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청운무관 (3)
청운무관의 을급 무사부 양문곽.
그가 서류를 보며 손가락으로 툭툭 책상을 두드렸다.
얼굴이 잔뜩 찌푸려진 게,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
그건 최근에 고민이 생겨서였다.
얼마 전부터 함께하게 된 제자 한 명 때문이었다.
“허허헛. 이거 참!”
웃음도 나왔다.
하긴, 즐거운 고민이기는 했다.
사흘에 한 번씩 지도하는 제자.
만난 지 보름이 지났으니, 함께 수련한 건 이제 네 번이었다.
인연은 짧았다. 하지만 감탄은 깊었다.
“빨라도 너무 빨라. 성장하는 게…….”
무공이란 건 대개 긴 시간을 거치며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을 통해 실력이 향상된다.
온몸을 움직이는 것도 신경 써야 하고, 순간순간 변화하는 것에도 신경 써야 한다.
육체와 두뇌, 둘 다 동시에 발전해야 하기에 나아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자는 달랐다.
그는 마치 무공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 가장 올바른 길로 나아갔고, 수련하는 중에 생겨날 법한 의문도 스스로 답을 찾아냈다.
“무공에 눈을 뜬 거야.”
양문곽은 서류에 쓰여 있는 인적 사항을 보며 그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제자는 이 년 전, 청운무관의 병급 수련 과정에 등록했다.
무한의 번화가에 있는 고서점에서 일하고 있으며, 부모를 여읜 후 혼자 살고 있었다.
이전에 무공을 접해본 적이 없어, 청운무관에서 삼재공을 배운 게 처음이었다.
재능은 평범하다고 했다.
그 외의 설명은 없었다.
실력과 태도 대해 그나마 한 줄 적힌 것이 꾸준하고 성실하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오래 한 건 목표가 있기 때문이구나.”
입관 사유를 보니 그의 정성스러운 마음이 이해가 갔다.
- 무공을 익혀 목숨이 위태로울 때 자신을 보호하며, 악당에게 맞서 싸우기 위해 무공을 배우고 싶다.
- 더 나아가, 정무맹(正武盟)에 속해 정의를 위해 무를 펼치고 싶다. 그렇기에 청운무관에서 배우고 싶다.
양문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제자는 크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제는 예전과 달랐다.
실제로 스무 날 전에 지도했었던 관주도 이번에는 새롭게 평가하지 않았던가.
“좋구만. 지난번과 너무 달라. 아예 다른 사람이라 생각될 정도야. 사람이 정말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나?”
양문곽도 그에 동의했다.
제자는 이제 기록과 너무 달랐다. 서류는 그저 지나온 길을 살펴볼 수 있는 종이에 불과했다.
“잊어버리는 게 낫겠어.”
책을 덮었다.
이제 기록으로 무언가를 알아낼 수 없었다.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혹시 따로 스승을 모시고 있을까?”
새로운 의문이 떠올랐다.
청운무관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질문이었다.
갑급과 을급의 제자 중에 집안이 부유한 경우, 따로 스승을 모시는 이가 많았다.
“그럴 리 없을 거 같은데…….”
하지만 제자는 그 정도의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재능이다. 재능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려나?”
양문곽이 고개를 저었다.
결국, 다시 원점이다. 고민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어떤 게 최선의 방향일까?”
양문곽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제자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일지 계속 생각했다.
“재등록은 열흘 후.”
열흘 후면 다음 달이고, 재등록을 해야 할 시기였다.
그때 제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아마도 을급일 것이다.
품삯이 올랐다고 한 말을 들었으니 맞을 터였다. 이번에 을급에 등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라고 했다.
을급은 여전히 비용이 부담되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양문곽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비용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잘 가르쳐보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실력 향상이 너무 빠른 까닭이었다.
“갑급 수련 과정을 등록하면 좋을 텐데…….”
제자는 이제 갑급에서 배우는 게 나았다.
유운공으로는 더 가르칠 게 없으니, 을급에 있는 건 잠재력을 허비하는 것에 불과했다.
“하아!”
양문곽이 한숨을 내쉬었다.
“을급에 등록해놓고 수련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니…….”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안 그래도 가르친 게 별로 없어 무사부로서의 면이 서지 않고 있었다.
