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20화 (20/225)

020.

#정무맹 가는 길 (2)

“천마교!”

“전에 들었던 것보다 심각한 모양이야.”

만총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진우선도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교는 정무맹이 있는 호남성에서 더 남쪽인 십만대산에서 준동한 집단이었다.

그들은 천마를 숭상했다.

천마는 강력한 패도(覇道)를 추구하며, 마공을 익혀 마(魔)를 깨우치고, 극마(剋魔)를 넘었다는 전설 속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현재 천마교는 오직 힘을 추구하며 온갖 흉흉한 일들을 벌이는 패악한 무리였다.

정무맹은 올바른 이치를 지켜내기 위해 그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철혈보의 고수들도 조심스러워하고 계시더라. 다들 긴장한 것럼 보였어.”

“내가 봐도 그렇더군.”

낮에 본 사람들은 철혈보의 무사들이었다.

악양에서 백 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배에 탄 까닭에,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천 대협이 계시니 철혈보는 큰 문제없겠지.”

“맞아. 천 대협이라면.”

만총과 진우선이 입을 모았다.

철혈보의 무사들을 이끄는 사람은 멸절검 천무광이었다.

호북성 남쪽에 굳건히 터를 잡은 거대방파 철혈보.

그 철혈보에서 세 손가락으로 꼽히는 고수가 바로 천무광이었다.

그의 위명은 진우선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만총이 중얼거렸다.

“근데, 예감이 별로 좋지 않네.”

만총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뭔가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우선도 마찬가지였다.

왜인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었다.

그날 밤.

진우선이 침상에 막 누웠을 때였다.

무언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뭐지?’

기분이 께름칙하고 편하지 않았다. 잠도 쉽게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진우선은 그 감각에 집중했다.

‘수기가 조금 달라!’

수기가 평소와 미묘하게 달랐다.

장강은 물이 깊고 유유하게 흘러 차갑고 축축한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뭔가 끈적한 느낌이 더해져 있었다.

마음이 찜찜해졌다.

속이 더부룩한 것 같기도 했다.

‘무슨 느낌이 이러지?’

진우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검노야를 찾았다.

‘스승님!’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우선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살폈으나 검노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 가셨나 보네.’

진우선은 검노야에게서 지금 바로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최근에 검노야는 종종 자리를 비우곤 했으니까.

진우선이 조심스럽게 선실을 나섰다.

“하아-!”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기분이 참…… 더러워.’

복도에 나선 순간, 기분이 확 나빠졌다.

너무 거북하고 불편했다.

말을 하면 욕부터 나올 것 같았다.

진우선은 일단 선실들이 이어진 복도를 걸었다.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는 곳은 멀리 있지 않았다.

금방 위치를 찾았다.

문도 조금 열려 있었다.

문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과 강물 냄새가 마구 새어 나왔다. 비릿한 피 냄새도…….

“……!”

진우선이 벌컥 문을 열었다.

“으으으-!”

신음이 들렸다.

피를 쏟은 채 바닥에 늘어진 철혈보 무사들이 서넛이 보였다.

배 바깥으로 뚫린 커다란 구멍을 통해 그들의 피가 강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힘겹게 헐떡거렸다.

천무광이었다.

“천 대협!”

진우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 질렀다.

그는 척 봐도 너무나 위급해 보였다.

“컥! 커억! 나 좀…… 컥! 품에…….”

천무광이 컥컥대며 말할 때마다 입에서 피가 왈칵왈칵 쏟아졌다.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 말을 하려 하는 까닭이었다.

몸도 채 가누지 못하는 데다가, 고통에 신음하느라 정신도 없을 터였다.

그러나 절박함으로 이 순간을 견디고 있었다.

진우선이 즉시 다가갔다.

“품에요?”

진우선이 다급히 천무광의 품을 살폈다.

옷 앞섶이 마구 난도질되어 있고, 살갗에서는 피가 끊임없이 배어 나왔다.

