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청운무관 (2)
“타앗!”
기합과 함께 검법이 펼쳐졌다.
진우선은 삼재검법이 본래 가지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호쾌한 매력을 마음껏 그려냈다.
양문곽은 그것을 바로 앞에서 보았다. 한 동작도 놓치지 않을 듯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역시 좋아!’
계속 감탄만 나왔다.
아까보다 더 좋은 것 같았다.
잠시 후.
진우선이 삼재검법을 다 펼치고 호흡을 정돈했다.
양문곽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재검법을 정말 잘 펼쳤구나!”
“감사합니다.”
그러나 양문곽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흡족해서, 그 감동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마저 아까웠다.
그러다 문득, 소년이 펼쳐내는 유운공은 어떨지도 궁금해졌다.
“이제 유운공도 한 번 펼쳐보아라.”
“유운공요?”
진우선이 당황하여 물었다.
“그래. 닷새 전에 배우지 않았느냐?”
“배우긴 했습니다만…… 유운공은 아직 능숙하지 않습니다.”
진우선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검노야와 삼재검법만 수련해 온 까닭이었다.
유운공의 공부는 따로 한 적이 없었다. 관주에게 배웠던 그날이 전부였다.
그러니 익숙해질 수련을 할 겨를도 없었다.
“괜찮다.”
양문곽도 진우선이 닷새 전에 배운 걸 알았다.
그 수련도가 깊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
다만 저 검으로 유운검법을 어떻게 그려내는지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편안하게 말했다.
“그저 네가 펼쳐내는 검을 보고 싶을 뿐이니, 부담 갖지 말고.”
그때였다.
검노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우선아. 걱정하지 말고 유운공을 한 번 펼쳐보아라. 놀랄만한 일이 벌어질 테니.]
그와 동시에 검노야의 환영도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검노야는 양문곽의 우측 뒤쪽으로 일 장(丈, 약 3m) 거리에서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진우선은 자신감을 얻었다.
검노야의 말에 더하여, 스승의 모습이 눈앞에 보이니 든든하기까지 했다.
“알겠습니다. 한번 펼쳐보겠습니다.”
진우선이 숨을 골랐다.
그리고 검을 들어 유운검법의 기수식을 취했다.
그 순간, 검노야의 말이 전해졌다.
[유운공(流雲功)은 이름 그대로 구름이 흘러가듯 검을 쓴다 해서 만들어졌지. 그건 곧 부드러운 것이 능히 굳센 것을 이기는 이치이니, 이 점을 유념하여 검을 펼치거라.]
‘네!’
진우선이 마음속으로 대답했다.
다시 보니, 유운공은 그 이름에서부터 대놓고 부드럽다고 말하고 있었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유능제강(柔能制剛)에 목적이 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진우선은 유운공의 검로를 머릿 속에 그리고, 그대로 검을 펼쳤다.
하나씩.
하나씩.
유운검법의 초식을 따라갔다.
부드럽지만, 부서지거나 끊어지지 않게.
구름이 흘러가는 게 그런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바를 검에 담았다.
‘아! 이런 거였구나!’
유운공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유운검법뿐만이 아니라, 장법인 유운장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
일종의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검이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 그려낸 대로 펼쳐내는 데 하나도 어려움이 없었다.
[……삼재검법은 검을 쓰는 데 필요한 이치가 잘 담겨 있어 기본으로 삼기에 적당하고……]
검노야로부터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땐 그저 기초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직접 체감이 되었다.
삼재검법의 효용은 그저 삼재검법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무공의 목적을 잘 생각하는 게 중요하고, 잘 생각한 다음에는 잘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게 진우선은 삼재검법에 이어 유운검법을 펼쳐내면서 많은 것을 몸소 깨우쳤다.
‘좋아!’
마음속에 흥이 났다.
지금 이 순간이 즐거웠다.
검을 펼쳐내는 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몰입하여 순식간에 유운공을 끝까지 펼쳐냈다.
“후우-.”
진우선이 상기된 얼굴로 숨을 골랐다.
만족스러웠다. 너무 흡족하여 입가가 씰룩거릴 정도였다.
닷새 전에 관주에게 유운공을 배울 때는 잔뜩 혼나기만 했다. 동작도 제대로 다듬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한 대로 검을 펼쳐내었다.
자꾸 틀리고 어긋났던 부분에서 막히거나 손발이 엉키기는커녕, 관주가 보여주었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내가 이렇게 해냈어!’
자신감이 마구 솟구쳤다. 실력이 쑥쑥 늘어나는 게 체감되었다.
그건 아마도 검노야와 함께 한 덕분이리라.
