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성장과 기대 (2)
수생목(水生木).
이는 광영무의 이치 중 하나였다.
본래 나무는 물을 주면 잘 자라듯이, 광영무에서 수기는 자신을 사용하여 목기를 북돋우며, 그 생명력을 왕성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지금 진우선이 겪은 상황이 딱 그러했다.
‘그랬군요!’
진우선은 검노야의 말을 듣자마자 단박에 깨달았다.
그렇다면 수기는 어떻게 된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나무에 스며들었던 게 이상했으나, 인제 보니 수기는 제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진우선이 그 나무를 보았다.
‘힘이 넘치네.’
생기가 돌아서인지 나무에서 윤이 났다. 봄의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봄이다.
나무에게서 봄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우선에게로 그 봄이 전해져왔다.
가느다랗게 연결되어 있던 수기의 끈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목기!’
진우선은 목기(木氣)를 바로 알아챘다. 수기가 목기가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기운이 늘었어!’
떠나간 수기의 기운보다 돌아오는 목기의 기운이 더 많았다.
나무를 몇 바퀴 돌고서도 그 양이 줄지 않고, 오히려 불어나서 진우선에게로 왔다.
이제 몸의 수기가 나무로 계속 스며든다.
그러면 나무는 더욱 밝게 빛나고, 더 큰 목기가 되어 돌아온다.
순환이다.
진우선이 수기를 주면 나무가 목기를 불려서 주는 흐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흐름이 빨라진다.
속도가 점점 붙었다.
주고받는 기운의 양도 점점 더 많아졌다.
거대한 흐름에 어느새 모든 수기가 다 휩쓸려 들어갔다.
수기도 더 필요해졌다.
그렇게 느낀 순간!
쏴아아-.
물소리가 가슴을 때렸다.
천지간의 기운이 진우선의 몸으로 흘러들어와 수기가 되면서, 소리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 기운이 나무로 스며들었다.
“아-!”
진우선이 탄성을 흘렸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온몸이 짜릿했다.
하지만 진우선은 기분에 빠지지 않고, 오직 수기에 집중했다.
문득, 진우선은 검노야에게서 들었던 가르침이 떠올랐다.
[……수기의 본모습을 인정하면, 네 안에 항상 채워져 있을 것이니…… 그리되면 수기가 마르지 않고……]
진우선이 다시 나무를 보았다.
생기를 머금은 나무에 햇살이 녹아들었다.
나무가 열심히 자라기 위해 물과 햇빛을 잔뜩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잘 자라라.”
진우선이 나무에게 말했다.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나름대로 알았다고 표현하는 듯했다.
검노야의 눈동자에 나무를 바라보는 진우선의 모습이 새겨졌다.
[허허. 형을 이루었구나.]
수기의 형을 이루었으니, 이는 곧 진우선의 단전에 수기가 터를 잘 다졌다는 뜻이었다.
터가 생겼으니 이제 수기가 스스로 천지간에 소통할 수 있었다.
이에 더불어, 터에 수기가 모이니 항상 채워져 있어 마를 리 없었다.
진우선은 그걸 본능적으로 깨우쳤다.
그리고 수기가 자신만의 형을 이루었기에, 다른 기운에 휩쓸리지 않을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하나의 완성이며, 또한 새로운 시작이었다.
[잘했다. 우선아.]
검노야가 진우선을 칭찬했다. 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어렸다.
[형을 이룬 수기가 목기로 이어졌으니, 그렇게 천지간에 흐르는 기운은 서로 얽히고설키는 관계에 있구나. 수기와 목기가 이렇게 얽혀 있고, 우선이 너는 대자연과 어우러져 있고.]
‘네, 스승님.’
검노야가 진우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우선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에 너무나 기쁜 까닭이었다.
***
하늘은 아침부터 맑았다.
햇살도 좋았다.
그건 정무맹의 어디든 마찬가지였고, 독행관의 담벼락 아래도 예외는 아니었다.
거기에 한 그루의 작은 나무가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작고 가장 앙상해서 안쓰럽기까지 했던 나무였다. 독행관의 뜰에 여러 나무가 있으나, 그 나무만 유독 약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 나무는 전과 달랐다.
요 며칠 사이에 가장 생기 넘치는 나무를 꼽으라 하면 그 나무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여서 햇살을 가장 잘 받아 싱그러워 보였고, 나무 껍질도 유달리 따스해 보였다.
벌써 봄을 만끽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막 겨울을 벗고 봄을 맞이하는 다른 나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그런 나무를 한 청년이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선이었다.
