무에 집중하는 것은 비슷했다.
다만 일결제자들의 눈동자에 경쟁심이 가득하다면, 이결제자들은 비무 그 자체를 눈에 담고 머리에 기억하려 애쓰고 있었다. 수많은 비무를 보고 듣고 느끼며 자신의 실력향상에 밑거름으로 쓰려는 것이다.
어쨌거나, 고요함이 내려앉은 대연무장에서 열기만큼은 점점 타올랐다.
비무는 계속 진행되었고, 무사부의 외침도 이어졌다.
“승자는 정소명이다.”
새로운 승자가 불렸다. 이제 다음 비무를 치를 일결제자들이 호명될 것이다.
“다음 비무는…….”
진우선도 일결제자들 사이에 앉아서, 다들 그러하듯 비무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선의 눈빛은 다른 제자들과 달랐다.
일결제자 대부분은 ‘어떻게 상대하면 내가 이길까?’ 하는 생각으로 비무자들을 골똘히 살피며 약점부터 찾았다.
반면, 진우선의 눈동자에서는 경쟁심이나 적개심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눈동자가 반짝거렸다.
‘저렇게 검을 휘두른다면…….’
어떻게 대응하는 게 제일 좋을까?
아니, 어떻게 휘두르는 게 더 좋았을까?
‘……저 검법은 서투르네. 아직 어색해 보여.’
진우선은 그렇게 매순간마다 수많은 상황을 떠올려보며 대결에 집중했다.
‘강호에는 참 재밌는 무공이 많구나!’
진우선은 무공, 비무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계속 목검을 만지작거렸다.
‘좋은데!’
목검의 촉감이 좋았다. 목검이 손바닥에 최악 들러붙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수도 없이 잡았던 목검인데, 오늘따라 매우 편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 이유를 바로 알아챘다.
‘목기가 움직이고 있어서야.’
목검을 쥐니 목기가 자유롭게 활개 쳤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목검 만난 목기는 제게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그래서 목검에 힘이 넘치는 것만 같았다. 생기가 흐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살아있는 나무가 아니라 잘려서 날카롭게 다듬어져 목검이 되었는데도 그러했다.
피식-.
싱거운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면서 기대도 되었다.
바로 그때.
“추평. 그리고 진우선. 그대들 두 사람은 비무에 나설 준비를 하도록.”
진우선의 차례가 왔다.
이제 비무를 펼칠 때였다.
진우선이 목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볍네.’
목검이 이전보다 들기 좋았다. 무게가 있는 듯 없는 듯해서, 무기의 존재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목검이 마치 내 몸의 일부 같아.’
그런 생각에 마음이 든든했다.
기분도 좋았다.
***
“크크크. 나는 정말 운이 좋군. 목제자가 첫 상대라니.”
대연무장 한복판에 먼저 자리 잡은 추평이 다가오는 진우선을 보며 이죽거렸다.
추평은 목창 하나를 어깨에 걸친 채 한껏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진우선이 추평을 보았다.
이름을 듣고 얼굴을 보니, 강론 때 몇 번 봤던 기억이 났다. 독행관 앞에서 두세 번 마주친 듯했다.
그뿐이었다. 친분은 전혀 없었다. 대화를 나눈 적도 없었다.
당연히 저렇게 이죽거릴 정도로 척을 진 적도 없었다.
진우선은 추평이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았다.
그의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추평은 굳이 대화를 나눌 상대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때, 무사부가 물었다.
“두 사람은 준비되었는가?”
“네, 준비되었습니다.”
“크-!”
진우선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추평은 코웃음 쳤다.
진우선은 그것을 보았으나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그저 흔들림 없는 눈빛과 담담한 얼굴을 한 채, 가만히 목검만 움켜쥘 뿐이었다.
무사부가 그런 진우선과 추평을 번갈아 보더니, 물러서며 말했다.
“비무를 시작한다.”
그 말과 함께 추평이 기합을 내지르며 목창을 앞으로 겨눈 채 달려들었다.
“흐압!”
목검에 비해 훨씬 긴 목창의 이점을 살리려는 모양이었다.
