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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100/145)

100화

‘……엘리엇이 병으로 아팠던 시기까지는 꽤 남았을 텐데.’

회귀 전. 레베카는 엘리엇이 병으로 쓰러진 시기에 디아나를 통해 그와 플뢰르를 죽였다.

엘리엇의 원인 모를 병이 플뢰르에게도 옮아 두 사람이 함께 죽은 것이라는 핑계를 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엘리엇이 병으로 쓰러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후의 일이었다.

‘일단은 지켜보자. 혹시 모르니까.’

디아나는 속으로 그렇게 다짐했다. 이미 그녀가 과거로 돌아와 여러 일이 바뀌었다.

그 파장이 엘리엇에게도 충분히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행히 플뢰르는 디아나의 위로 덕에 꽤 빠르게 평소의 웃음을 되찾았다. 그때 그녀가 무언가를 보고 재빨리 검지를 입술 앞에 가져다 댔다.

“디아나, 저기 봐요.”

플뢰르가 작게 속삭였다. 디아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숲 저편, 수풀 사이로 작은 토끼가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토끼는 아직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주변을 향해 코를 킁킁댔다.

‘잡을까요?’

‘잡죠.’

디아나와 플뢰르가 조용히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이 조용히, 숨소리마저 조심하며 막 화살을 꺼내 들려던 차였다.

파사삭!

“어?”

플뢰르가 저도 모르게 얼떨떨한 목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이 화살깃에 닿기도 전에 토끼가 돌연 흠칫하더니 도망가버려서였다.

“아쉽네요.”

“그러…….”

플뢰르의 말에 디아나가 맞장구치려던 참이었다.

토끼가 도망칠 때와 비슷한 소리가 연달아 들리더니, 그들의 등 뒤에서 다람쥐, 사슴 등 초식동물들이 여럿 튀어나왔다.

“꺄악!”

플뢰르가 놀라 비명을 질렀다. 디아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하지만 동물들은 그대로 그들을 지나쳐갔다. 디아나는 의아하게 눈을 깜박였다.

‘보통 저 동물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던가? 아니면 참가자한테 쫓기기라도 하는…….’

디아나는 생각을 이어가며 동물들이 달려온 방향으로 무심코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직후, 사색이 된 그녀가 플뢰르의 손을 붙잡고 땅을 박찼다.

“플뢰르, 뛰어요!”

“디아나? 무슨…… 헉!”

플뢰르는 디아나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며 어리둥절하게 뒤를 돌아보았다가 비명을 삼켰다.

키에에엑!

동물들이 달려온 방향에서 마물임이 분명해 보이는 괴생명체가 그들을 발견하고 괴성 비슷한 것을 내질렀다.

플뢰르는 입에서 녹색 점액을 줄줄 흘리고 있는, 사슴을 닮은 형태의 마물에 식겁하여 소리쳤다.

“이게 무슨……! 분명 숲 초입으로는 마물이 나오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아무래도 변종 마물인 것 같아요!”

디아나는 마주 소리치며 나무뿌리 하나를 급하게 뛰어넘었다.

그러는 사이 숲 곳곳에서 비명이 메아리처럼 하나둘 늘어갔다. 그녀는 숲 저편에서 느껴지는 짧고 굵은 마력의 진동에 움찔 어깨를 떨었다.

‘……결계가 파괴된 것 같은데. 게다가 저 마물만 있는 게 아니군.’

같은 종류의 변종 마물이 무리를 지어 나타난 것일까?

하지만 디아나는 곧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만약 그 정도 수의 변종 마물이 무리를 짓고 있었다면, 사냥제 전에 이 숲을 수색한 이들이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저렇게 녹색 점액을 줄줄 흘리는 마물이라면 더욱.

‘그렇다면 다른 종류의 마물이 제각각 나타났다는 뜻인데.’

일반적인 마물도 아닌, 변종 마물이 한꺼번에 여러 개체가 출현했다.

이것이 과연 ‘우연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일까?

‘그럴 리 없다’는 답이 디아나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그녀를 뒤따르던 플뢰르가 돌부리에 걸려 크게 휘청했다.

“윽……!”

“플뢰르! 괜찮아요?”

“괘, 괜찮아요.”

디아나가 황급히 플뢰르를 붙잡았다. 그 바람에 넘어지는 것을 면한 플뢰르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키에엑!

