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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131/145)

131화

“……파장 감지기?”

미애나의 답신을 손에 든 디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중얼댔다. 그러자 디아나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케이든이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뭔데 그래?”

디아나는 그도 내용을 알 수 있게 글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마력 파장 감지기라는 걸 만들었는데, 여기에 힐라사의 마력을 일부 집어넣으니까 재미있는 결과가 나오더라고. 동봉된 지도에 표시된 곳. 그곳에서 힐라사와 유사한 마력 파장이 느껴져……라고 하시네요.”

디아나는 다 읽은 편지를 케이든에게 넘겨주고 지도를 집어 들었다.

지도에 표시된 붉은 별. 그곳의 위치를 확인한 디아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여긴…….”

케이든은 디아나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상체를 일으켜 지도를 확인했다.

직후 케이든의 얼굴도 디아나와 별 다를 바 없어졌다. 그가 침음을 흘렸다.

“……핀들레이 공작성.”

간 크게도, 수도에서 철수한 핀들레이 공작은 이제 본인의 터전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리석은 행동이라 비웃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핀들레이 공작은 인정하기 싫으나 영리한 자였고, 그런 그가 황제를 죽이거나 제집에서 실험을 자행하는 둥 더는 ‘조심하지 않게’ 되었다면 그 이유는 하나뿐이다.

연구가 끝나가고 있다.

혹은, 공작이 독 외에도 무언가 만족할 만한 것을 얻어냈다.

굳은 얼굴을 한 디아나와 케이든의 머릿속에 나란히 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 * *

결국 케이든과 디아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핀들레이 공작성을 향해 움직였다.

서즈필드 자작은 그들의 의지가 강한 데다가 그 또한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굳이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다만 지원했다.

이럴 때는 자작가에 넘쳐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케이든과 디아나의 목에 걸린 현상금보다도, 자작이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 담아 던져줄 수 있는 돈이 더 많으니까.

서즈필드 자작이 지원해준 수족들과 돈. 그리고 무프의 능력.

그 둘을 합하니 곳곳에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경비대를 피해 핀들레이 공작성에 접근하는 건 쉽게까지 느껴졌다.

“성문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자작의 심복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고는 마차를 몰아 사라졌다.

케이든과 디아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달리는 마차에서 어둑한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누군가 골목을 지나는 창문 열린 마차를 보았더라도, 조금 전 창문을 통해 시꺼먼 옷에 휘감긴 두 인영이 튀어나왔다는 건 전혀 모를 것이다.

“삼엄하네.”

케이든이 작게 속삭이며 골목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들이 내려선 곳은 핀들레이 공작성에서 가장 가까운 골목이었고, 때문에 저 멀리 공작 성의 입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성을 둘러싼 성벽은 높았다. 게다가 그 앞을 정령사임이 분명한 기사들이 틈 없는 얼굴로 지키고 있었다.

성벽을 눈으로 훑은 디아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결계가 있네요.”

성 전체를 감싸고 있는 무형의 기운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저 정도 크기의 결계를 만드는 마도구라면 부르는 게 값일 텐데.

역시 서즈필드 자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핀들레이 공작가 역시 상당한 부호였다.

고민하던 디아나는 정신을 집중해 힐라사를 꽤 여럿 불러냈다.

무프의 힘을 유지한 채, 힐라사를 여럿 불러내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최근 들어 마력이 대폭 늘어난 기분이라 성공할 수 있었다.

허공에서 검은 먼지 공 같은 힐라사들이 퐁퐁 솟아올라 디아나의 망토 자락 위로 모였다. 그녀는 꽃송이처럼 망토 자락에 담긴 힐라사들을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성벽 근처로 몰래 접근해서, 내가 신호를 주면 성벽을 마력으로 내리쳐. 그리고 돌아와. 알았지?”

삐이이.

디아나가 마력을 흩뿌려 꽃잎을 떨궈주자 힐라사들은 입을 크게 벌려 그것을 삼키고 종종걸음으로 흩어졌다. 케이든은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관찰했다.

“……귀여운데 입 벌릴 땐 좀 무섭네.”

“아무래도 몸의 절반이 입처럼 보이긴 하니까요. 그래도 쟤네는 피는 안 마셔요.”

디아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이윽고 힐라사들이 성벽 주위에 거리를 두고 자리 잡은 것이 느껴졌다.

디아나가 케이든에게 눈짓했다.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하나, 둘…… 셋.’

퉷.

디아나가 속으로 셋을 세는 것과 동시에 힐라사들이 일제히 성벽을 향해 마력을 토해냈다.

성벽을 부술 정도는 아니지만, 성벽을 감싸고 있는 결계가 반응할 정도는 되게.

뎅- 뎅- 뎅-!

그러자 곧장 성안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벽을 지키던 기사들이 당황해 우왕좌왕했다.

