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31화 (31/225)

031.

#성장과 기대 (4)

여인은 진우선을 보며 핵심을 파악했다.

진우선이 나무랑 많이 닮았다는 말은 곧, 목기를 수련하고 있는 진우선의 상태를 제대로 느낀 것과 다름없었다.

“신기해요. 사람에게서 이런 느낌이 난다는 게.”

“아무래도 제가 이 나무에 마음이 많이 가서 그런가 봅니다.”

진우선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잠시 놀랐던 마음은 어느새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역시나 수기의 효과였다.

“음. 그런가요?”

여인이 별반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을 흘리며 진우선과 눈동자를 한 번 마주했다.

“뭐, 그렇다면 그렇겠죠.”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싱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누구십니까?”

진우선이 물으며 곧장 그녀의 허리춤을 살폈다.

두 개의 매듭이 보였다. 이결제자였다.

진우선의 질문과 시선에 여인은 곧장 자신을 밝혔다.

“아! 내 소개가 늦었군요. 나는 이결제자인 정연서라고 해요.”

“일결제자인 진우선입니다.”

진우선도 자신을 정식으로 소개했다.

“반가워요, 진 공자. 소문보다 놀라워서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는데, 수련에 방해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다들 제 모습이 신기한지 한 마디씩 말을 거니까요.”

“그런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그저 소문대로 진 공자가 나무를 기르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을 뿐이겠죠?”

정연서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다른 이들의 모습을 예측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가 그랬던 건 아니어도, 대부분이 정연서의 말처럼 행동했으니까.

“그렇겠죠. 지금 이렇게 있는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나무 기르는 것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보편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주 타당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정연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는 호심당의 제자 대다수가 가진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오히려 진 공자가 상승의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건 소문이 많이 부풀려진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 하지만 그 말을 한 일결제자는 진 공자와 친분이 깊어 보이던데요.”

정연서는 어떤 일결제자의 외침을 들었으나, 그의 이름은 딱히 기억하지 않았다.

어쨌든 정연서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진우선은 그게 우문혁인 걸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상승의 공부라…… 허헛.”

진우선이 멋쩍은 웃음만 흘렸다. 남에게 무공을 함부로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대답을 회피하려는 뜻이었다.

정연서는 그런 진우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렇게 계속 보고 있으니, 확실히 아까보다도 더 진하게 느껴지네요. 이 나무의 힘차고 굳건한 기운이 진 공자에게서도 풍겨와요. 강인한 성질이 닮았어요.”

정연서는 자신의 감각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우선의 대답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우선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까지 말한다면, 더 얼버무릴 수는 없으리라.

“사실, 수련하고 있는 건 맞습니다. 그걸 혁이가 상승의 공부라고 한 모양이지만요.”

“역시 그랬군요. 그렇다면 성과가 꽤 있는 거네요. 축하해요!”

정연서가 활짝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이번 비무에서 진 공자가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네요. 비무에 나올 거죠?”

“네, 그렇습니다.”

“좋네요.”

정연서가 빙긋 웃었다.

일결제자 가운데 진우선의 성취만이 궁금한데, 비무 때 살펴볼 수 있는 까닭이었다.

이렇게 이야기를 충분히 나눈 뒤.

“그럼 이만 가볼게요. 수련 잘하세요.”

정연서가 독행관으로 들어갔다.

정연서가 사라진 후, 차츰 하루가 저물어갔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진우선은 평소와 다른 오늘에 의문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그중에 일부가 말을 거는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세 사람을 하루 안에 만났다.

그들 셋은 각기 달랐다.

화설옥은 나무를 볼 줄 알았다.

천무결은 진우선의 강함만을 볼 줄 알았다.

정연서는 진우선과 나무가 닮은 걸 볼 줄 알았다.

하나하나가 특별한 인연이었다.

그런 이들이 하루에 몰아서 왔다.

진우선은 곧, 서로 연관이 없는 세 사람에 대해 무언가 답을 내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인연을 곧바로 해석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별 날이 다 있구나.’

그저 별 날로 여기는 수밖에.

다만, 호심당의 많은 제자 가운데 세 사람의 첫인상은 유독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

첫 시험, 즉 비무의 날짜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시험 날짜가 코앞으로 가까워지니, 호심당 제자들은 알게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건 일미관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낼모레군.”

“그렇지.”

“작년에 우리도 저랬던가?”

청색과 회색 무복을 입은 이결제자 둘이 밥을 먹으며 주변을 살폈다.

두 사람의 눈에 전투를 앞둔 장수처럼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는 제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일결제자였다.

“비슷했지. 더 심했었는지도 모르고.”

“하긴, 그랬지. 그땐 서로가 경쟁자였으니까.”

일결제자는 서로를 잘 모른다.

누가 더 강한지, 어떤 무기를 주로 쓰는지, 서로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각지에서 따로 뽑혀왔기 때문이었다.

“다들 밥도 제대로 안 넘어가겠군.”

일결제자들은 매우 예민할 테고 견제도 심할 것이다.

서로를 살피느라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터였다.

“얼굴이 굳었어.”

일결제자들은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 일결제자들에 비하면, 두 사람을 비롯한 이결제자들은 한층 여유가 있었다.

호심당에서 한 해를 지내봤었고, 서로의 실력을 잘 아는 까닭이었다.

“내 표정은 어때? 나도 좀 심각해 보이지?”

“심각? 전혀.”

“전혀 아니야?”

“어. 그 얼굴을 대고 물어봐라. 아주 생글생글 웃고 있다고 그러지. 어젯밤 무슨 좋은 꿈이라도 꿨냐?”

“꿈? 하……. 꿈은 좋았지. 내가 남가철방에 갔거든.”

회색 무복의 청년이 남가철방에 갔던 어젯밤 꿈을 이야기했다.