“나무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힘이 있어.]
날마다 나무를 지켜보니, 생육 과정에서의 작은 변화도 바로바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움이 트고 있어요!”
진우선의 목소리에 생기가 넘쳤다.
나무에 새롭게 싹이 난 부분을 가리키며, 어제와 달라진 곳을 찾아냈다.
[오! 정말이구나.]
검노야가 인자한 표정으로 진우선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어린 손자가 있다면 딱 그렇게 바라볼 듯했다.
그런데 진우선이 이렇게 자세히 알아낼 수 있는 건 눈으로 확인해서만이 아니었다.
목기.
새롭게 느끼게 된 그 기운을 통해서도 알아채고 있었다.
움이 돋아나니, 나무에서는 그 부분의 생기가 가장 넘쳤다.
목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무 근처에서 수기와 목기의 순환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해지는 감각이었다.
이른바, 목기가 전해주는 이야기도 듣는 것이다.
“신기해요!”
진우선이 나무를 보며 감탄했다.
나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고, 무수히 봤었다.
하지만 지금 마주하는 나무는 참 새로웠다.
진우선이 애정 어린 손길로 나뭇가지 하나하나를 만졌다.
그러자 손끝에서도 수기와 목기가 순환했다. 나무에 손이 닿을 때마다 또 다른 순환고리가 생기고 사라졌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손끝에서 피어나고 저문다고나 할까.
‘아-!’
문득, 형언키 어려운 희열이 온몸에 타올랐다.
바로 이 순간, 천지간의 신비가 자신을 통해서 보여진다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었다.
그건 전율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일미관은 호심당의 제자들로 붐볐다. 일결제자와 이결제자가 식사하러 모였기 때문이다.
식사는 자율이기에 이곳에서 안 먹는 제자들도 여럿 있었지만, 상당수가 일미관의 요리에 만족하며 먹고 있었다.
“이번에 정무맹이 강서성에서 대승을 거뒀다던데, 소식 들었어?”
“들었지. 숭의각과 진양각에서 연합한 작전이 기가 막혔다더군.”
제자들이 곳곳에서 식사하면서, 각자 접한 이야기들을 서로 말하고 있었다.
수련은 따로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식사시간이 서로 대화하기에 참 좋았다.
그러던 중, 어느 제자의 입에서 재미있는 말이 흘러나왔다.
“너 혹시 목제자라고 들어봤어?”
“목제자?”
“못 들어본 모양이군.”
“어. 그게 뭔데?”
“독행관의 뜰에서 나무를 키우는 제자가 있거든.”
“뭐? 나무를 키워?”
“어. 나무 키워.”
“왜 키워?”
“나도 모르지.”
“에이, 할 일 없는 것도 아니고, 설마 그러겠어?”
“진짜야. 일결제자 중에 그런 괴짜가 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목제자라는 말이 생겼겠지.”
목제자가 일결제자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그들은 이결제자였다. 허리춤에 매듭이 두 개 있었다.
그때, 옆에서 식사하던 다른 이결제자도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나도 들어봤어. 그래서 진짜 그런가 싶어서 직접 보고 오기도 했지.”
“오! 봤어? 진짜야?”
“어! 소문을 들으니 신기해서 가 봤는데, 진짜 있었어.”
“그럼 누군지도 봤겠군.”
“봤지. 진우선이라 하더군.”
뒤편에 있던 이도 대화에 동참했다.
“맞아. 나도 들었어. 그리고 내가 봤을 땐 나무에 말도 걸고 있더라고. 으하하하!”
“푸홉! 나무에 말을 걸어? 웃기는구먼.”
“그러고 보니, 평이는 이번에 같이 들어왔으니까 알겠네. 그치?”
“그러게. 평아. 걔 원래 그렇게 웃긴 애야?”
그들이 또 옆에 있는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는 추평으로, 이번에 진우선과 함께 들어온 일결제자였다.
“웃기기는요. 평소에는 존재감도 별로 없습니다. 얼굴도 전혀 인상적이지 않고요. 저도 거의 몰랐었는데, 간신히 기억이 났어요. 하지만 딱히 별 볼 일 없는 거 같습니다. 하하하!”
추평이 비꼬는 어조로 진우선을 마구 얕잡아보았다.
바로 그 순간.
한 청년이 수저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일갈을 내질렀다.
“아니오!”
그의 음성에 일미관이 쩌렁쩌렁 울렸다.
동시에 일미관에 정적이 내려앉았고,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진 소협은 그런 사람이 아니오. 함부로 험담하지 마시오.”