“뭐, 뭐야? 대체 한 번에 몇 군데서……!”

“벌레떼인가? 아니면 떠돌이 동물?”

“제길, 일단 빨리 확인해! 혹시라도 침입자면 곤란해진다! 공작님께 친히 문책 듣고 싶은 게 아니라면 움직여!”

그들은 과연 공작이 거르고 거른 정예답게 빠르게 소란이 벌어진 곳을 향해 흩어졌다.

유일하게 결계가 쳐지지 않은 정문 주위에는 여전히 기사들이 있었으나, 현재 그들의 주의는 소란이 일어나는 쪽에 팔려 있었다.

케이든과 디아나는 그 소란 속에 수월히 몸을 숨기고 정문을 통해 성으로 잠입했다. 그들의 뒤를 데굴데굴 구르는 힐라사들이 따랐다.

성안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한 디아나는 품에서 반지를 꺼내어 손가락에 끼웠다. 그리고 반지에 마력을 불어넣자, 보석이 깜박이더니 가느다란 빛줄기가 흘러나와 나침반의 바늘처럼 아래를 가리켰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4황비 미애나에게 요청해 휴대용으로 제작한 마력 파장 탐지기였다.

“아래……. 지하에 있나 봐요. 집무실이나 그 근처에 뒀을 줄 알았는데.”

4황비가 없었다면 조금 헤맸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덕분에 탐색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지금의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으니까.

“가요, 케이든.”

디아나는 반지가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하고 케이든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그는 조금 뚱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응시하고 있었다.

“케이든?”

디아나는 케이든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못마땅하게 중얼거렸다.

“그대 손에 다른 놈이 만든 반지를 끼우다니.”

“……설마 그거 4황비 전하를 말하는 거예요?”

“일 끝나면 새것으로 바꿔줄게. 그건 나 줘.”

“참 나…….”

이런 상황에서, 심지어 4황비를 질투하는 모양새가 황당한 동시에 사랑스러웠다.

어느새 저도 케이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되었나 보다. 그게 싫기는커녕 기껍다는 게 문제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디아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후 그들은 사용인, 경비병들의 눈을 피해 지하로 내려갈 길을 찾았다. 하지만 공작성의 지하는 1층으로 끝이었다.

반지는 여전히 아래를 가리키고 있는데, 성 지하에는 식료품 창고와 기타 비품 창고 등이 있을 뿐이었다.

‘입구를 감춰놓은 건가.’

디아나와 케이든은 흩어져서 주변을 수색했다. 그리고 비품 창고 안쪽 바닥에서 쓸린 듯한 자국을 간신히 발견했다.

드르륵-

바깥의 동태에 주의하며 찬장을 밀자 구멍이 나타났다. 디아나는 힐라사를 먼저 들여보내 통로에 별다른 장치나 인기척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케이든과 그 안으로 진입했다.

어둑하고 좁은 통로를 얼마나 지났을까. 돌연 시야가 확 트이며 빛이 쏟아졌다.

앞장서 걷던 케이든이 드러난 풍경에 그대로 굳어졌다. 그는 황급히 몸을 돌려 손으로 디아나의 눈을 가렸다.

“보지 마.”

케이든이 다급히 속삭였지만, 그의 손이 시야를 가리기 전 찰나. 주위의 모든 게 고스란히 디아나의 시야에 비쳤다.

곳곳에 세워진 투명한 원통 안에는 마물의 사체가 가득했다. 어떤 것은 팔 뿐이었고, 어떤 것은 머리뿐이었다.

그중 중앙의 가장 큰 원통 안에는 커다란 알이 들어 있었다. 원통 아래 보온 장치를 해두었는지 알 주변으로 거품이 부그르르 소리를 내며 휘돌았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기분 더럽군.>

유로가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디아나 역시 동의했다.

어둠 속성 정령들이 마물을 닮았기 때문일까.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녀가 제 눈을 가린 케이든의 손을 쥐며 가만히 웃었다.

“괜찮아요.”

“하지만…….”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봤던 것들이 더 끔찍했어요. 조금 전에는 잠깐 놀란 것뿐이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과거로 돌아오기 전이 더 끔찍했으니 지금은 괜찮다며 웃는 모습. 그 모습에 케이든은 잠시 가슴이 아렸다.

입술을 깨물고 머뭇거리던 그가 결국 마지못해 손을 내렸다. 디아나가 웃으며 그를 도닥였다.

“그보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최대한 빨리 자료를 챙겨서 나가요, 우리.”

“……그래.”

케이든은 디아나를 위로하고픈 것을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연구실처럼 보이는 지하를 조심스레 돌아다니며 증거로 쓸 만한 것을 모았다.

디아나는 그중 중앙에 세워진 원통 앞에서 일기장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가 표지를 넘기고 글을 빠르게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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