[우선아. 잘했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훌륭히 펼쳐냈어. 가르치는 보람이 있구나.]
때마침 검노야가 진우선에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따스한 손길에서 인자한 마음이 느껴졌다.
‘감사합니다.’
그때, 무사부인 양문곽도 입을 열었다.
“하아! 감탄만 나오는구나. 정말 잘 펼쳤어.”
양문곽이 칭찬했다.
물론 개선할 곳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건 큰 부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좋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양문곽이 보기에 진우선은 유운 검법을 어떻게 펼쳐내야 할지 아는 것 같았다. 역시 검을 쓸 줄을 아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를 알려주면, 하나가 아니라 두셋을 깨닫는다.’
양문곽은 욕심이 났다.
진우선을 가르치고 싶었다.
“오늘은 지도가 빽빽해서 어쩔 수 없지만, 다음에는 나와 함께 해 보자.”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진우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
다음 날 저녁.
진우선이 청운무관에 들어갈 때, 총관이 먼저 말을 걸었다.
“양 사부가 가르치기로 했다며?”
“네. 그렇습니다.”
양문곽이 총관에게 말해둔 모양이었다.
“네 칭찬을 많이 하더구나. 기대하마.”
“감사합니다.”
“근데, 오늘내일은 좀 어려워. 이미 정해져 있던 일정을 급히 조정할 수가 없었으니까. 아마도 사흘 후부터 가능할 거야. 그 후로 사흘에 한 번씩 배울 거고.”
총관이 일정을 전해주었다.
양문곽 무사부와의 공부는 사흘에 한 번씩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도 평소처럼 수련할게요.”
“그래. 그렇게 해. 그래도 사흘에 한 번이면 자주 받는 편인 거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다들 닷새에 한 번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맞아. 보통은 그래. 양 사부가 이번에 애썼어.”
“네. 감사합니다.”
“잘 알면 됐어. 양 사부에게도 고맙다고 해. 그럼 오늘도 수고해라.”
총관이 대화를 종결지으며, 진우선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진우선이 연무장으로 들어섰다.
결국, 오늘도 혼자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런 건 아니었다. 무사부 양문곽과 함께 수련할 테니까.
게다가 닷새에 한 번이 아니라, 사흘에 한 번이다.
그만큼 인정받고 기대한다는 뜻이었다.
‘좋아!’
진우선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루어진 까닭이었다.
무공 실력이 늘고, 자신에게 더 가르쳐주겠다는 무사부가 나타났다.
이 두 가지는 지난 이 년 간 청운무관에 다니며 소원하던 바였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심장이 벌렁거렸다.
상상했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오니 너무 즐거웠다. 신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어젯밤에 설레서 잠을 설쳤지만,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진우선이 고개를 꾸뻑 숙이며 인사했다.
이렇게 된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모든 게 검노야 덕분이었다.
[네가 잘했을 따름이니라. 착하고 성실하여 내 가르침을 허투루 하지 않고 꼼꼼하게 잘 따라왔으니. 너야말로 수고했구나.]
검노야가 인자하게 웃었다.
그는 언제든 검을 뽑을 수 있는 자세로 꼿꼿이 서 있었다.
그에게서 묵직하고 강렬한 기세가 느껴졌다. 산악 같은 위엄이 있었다.
연무장이 비좁아 보였다. 환영이어서 희미하고 흐릿했으나, 그 기세만큼은 전혀 옅지 않았다.
매일같이 느끼지만, 검노야의 존재감은 감히 비할 바가 없었다.
어느 무사부도, 심지어 청운무관의 관주도 이렇지는 않았다. 아마 무공의 실력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그런 검노야가 온화한 얼굴로 칭찬하고 있었다. 진우선에게는 너 무도 감사한 일이었다.
“오늘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진우선이 다짐했다.
여러모로 의욕이 샘솟았다.
검노야가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수련에 더욱 열심히 임하려 하니 나로서도 고마울 따름이야. 오늘도 열심히 시작해보자꾸나.]
“네!”
***
하루가 또 지났다.
진우선의 하루는 평소와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집 마당에서 검노야와 수련했고, 낮에는 고서점에서 일했다. 저녁에는 청운무관에 와서 검을 휘둘렀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검법도 삼재검법이었고.
[……검법의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몸을 써서 검을 수련하며 신체를 단련하고, 기운을 순환하여 몸에 쌓으며, 나아가 마음을 닦고 튼튼하게 한다……]
검노야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쳤다.
삼재검법의 형을 가르치고 계속 다듬어가면서, 그 이치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가장 큰 목적은 검으로 상대와 싸워 이기는 것에 있고, 그렇게 하여 나를 지키는 것이다.]
