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5.
#당할 자가 없으니 (1)
“에이, 진짜! 뭐 그런 놈들이 다 있죠? 머리에 똥만 차 가지고는 마구 지껄여대고. 진짜로 답이 없는 건 그놈들 셋인데.”
매영령이 분통을 터뜨렸다.
두 눈에 불이 일 듯이 화가 났다. 마구 콧김을 뿜어내고 격노에 찬 숨을 토해냈다.
진우선의 이야기에 제대로 성이 나 있었다.
“다들 팍팍 패버리고 싶네!”
“너도 그 정도야?”
“네. 당연하죠.”
진우선은 자신의 이야기에 이토록 울분을 토하는 매영령의 모습에 감동했다.
“저한테도 툭하면 놀리거나 시비 걸고 그랬어요. 제 물건도 막 가져가거나 부수고. 그래서 여기 올 때도 자주 안 마주치려 했는데.”
“오! 맞아!”
진우선이 맞장구쳤다.
그들 셋은 사람 됨됨이가 원래부터 그런 모양이었다.
“진짜 저는 다른 사람 험담은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데, 그들은 달라요. 다들 욕을 먹어도 싸요. 셋 모두! 그놈들 사실 가문에서 다 내놓았어요. 어떻게든 사람 구실을 해보라고 무관에 온 거고요. 근데 그렇게 행실도 좋지 않은 셋이서 잘도 모여 다니네요, 아주!”
“와-!”
매영령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체증이 확확 내려가며 속이 시원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니, 전광을 비롯한 세 명은 품행이 좋지 못하기로 첫손에 꼽을 정도였다.
말을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후-! 아까 이야기 들었을 땐 정말 열불이 났는데, 그래도 이렇게 말하니 좀 낫네요.”
매영령이 한숨을 내쉬며 옅게 미소 지었다. 속에 있던 이야기를 털어내서 그런지 표정이 가볍고 편해 보였다.
“그러게. 네가 그렇게 말해줘서 나도 속이 시원해.”
진우선도 팔운루에 처음 들어왔을 때보다 감정이 많이 누그러들었다.
아까는 격노했었는데 매영령과 대화하면서 꽤 후련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한 화가 풀린 건 아니었다.
단지 지금의 기분이 한결 좋아진 것일 뿐.
“우선 오라버니. 저 원래 이렇게 과격한 편 아닌 거, 알죠?”
“응. 알아. 고마워.”
매영령의 목소리가 좀 더 밝아져 있었다.
진우선의 얼굴이 좀 트인 것을 보고, 일상의 대화로 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팔운루 밖에서 인기척이 났다.
만총이었다.
“왔어?”
“어.”
만총이 짧게 대답하며 문 안으로 들어왔다.
“령매도 와 있었네?”
“네, 오라버니! 집에 잘 다녀오셨어요?”
“응. 간 김에 아버지도 뵙고 오느라 좀 늦었어.”
“잘하셨어요.”
만총은 오늘 집에 다녀온 모양이었다.
“근데 이건 뭐예요?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우리가 먹을 거죠? 그쵸?”
만총이 왼손에 보따리 하나를 들고 왔는데, 매영령이 그걸 발견했다.
“집에서 나오는 길에 이것저것 싸 왔어. 같이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와! 얼른 들어오세요! 안 그래도 허기가 막 오르던 참이었어요.”
매영령이 만총을 매우 반겼다.
진우선도 마찬가지였다.
셋은 순식간에 탁자에 둘러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총 오라버니. 글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무슨 일 있었어?”
“있었죠. 그게 뭐냐면요…….”
매영령이 음식을 먹으며 진우선이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만총도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원래부터 행실이 바르지 못했지. 광이 형도 그렇고, 그 주위로 어울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그들은 무엇을 먹고 무엇을 샀는지, 어떤 술과 어떤 기루가 좋은지만 말해. 발전이 없고, 그럴 의지도 없지. 모든 게 넉넉한데도 삶을 허비하기만 할 뿐이고. 짐승도 그렇게 살지 않아.”
만총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가 무표정한 얼굴로 신랄한 평가를 쏟아내니, 진우선의 대답이 잠시 늦었다.