뭔가 지도하기도 전에 발전하고, 알려주기가 무섭게 실력이 쑥쑥 올랐다.
그래서 함께할 때마다 그저 놀라기만 한 기억밖에 없었다.
양문곽은 이제 제자를 위해 무엇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
쉽게 생각나지 않아 고민이지만.
“찾아야지!”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게 스승의 역할이었다. 양문곽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부럽군.”
그러면서 제자의 재능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막 싹트고 있는 무공에 대한 소질이 너무나 찬란해 보였다.
그건 양문곽이 가지지 못했던 빛이었다.
***
해가 저문 밤이었다.
달빛이 밝혀주는 밤이기도 했다.
진우선은 마당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참으로 열심이었다.
가을이라 밤바람이 서늘한데도 땀이 비처럼 쏟아질 정도였다. 옷도 흠뻑 젖었다.
하지만 얼굴은 밝았다.
자정이 다 되도록 쉴 새 없이 수련하고 있음에도, 환한 미소가 드리워져 있었다.
즐거워서였다.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그것을 잘 펼쳐내고 있어 뿌듯했다.
실력이 쑥쑥 느는 게 보이니,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검이란 결국 끝이 뾰족하고, 양쪽에 날이 있으니, 찌르는 데 적합하면서, 전후좌우 어느 쪽으로도 벨 수 있고…… 그래서 이 초식은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쉽겠구나.’
또 하나 깨달았다.
그 순간, 가슴속에서 벅찬 희열이 샘솟았다.
진우선은 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검을 더욱 열심히 휘둘렀다. 성취가 보이니 너무 기뻐서 잠시도 쉬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검노야와 만나고 스승으로 모시게 된 이후, 자신은 많이 변해 있었다.
그저 습관처럼 성실하게만 무공을 수련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무공에 대해서도 어떻게 생각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리하여 스스로 깨우치는 것들이 늘었다.
돌이켜보면 지난 이 년 동안 미련하게 수련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좋은 스승님을 모시게 되어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걸 날마다 느꼈고, 그때마다 감사했다.
사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청운무관에 등록한 제자들이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갑급, 을급으로 배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몇몇은 아예 따로 스승을 모셔서 일대일로 직접 가르침을 받기도 하지 않던가.
진우선도 그러고 싶었으나 형편이 그렇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성실하고 근면하게 수련해왔다.
‘바보처럼 미련하게.’
스스로 변변한 재능이 없음을 알기에 열심히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수련했었다.
‘그래도 괜찮아!’
미련하게 해왔지만, 장점도 있었다.
노력이 몸에 밴 것이다.
덕분에 무공을 익혀나가는 데 있어서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니, 열심히 노력하는 것으로 실력 향상이 더 빨라졌다.
‘밤에 수련하는 것도 좋다!’
최근에 수련 시간을 늘렸다.
아침에 수련하고 청운무관에서 수련하는 것 외에, 집에 돌아와서도 수련했다. 달빛을 벗 삼아 검을 휘둘렀다.
요즘 들어 피곤함을 거의 못 느끼는 까닭이었다. 전에는 청운무관에 다녀오면 피곤하여 바로 침상에 쓰러졌었는데, 이제는 항상 활력이 넘쳤다. 한밤중에 검을 마구 휘둘러도 지친 걸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그랬다. 아직 삼재검법을 수십 번도 더 펼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을 이해한다는 건 무엇일까?’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검노야는 검을 이해하여 뜻이 일 때 검을 쓸 수 있어야, 입문을 마친 것이라고 했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해한다는 말은 참으로 포괄적이고 두루뭉술했다. 진우선은 아직 검을 이해하는 게 어떤 건지 알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실마리 하나 붙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토록 열심히 수련하는데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 없어서 그럴까?
좋은 스승님을 모셨는데, 소질이 없어서 못 깨닫는 건 아닐까?
별별 의문이 다 들었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건가?’
불안해졌다. 진우선의 마음에 근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우선아. 그렇게 염려하지 말아라. 너는 지금 정말 잘하고 있으니. 조급해할 필요가 없느니라.]
슬쩍 바람이 일며, 검노야가 나타났다.