남가철방에 갔다는 건, 비무에서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우승했다는 뜻이었다.

“개꿈이네.”

청색 무복의 이결제자가 그의 꿈을 한마디로 축약해버렸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다.

“천무결은 이번에도 폐관수련을 한 달가량 했다더군. 그런데도 그들을 보자마자 ‘아직도냐?’고 중얼거렸다고 들었어.”

“허! 진짜?”

“어.”

“제길! 천무결이 그랬다면, 나는 더 어렵겠군.”

천무결은 이결제자 가운데 세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였다.

함께 들어온 스물여섯 명의 제자 중에 세 번째였다.

일 년 내내 그랬다.

그렇기에 천무결의 실력은 제자들 가운데 최상위권의 실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하위권 실력자들에게는 그를 꺾는 게 최상위권으로 가는 관문인 것이다.

천무결은 이런 상황에 만족하지 못했다.

항상 세 번째이니까.

세 손가락에 든다는 건, 바꿔 말하면 두 손가락에는 들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그 사실이 승부욕 강한 천무결을 자극했고, 일 년의 대부분을 폐관수련하며 실력향상에 온 힘을 쏟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에 맞춰 폐관수련하고 나와서도 다른 둘을 넘어서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탄과 감탄이 섞인 불평을 내뱉었을 리 없는 까닭이었다.

“천무결처럼 무공에 매진해도 최고가 아니라니……. 그들은 정말 대단해.”

“우리가 그들 셋을 넘어서는 날이 올까?”

“일단 호심당에서는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넌 꿈에서나마 좋았겠네.”

두 이결제자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서로 답을 알고 있었다.

다른 이결제자들도 답을 알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들은 가능성이 없다고 해서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잘 배워야겠군. 천무결의 검식을 몇 차례 더 볼 수 있으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겠어.”

“난 정 소저의 쾌검을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싶어.”

각자가 자신의 소망을 말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검법에서 크게 앞서나가는 두 사람이 천무결과 정연서인 까닭이었다.

비무는 실전과 가깝기에, 직접 나서면서 많은 걸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꽤 도움이 되었다.

“그나저나 천무결이 어렵다고 했으면, 이번엔 둘 중에 누가 이길까?”

“아무래도 막상막하 아닐까? 무사부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하긴, 그렇겠지. 작년에도 한 번 씩 이겼으니까.”

“서로 벼르고 있겠지. 기대되는구만.”

그들이 서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다가 회색 무복의 청년이 의문을 던졌다.

“일결제자 중에서는 누가 최고일까?”

둘이 동시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현재 일미관에서 식사 중인 일결제자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저들 중에는 없을 거 같군.”

“동감이야.”

***

시험 날이 밝았다.

대연무장에는 백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일결제자와 이결제자를 합치면, 각 서른한 명과 스물여섯 명이니 총 쉰일곱 명이었다.

즉, 모인 이들 중 과반수가 제자들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쏠려 있었다.

호심당주 호연강.

그가 첫 시험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알고 있던 바와 같이, 일결제자와 이결제자 가운데 각기 최고의 실력으로 으뜸이 되는 사람들은 남가철방의 남 대인을 만나게 될 걸세.”

호연강은 제자들에게 승리에 대한 포상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유의해야 할 점들도 이야기했다.

“비무는 서로의 실력을 겨루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기 바라네. 살초는 절대로 사용하지 말게. 이기는 것에만 혈안이 되어 상대방을 해하려 한다면 실격이야. 또한, 목제 무기 이외의 것을 사용한다면 이 또한 실격이네.”

호연강은 사상자가 나오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었다.

그것을 위해 무사부들에게도 당부했다.

“무사부들은 제자들의 비무가 과열되지 않도록 특별히 살펴주시오.”

“알겠습니다, 당주님.”

호연강이 그렇게 말을 마친 뒤 두 명의 부당주를 불렀다.

“이제부터 엄 부당주와 석 부당주가 각자 맡은 제자들을 이끌어 주게.”

“알겠습니다.”

“네, 당주님.”

엄 부당주라 불린 이는 엄초양이고, 석 부당주는 석자풍이었다.

두 사람은 각기 이결제자와 일결제자를 총괄하는 부당주였다.

엄초양과 석자풍이 각자 제자들을 통솔하러 움직였다.

“일결제자들은 내 말에 집중해주기 바라네.”

그 말에 일결제자들의 시선이 석자풍에게로 집중되었다.

“비무는 승리한 자가 계속 살아남아 올라가는 방식이며, 누구든 총 다섯 번을 이기면 그 사람이 최고에 등극하게 될 걸세. 그리고……”

첫 번째 비무에서 이긴 사람은 두 번째 비무로 올라가게 되고, 진 사람은 그대로 끝나는 방식이었다.

그리하면 다섯 번째 비무에서 최후의 승자가 나왔다.

이것은 이결제자도 마찬가지였다.

일결제자가 첫 번째 비무를 모두 마치면, 이결제자의 첫 번째 비무가 이어진다.

그 후로 일결제자의 두 번째 비무, 이결제자의 두 번째 비무를 펼친다.

그렇게 순차적으로 다섯 번째 비무까지 치러질 예정이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비무의 상대가 없어, 두 번째 비무부터 치르는 자들도 있었다.

어쨌든 다섯 번째 비무에 올라간다면, 그게 끝이었다.

“……다섯 번째 비무에까지 올라가, 최고가 되길 바라네. 누구든 할 수 있다네. 그동안 익힌 무공을 잘 보여주게.”

석자풍이 설명을 마쳤다.

제자들이 단번에 이해했는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엄초양이 석자풍의 곁으로 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설명이 끝난 모양이었다.

석자풍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더니,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비무를 시작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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