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14화 (14/225)

014.

#중요한 것 (3)

하루하루가 계속 흘렀다.

진우선의 일과는 예전과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저녁에 고서점을 마친 뒤 팔운루에 와서 검노야의 지도를 받으며 수련했다.

그러면 평소에는 집에 돌아갔으나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스승님. 팔절금나수(八絶槍手)를 살펴보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손목을 낚아채는 과정에서 이렇게…….”

진우선이 허공에서 손을 마구 놀리며 검노야에게 물었다.

팔절금나수 중 하나를 직접 펼치는 모습이었다.

가져온 탁자 위에 책을 펴 놓고 한 장씩 넘겨가며 재현하면서 묻고 있었다. 책은 갑급 제자만 이용할 수 있는 장서고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그러면 검노야가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보아라. 이렇게 상대의 손목을 움켜쥐면 이 두 손가락이 저절로 닿는데……]

“아! 그럼 이렇게…….”

[그렇지!]

검노야는 진우선이 곧잘 따라 하자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나수는 손으로 상대를 붙잡아 꺾는 등의 공격 방법으로, 근접하여 싸울 때 유용했다. 알아두면 당연히 유익한 무공이었다.

그러나 진우선은 금나수를 배운 적이 없었다.

아니, 배울 틈이 없었다.

청운무관의 제자들은 을급이나 갑급에서 무사부에게 여러 달 이상 지도를 받는다.

그 기간은 각자에게 중심이 되는 무공도 배우지만, 금나수를 비롯한 기본적인 권장지각에 대해서도 배우는 시간이다.

하지만 진우선은 을급에서의 시간이 너무 짧았다.

갑급에서는 아예 무사부가 오지 않았다.

결국, 청운무관에서 익힌 거라곤 삼재공과 유운공이 전부였다.

삼재공을 수련하며 검법과 심법, 보법을 익혔고, 유운공을 수련하며 장법 하나를 더했을 뿐이었다.

그런 부족한 배움을 검노야에게 물었다. 검노야는 흔쾌히 알려주었다.

[무인으로 살아감에 있어 견문을 넓히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다양한 무공을 접해보고 펼칠 줄 안다면, 네게 큰 이득이 될 것 이니라.]

진우선이 처음으로 장서고에서 무공서를 가져왔을 때 한 말이었다.

이게 검노야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검노야는 광영무의 수련만이 아니라, 진우선이 무공서를 읽고 물어보면 그것도 바로 펼쳐서 보여주며 가르쳤다.

[네가 원한다면, 내가 어떤 무공이라도 본을 보일 수 있으니. 편하게 물어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에 진우선이 기뻐 대답한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팔운루에서 진우선의 배움이 길어졌다.

[허허. 참으로 열심이구나.]

“스승님. 볼 게 참 많아요! 너무 재밌어요!”

금나수를 비롯한 권장지각에서부터 경신술이나 암기술, 각종 무기술까지.

온갖 분야의 책으로 다양한 무공을 접하다 보니, 진우선은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팔운루에 아무도 오지 않으니, 무사부가 있다면 정해주었을 무공도 익힐 필요가 없었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점점 늦어졌다.

날마다 즐겁게 수련을 더 많이 하고 있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좀 더 살펴보고 싶은데…….”

오늘도 진우선이 투덜거리고 아쉬워하며 책을 덮은 뒤 팔운루를 나섰다.

그게 축시(丑時, 새벽1-3시) 무렵이었다.

아마도 고서점 일을 하지 않았다면 밤을 새웠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진우선이 많은 무공서를 독파하면서 즐겁게 수련을 쌓아나갔다.

검노야는 의욕적인 진우선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렇게만 해가면 된단다.]

일로매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더불어 진우선 본인은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지만, 실력도 무섭게 올라가고 있었다.

[잘하고 있어, 우선아.]

마음속으로 성원하는 검노야였다.

***

하지만 청운무관에서의 날들이 마냥 생각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진우선은 오늘도 여느 때처럼 청운무관에 도착해 장서고로 가고 있었다.

요즘은 장서고에 들러 책을 빌린 뒤 팔운루에 가서 수련하는 까닭이었다.

그때, 장서고 안에서 걸어 나오는 세 명이 보였다.

한 명은 전광이고, 나머지 둘은 그보다 체구가 조금 작은 소년들이었다.

전광이 진우선을 발견하더니 발길을 틀어 다가왔다.

그는 한쪽 입꼬리만 올린 채 씨익 웃고 있었다.

