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영검전-7화 (7/225)

007.

#청제자 (1)

청운무관의 을급 연무장.

진우선은 여느 때처럼 일을 마치자마자 무관에 와서 수련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러지 못했다.

불청객이 들이닥친 것이다.

“너냐?”

한 소년이 대뜸 시비조로 반말했다.

진우선이 의아한 표정으로 소년을 보았다.

“무슨 일이시죠?”

“너지?”

소년이 반복해서 물었다.

그는 외모가 곱상하며 얼굴에 윤기도 흘렀다. 키도 크고 체구도 듬직하니 몹시 건장하며, 꽤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인지, 사람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네?”

진우선이 반문했다.

눈앞의 상대는 도대체 무엇을 묻는 것인가. 뭐가 궁금해서 이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대화할 사이도 아니었다.

진우선은 소년과 접점이 없었다. 을급으로 수련하면서 몇 번 본 게 전부였다.

인사를 하거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으니 초면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 한번 봐야겠어. 내 눈으로.”

소년이 대뜸 말을 툭 내뱉었다. 그리고 눈을 치켜뜬 채 팔짱을 끼며 진우선을 노려보았다.

지켜보겠다는 자세인 게 틀림없는데, 말하는 모양새나 태도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쯧쯧쯧.]

검노야가 고개를 가로저으며혀 끝을 찼다. 마음에 안 든다는 표시였다.

진우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대꾸하는 게 퉁명스러워졌다.

“제게 볼일 있으신 거 아니에요?”

“볼일? 그래, 맞아. 나는 네 검을 볼 거야. 얼마나 대단한지. 그러니까 빨리 휘둘러.”

“…….”

진우선이 말을 잃었다.

소년은 너무 건방졌다. 아무리 자기보다 키와 체구가 좀 더 크다지만, 답이 없을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말본새나 마음가짐이 한참 글렀어. 시기 질투가 많고 교만하여 화를 부르는 형국이니, 상종하지 말아야 할 부류구나.]

검노야의 말에 진우선이 크게 공감했다.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소년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러는 한편, 둘은 이런 상황이 온 이유를 파악했다.

‘스승님, 아무래도 소문이 났나 봅니다.’

[그런 듯하구나. 무사부들이 뭐라고 언급했던 모양이다.]

을급 무사부 양문곽에게 배우게 된 이후, 몇몇 무사부들이 한 번씩 들러서 보고 갔다.

그리고 각자의 제자에게 뭐라 말한 모양이었다.

특히 저 소년은 뭔가 아니꼬워진 게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상황이 딱 들어 맞았다.

힐끔- 진우선이 소년을 쳐다보았다.

찌릿- 하고 소년의 매서운 눈빛이 돌아왔다.

그는 계속 눈을 치켜뜬 채 우두커니 서서 진우선만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었다.

진우선은 기분이 편치 않았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었다.

‘신경 쓰지 않아야겠습니다.’

[그래. 잘했다. 네 마음을 잘 다스렸구나.]

진우선은 이제 소년을 의식하지 않고, 가만히 자신의 수련을 시작했다.

검을 휘두르니 차츰 마음의 평온도 찾아왔다. 소년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집중하다 보니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확히 삼재검법을 한 번 펼쳐냈을 때, 몰입이 곧 깨졌다.

소년이 다시 시비조로 말을 건 까닭이었다.

“야!”

“왜?”

기분이 팍 상한 진우선도 곧장 반말로 대꾸했다.

그러자 소년이 눈알을 부라렸다.

사나워진 눈빛에 못마땅한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 누구한테 배우냐?”

“양 무사부님께 배운다. 양문곽 무사부님.”

“아니! 그거 말고. 따로 얼마에 모셨냐고? 얼마나 썼어?”

소년은 진우선의 검을 보고 무사부들이 칭찬할 만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무공을 수련해온 시간이 있기에, 실력을 알아본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운무관에서 실력 뛰어난 제자들이 으레 그러하듯, 진우선도 개인적으로 무사부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사실 소년도 비싼 금액을 들여 따로 스승을 모시고 있었다.

