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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106/145)

106화

[연지곤지]

“사람을 시켜 감시해보았더니, 확실히 동선에 수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중간에 한 번씩 어디론가 사라지더군요.”

“그래?”

“네. 하지만…….”

디아나가 반색했으나 뮈젤의 얼굴은 영 밝지 못했다. 머뭇대던 그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더했다.

“사람을 붙여서 목적지를 알아내려고 했는데, 공작에게 붙어있는 호위의 수가 많은데다가 그들 대부분이 상당한 실력자였습니다. 미행으로 붙인 자들이 벌써 몇 번이나 죽을 뻔했어요. 그래서 우선은 다들 철수시켜놓은 상태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오히려 그거 때문에 잘 교육해둔 길드원을 잃는 게 더 손해잖아. 잘했어.”

디아나는 의기소침한 뮈젤을 달래고 잠잠히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꼬리를 자른다는 건, 그가 감추고 있는 게 그만큼 크다는 거겠지.’

이로써 핀들레이 공작이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지금은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레베카가 다시 대외 활동을 활발하게 재개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엘리엇 전하를 살리는 게 먼저야.’

시체와 다름없는 몰골로 침대에 누워있던 엘리엇을 생각하자니 얼굴이 절로 어두워졌다. 디아나가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레베카의 짓인가?’

엘리엇의 증상은 회귀 전과 확연히 달랐다.

애초에 회귀 전에는 평범한 ‘병’이었던 것이, 이번 생에서는 원인도, 치료법도 알 수 없는 ‘불치병’이 되었으니 말이다.

엘리엇의 상태가 이다지도 심각해진 것이 과연 회귀로 인한 우연일까?

디아나의 머릿속에서 케이든이 영향력을 떨치는 현 상황, 주춤했다가 다시 발악하듯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레베카의 모습이 번갈아 스쳐 갔다.

‘영 신빙성 없는 가정은 아니야. 문제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엘리엇 전하를 저렇게 만들었냐는 건데…….’

황궁의에게 증상을 전해 듣고, 멀리서 눈으로 엘리엇의 상태를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을 듯했다.

디아나는 고심 끝에 약간의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엘리엇을 직접 살펴보아야겠다 결정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치료법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케이든의 일이 아니더라도, 이번에는 꼭 살려야 해.’

엘리엇이 이대로 죽는다면, 그의 소개로 케이든을 지지하게 된 귀족들이 흔들릴까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혼자서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요. 큰 도움은 못 되더라도, 우리는 가족이니까.]

이제는 디아나 역시 엘리엇을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가족.’

그래, 어쩌면 이런 관계를 가족이라 칭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디아나의 눈에 굳은 결의가 스쳐 갔다.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서 있던 뮈젤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수장님.”

“응?”

“저희 말고도 핀들레이 공작의 뒤를 밟는 자들이 몇 있어, 공작의 뒤를 쫓는 대신 그쪽을 조사해보았습니다. 그런데…….”

디아나는 뮈젤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는 어째서 뮈젤이 저렇듯 말을 망설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 케이든 쪽 사람들이겠지.’

레베카와 핀들레이 공작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니까. 디아나는 그렇듯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어서 뮈젤의 입을 타고 흘러나온 것은 전혀 다른 말이었다.

“한쪽은 3황자 전하의 수하들, 그리고…… 다른 한쪽은 1황녀 전하의 수하들이었습니다.”

“……뭐?”

* * *

톡.

잘 다듬어진 손톱이 느릿하게 테이블을 두드렸다.

레베카는 테이블 위로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는 루드비히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창밖에 시선을 두고 무언가를 고민 중이었다.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군.’

레베카는 문득 미간을 옅게 찌푸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제게 다녀간 수하들의 보고 내용이 들어차 있었다.

[공작님의 수하들이 저희보다 뛰어난 실력자였던지라……. 죄송합니다.]

레베카는 황궁으로 돌아온 이후, 핀들레이 공작이 정확히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그의 실험실 위치를 알아내려 했다.