“뭐야? 여기에 아직도 오고 있었어?”

전광이 빈정거렸다.

진우선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전광은 아랑곳하지 않고 진우선을 계속 비꼬았다.

“너 반기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잘 나오네.”

“내가 오는 게 뭐 어때서? 난 엄연히 청운무관의 제자인데.”

“뭐? 제자? 크크크.”

전광이 비웃었다.

옆에 있던 두 소년이 흘러가는 대화를 통해 눈치채고는 끼어들었다.

“광이 형. 얘가 걔예요?”

“네가 진우선인가 뭔가 하는 거지구나?”

“어. 이놈이야.”

셋이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이미 진우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척 봐도 별로 좋은 대화는 아니었으리라.

진우선이 경계하듯 세 명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누구시죠?”

“아! 넌 모르겠네. 너는 갑급답지 않은 갑급이니까.”

전광이 진우선을 잔뜩 무시하면서 밉살스럽게 지껄였다.

“이쪽은 허자풍이고, 얘는 반효야. 얘들이야말로 갑급에 어울리는 동생들이지.”

허자풍은 전광의 왼쪽에 서 있었다. 그는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쭉길쭉했다. 얼굴도 길었다.

오른쪽에 서 있는 반효는 두 사람에 비해 키가 다소 작으나 단단한 느낌을 주었다. 심술 사납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조금 전에 진우선에게 거지라고 언급한 게 반효였다.

“듣던 대로 가난하게 생겼네.”

“그러게요. 형.”

허자풍과 반효도 전광처럼 이죽거렸다.

셋이 한꺼번에 진우선을 멸시하고 있었다.

진우선은 속이 불편해졌다.

“그만하지.”

진우선이 차갑게 말했다.

눈빛도 싸늘했다.

“응? 뭘 그만해? 사실을 말하는 건데. 내가 틀린 말했냐?”

전광이 코웃음 치며 대꾸했다.

“아직도 무사부님을 모시지 못했지? 그럴 줄 알았어! 어느 무사부님이 너 같은 놈을 맡으려고 하실까? 너같이 돈 한 푼 안 되는 제자를 말이야. 크크크.”

“근데 넌 배알도 안 꼴리냐? 아무 무사부도 너를 안 반기는데 이렇게 잘 나오네.”

“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병급이야, 병급. 왜 여기 와서 설쳐?”

전광과 허자풍, 반효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계속 진우선을 업신여겼다.

그들은 진우선이 같은 갑급인 걸 인정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만하라고!”

진우선이 성난 목소리로 버럭 소리쳤다.

전광 무리가 계속 진우선의 속을 긁는 말을 해대고 있는데,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전광 무리가 움찔거렸다. 잠시 기세에 눌린 모습이었다.

그러더니 더 짓궂게 굴었다. 바로 전에 잠시 위축된 걸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어쭈!”

“와-! 꼴에 화도 낼 줄 아네. 갑급에 있는 걸 감사할 줄을 모르고!”

“야! 너는 우리가 내는 돈으로 여기 온 거야. 청제자가 대수야? 우리 아니면 청제자 따위는 있을 수도 없다고!”

“청제자는 무슨. 거지제자일 뿐이지.”

그들은 마치 언제 진우선의 기세에 놀랐냐는 듯, 도리어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거렸다.

“…….”

진우선은 말을 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저 가만히 그들을 쏘아보았다.

그때, 반효가 등 뒤에 있는 장서고를 흘깃 보더니 음흉한 표정을 지었다.

“뭘 노려봐? 눈 안 깔아?”

그리고 눈에 쌍심지를 켜며 마구 지껄였다. 손은 검지와 중지를 꽉 벌린 채, 눈을 찌를 듯이 위협하고 있었다.

싸울 심산일까?

진우선은 문득 눈앞의 세 사람이 참 별 볼 일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후우-. 그냥 가. 상대하고 싶지 않으니까.”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들과 드잡이질 해봐야 상황이 불편해지기만 하리라.

한데 바로 그 순간.

“그만-!”

누군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진우선과 전광 무리가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장서고에서 한 사람이 잔뜩 성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염소수염에 커다란 도를 등에 멘 중년인이었다.

그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져 있고, 눈이 일자로 쭉 찢어져 있었다.

그런 얼굴에 화까지 났으니, 매우 심각해 보이기까지 했다.

“감히 어디서 쌈박질을 하려 하느냐?”

중년인이 소리쳤다.