검노야의 환영은 달빛을 머금어 신비로운 광채를 흘리고 있었다.
검노야의 위로에 진우선은 마음이 한결 평온해지고 가벼워지는 걸 느꼈다.
그러면서 솔직히 표현했다.
“스승님. 저도 조급해하지 않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제가 왜 이럴까요?”
[그래. 그럴 수 있지.]
검노야가 자애로운 표정을 지으며 진우선의 말에 공감해주었다.
[수고해야 하는 거지. 전혀 가보지 않은 길, 본 적 없는 곳, 알지 못하는 답을 찾느라고 수고하는 과정이구나. 헌데 그래서 두려울 게야. 사람의 두려움은 미지(未知)에서 오는데, 네가 아직 알지 못하기에.]
진우선이 귀를 기울여 들었다.
과연 그랬다.
이치를 깨닫기 위해 검을 이해해야 한다는데, 진우선으로서는 전혀 알 바가 없었다.
그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거의 다 왔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구나. 두려워하지 말거라. 그 순간이 네 앞에 왔고, 지금처럼만 한다면 곧 알게 될 게다. 그 순간이 온 것을.]
“아!”
진우선이 짧은 숨을 토해냈다. 근심, 걱정, 염려 같은 것들을 토해냈다.
그러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감사합니다.”
[잘 알아들었구나. 우선아.]
검노야가 진우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손길이 참으로 자상했다.
***
달빛이 사라진 깊은 밤이었다.
새벽이 가까워져 있었다.
진우선이 깊이 잠들어 있는 작은 방 안에서 거뭇거뭇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였으나, 사람은 아니었다.
환영이었다.
검노야였다.
[우선아, 우선아]
나지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소리라기보다는 울림이었다.
진우선은 전혀 듣지 못할 공기의 떨림이었다.
[마음을 편히 먹으려무나. 지금까지 잘해오고 있으니.]
검노야는 종종 느꼈었다.
진우선이 수련을 잘 해오고 있고 잘 깨우치고 있으나, 가슴 한편에 두려움도 있다는 것을.
부모도, 친척도, 친구도 없이 살아오고 있기에 생기는 근원적인 두려움이며 외로움이었다.
또한, 마을이 불타서 사라지고,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광경이 진우선의 머릿속에 생생할 것이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인 까닭이었다.
부모님의 절규와 피눈물 역시 가슴에 맺혀 있을 게 분명했다.
그 기억이 무의식중에 진우선을 두렵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우선은 내색하지 않고서 열심히 살아왔다.
먹고살기 위해 무엇이든 했고, 무공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도 품었다.
하루하루를 걱정하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고서점에서 일하게 되었고, 조금씩 인정받았다. 청운무관에서 무공도 배우게 되었다.
진우선은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여 삶을 이끌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걱정이 생겼다.
진우선은 분명 검노야의 가르침을 열심히 잘 따라가고 있고, 덕분에 청운무관에서도 매우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진우선 본인은 이런 상황들을 종종 믿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양 어색하고, 현실이 아닐 거 같다는 헛된 생각이 드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할 것만 같았다. 항상 불안함에 사는 것이다.
[마음의 그늘을 걷어내면 좋을 텐데…….]
검노야의 마음이 애틋하게 흘렀다.
진우선은 밝게 살아오고 있으나, 그 안에 어두움을 감췄다. 슬픔을 삼키고 살아왔다.
검노야는 그걸 보고 있었다.
[시간은 아직 많으니, 우리 천천히 잘 해나가 보자꾸나. 하나씩 이루어가자꾸나.]
그러면서 검노야가 진우선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환영이 진우선의 몸을 만졌다.
밤마다 하던 행동이었다.
이를 통해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지친 기운을 북돋워 주고 있었다.
그러면 피로가 풀리고, 새로운 활력이 샘솟는다. 날마다 수련할 힘도 생긴다.
진우선이 최근에 아무리 밤낮을 수련해 몰두해도 지치지 않았던 것은, 검노야의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 때문이었다.
[우선아.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수련한다면, 제대로 얻기도 힘들단다.]
검노야의 정성이 진우선에게 전해졌다.
진우선은 그걸 모른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검노야가 자애로운 표정으로 진우선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말했다.
[우선아. 너는 좋은 제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