청년의 표정은 비장했다.
짙은 눈썹을 역팔자로 치켜뜨고서, 흡사 곧 싸우러 나갈 사람처럼 칼날 같은 기세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청년은 우문혁이었다.
우문혁은 지금 타오르는 분노를 차갑게 표출하고 있었다.
평소의 모습과 정반대였다.
부리부리한 눈에 선한 미소를 띠고 있어 사람이 참 순하고 좋아 보였는데, 지금 이 순간에는 커다란 눈동자에 불이 활활 타올라서 섬뜩하기까지 했다.
우문혁이 그 눈빛을 추평에게 쏘았다.
추평이 움찔했다.
그리고 이결제자들도 한 번씩 눈여겨봤다.
그러자 잠시 움찔거렸던 추평이 소리쳤다. 우문혁의 기세에 자신이 움츠러든 게 부끄러웠는지 크게 성을 내며 외쳤다.
“그런 사람이 아니기는. 그건 우문혁 네가 잘못 본 걸…….”
“전혀!”
우문혁이 단칼에 말을 잘랐다.
추평처럼 움찔거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바로 내뱉었다.
“모두 틀렸소. 그건 수련의 일부요. 진 소협은 수련 중이오.”
주변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나무 키우는 게 무슨 수련이야?”
“나무에 말 거는 게…….”
“그런 수련은 무관 꼬맹이들도 안 하겠네.”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나오자 금세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하-! 아무도 진 소협이 지금 상승의 공부를 하고 있음을 모른단 말이오?”
우문혁이 비분강개하여 소리쳤다.
“다들 아무것도 모르고서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시오. 그건 모욕이오!”
“…….”
다시 한 번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때,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던 추평이 사갈처럼 혀를 놀렸다. 배알이 꼴렸던 모양이었다.
“근데 왜 꼬박꼬박 진 소협이라고 하지? 자기들끼리 소협이라고 부르는 건가? 키키키!”
“추평! 그 입 멈춰!”
우문혁이 다시 한 번 일갈을 내질렀다.
그 순간, 잔뜩 놀란 추평은 그대로 온몸이 굳어버렸다.
그리고…….
딸꾹-!
한편.
‘상승의 공부라고?’
‘그럴 수도 있겠어.’
일미관 내에서 조용히 식사하던 제자 중 몇 명의 눈이 빛났다.
***
진우선은 오늘도 독행관 담벼락 아래에서 작은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문혁이 그런 진우선을 불렀다.
“진 소협!”
“혁아, 너 무슨 일 있었구나.”
진우선이 우문혁의 분위기를 알아챘다. 그의 목소리가 침중해진 까닭이었다.
“맞소. 무슨 일이 있었소. 아니, 사람들이 소협을 목제자라 낮춰 부르며, 그저 나무를 기른다고 폄하하는 것 아니겠소? 진 소협은 지금 이 나무를 바라보며 심상 수련을 하고 있는데, 다들 아무것도 모르면서 험담하고 있었소! 그걸 어찌 참을 수 있겠소?”
즉, 우문혁이 다른 사람들에게 한바탕 쏘아주고 왔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우문혁이 진우선에게 성토하듯 말했다.
사실 최근에 만총과 우문혁도 독행관에서 수련하는 때가 많았고, 두 사람은 당연히 진우선에게 행동의 의미를 물어봤었다.
그때 진우선은 “수련 중.”이라 답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있으며, 사실을 말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게 우문혁이 분개한 이유였다.
“나를 놀린다는 거구나. 그 때문에 혁이 네가 화난 거고.”
진우선이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이해했다. 목기와 수기가 넘쳐서인지 흥분하지 않고 침착했다.
우문혁은 진우선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소, 진 소협. 그놈들은 정말 형산파의 일을 듣지도 못했는지…….”
우문혁이 또다시 길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려고 했다.
그러자 진우선이 맑게 웃으며 짧게 말했다.
“혁아, 고맙다.”
“…….”
일순간 우문혁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입만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려던 말도 다 까먹은 듯했다.
그러다 간신히 입을 열었다.
“아! 아니오. 나는 괜찮소.”
조금 전에 독행관에 들어오던 만총도 대화를 이해하고는 한마디 거들었다.
“혁이가 너를 위해 발 벗고 나섰다더군. 멋있었다더라.”
“진 소협. 나는 멋있어지려고 한 게 아니라…….”
“응, 알아. 정말 고마워.”
진우선이 맑게 웃으며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
그 순간, 우문혁의 눈동자가 떨렸다. 하지만 동시에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