그는 시선을 오직 진우선에게만 두고서 외쳤다.

즉, 진우선에게 호통 친 것이다.

손을 뻗고 위협한 반효는 뒤로 가린 채였다.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네가 손을 쓰기 바로 직전인 것을 내가 보았는데!”

중년인이 다가오던 방면에서는 진우선이 손을 든 게 정확히 보인 모양이었다.

반면에 반효가 위협한 건 보이지 않았던 듯했다.

“그게 아닙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나 중년인은 진우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마구 몰아붙였다.

“무관 내에서는 대련 이외의 싸움을 금하는데, 이토록 규율도 모르다니. 너는 누구냐?”

“사부님. 얘가 진우선입니다.”

“허어-! 네가 진우선이었군!”

중년인은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을 지으며 진우선을 쳐다보았다.

진우선은 어이가 없어 중년인을 쳐다보았다.

중년인은 한 번이라도 봤다면 까먹기가 쉽지 않을 인상이다.

하지만 기억에 없었다. 초면이었다.

그런데 이건 대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란 말인가.

또한 자신은 상대를 모르는데, 상대는 자신에게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 있는 듯했다.

그런 진우선의 반응에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어이없다는 눈빛이군. 나는 막소춘이다. 갑급의 무사부고.”

“처음 뵙겠습니다.”

진우선이 인사했다.

중년인, 막소춘은 청운무관의 갑급 제자들에게 도법을 가르치는 무사부였다.

“인사는 됐고.”

막소춘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근본 없이 자라온 네놈이 갑급에 들어오더니,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그게 아닙니다. 저들이 먼저…….”

“저들이 먼저? 고약하구나. 내가 다 보았거늘, 이들에게 잘못을 전가하다니. 다들 귀한 집안에서 교육 잘 받고 자랐는데, 막 자라서 예의 없는 네놈이 시비를 걸고 손찌검하려 했지 않았더냐?”

“맞습니다. 사부님!”

뒤에서 반효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는 흉악하게 웃으며 막소춘의 뜻에 동조했다.

막소춘은 여전히 진우선을 노려본 채 말을 이었다.

“네놈 때문에 싸움이 날 뻔했다. 이 아이들은 정무맹에 가게 될 강호의 동량인데, 네깟 놈이 그들을 해치려 한 것이다.”

“그건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그래. 물론 아니겠지. 내가 때맞춰 중재한 덕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막소춘이 제 마음대로 상황을 곡해했다.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어도, 막소춘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진우선은 너무도 억울했다. 아니라고 해도 듣지 않고, 아예 말할 틈도 주지 않으니, 소통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막소춘은 일의 전후를 전혀 따지지 않은 채 전광과 허자풍, 반효의 편만 들고 있지 않은가.

그는 진우선이 근본 없고 예의 없다고 마구 헐뜯으며, 모든 책임이 진우선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게 전혀 아닙니다. 제가 그런 게 아니…….”

“됐다. 듣기 싫다.”

막소춘은 진우선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말을 잘랐다.

오히려 짜증이 잔뜩 묻은 얼굴로 역정을 냈다.

“네놈은 정말! 답이 없구나, 답이 없어! 관주님은 왜 이런 아이를 청제자로 들였는지 모르겠네.”

막소춘이 말을 마구 내뱉었다.

“…….”

진우선은 이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도 상대가 전혀 듣지 않고, 말해봤자 역효과만 나서 꾸지람만 더 들을 뿐이다.

“후우-! 이만 가자. 말도 섞기 싫구나.”

막소춘이 그런 진우선을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이어서 엄포를 놓았다.

“다음에도 이런 모습을 보였다가는, 바로 내쫓을 줄 알아라!”

그 말을 끝으로 막소춘이 꼴도 보기 싫다는 듯이 확 하니 돌아섰다.

“비렁뱅이 꺼져라!”

허자풍이 소리 없이 입만 샐쭉거려 말하면서 진우선에게 조소와 경멸의 눈빛을 날렸다.

전광과 반효도 진우선에게 표정으로 이죽거리며 막소춘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부르르-.

진우선의 주먹이 떨렸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강하게 움켜쥔 까닭이었다.

진우선의 처지라면 누구든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분노가 치솟는 게 당연했다.

진우선이 그들의 뒷모습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눈 주위로 파르르 경련도 일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정무맹에 가게 될 거라고? 그래. 그럼 한번 해보자. 선발하는 날이 오면, 찍소리도 못하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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