진우선이 내려 들고 있는 목검을 바라보았다.
씨익-
가벼운 웃음이 입가에 어렸다.
그리고 몇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목검을 강하게 그어 올렸다.
그 순간!
빠각-!
짧으면서 단단한 소리가 났다.
나무막대기가 단박에 쪼개지는 소리였다.
물론 그건 목검 아니면 목창일 것이다.
비무를 주시하던 사람들의 눈이 그 즉시 반파되어 날아가는 조각을 찾았다.
그건 목창이었다.
자세히 보니, 창두 부분을 포함한 삼분의 일가량이 공중으로 튕겨 올라가고 있었다.
여러 사람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다.
‘목창이 일격에 부러졌다고?’
‘이게 저리 쉽게 깨지는 게 아닐 텐데?’
정무맹에서 쓰는 목검이나 목창 등은 무공 고수들이 수련할 때 쓰도록 특별히 만든지라, 원래 이런 일이 흔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다들 얼른 시선을 내렸다.
부서진 목창 조각보다 계속 이어질 둘의 비무가 우선이었다.
당황하여 시뻘게진 추평의 얼굴이 보였다.
부서진 창의 자루는 부르르 떨렸다. 저도 모르게 손을 떨고 있는 까닭이었다.
자세히 보니 팔다리도 떨렸다. 순식간에 두려움에 잠식된 것이다.
추평은 곧장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으아-!”
분하고 창피하여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질렀다. 얼른 두려움을 떨쳐 내려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러고는 부서지고 남은 목창을 봉처럼 다시 잡았다.
이제 창은 창이 아니기에, 쇄도해오는 공격을 막기 위해 봉술로 전환하여 재빨리 방어 초식을 펼 쳐냈다.
하지만 추평의 봉술 실력이 주력인 창술만큼 될 리 만무했다.
곧 진우선의 목검이 추평의 복부를 세게 때렸다.
퍼억-!
“꾸에엑-!”
추평이 땅에 고꾸라지며 돼지 멱 따는 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오만상을 다 찌푸리고 있었다.
배에서부터 밀려오는 고통이 작지 않은 듯했다.
무사부가 그런 추평을 흘깃 보더니, 생명에 별다른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선언했다.
“승자는 진우선이다.”
무사부가 진우선을 보며 말을 이었다.
“수고했다. 다음 비무를 기다리도록.”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여전히 목검을 놓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
“진 소협.”
우문혁이 뿌듯한 표정으로 이기고 돌아오는 진우선을 맞이했다.
“멋있었소. 그리고 통쾌했소.”
“그래?”
진우선이 빙긋 웃어 보였다.
우문혁은 진우선의 승리를 본인보다 더 기뻐하고 있었다.
“그렇소. 아까 생각났는데, 저 녀석이었소. 진 소협을 목제자라고 낮춰 부르며 가장 많이 비방했던 놈이.”
“아!”
진우선은 우문혁의 말을 바로 이해했다.
이건 우문혁이 독행관으로 와서 자신에게 속상함을 토로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진우선이 고개를 돌려 대연무장을 바라보았다.
힘겹게 일어서서 돌아오는 추평의 모습이 보였다.
추평은 계속 비틀거리며 쓰러질 듯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 자신의 몸도 쉽게 가누지 못하는 듯했다.
“제 놈이 내뱉은 말이 있으니, 고개도 들지 못할 테지.”
우문혁이 추평을 보며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추평은 자신이 그토록 얕잡아본 목제자에게 변명의 여지도 없이 패했으니, 부끄러워 언급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 후, 아무의 도움도 없이 추평은 혼자서 간신히 자리에 돌아왔다.
진우선은 추평에 대한 관심은 여기까지라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계속 미소 짓고 있는 우문혁이 보였다.
그때,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만총이 입을 열었다.
“혁아. 다음다음 차례가 너이지 않아?”
“아! 맞다.”
우문혁이 탄성을 가볍게 흘렸다. 진우선의 승리로 잠시 자신의 비무 순서를 잊은 모양이었다.
우문혁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한동안 어려 있던 미소가 사라졌다.
이제 자신의 차례가 얼마 남지 않은 까닭이었다.
