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형님?”
기척을 죽이고 방 안으로 들어오던 케이든과 디아나의 시선이 마주쳤다.
케이든과 디아나의 얼굴이 너나 할 것 없이 나란히 굳어졌다.
디아나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분명 1황자 궁은 마도구와 기사들로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디아나야 무프의 능력이 있어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지만, 케이든은 빛 속성 정령사였다.
무프의 능력을 다룰 수 있을 리가…….
‘아.’
그리고 직후 깨달았다. 디아나 그녀 역시 이곳에 숨어든 입장인데, 케이든이 그러지 못하리라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케이든이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엘리엇의 상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거란 사실을 간과했어.’
디아나가 필사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케이든 역시 이곳에서 누군가를 마주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멍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도 정체 모를 인영을 시선으로 샅샅이 훑은 케이든의 얼굴이 설핏 굳어졌다.
‘설마.’
분명 지금 엘리엇의 곁에 서 있는 자는 부엉이 가면이 아닌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발목까지 내려오는 클로크에 가려진 저 형체는 벌써 몇 번이나 눈에 담지 않았는가.
케이든의 입에서 반신반의하는 듯한 속삭임이 흘러나왔다.
“……옵스큐르?”
흠칫.
그 말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애쓰던 디아나의 어깨가 눈에 띌 정도로 튀어 올랐다. 생각에 잠겨 있던 탓에 무의식 그대로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직후 눈 한번 깜박할 정도의 짧은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제자리에서 튕기듯 몸을 움직인 디아나가 곧장 케이든을 덮쳤다.
“큭!”
디아나가 곧장 소리를 지르려 드는 케이든의 입을 한 손으로 막고 다른 손으로는 방문을 닫았다.
쿵!
작은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 디아나에게 밀린 케이든의 등이 닫힌 방문에 한 번 부딪쳤다가 튕겨 나왔다.
그 반동으로 케이든과 디아나는 겹치듯 바닥을 굴렀다.
“읍……!”
‘엘판드!’
케이든은 그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제 입을 틀어막는 손을 떼어내려 하며 엘판드를 불러냈다.
그러자 허공에서 튀어나온 흰 표범이 디아나를 물어뜯으려는 듯 입을 크게 벌리고 달려들었다.
컹!
그때 유로가 사나운 울음을 뱉으며 엘판드를 막아섰다.
두 정령은 주인들처럼 방바닥을 구르며 서로에게 발톱을 휘두르고 이를 세웠다.
그사이, 케이든은 가까스로 디아나를 밀쳐내고 검을 만들어 냈다.
검 손잡이를 쥔 그가 그것을 휘두르려던 차,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이게 무슨…….’
케이든의 눈이 미미하게 확장되었다. 그가 시선을 내려 제 몸을 살폈다.
그러자 몸을 휘감아 움직임을 제한하는 보랏빛 선들이 보였다. 그 선들은 디아나의 손끝과 이어져 있었다.
케이든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대체 뭐지, 이건? 설마…… 정령술인가?’
하지만 이런 속성의 정령사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없었다. 그의 머릿속이 혼란으로 가득 찼다.
게다가 의문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저 사람이 정말 D. 옵스큐르라면. 대체 왜 그가 여기에 있는 것인가?
‘설마 형님을 해치려고…….’
케이든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야 엘리엇과 플뢰르가 걱정되는 마음에 몰래 그들을 살피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라지만.
D. 옵스큐르의 목적은 아마도 케이든을 황위에 올리는 것이다.
그러니 1황자인 엘리엇 역시 어찌 보면 케이든에게 방해가 된다고 여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케이든은 섣불리 소리를 질러 이 상황을 바깥에 알릴 수가 없었다. 검 손잡이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익숙해.’
조금 전, 저 정체불명의 인영이 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을 때. 묘하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닿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느슨해지는…….
[케이든.]
……디아나와 닿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그리고 D. 옵스큐르로부터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한두 번은 우연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마주칠 때마다 이런 감각이 느껴지는 것도 과연 우연과 착각일 뿐인가?
