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7화 (17/225)

017.

#당할 자가 없으니 (3)

진우선이 반효가 비무하러 섰을 때였다.

“호오!”

유청인이 작게 감탄을 흘렸다.

눈빛을 통해 엿보이는 기백.

검에서 전해지는 기세.

그 모든 게 좋았다. 참으로 괜찮았다.

유청인은 제자들이 검을 든 모습만 봐도 대강의 실력을 알 수 있는데, 진우선의 모습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마주한 상대도 도를 꽤 열심히 익힌 것 같으나, 확연한 차이가 보였다.

‘진우선.’

이름을 되새겨보았다.

‘어제 듣기로는, 분명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는 제자라더니…….’

관주가 틀렸다.

그는 잘못 말했다.

만약 이 실력을 못 알아봤다면 보는 눈이 없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관리를 소홀히 한 게 틀림없었다.

아마도 후자에 가깝겠지만.

유청인은 이 승부를 예상해보았다.

‘이십 초? 길어야 삼십 초면 승패가 결정 나겠어.’

진우선이 몇 초식 만에 이길지가 관건이었다.

이윽고 둘의 무기가 충돌했다.

콰앙-!

폭음이 났다.

그리고 한쪽이 나가떨어지며, 단숨에 결판이 났다.

단 일격이었다.

“……!”

유청인은 말문이 막혔다.

충격에 생각이 멎었다.

‘내 예상도 틀렸다고?’

그것도 허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벗어난 게 아니다.

아예 가늠을 잘못했다.

실제 진우선의 실력은 예상치를 초월하고 있었다.

‘삼재검법 한 초식이었어. 완벽한 한 초식이었다!’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유청인은 머릿속에서 관주가 했던 말을 깡그리 지워버렸다.

“반효라면 붙겠지.”

“맞소. 반효 정도라면 떨어질 리 없지.”

“만총을 제외한다면, 반효와 허자풍만이 부당주의 눈에 찰 것이니.”

비무가 시작되려는 찰나, 무사부들이 이런저런 예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의 예상대로라면 반효의 압승이었다.

진우선은 그들의 머릿속에서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때, 진우선과 반효에게서 콰앙- 소리가 나고, 반효가 패했다.

“……!”

무사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못했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들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생각했던 바가 아니었다.

정반대의 결과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떻게 한 초식 만에…….”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진우선이 힘껏 휘두른 검을, 반효의 도가 막아내지 못한 것에 대해 놀란 것이다.

반효는 그냥 막아내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진우선의 힘에 밀려 뒤로 나가떨어졌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각자의 검과 도가 맞부딪쳤고, 거기서 밀린 것이니까.

“저 정도였다고?”

“말도 안 돼…….”

무사부들 몇몇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자신이 본 걸 믿을 수 없는 듯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밖에 없었다.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무사부 양문곽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대견하다는 표정이 어려 있었다.

***

‘보인다!’

진우선은 반효의 도가 보였다.

반효의 도법은 오늘 처음 봤다.

하지만 어떻게 도를 휘두르며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올지 알 것 같았다.

본 것과 거의 동시에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느낌이 왔다.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단숨에 깨뜨리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면 길게 끌 필요 없지!’

진우선에게서 안광이 쏘아졌다.

다짐한 것이다.

단 한 수로 실력 차이를 보여주겠다고.

콰앙-!

그 한 수에 반효가 저만치 날아가 나자빠졌다. 이 장 넘게 튕겨 나가 바닥을 굴렀다.

검과 도가 부딪치고 각자의 초식이 얽히는 순간, 진우선이 반효의 허점을 파고들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삼재검법 한 초식 만이었다.

“승자는 진우선!”

관주가 곧바로 외쳤다.

그의 예상과 달랐으나, 더 볼 필요가 없었다.

둘의 대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진우선이 검을 내렸다.

“끄윽-!”

그때, 반효가 신음을 흘렸다.

팔로 땅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생각대로 되지 않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웃고 있는 진우선이 보였다.

근데 그 미소가 왠지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고, 비참한 심정마저 들었다.

“너 이 자식! 암수를 썼어! 다시 해!”

반효가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들은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덤덤한 눈빛으로 말했다.

“아니. 네 실력으론 무리야.”

다시 상대하는 것도 무리고, 정무맹에 가는 것도 무리였다.

지금의 결과와 이 정도 실력으로는 어디 가서 찍소리도 못할 것이다.

진우선이 몸을 홱 돌렸다.

“으아악!”

등 뒤로 반효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진우선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진우선에게로 관주가 다가왔다.

“우선아. 이 정도였느냐? 그새 더 나아졌어.”

“감사합니다.”

진우선이 관주에게 인사를 하고는 물러섰다.

