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6/145)

126화

“……사형?”

“예…….”

서즈필드 자작가의 집사가 참담한 표정으로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숙였다.

차마 주인 내외를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전한 건 이 가문의 후계자이자 주인 부부의 적법한 자식이었던 밀라드 서즈필드의 사형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었으니까.

자작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평소 같았다면 그를 부축해주었을 자작 부인은 침대 끄트머리에 멍하게 걸터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은 한쪽 창문이 완전히 부서진 자작의 침실이 아닌, 급하게 정돈한 손님방이었다.

자작은 당시 집사가 그를 빠르게 병원으로 옮긴 덕에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별개였다.

평생을 상인으로서, 위로 올라가기 위해 아득바득 노력하며 별의별 꼴은 다 보아왔다 자신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제 피를 이어받은 친자식이 저를 죽이려 들 줄은 몰랐기에 자작은 깨어난 후로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뒤늦게 소란을 접하고 방에서 뛰쳐나왔던 자작 부인의 상태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제 아들이 악귀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경비대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그를 드러내듯 자작 부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왜…….”

눈처럼 희다기보다는 시체 같은 볼 위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아이가, 밀라드가, 대체 왜…….”

“…….”

“욕심이, 욕심이 많기는 했지만…… 그런 짓까지 저지를 아이는 아니었어요. 분명, 분명 뭔가 이유가…….”

그녀는 분명 서즈필드 자작의 돈을 보고 결혼했다. 이후에 사생아인 디아나가 나타났을 때는 분노해 그의 뺨을 내리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딘가에도 분명 애정은 존재했다. 툴툴거리고, 화를 내면서도 그와 갈라서지 않은 것은 돈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미 익숙해진 체온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그를, 자식인 밀라드가 살해하려 들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도저히 현실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너무 끔찍해서.

자작 부인이 횡설수설하는 말소리에 집사의 고개는 더욱 깊이 떨구어졌다.

한편, 자작은 그녀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중. 순간적으로 퍼뜩 가슴을 스치는 서늘함에 반사적으로 이불을 움켜쥐었다.

[욕심이, 욕심이 많기는 했지만…… 그런 짓까지 저지를 아이는 아니었어요. 분명, 분명 뭔가 이유가…….]

‘설마…….’

그리고 인간은 불길함만큼은 기민하게 감지해 내는 감각을 지닌 동물이었다.

직후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주, 주인님!”

“이 무슨 무례한……! 노크하는 법도 잊었나, 자네! 서신은 또 왜 그렇게 구겨 들고 있는 거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하인 하나가 편지를 아무렇게나 손에 쥐고 뛰어 올라왔다.

집사가 화들짝 놀라 하인을 책망했으나 하인은 정신이 없어 듣지 못한 듯 보였다.

어차피 자식이 부모를 죽이려고 든 마당에 굳이 예의를 하나하나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자작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됐다. 무슨 일이냐.”

“1, 1황녀 전하께서……! 약혼 파기 통지서를 보내셨습니다!”

“뭐……?”

하지만 하인의 말을 들은 자작은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물론, 밀라드의 사형이 확정되었으니 레베카와의 결혼도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황족의 약혼자로서 죽느냐, 아니면 일개 귀족으로 죽느냐는 상당히 다른 문제였다.

황족의 약혼자로 죽는다면 적어도 참수는 면할 수 있다.

정령의 힘이 깃든 약을 마시고 서서히, 잠들듯이 죽는 것이었으므로 시신에 손상이 없었다.

하지만 존속살인 미수인, 일개 귀족 영식으로 사형당한다면…… 분명 참수형을 당할 테니 시신이 온전할 리가 없다.

발하나스에서는 시신을 훼손당하는 걸 죽는 것보다 더 끔찍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아무리 밀라드가 자작을 죽이려 들었고, 그 사실이 더없이 충격적이라 한들 그는 그들의 아들이었다.

그들은 아들의 시신이 훼손되는 것까지는 원치 않았다.

그런데, 뭐?