검법은 몸으로 펼쳐내는 능력이 부족해서도 안 되고, 그 이치를 몰라서도 안 된다.
검노야는 그것을 균형 있게 가르쳤다.
[……초식은 하나의 흐름으로써 위력을 배가시키고, 몸에 익숙하게 하여 실제상황에서 손발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이 크다……]
‘명심! 또, 명심!’
진우선이 재차 검을 휘두르며 검노야의 말을 머릿속에 새겼다.
하나도 놓칠 게 없었다.
모든 게 실력 향상의 기반이 될 테니까.
진우선은 검노야의 말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되새기며 검로를 이어가는 데 집중했다.
그때였다.
문득, 주변에서 시선 하나가 느껴졌다.
한 무사부가 진우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잠시 기다리다가, 다 가올까 말까 고민하는 중이었다.
[우선아, 너도 느꼈구나. 저 사람도 네게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진우선이 급히 초식을 마무리했다.
하나의 작은 흐름이 끝나니, 호흡도,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걸 알아챈 무사부가 다가왔다.
“허허. 너겠구나. 양 사부가 맡겠다고 한 아이가. 검이 올곧고 좋아.”
진우선이 칭찬에 감사해하며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진우선입니다.”
“그래, 반갑다. 나는 남철상이라고 한다.”
남철상은 마흔이 족히 넘었을 법한 중년의 무사부였다.
그는 양문곽이 입에 침을 튀겨 가면서 이야기하는 걸 들었다.
오랜만에 정말 가르쳐보고 싶은 제자를 만났다고. 검을 쓸 줄 알아서 자신은 그 검법에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고.
그래서 궁금해졌다.
진우선이라는 아이가 도대체 어느 정도기에 양문곽이 이렇게 말할까 싶었다.
확실히 좋았다.
삼재검법으로는 더 가르치겠다고 하기가 무안할 정도였다.
“삼재공은 더 수련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유운공은 왜 수련하지 않느냐? 듣자 하니 항상 삼재공만 수련한다던데.”
“삼재검법은 검을 쓰는 데 필요한 이치가 잘 담겨 있어 기본으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익혀오다 보니 익숙해져서 제가 나아지고 있는지 아닌지도 더 잘 살피며 갈 수 있습니다.”
진우선이 또박또박 말했다.
검노야가 왜 삼재검법이면 충분하다고 했는지 수련해가면서 계속 깨닫고 있었다.
“그렇긴 하지. 그러나 삼재공은 기초를 쌓기는 좋아도, 상승의 경지로 나아가는 데 있어선 부족함이 많다. 유운공을 수련하거라. 장법도 함께 익혀두면 도움이 될 거고”
남철상이 유운공을 수련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그리고 을급은 비용이 많이 드는데, 무사부가 있을 때 유운공을 잘 배워가는 게 낫지. 주변을 보아라. 그래서 다들 유운공을 수련하고 있지 않으냐?”
진우선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을급 연무장 곳곳에서 수련하는 청운무관의 제자들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유운공에 매진하고 있었다.
확실히 무관의 을급 비용을 생각하면 남철상의 말이 합리적이었다.
“확실히 그러네요. 그런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아무튼, 수련 열심히 하거라. 양 사부는 실력 있고 좋은 사람이니 잘 배우도록 하고.”
남철상이 적당히 덕담하고 떠났다.
그제야 뒤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검노야가 다가왔다.
[우선아. 유운검법을 수련하고 싶으냐?]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진우선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그래. 굳이 그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너는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을 테니.]
유운공을 배우고 수련하는 게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은 삼재검법을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실력 향상에 충분했다.
아니, 그게 더 나았다.
이미 양문곽 앞에서 유운공을 펼칠 때 충분히 느끼지 않았던가.
[본격적인 입문은 아직 하지도 않았는데, 굳이 여러 가지를 익히며 더디게 입문할 필요가 없지.]
***
하루가 또 지났다.
오늘은 어제와 달랐다.
“오! 우선아! 그동안 잘 지냈느냐?”
청운무관에 들어서자마자 양문곽이 크게 환영하며 진우선을 맞이했다. 이 시간을 기다려온 까닭이었다.
그리고 양문곽은 매우 놀랐다.
‘지난 사흘 동안…… 또 발전했다!’
사흘 전과 달랐다. 진우선의 실력은 그사이에 또 한 걸음 나아가 있었다.
‘괄목상대(刮目相對)라더니!’
선비라면 사흘을 떨어져 있다 만났을 땐,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했다.
진우선이 딱 그랬다.
“허허허!”
양문곽이 웃음을 흘렸다.
너무 기뻐서 나오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