관주가 잠시 물끄러미 진우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계속 비무를 진행했다.

“다음 비무는 만총과 허자풍이다. 두 사람은 올라와서 연무장 가운데에 서도록.”

관주의 음성을 뒤로하고, 진우선은 대연무장 외곽으로 향했다.

올라오는 만총과 마주쳤다.

만총이 진우선의 곁을 스쳐 가면서 말을 건넸다.

“멋있었다. 실력으로 압도했으니 제 놈들이 부끄러울 테지. 나도 그렇게 해야겠어!”

“고마워. 네 실력 기대할게!”

“응. 기대해라.”

만총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그는 이미 대연무장 위로 올라가 있었다.

진우선이 내려왔다.

아직 차례가 오지 않은 매영령이 진우선을 맞이했다.

“우와! 우선 오라버니! 엄청났어요!”

“고마워.”

“저라면 오라버니를 뽑겠어요. 아마 부당주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합격 미리 축하해요!”

매영령은 진우선의 승리를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해 주었다.

“저도 잘할 수 있겠죠? 비무에서 반드시 실력을 보여서 꼭 정무맹에 갈 거예요!”

“응. 충분히 가능할 거야. 긴장하지 말고, 힘내!”

“네! 그럴게요!”

매영령이 이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진우선은 매영령을 뒤로한 뒤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제 진우선은 혼자 서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무사부도 없고 다가오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혼자가 아니었다.

[수고했구나.]

‘스승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검노야의 말에 진우선이 고마움을 드러냈다.

진우선은 실제로 비무에 들어서면서 당황하지도 않았고, 떨리지도 않았다.

검노야 덕분이었다.

검노야와의 대련을 통해 수도 없이 실제처럼 연습해보았으니까.

그러면서 견문을 넓히느라 함께 익혔던 장서고의 무공들을 상대해 보았으니까.

검노야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들이었다.

그리고 검노야에 비하면, 반효의 실력은 부족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수가 보인 것에 이런 이유도 있을 터였다.

광영무는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인제 보니 질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허허허. 네가 잘 해내서 좋구나.]

검노야가 흐뭇하게 웃었다.

만총이 허자풍을 마주했다.

허자풍은 만총보다 한 살 위였고, 갑급에 온 지도 삼 년째여서 일 년 더 많았다.

하지만 무사부들은 항상 만총의 실력이 더 낫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만총이 이기겠지.”

“자풍이도 실력이 괜찮지만, 그래도 만총에게는 부족해.”

“제 실력이나 잘 발휘했으면 좋겠어.”

다들 만총의 승리를 예상하면서 패배할 허자풍을 걱정했다.

그리고 만총과 허자풍의 비무는 예상대로였다.

시작부터 만총이 크게 우위를 보였다.

만총이 기다란 창을 묵직하게 휘두르니, 허자풍은 금세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창을 막아낼 때마다 도를 쥔 손이 강하게 울렸고, 손아귀부터 팔뚝과 어깨까지 뻐근하고 저릿저릿했다.

그러다가 굉음이 터졌다.

퍼펑-!

까앙!

창이 도를 땅에 처박으면서, 창에 실린 내력이 허자풍에게 타격을 준 것이다.

허자풍은 손에서 도를 놓친 채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찌었다.

“승자는 만총이다!”

관주가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서 무사부들이 입을 열었다.

“다섯 초식 정도였나?”

“허자풍도 막는다고 막았는데…….”

“역부족이었어.”

무사부들은 당연한 결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허자풍과 반효의 무사부인 막소춘은 크게 좌절하여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아-!”

하늘이 무너진 듯한 한숨마저 흘러나왔다.

그런 막소춘의 뒤에 있던 두 중년인이 허탈한 목소리로 한탄하듯 물었다.

“막 사부. 만총이란 저 아이가 정녕 무관의 제자란 말이오? 저 실력으로 왜 여기에 있는 거요?”

“진우선이란 아이도 그렇고…… 믿을 수가 없구려.”

두 중년인은 각각 허자풍과 반효가 개별적으로 모시는 스승 잔양도 왕평과 맹호도 추선이었다.

그들 둘과 막소춘까지 세 사람은 허자풍과 반효를 가르치며 친분을 튼 상태였다.

지금은 함께 절망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후우-! 아무래도 정무맹은 어려울 것 같소.”

막소춘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아직 남은 한 번의 비무는 보지 않았다.

진우선과 만총 두 사람이 돋보이고 있었다. 허자풍이나 반효에게 다시 기회가 올 가능성은 적었다.

“허 대인과 반 대인의 화가 크겠구려.”

허 대인과 반 대인은 허자풍과 반효의 아버지다. 그들은 돈으로 사람을 부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돈을 쓸 땐 부족함 없이 쓰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책임을 꼭 묻는다.