케이든이 지그시 이를 악물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말도 안 되는 가정이라고 여겨보려고 해도, 한번 자라는 의구심은 물에 퍼진 독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확인해 보면 될 일이다.’
결국 케이든은 상념을 잠시 밀어두기로 했다.
저 사람이 D. 옵스큐르이건, 아니건. 엘리엇을 해치려 했건, 아니건.
저 복면을 벗기고 추궁하면 될 일이었다.
케이든의 눈이 매서워졌다. 그가 마력을 끌어올려 몸을 옥죈 실들을 끊어내고 디아나에게 달려들었다.
후웅!
매서운 소리와 함께 케이든의 검이 허공을 찢듯이 갈랐다. 디아나가 이를 악물고 그의 검을 피하고는 허공에 선을 그려냈다.
핏-!
그러자 케이든의 팔이 보랏빛 선에 스치며 피가 터져 나왔다.
디아나는 복면 아래로 입술을 깨물었다.
‘안일했군.’
유로와 엘리엇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정신이 팔려 힐라사가 자신을 부르는 것을 미처 듣지 못한 것이 실책이었다.
원래라면 1황자를 살피고 이곳을 빠져나가, 그녀가 알아낸 것을 D. 옵스큐르의 이름으로 케이든에게 알려 주려 했는데. 일이 틀어졌다.
‘너무 당황해서 순간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어.’
차라리 침착하게 항복 자세를 취하고 엘리엇을 해치려는 의도가 아님을 표현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되면 꼭 그녀가 엘리엇을 해치려고 들어온 암살자 같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을 해명하자고 길게 목소리를 내면 케이든이 디아나를 눈치챌 가능성이 있어 차마 시도할 수 없었다.
‘빨리 빠져나가야 하는데…….’
어쨌든, 정체를 들키지 않으려면 도망쳐야 했다.
케이든과의 대치가 길어질수록 그에게 부상을 입혀야 하는 일도 잦아질 것이다. 디아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디아나가 또다시 흉흉한 기운을 띤 채 제게 날아드는 검을 피하고 초조한 시선으로 창가 쪽을 힐긋 일별했다. 청보랏빛 눈이 몸집을 키운 것은 다음 순간이었다.
“……!”
힐라사들이 혼란을 틈타 창가를 보호하던 마도구를 깨부수고 서로의 몸을 발판삼아 창문의 걸쇠를 열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디아나는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사이, 그녀의 지척까지 다가든 케이든이 복면을 노리고 손을 뻗었다.
“윽……!”
급하게 뒷걸음질 쳐 그의 손을 피하던 디아나의 몸이 크게 휘청였다. 그녀가 바닥을 구르는 것과 동시에 케이든이 그녀의 위를 점하고 복면을 벗겨 내려 했다.
콱.
디아나가 간발의 차를 두고 손을 들어 케이든의 손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힘의 차이가 큰 탓에, 정령술을 동원해 그의 손목을 실로 칭칭 감았음에도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 사람은 잠시간 대치했다. 복면과 후드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얼굴을 뚫어질 듯 노려보던 케이든이 미간을 찡그렸다.
“당신…….”
디아나는 그가 제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는 걸 막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그의 주의를 돌리기로 했다.
그녀가 최대한 낮고 거친 음성으로, 어투도 바꾸어 입술을 달싹였다.
“반지.”
“……뭐?”
“반지를 조사해.”
그리고 그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케이든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말에 정신이 팔려 손에 힘을 빼었다.
디아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있는 힘껏 그를 밀쳐냈다.
쿠당탕!
큰 소리와 함께 케이든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크윽……!”
“유로!”
컹!
디아나가 실로 엘판드를 묶어두고 외쳤다. 그로써 엘판드에게서 벗어난 유로가 케이든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사이 디아나는 창가로 달음박질쳤다. 유로를 떨쳐 낸 케이든은 어느새 열려 있는 창문 너머로 뛰어내리는 그녀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잠깐……!”
그러나 디아나는 망설임 없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기겁한 케이든이 곧장 창가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