그사이 두 사람을 쫓아오던 마물이 한층 더 가까워졌다.

디아나와 플뢰르는 적어도 그들보다는 나은 무력을 지닌 사람을 찾아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 역시 마물 탓에 이리저리 흩어졌는지 한참을 내달려도 누군가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결계가 사라진 숲 안쪽으로 들어가 케이든을 찾자니, 케이든을 만나기 전에 다른 마물을 추가로 마주칠 확률이 더 높았다.

그때 플뢰르가 또다시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디아나가 그녀를 금세 일으켜 세워주긴 했지만, 이제 마물은 두세 번의 도약만으로 그들의 등 뒤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플뢰르는 곁눈질로 점차 가까워지는 마물을 돌아보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디아나, 나를, 나를 두고 가요.”

“뭐라고요?”

“조금 전에 넘어지면서 발목을 삔 것 같아요. 나는 어차피 더 뛸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나를 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디아나는 플뢰르가 헐떡이며 잇는 말을 단칼에 잘라냈다.

물론 발목을 삐었다는 플뢰르의 말은 거짓이었으나, 더 뛸 수 없을 것 같다는 말만은 진실이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디아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의 디아나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는 플뢰르의 손을 놓았다.

“디아나?”

플뢰르가 반사적으로 디아나의 이름을 불렀다. 그와 동시에, 디아나가 화살을 하나 꺼내더니 날카로운 화살촉으로 제 손바닥을 가차 없이 찔렀다.

“디아나! 무슨 짓이에요!”

부름이 비명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플뢰르가 기겁하며 디아나의 손을 붙들려 했으나 디아나는 그녀를 피해 한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고 피가 난 손바닥을 옆의 나무껍질에 문지르며 이를 악물었다.

“플뢰르, 당신은 빨리 숲을 빠져나가서 바깥의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알려요. 하지만 숲을 벗어나기 전까지는 목소리를 내면 안 돼요. 괜히 마물들을 끌어들일 테니까.”

“잠깐, 디……!”

“내 말 이해했으면, 뛰어요! 지금 당장!”

플뢰르는 디아나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디아나는 플뢰르를 거세게 밀쳐내고는 숲 안쪽을 향해 내달렸다.

키에엑!

그때 그들의 지척까지 접근했던 변종 마물은 디아나의 피 냄새를 맡고 흥분해 긴 울음을 뱉었다.

코를 킁킁거리던 마물이 목을 홱 돌려 디아나의 뒤를 쫓았다.

순간적으로 두려움에 굳어졌던 플뢰르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디아나도, 마물도 자취를 감춘 후였다.

“아…….”

플뢰르는 벌벌 떨리는 양손을 가까스로 움켜쥐었다. 이를 악문 그녀가 곧 몸을 돌려 숲 바깥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 모든 일은 채 5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숲속에 울려 퍼지는 비명은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 * * 

한편, 소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

케이든은 숲 깊은 곳에서 거의 학살에 가까울 정도의 기행을 펼치며 마물과 맹수를 잡고 있었다.

푹-!

크아아악!

케이든의 검이 마물의 등을 꿰뚫었다. 잠시간 팔다리를 버둥거리던, 호랑이를 닮은 마물이 이내 움직임을 멈추고 흙 위로 추욱 늘어졌다.

마물의 등 위에 올라타 있던 케이든이 검을 뽑아 가볍게 휘둘렀다. 허공으로 보랏빛 핏방울이 후드득 흩날렸다.

마물의 옆에서 땅을 딛고 서 있던 파트라슈가 대번에 질색하며 핏방울을 피했다.

“으, 피곤하지도 않으십니까? 좀 적당히 하시죠?”

“아직 멀쩡한데 굳이 적당히 할 필요가 있나? 그럴 바엔 빠르게 우승을 확정 짓는 편이 낫지.”

케이든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물의 등 위에서 뛰어 내려왔다. 그가 몸을 바로 하며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확실히 몸 상태는 최상이야.’

이상하게 기력이 늘어났다. 아마 이전까지는 그의 몸을 부서트릴 듯 짓누르고 있던 마력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어서인 듯했다.

그러나 숲을 날 듯이 뛰어다니는 케이든을 따라야 하는 파트라슈는 죽을 맛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상관의 폭주를 막아보기 위해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의 전하께선 우승을 위해서가 아니라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렇죠. 혹시 비 전하랑 무슨 일 있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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