“맞아. 매 소저도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래. 상종할 필요가 전혀 없어. 엮이면 오히려 골치 아팠을 거야. 아무튼, 네가 정말 수고했다.”
“맞아요. 진짜!”
그들의 말을 들으며 진우선이 웃었다.
만총과 매영령도 덩달아 미소 지었다.
그렇게 세 사람이 밝은 표정을 그렸다.
전광과 허자풍, 반효는 아무리 활짝 웃어도 비웃는 느낌만 들 뿐인데, 참으로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고마워, 둘 다.”
진우선이 만총과 매영령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표했다.
매영령은 피식 웃더니, 만총에게 물었다.
“근데 오라버니. 오늘 갑자기 왜 집에 다녀오신 거예요?”
“아버지가 오늘 오셨다고 들었어. 그래서 만나 뵙고, 나도 정무맹에 가겠다고 말씀드렸지. 그러려고 다녀왔어.”
“아, 진짜요? 가는 거로 결정하셨어요?”
“응. 원래는 갈까 말까 고민했는데, 어차피 여기에 계속 있어 봤자 별로 좋을 것도 없겠더라고. 때마침 우선이도 간다고 하고.”
정무맹에 간다는 만총의 결정에는 진우선의 영향이 컸다.
만총은 진우선과 대화하는 게 즐거웠다.
여태껏 여러 이유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순수하게 대화하며 토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게 된 진우선은 소중한 벗이었다. 이해득실이 별로 없어서 더 그런 걸지도 몰랐다.
아무튼, 그런 진우선이 정무맹에 간다고 하니, 만총은 결정의 시간이 온 걸 알았다.
그리고 정무맹에 가기로 했다.
자신의 삶에서 무엇이 더 나을지 잘 생각해본 결과였다.
“같이 가자.”
만총이 진우선에게 웃으며 말을 던졌다.
“그래! 같이 가자!”
진우선이 화답했다.
“그럼 저는요?”
매영령이 물었다. 소외감을 느낀 듯했다.
“령매도 갈 거야? 장주님께 허락 받을 수 있겠어?”
“아…….”
만총의 질문에 매영령이 인상을 찌푸렸다.
만화장(萬花莊)의 주인인 매영령의 아버지는 딸을 끔찍이 아끼기에, 허락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안 된다고 하실 텐데…….”
“그럼 령매는 어려울지도.”
만총이 간단하게 말했다.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내린 결론이지만, 그 어조가 단호해서 야박해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매영령이 만총을 잔뜩 흘겨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지만 만총은 무표정했다.
이틀이 지났다.
진우선은 오늘도 변함없이 청운무관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때 총관이 진우선을 불러 세웠다.
“우선아. 낮에 관주님이 오셨는데, 그 소식 들었지?”
“드디어 오셨군요!”
“못 들은 모양이구나.”
총관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벌써 한 달이 넘었지?”
무사부가 정해지지 않은 채 혼자 수련한 게 한 달이 넘은 것이다. 관주가 맹에 다녀온 기간도 그 정도였다.
“네.”
“그래. 한 달이지. 근데 애석하게도 오늘도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못할 거 같다. 관주님이 오셨는데, 너무 바쁘셔서 지금 아무런 지도도 못 하고 계시는구나. 우선아, 네가 조금만 더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네. 알겠습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이런 상황에 속도 꽤 상했는데, 이제는 무덤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관주님과 함께 맹에서 높은 분이 오셨으니, 혹시나 무관에서 처음 뵙는 분이 있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말고.”
“네. 걱정하지 마세요.”
진우선이 총관을 안심시켰다.
“그래. 그럼 오늘도 들어가 봐.”
총관의 용무가 끝났다.
진우선은 곧바로 팔운루로 향했다.
관주가 돌아오고 이틀 후.
조금씩 소문이 돌기 시작하더니 청운무관 내의 담장 몇 곳에 커다란 종이가 붙었다.
[드디어 청운무관에서 뛰어난 제자를 선발한다고 붙었구나. 닷새 후부터 시작되고.]
‘네, 스승님.’
검노야가 진우선과 함께 내용을 살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진우선 한 사람만 보이겠지만 말이다.