하지만 핀들레이 공작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몇십에 가까운 호위로 하여금 제 주변을 지키게 했기 때문에 레베카라 할지라도 눈에 띄지 않고 그의 뒤를 캐기 쉽지 않았다.

물론 저 말을 전한 수하들은 그 대가로 이미 한 줌 흙으로 돌아가 있었다. 공작의 뒤를 밟는 데 실패했는데 꼬리까지 남겨둘 이유는 없었다.

‘아직은 무리라는 건가.’

숲에서 제게 더없이 오만한 태도를 보이던 핀들레이 공작의 모습을 상기하니 턱에 힘이 들어갔다.

레베카는 평정을 찾기 위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만큼 거세게 주먹을 쥐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푸른 눈이 더없이 냉정해졌다.

‘어머니께 부탁드려도 소용없겠지. 더군다나 어머니는 조부와 사이가 좋지 않으시니까.’

1황비는 자신을 후계자 자리에서 강제로 끌어내린 핀들레이 공작을 용서하지 않았다.

다만 레베카를 황제로 만들겠다는 의지만큼은 같았기에 협력하고 있을 뿐이다.

‘뭔가 방법이 없나…….’

레베카가 핀들레이 공작의 속을 캐낼 방법을 궁리하는 한편.

루드비히는 제 모습이 어렴풋하게 비치는 유리창을 응시하며 생각에 빠졌다.

‘이상해.’

유리창 위로 사냥 대회에서 볼품없이 쓰러지던 엘리엇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기억을 되짚어 그 전후의 상황을 살펴보아도, 도저히 누가 엘리엇을 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만일 루드비히, 혹은 레베카의 짓이었다면 그들은 티 나지 않게 서서히, 나을 수 있다는 신기루 같은 희망을 쥐여주며 엘리엇을 말려 죽였을 테니까.

‘나나 전하의 수하 중 그렇게 간 큰 짓을 저지를 만한 놈은 없는데.’

수하가 과한 충심 때문에 독단적으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기엔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루드비히와 레베카는 애초에 그런 주제넘는 수하를 거두지 않았다.

‘이유’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루드비히의 신경을 거슬렀다.

그는 이후로도 한참이나 더 엘리엇의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곧 짧게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냈다.

‘뭐. 우리 쪽과 연관이 없다는 건 확실하게 확인했으니 이건 기회다.’

레베카의 것과 닮은 연푸른 눈이 비상하게 빛났다.

어차피 엘리엇은 레베카가 완벽하게 황위를 물려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연약하기 짝이 없으나 나름의 인망이 있고, 그 인망으로 더없이 강한 3황자를 지지하고 있었으므로.

그러니 엘리엇이 쓰러진 것으로 인해 귀족들이 술렁이는 지금이 기회였다.

‘현 3황자의 세력 중에는 1황자를 통해 3황자를 지지하게 된 이들이 적지 않아. 그들은 1황자의 지지가 더해진다면 3황자가 황위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한 것일 테니…….’

아무리 힘이 없다고 한들 명분과 상징성의 역할도 적지 않다.

황실의 일원인 1황자, 그리고 황후의 지지가 사라진다는 것은 케이든에게 상당한 타격이 되리라.

‘게다가 심정적으로도 좋지 않겠지. 사이가 좋았으니까.’

결론적으로, 케이든을 뒤흔들기에는 지금이 적기라는 소리였다.

반란을 일으킨 자가 황위에 오르면 그것은 반정이 되는 법이나.

반란을 일으킨 자가 기존 권력자의 손에 제압당하면 그것은 그저 반역으로 머무르게 되는 법이니까.

‘1년이 가기 전에 상황을 뒤집는다면 아직 승산이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차기 황제가 케이든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전에 그를 무너트려야 했다.

루드비히의 장기는 사람을 속에서부터 무너트리는 것이었다.

케이든의 안에서 커다란 기둥이나 다름없던 엘리엇이 쓰러졌으니, 반대쪽에 있는 기둥이 하나 더 무너진다면 그 후로는 루드비히가 손대지 않아도 알아서 무너질 것이다.

그 반대쪽 기둥이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3황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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