갑급이나 을급에서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대다수가 그랬다. 그래서 따로 스승을 모시는 데 비용을 얼마나 썼는지 물은 것이다.

진우선도 질문의 요지를 단박에 이해했다.

그와 동시에 소년이 누구인지도 떠올랐다.

홍학상단의 둘째 아들, 전광이었다.

따로 스승을 모시는 것은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한 달에만도 청운무관의 을급 수련비의 몇 배를 써야 했다.

그게 가능한 사람은 을급 연무장에서 전광밖에 없었다.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아니. 나는 돈 없는데.”

“뭐?”

전광이 발칵 역정을 냈다.

진우선은 전광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마음으로 가르쳐주고 계시는 스승님이 계셔. 모습은 선인 같으시고, 무공 실력은 매우 뛰어나시지.”

진우선이 검노야를 묘사했다.

검노야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전광과 딱히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와 대화할 땐 무뚝뚝하고 무성의했지만, 검노야를 떠올리니 마음이 포근해지고 절로 인상이 밝아졌다.

“하! 너 꿈꾸냐?”

전광이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돈이 없는데 누가 마음으로 가르쳐준단 말인가.

정무맹에서 운영하는 청운무관도 다 돈을 받고 가르치는 마당에, 이름난 무인들에게 따로 배우려면 훨씬 많은 돈을 써야 했다.

그렇기에 진우선의 말은 허구였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전광의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광이 진우선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하긴, 내가 착각했어. 네 몰골을 보니까, 그랬을 리가 없네.”

전광의 입가에 썩은 미소가 걸렸다.

여태껏 검술에만 집중하느라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인제 보니 진우선은 옷차림부터가 전혀 볼품없었다.

따로 스승을 모실 수 있을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삼재검법을 이 년 동안 익혔다고 들은 것도 떠올랐다.

“네 상상, 재밌었다.”

전광이 비꼬듯 말했다.

진우선이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믿기 싫으면 말고.”

“너라면 믿어지겠냐?”

전광이 한껏 경계하던 기세를 풀었다.

이제 와보니 진우선는 경쟁의식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는 존재였다.

전광의 판단은 그랬다.

“수련 열심히 했었나 봐.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라.”

전광은 진우선의 삼재검법이 이 년 동안 수련했기에 좋아 보인다는 결론을 내고 있었다.

이 년이면 긴 시간이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이라면 그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이뤄냈을 게 틀림없었다. 이 년이면 최소한 유운공을 비롯해 다른 무공을 더 많이 배우고 익혔겠지.

그렇게 보니, 오히려 이 년을 삼재검법에 쓴 진우선은 미련하기 그지없었다.

전광이 진우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 참! 내 이름은 전광이야. 홍학상단이 우리 집이고. 따로 지도 한 번쯤 받고 싶으면 놀러 와. 스승님께 말씀드려 놓을 테니.”

전광이 얄밉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진우선이 잠시 전광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관심을 껐다.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우선아, 괜찮으냐?]

“네. 저는 괜찮아요. 별로 대수롭지도 않아요. 여태껏 저런 사람 많이 봤었거든요.”

그랬다. 진우선은 홀로 살아오며,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꽤 있었다.

“제가 부러워서 그런 것이니까요. 그걸 자기 멋대로 받아들이고.”

[그래. 그렇지.]

검노야가 진우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었다.

상처받을까 걱정되었으나, 기우일 뿐이었다.

심지가 굳은 진우선이었다.

***

전광이 다녀간 이후로, 청운무관의 몇몇 제자들이 진우선을 슬쩍 보고 갔다.

일종의 군중심리였다.

청운무관에서 배우는 사람들의 나이는 대개 열 살 전후에서부터 스무 살 정도인데,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에 관심이 많을 때였다.

진우선이 괜찮다는 소문을 들으니 호기심이 요동친 모양이었다.