그런 그들은 이번에 무사부들에게 큰돈을 썼다.

행실에 말이 많았던 아들들을 정무맹에 보내어 구설수가 없게 하고, 정무맹의 도움을 얻어 가세의 확장과 사업의 번영을 노린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화를 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당연히 끝날 터였다.

“애초에 싹이 아니었는데…… 받아들이지 말 걸 그랬소.”

왕평과 추선 두 사람이 후회하며 체념했다.

만총과 허자풍의 뒤를 이어 매영령과 전광의 비무가 있었다.

갑급에 온 지 이 년이 되었으나, 무공에 특출 난 재능이 있지는 않았던 매영령.

그리고 막 갑급에 올라온 전광.

둘의 대결은 진우선이나 만총과 달랐다.

압도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난히 불리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매영령의 실력이 다소 높았으나, 순식간에 제압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오십 초를 넘게 겨뤘다.

그 결과, 매영령이 이겼다.

하지만 유청인의 눈에 얼마나 인상적이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세 차례의 비무가 끝나고.

대연무장 한가운데에 여섯 사람이 늘어섰다.

진우선, 매영령, 만총.

전광, 허자풍, 반효.

그들은 정무맹 호심당 부당주 유청인의 입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수고 많았다.”

유청인이 여섯 사람의 눈을 한 번씩 맞추며 가볍게 운을 뗐다.

“너희들을 통해 청운무관의 수준이 높은 걸 보았고, 모두 실력과 의기가 있어 맹의 앞날이 더욱 희망적인 걸 느꼈다.”

이렇게 의례적인 말을 한 뒤 본 론을 꺼냈다.

“이제 호명하는 제자들은 앞으로 나오도록.”

유청인의 말에 갑급의 제자 여섯 명이 이목을 집중했다.

“진우선. 만총.”

유청인의 입에서 두 사람의 이름이 불렸다.

진우선과 만총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왔다.

“이번에 정무맹에 뽑히는 건 너희 둘이다. 각자 지닌바 실력이 뛰어나더구나.”

유청인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갔다.

“다시 하면 잘할 수 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엔 제대로 해보겠습니다!”

반효였다.

유청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더 볼 필요도 없다.”

“제가 무공을 채 펼치기 전에, 쟤가 암습을 했습니다. 암수를 썼다고요.”

반효는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었다.

유청인의 얼굴에 짜증이 어리기 시작했다.

“한 마디만 더하면!”

“……!”

반효가 움찔한 사이.

“너에게는 다음 기회도 없다.”

유청인이 단호하게 결정지었다.

그 후에는 아무런 반발도 없었다.

사실 호심당에서 뽑는 일에 원래 반발이란 게 있을 수 없었다.

아마 반효에게 다음 기회는 없을 듯했다.

아무튼, 그렇게 정무맹에 갈 제자 두 명이 정해졌다.

그날 저녁.

인근의 객잔에 두 사람이 들어섰다.

검붉은 창을 등에 멘 탁무위와 유청인이었다.

두 사람은 가볍게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총이를 잘 부탁하네.”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장로님께 배워서인지 창술 실력이 상당하더군요.”

“무재가 있으니까 잘할 수밖에 없지. 재능이 뛰어나서 금세 수련하고는 심심해했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제 맹에 가서 호심당의 아이들과 경쟁한다면 재미있을 거야. 허허.”

“저를 매우 기대하게 하는 말씀이시군요.”

“그런가? 흘흘.”

탁무위가 허허롭게 웃었다.

그리고 창밖을 슬쩍 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진우선, 그 아이가 정말 좋더군. 자네가 좋은 아이들을 데려가게 되었어.”

“네, 맞습니다. 저도 이 정도일 줄 몰랐습니다. 상상 이상이더군요.”

“그렇지. 비록 삼재검법 한 초식만 봤지만…… 좋은 향기가 났어.”

탁무위가 차향을 즐기면서 말했다.

차의 향기가 편안하고 맑으며 좋은데, 진우선에게서도 좋은 향기가 느껴진 모양이었다.

“맞습니다. 또 어떤 모습을 보여 줄까 싶어서 더 겨뤄보게 하고 싶은 걸 참았습니다. 관주와 무사부들이 청제자인 그를 왜 가르치지 않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허허. 자네로선 그렇기도 하겠군. 그게, 무사부들이 돈이 안 돼서 안 가르쳤다고 들었네. 총이가 그러더군.”

“허어-! 그게 정말입니까? 관주와 무사부들이…… 그들이 그랬군요.”

유청인이 덤덤하게 대꾸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작은 불길 하나가 치솟고 있었다.

그 불길은 커다란 화마의 씨앗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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