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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85/145)

85화

건국 기념 무도회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

약속대로 케이든에게서 사건의 전말부터 결말까지 전해 들은 디아나가 짐짓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살폈다.

“괜찮으신 거 맞죠? 혹시 몸이 떨린다거나, 춥다거나 하지는 않으시고요?”

디아나는 케이든이 괜찮다고 몇 번이고 말했음에도 그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그를 살폈다.

그녀는 케이든이 보지 않는 곳에서 살포시 미간을 찡그렸다.

‘치료는 잘 된 것 같았는데. 설마 후유증이 있는 종류의 독은 아니겠지……?’

약 반나절 전.

[3황자 전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디아나는 케이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플뢰르와 엘리엇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벨라도바와 뮈젤을 찾았다.

[가면 가져와.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치료사도 대기시켜 둬.]

디아나는 그들에게 뒤처리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게 한 뒤 유로를 불러냈다.

[이게 제일 빨라.]

뮈젤을 시켜 케이든을 찾아내라고 한들, 사람을 모으고 수색을 시작하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럴 바에야 디아나가 직접 사람들의 눈을 피해 케이든을 찾아다니는 것이 빨랐다.

그녀는 케이든의 발작을 몇 번이나 진정시키면서 그의 마력에 상당히 익숙해진 상태였고, 그녀 본인 또한 타인의 마력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능력이 있었으니까.

디아나는 마력을 바닥까지 끌어모아 황궁 곳곳에 힐라사들을 풀고, 무프의 결계로 모습을 감춘 후 유로를 타고 황궁 곳곳을 뒤졌다.

케이든이 처음 사라졌던 3황자궁의 방에서부터 시작하는데, 다행히 그의 마력이 남긴 흔적이 희미하게나마 이어져 있었다.

디아나는 그 흔적을 따라 후원 너머의 숲으로 향했고, 도착하자마자 케이든의 흔적이 끊겼음을 알아차렸다.

[케이든! 어디 있어요!]

디아나는 황궁 내에 있다지만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숲을 필사적으로 뒤졌다.

어쩔 수 없이 손끝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케이든이 이런 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말도 없이 사라질 때는 늘 그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었다.

디아나는 최근 케이든의 마력 발작이 많이 안정된 듯해, 제 마력을 보충할 생각으로 잠깐이나마 힐라사를 그에게서 떼어 놓았던 과거의 행동을 하염없이 자책했다.

[케이든…….]

그러나 별다른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채 무의미하게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던 때, 카를롯타의 희미한 외침이 기적처럼 귓가를 파고들었다.

[……요! 밖에 아무도……! 여기 사람이……!]

디아나는 카를롯타의 목소리를 인지하자마자 유로의 등에서 뛰어내려 정신없이 달려갔다.

그녀는 앞뒤 잴 것도 없이 제 팔에 피를 내어 유로의 힘을 끌어내고는 구두 굽으로 카를롯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바닥을 정확히 내리찍었다. 그렇게 하면 제 몸 또한 땅 아래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쾅! 굉음과 작은 비명이 뒤섞이며 땅이 무너지고 어둡고 광활한 공간으로 그녀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디아나는 유로의 힘으로 가까스로 다치지 않고 바닥에 안착했고, 중심을 되찾자마자 몸을 일으켜 케이든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피 웅덩이 속에서 기괴하게 몸을 뒤튼 채 굳어 있는 케이든의 모습에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케이든.]

디아나 본인의 귀에만 들릴 정도로 작은 속삭임이 잇새로 새어 나왔다.

그녀는 잠시간 어떠한 행동도, 말도 못 하고 굳어 있다가 그의 시선이 제게 향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발을 뗄 수 있었다.

디아나는 케이든의 곁에 주저앉아 그에게 손을 뻗었다. 장갑을 낀 손끝이 눈에 보일 만큼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케이든의 어깨에 손을 얹고, 그의 몸이 아직 따뜻하다는 사실을 실감한 후에야 탄식 같은 숨을 내뱉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한편, 케이든은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트린 채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얼마 가지 않아 혼절해 버렸다.