삽시간에 기쁨이 긴장감으로 몰려왔다. 이전보다 곱절로.
“진 소협은 일단 시작을 잘했으니 좋겠고, 총이는 맨 마지막 순서라 좋겠군. 나도 얼른 비무에서 이기고 와야겠소.”
우문혁이 그렇게 말하며 스스로 의지를 가다듬었다.
우문혁은 승리했다.
만총도 승리했다.
둘 다 충분히 괜찮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첫 번째 비무에서 떨어질 실력은 아니었다.
그렇게 일결제자들의 첫 번째 비무 열다섯 번이 모두 끝났다.
그리고 이결제자의 첫 번째 비무가 시작되었다.
이결제자 스물여섯 명은 전반적으로 일결제자들보다 그 수준이 높아 보였다.
진우선은 그중에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천무결!’
그는 독행관에서 진우선에게 과심을 보였던 이결제자였다.
며칠 동안 폐관수련을 하고 나와서도, 쉬기보다는 진우선에게 대련을 청했던 사내였다.
진우선이 천무결의 비무를 눈여 겨보았다.
솨솨삭-!
검초가 허공을 빼곡하게 채우며 상대를 압박해 들어갔다.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몰아쳤다.
그러면서도 초식들에 과함이 없고, 부족함 또한 없었다.
상대를 예측하고 정확히 힘을 써서 승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검법에 빈틈이 없고, 냉정하구나.’
그는 과연 자기 무공에 자신이 있을 만했다. 다른 이결제자들의 실력과 비교하자면 차이가 확연하게 나 보였다.
결국, 어쩌면 당연하게도 천무결의 승리로 대결이 끝났다.
그때, 장내가 잠시 술렁거렸다.
“와-!”
“헉-!”
“정말 아름답네!”
“저런 사람이 있었다고?”
일결제자들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감탄을 쏟아냈다.
오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건 누군가의 비무를 봐서 그런 게 아니었다.
지금 막 대연무장에 나선 한 사람을 보고 어수선해진 것이다.
진우선은 다른 일결제자들처럼 호들갑을 떨지 않았으나, 충분히 그럴 만하다 여겼다.
그 사람을 아는 까닭이었다.
‘정 소저구나.’
등장한 사람은 정연서였다.
그리고 집중했다.
진우선은 그녀의 외모에 시선이 붙들려 비무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외모에 현혹되는 순간 비무는 끝나고 말았으니까.
쐐애액-!
빛이 번쩍이고 검의 파공성이 들려왔다.
그 순간, 승패는 바로 결정이 났다.
‘쾌검!’
진우선의 머릿속에 그 두 글자가 번뜩였다.
부릅뜬 눈에는 아직 쾌검의 잔상이 맺혀 있는 듯했다.
검이 너무 빨랐다.
감히 눈으로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상대는 알고도 막지 못했으리라.
“…….”
좌중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승자는 정연서.”
무사부의 말이 고요해진 대연무장에 외로이 울렸다.
이미 정연서는 자리로 거의 돌아간 상태였다.
‘쾌검의 엄청난 고수구나!’
정연서의 검은 다시 생각해봐도 감탄만 나왔다.
그때, 장내가 다시 한 번 술렁거렸다.
“헐!”
“크다.”
칠 척(尺, 일 척=약 30cm)에 가까운 키를 가진 거구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그는 웬만큼 키가 큰 사내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체구도 더 육중했다.
게다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일 장(丈, 일 장=약 3m) 길이의 방천화극을 휘휘 돌리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것만으로도 대장군 같은 기세가 뿜어졌다.
‘누굴까?’
진우선이 의문을 가졌다.
독행관에서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사내였다.
때마침 그의 이름이 다른 일결제자에게서 흘러나왔다.
“심소룡이다!”
“그럼 호심당의 최고수가 바로…….”
“맞아!”
호들갑 떠는 몇 명을 통해 진우선은 심소룡에 대한 정보를 간단히 얻었다.
그리고 보았다.
콰아아앙-!
대연무장에 폭음이 터졌다.
괴력이 터져 나왔다.
심소룡의 실력은 소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