[인원수는 제한이 없구나. 호심당 부당주가 직접 평가한다고 쓰여 있고.]
‘아마 선발되어 정무맹에 간다면 호심당에 가게 될 것이니, 부당주가 직접 왔나 봅니다.’
[그렇구나.]
무관 자체가 정무맹 호심당에서 세운 것이니, 그게 당연했다.
그리고 부당주가 평가할 방법은 비무(比武)였다.
[비무가 서로 겨뤄보는 게 가진 무공 실력을 알아보기에 가장 적당할 테지.]
검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정무맹에서 제자들을 뽑아가는 것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없었다. 규칙이 보편적이고 무난했다.
[다 보았느냐?]
‘네! 이제 가도 될 것 같습니다.’
검노야가 묻자 진우선은 무엇을 묻는지 곧장 이해하고 대답했다.
[그럼 가자꾸나.]
진우선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팔운루로 가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무였으니까.
가진 바 실력을 겨루는 비무라면, 다른 조건에 간섭을 받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전광이나 허자풍, 반효 등과도 다른 무엇 없이 동등하게 마주할 수 있었다. 오직 실력 대 실력으로 자웅을 겨룰 뿐이었다.
진우선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팔운루에 돌아온 후, 곧바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검이 깊어질수록 그 형세가 매서웠다.
진우선에게서 뿜어지는 눈빛도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
검노야가 팔운루의 뜰을 거닐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진우선을 지켜보았다.
진우선이 몰입하여 수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나뿐인 제자는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 있어서 좋았다.
지금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걸 잊은 채 무공에 열중하고 있었다.
머릿속에 오직 무공밖에 없었다.
[지금의 네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구나.]
검노야가 흐뭇하게 웃었다.
진우선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검을 수련하고 있는 게 만족스러운 까닭이었다.
[마음속에 있는 꿈을 조금씩 발견해가고 있으니. 정말 뿌듯하고 대견해!]
검노야는 그게 진심으로 좋았다.
이런 과정들이 모이면 언젠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수 있을 테니까.
검노야가 언제나 원하던 바였다.
[힘내거라!]
검노야가 마음속으로만 진우선을 격려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진우선은 그 성원을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수련에 몰입하여 어떤 말도 듣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래. 그렇게!]
검노야의 인자하고 따스한 눈빛으로 진우선을 응원했다.
그 모습이 마치 할아버지가 사랑하고 아끼는 손자를 바라보는 듯했다.
[우선이에게 또 무엇이 필요할까?]
검노야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보면 일전의 일들은 참으로 신기했다.
진우선이 검에 대한 입문을 마쳤을 때, 상승의 무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광영무가 저절로 떠올랐다.
그래서 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또한, 진우선에게 다양한 공부가 부족하다고 느꼈을 때, 진우선이 무공서를 가져오면 바로 가르칠 수 있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나, 너무도 당연하게 그렇게 되었다.
아마도 진우선을 위해 가르치는 일에서는 뭐든 할 수 있으리라.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무언가 하나가 더 떠올랐다.
[그게 필요하겠구나.]
검노야는 생각이 번뜩이자마자 진우선을 불렀다.
[우선아!]
“네, 스승님!”
진우선이 바로 다가왔다.
쉬지 않고 끊임없이 수련하여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눈은 무언가 또 배울 수 있다는 열망과 함께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검노야가 그 뜨거운 기대에 응답했다.
[나를 공격해 보아라. 이제 나와 대련해보는 것도 좋을 듯싶구나.]
“아!”
대련.
비무를 앞둔 진우선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진우선은 여태까지 제대로 된 대결을 해본 적이 없기에,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제가 스승님과 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광영무는 쓰지 않으마. 내가 그것을 펼쳐 너와 상대할 필요는 없지.]
검노야는 환영이지만, 필요한 땐 실제로 존재하는 몸처럼 힘을 쓸 수 있었다.
또한, 스승이 지도하고자 하는 대련이니 상대하지 못할 게 없었다.
[우선아. 나는 오직 장서고의 무공들로 너를 상대할 것이니, 네게 큰 도움이 될 것 같구나.]
“스승님! 정말 감사합니다.”
검노야는 진우선에게 그렇게 아낌없이 또 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