그래도 수련을 방해하는 경우는 없었다. 바짝 접근해서 노려보던 전광이 특이했을 뿐이었다.

양문곽이 그렇게 된 상황을 전해 들었다.

“꽤 신경 쓰였겠어. 미안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다들 별로 관심 안 가지는 줄 알았더니…… 무사부들만이 아니라 제자들마저도 그럴 줄은 미처 몰랐다.”

양문곽이 사과했다.

진우선의 실력이 날로 일취월장하니 기대감이 매우 컸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절로 진우선에 대한 칭찬이 나올 정도였다.

진우선에게로 사람들이 많이 모여든 이유가 그래서일 것이다.

“특히 광이 녀석에 관해서는 정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면목이 없어.”

양문곽의 얼굴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양문곽은 전광이 진우선에게 다녀간 사실에 대해서도 들었다. 전광이 사람들에게 진우선을 험담하고 다니는 말까지도 알았다.

“진우선은 돈이 없어서 삼재검법만 이 년 동안 수련했다!”

아마도 전광에게는 진우선이 불편했으리라.

전광은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성격이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 주변의 모든 기대와 관심을 받고 자라온 탓이었다.

여태껏 청운무관의 을급에서도 가장 촉망받고 있었으니, 마음에 흡족했다.

그래서 요 근래에 진우선이 탐탁지 않았다. 전광 자신에만 향해야 했을 이목과 칭찬을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진우선이 차지해버렸으니까.

진우선에게 관심이 쏠릴수록 전광은 비위가 더욱 상했다.

어쨌거나 양문곽은 진우선이 이런 전광과 얽힌 게 자기 탓이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우선아. 네가 구설수에 오르게 해서 미안하구나.”

“저는 괜찮습니다. 크게 마음 쓰지 않으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그렇게 돈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구요.”

진우선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진우선도 전광이 한 말을 들었다.

괘씸하고 분했다.

진우선이라고 속상한 마음이 없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느낀 게 있었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임을.

그래서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전광의 말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했다.

속은 상했으나, 전광을 상대하다 보면 자신에게도 똥이 묻을 터였다.

“그래. 네가 참 어른스럽구나. 나도 이번에 언행을 늘 조심해야 함을 새삼 깨달았다.”

양문곽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그럼 오늘도 수련을 해보자. 유운공을 보고 싶구나. 전부 펼쳐보겠느냐?”

“알겠습니다.”

양문곽의 말에 진우선이 유운공을 쏟아냈다.

검을 들어 검법을 펼쳤다.

검을 놓고 장법을 펼쳤다.

부드러우면서도 약하지 않은 유운공의 모습이 진우선에게서 잘 드러났다.

‘나무랄 데가 없어.’

유운공은 청운무관의 대표 무공.

삼재공 이후에 배운다 하여 대단치 않다고 여기기 쉬우나, 유운공만 잘 익혀내도 어쭙잖은 실력으로 폄하될 일은 없었다.

병급과 을급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신 그만큼 유운공은 삼재공보다 어려웠다. 제대로 펼쳐낼 수 있으려면, 삼재공에 들인 노력보다 몇 배는 더 해야 했다.

‘보름…… 걸렸나?’

진우선은 배운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음에도, 이미 재능 있는 아이들이 몇 달을 쭉 익혀야 나올법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역시!’

진우선은 을급에 두어서는 안 된다. 을급에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양문곽은 그것을 오늘 또 확인하고, 확신했다.

‘이렇게 유운공을 자기 걸로 만든 걸 봤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양문곽이 찾아낸 방법을 써도 좋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오늘은 그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유운공을 전부 펼쳐보자고 한 터였다.

만약 진우선이 하루에 한두 차례만 유운공을 펼치면서 이렇게 익혀냈다는 걸 알았다면, 재차 확인하는 번거로움도 없이 이미 결정했을 테지만 말이다.

‘조만간 네게 좋은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진우선을 보는 양문곽이 굳게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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