품에 무언가가 있었다면 부서졌어도 이상할 게 없을 듯했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그의 가슴팍 근처에 천으로 돌돌 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진우선이 얼른 천을 풀고 그 속에 있던 것들을 꺼냈다.

비상약 몇 종류가 보였다.

“쿨럭! 약을…….”

약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천무광의 눈을 보며, 그가 원하는 약을 찾았다.

요상단과 금창약이었다.

요상단은 내상을 다스리는 환단이고, 금창약은 상처에 발라 지혈하는 약이다.

천무광은 내상과 외상을 크게 입었기에 둘 다 필요했다.

진우선이 요상단을 먹이고 금창약을 발라주었다.

“커흑! 옆방에 사제도…… 살펴봐주게…….”

천무광은 운기조식으로 약효와 함께 내상을 다스리기 전에, 한 마디 더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대답한 뒤 얼른 옆방으로 갔다.

그곳에도 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진 철혈보의 무사들이 있었다.

낮에 봤던 천무광의 사제도 보였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그는 숨을 거둔 후였다.

***

지난밤.

배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악양에서 올라탄 철혈보의 무사들 수십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로 인해, 남아 있는 철혈보 무사들의 표정은 심장에 돌덩이라도 하나씩 얹은 듯 비통해 보였다.

배에 탄 사람들의 분위기도 많이 침울해졌다.

바로 이곳에서 시체가 잔뜩 생겼다고 들었으니, 두렵고 무서운 게 당연했다.

선원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 배를 수리하느라 정신없었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했다.

그런 가운데, 진우선은 오전부터 천무광을 만나고 있었다.

천무광은 일단 몸을 안정만 시켜 놓은 채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자네가 내 은인일세. 정말로 고맙네.”

“아닙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오히려 대협께서 심려가 크실 거라 생각됩니다.”

진우선이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래도 나는 자네가 빨리 와준 덕분에 내상이 더 악화되지 않았어.”

천무광의 옆에 서 있던 한 사람이 말을 받았다.

“불행 중 다행일세. 소협 덕분이네.”

그는 두 자루 검을 등에 찬 염소 수염이 난 중년인이었다. 천무광과 친분이 있는 사람인 듯했다.

“소협. 그런데 혹시…… 어젯밤에 따로 무언가 본 것은 없는가?”

천무광의 목소리에서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요?”

“아까 내가 사제의 눈을 감겨주었네. 사제는 이렇게 갈 사람이 아닌데…… 너무도 쉽게 숨을 거두었어. 아무튼, 그때 혹시 옆방에서 특별히 본 건 없었는지 물은 것이라네.”

천무광은 사제의 죽음이 석연치 않은 모양이었다.

진우선은 그 의도를 단박에 파악하고 물었다.

“혹시…… 흉수가 누구인지 안 밝혀진 것입니까?”

“그렇다네.”

천무광이 한없이 비통하고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허-!”

진우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 역시 사람이 죽었는데 흉수에 대해 아는 게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저는…… 특별한 건 보지 못했습니다.”

“역시! 그랬을 거 같았어. 그는 흔적을 별로 남기지 않을 정도의 고수니까.”

천무광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진우선의 마음이 이리 답답한데, 천무광이나 염소수염 사내의 마음은 얼마나 더할까. 분통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을 터였다.

“간밤에 선실마다 들러 살수를 펼쳤는데도 아무도 모를 정도면, 정말이지…….”

“어젯밤에 내가 좀 더 빠르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하아!”

천무광의 한숨에 후회가 가득 묻어나왔다.

“그래도 천 대협이 막아내셨기에 그를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쫓아냈는지…… 그가 달아났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네. 그리고 적이 몇 명이었는지도 모르지. 내가 상대한 건 단 한 명뿐이었으니.”

천무광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딱하게 굳은 그의 표정은 좀처럼 펴질 줄을 몰랐다.