합의서도 아닌 통지서?

자작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가 하인을 추궁하듯 사나운 목소리를 냈다.

“합의서가 아니라 통지서인 게 확실한 것이냐?”

“그, 그것이, 예. 존속살인을 저지르려 했던 범법자를 배우자로 맞을 수는 없다며, 위자료 등은 모두 책임지시겠다고…….”

“……서신을 두고 물러가라.”

“예?”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어! 당장!”

서즈필드 자작이 윽박지르자 집사가 황급히 하인을 잡아끌고 방을 나섰다.

방문이 탁, 소리를 내며 닫혔다.

“하하, 하……!”

서즈필드 자작은 미친 사람처럼 실소했다. 그의 잇새로 자조적인 속삭임이 새어 나왔다.

“……1황녀로군.”

“…….”

“1황녀가 광산을 노리고 밀라드를 부추긴 거야. 아마 이렇게 빠르게 사형이 확정된 것도 그자의 입김이겠지.”

그리고 그 계획이 실패하자 가차 없이 밀라드를 잘라낸 것이다.

‘완벽한’ 황제가 되고자 하는 레베카는 죽은 약혼자가 존속살인 미수범이라는 오명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녀서는 안 되니까.

자작 부인은 남편의 중얼거림을 듣고서야 밀라드의 왜 그런 짓을 벌인 것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가 핏발 선 눈으로 으득 이를 갈았다.

“그것이 감히 내 아들을…….”

자작 부인은 밀라드를 옹호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아무리 레베카가 그를 부추겼다고 한들, 실제로 자작을 죽일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은 그의 선택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레베카가 밀라드를 고의로 부추겼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보.”

자작 부인이 형형한 눈빛으로 자작을 돌아보았다.

자작 역시 그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눈을 하고 있었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 듯한 표정.

그들의 머릿속에 비슷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을 고민하던 자작이 무겁게 입술을 떼었다.

“……몸이 괜찮아지는 대로 3황자 전하께 가보아야겠네.”

3황자 케이든을 황위에 올리는 것. 그것만큼 레베카에게 완벽하게 복수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서즈필드 자작가와 레베카를 잇고 있던,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가느다란 끈이 마침내 끊어졌다.

* * *

똑똑.

탑 꼭대기에 자리한 작은 방 안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책상 앞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카를롯타가 의아하게 고개를 돌렸다.

“……?”

그녀는 본래 건국제 직후에 재판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이런저런 일들이 벌어지고 처우에 대한 논의가 길어지는 탓에 아직도 이곳에 갇힌 신세였다.

카를롯타는 탈출을 시도하지도 않고, 자결하려 들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판결을 기다렸다.

삶의 이유를 잃은 탓인지 굳이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

그러다 보니 탑을 지키는 경비병들 역시 카를롯타를 옥죄듯 감시하지 않았다.

음식을 놓고 갈 때마다 그녀가 허튼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방을 샅샅이 수색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노크라니. 설마…….

똑똑똑.

“황녀 전하? 안에 계십니까?”

“……들어와.”

그때 방 안에서 계속해서 답이 돌아오지 않자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그녀가 도망친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결국 카를롯타는 내키지 않게 답하고는 경계심을 세우며 등을 뒤로 물렸다. 그래봤자 의자에 더욱 깊숙이 몸을 기대는 것밖에는 되지 않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제는 익숙해진 경비병이었다.

그가 고개를 꾸벅 숙여 예를 표하고 옆으로 한발 물러섰다.

“면회입니다, 황녀 전하.”

“면회라니, 누가…….”

의아함과 경계가 뒤섞인 얼굴을 찌푸리던 카를롯타의 얼굴이 직후 변했다. 그녀는 경비병의 뒤에서 나타난 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결 좋은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꼭 그만큼 짙은 흑색의 눈. 어쩐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광이 나는 듯한 얼굴.

이제는 누가 보아도 ‘황족’임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숨 한 자락에서도 고귀함이 흐르는 남자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케이든이 희미하게 웃음 지었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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