디아나는 케이든이 기절하자 카를롯타를 미리 챙겨 온 밧줄로 묶어 둔 후, 그를 서둘러 데리고 나와 뮈젤이 대기시켜 둔 치료사에게 데리고 갔다.

치료사는 빛의 중급 정령사였기에 어렵지 않게 케이든의 몸에 퍼져 있는 독을 해독했다. 디아나는 그에 그치지 않고 아를라스 왕국에서 생산된, 제국의 황제조차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값비싼 포션을 사용해 그의 외상을 치료했다.

애초에 레베카를 무너트리기 위해서, 더 나아가 케이든을 돕기 위해서 모아 둔 돈이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디아나는 그렇게 케이든을 치료한 뒤, 그를 3황자궁의 후원에 데려다 두고는 마치 그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연기했다.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곧 행진이 시작할 텐데……!]

하지만 디아나는 케이든이 부엉이 가면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담담한 얼굴로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레베카가 케이든을 제치고 황위에 오를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였지만, 만약을 대비해서라도 디아나 블루벨은 D. 옵스큐르와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으니까.

물론 케이든이 염려되는 것은 진심이었다.

디아나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케이든의 어깨를 붙잡아 그를 소파에 앉혔다. 그녀가 그 곁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큰일을 겪으셨는데, 건국 기념 무도회에서 최소한의 체면치레만 하고 쉬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건국제까지 즐기러 나가기엔…….”

“아니야, 나 이제 멀쩡해. 봐, 상처도 다 나았다니까?”

그러나 케이든은 다급하게 제 소매를 걷으며 자신의 상태를 피력했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건국제인데.’

습격이 있었던 만큼, 디아나에게 제 마음을 고백하려던 계획은 조금 뒤로 미뤄야 할 성싶었다.

지금도 그의 걱정으로 여념이 없는 디아나가 그의 마음을 제대로, 한 점의 덜어 냄 없이 고스란히 알아차릴 수는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이번 건국제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건국제일지도 몰랐다.

일이 잘 풀려 디아나와 이혼을 하지 않게 된다면 앞으로도 기회가 있겠지만, 만약 그녀가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찔해졌다. 케이든이 부르르 어깨를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애써 불안감을 내리누르고 디아나를 설득하려 애썼다.

“나 정말 멀쩡한데.”

“평소보다 안색이 창백하신걸요.”

“그건……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 나서 본 게 처음이라, 조금 긴장했을 뿐이야.”

“뭐라고요? 역시 첫 춤만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 쉬시는 게…….”

디아나가 대번에 기겁하며 약속을 파기하려 들었다.

그러자 마음이 급해진 케이든이 상체를 기울여 그녀의 무릎 위로 툭 고개를 떨궜다.

“……케이든?”

디아나가 당황해 굳었다. 그녀가 조금 떨리는 부름을 내뱉으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케이든은 디아나의 무릎을 벤 채 고개를 돌려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아련하게 젖어 들었다.

“무도회 전까지 이렇게 있으면 나아질 것 같은데…….”

“…….”

“응? 디아나.”

케이든은 애처로운 목소리를 흘리며 살며시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품에 파고들었다.

디아나는 간지러움에 반사적으로 어깨를 떨었다가, 낑낑대며 주인의 품을 파고드는 강아지 같은 케이든의 모습에 결국 픽 웃음을 흘려 버렸다.

그녀는 자못 엄한 얼굴로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렇게 쉬었는데도 무도회 전까지 안색이 나아지지 않으면, 첫 춤만 추고서 얌전히 방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뭐? 나 사실 멀쩡해.”

“그럼 왜 이러고 계신 거예요? 일어나셔야…….”

“아니야, 다시 아파진 것 같아. 무도회 전까지만 이렇게 있을게.”

“아픈 것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분이신 줄은 미처 몰랐네요.”

“그래서 싫어?”

“흠…….”

“……왜 망설이는 거지, 그대? 이러면 내가 불안해지는데?”

그 후로도 그들은 무도회가 시작할 때까지 티격태격하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게나마 찾아온 평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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