“아무래도 만상각주님과 이야기를 한 번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겠어.”

염소수염 사내의 조언에 천무광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천무광이 진우선에게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마음이 급해 소협의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군. 나는 천무광일세. 철혈보의 식구들을 이끌고 있지. 소협은?”

“저는 진우선입니다. 정무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호심당에 들어가게 되어서요.”

“오! 호심당의 제자였군. 정말 반갑네. 소협을 보니 맹의 장래가 참 밝군. 다행이야.”

천무광은 진우선을 벌써 호심당의 제자로 취급하며 반가워했다. 그의 눈에 희망과 안도의 기색이 어려 있었다.

“나는 진양각 소속의 냉하상이다. 반갑다.”

냉하상도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임무를 마치고 정무맹으로 복귀하기 위해 배를 타고 있었다. 그러다가 새벽에 철혈보의 사태를 접하고 천무광의 곁에 온 상황이었다.

“진 소협, 내가 지금은 비록 경황이 없지만, 어젯밤의 일은 잊지 않겠네. 조만간 찾아갈 테니 맹에서 보세. 정말 고마워!”

천무광이 진우선의 손을 꼭 잡은 채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진우선은 선실로 돌아왔다.

만총이 없어서인지 선실에 적막이 흘렀다.

곧 진우선은 생각에 잠겼다.

‘수기가 미묘하게 달랐어.’

지난 밤 배에서 암습이 있었다.

한 명, 혹은 여러 명이 철혈보의 무인들을 소리 없이 습격했고, 많은 사상자를 냈다.

너무도 은밀하여 알아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진우선이 알아챈 건, 미묘하게 달랐던 수기의 느낌 때문이었다.

‘왜 달랐을까?’

끈적하고, 더부룩하고, 불편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불쾌했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렇다면 아마도 물에 피가 섞여서 그랬겠지.

흘러나간 피가 한두 방울이 아니었다. 부서진 선실 벽 너머로 흘러 내려 강을 적셨으니 말이다.

‘천지간의 기란…… 참으로 신비하구나.’

진우선이 감탄하며 기운을 살폈다.

지금은 어젯밤과 달리 수기가 평범해져 있었다. 다만, 조금 더 많은 수기를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얼른 더 수련해보고 싶다!’

수기의 신묘함을 엿보고 나니 수기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이럴 때 스승님이 계시면 물어볼 텐데…….’

검노야는 여전히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어디로 가신 걸지 알지 못했다.

바로 그때,

“여기 있었구나! 어젯밤에 네가 방을 나갔던 게 그 때문이었다니…….”

목소리와 함께 만총이 선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천 대협과 이야기 잘 하고 왔어?”

“응, 하고 왔지. 많이 안 좋아 보이시더라.”

“그러시겠지. 적의 정체를 알 수 없다던데, 여기서 뭘 더 할 수가 없으니…….”

만총이 말끝을 흐리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얼른 저녁이 되어야겠어. 그때면 장사에 도착할 테니.”

만총이 말한 대로 배는 저녁때 장사에 도착했다.

그러자 배에 탔던 모든 사람이 서둘러 내렸다. 이 배에 더 타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진우선과 만총도 그들과 엉켜 빠르게 배에서 내렸다.

만총이 종종걸음으로 걸으니, 진우선이 그 뒤를 따라갔다.

원단이 되기까지 열흘 남았다. 그동안 쉴 곳을 이미 만총이 알아봐 둔 상태였다.

둘은 그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진우선이 갑자기 멈춰 섰다.

“잠깐만!”

“어?”

만총도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며 물었다.

“뭔가…….”

진우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무언가 더럽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거북하고, 메슥거렸다.

“……!”

어젯밤의 그 불쾌감이다.

이 느낌은 분명했다.

진우선이 이 감각의 근원지 쪽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희미한 환영도 보였다.

검노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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