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연지곤지]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케이든은 잠시 사라졌던 마담 드롱이 돌아온 것일까 하여 별 경계심 없이 말했다.
“들어와.”
그러나 다음 순간. 케이든은 문을 열고 나타난 인영에 반사적으로 표정을 굳혔다.
“……누님?”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의 2황녀 카를롯타였다. 케이든은 순간 제 눈을 의심했다.
“케이든…….”
카를롯타가 지극히 낯선 낯으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철컥.
그녀의 등 뒤로 방문의 잠금쇠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케이든이 흠칫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한발 물러섰다. 그의 눈에 날카로운 경계심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십니까. 문은 왜 잠그시는 거고요.”
케이든은 언제든 엘판드를 소환할 수 있게 바짝 긴장한 상태로 마력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하지만 카를롯타는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다만 왈칵 눈물을 터트렸다. 그녀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 나랑 같이 가 줘…….”
“예?”
케이든이 황당한 음성을 흘렸다. 그가 혼란스럽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저는 곧 건국제 행진에 참석하러 가야 합니다. 그걸 방해하러 오신 거라면…….”
“제발, 제발 부탁이야. 나랑 같이 가 줘.”
그러나 카를롯타는 막무가내로 우기며 문을 막고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난감하게 바라보던 케이든은 문득 그녀의 목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은 눈썹이 움찔 떨렸다.
‘……마도구?’
레이스 초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으나, 가느다란 고리 같은 것이 카를롯타의 목에 채워져 있었다.
그녀의 목 주위로 이질적인 마력이 일렁였다. 그가 수상하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목에 그건 뭡니까.”
“흐으, 흐…….”
“누님. 뭐라고 말을 좀 해 보십시오.”
케이든이 답답하다는 듯 카를롯타를 불렀으나 그녀는 케이든의 물음에 답할 생각조차 없는지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결국 케이든은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채 천천히 카를롯타에게 다가갔다. 그가 그녀의 목으로 손을 뻗는 순간. 카를롯타는 기겁하며 한발 뒤로 물러섰다. 그녀가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안 돼. 잘못 만지면 바로 목이 잘릴 거라고 그랬어.”
“그게 무슨 소립니까. 누가 그런……!”
끔찍한 말에 케이든이 놀라 소리쳤다.
그 외침에 카를롯타의 눈에 또다시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흐릿한 시야로 익숙한 얼굴이 아른거렸다.
‘어머니…….’
[너는 네 오빠처럼 되면 안 된다.]
[너는 네 오빠처럼 되면 안 돼…….]
2황비가 처음으로 카를롯타를 안아 준 날 이후. 그녀는 눈에 띄게 카를롯타에게 다정해졌다.
카를롯타는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면서도 어머니의 다정함을 뿌리치지 못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 보는 모친의 애정은 너무도 달콤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얼마간 2황비의 애정에 푹 잠겨 있던 카를롯타는 오래간만에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은 건국제 날이었다. 레베카가 주인공이 아닌, 케이든이 주인공인 건국제 당일.
카를롯타는 그로 인해 2황비의 기분이 저조할 것을 염려하고 그녀를 간간이 힐끔거렸다.
하지만 2황비는 평온한 얼굴로 카를롯타의 머리를 빗겨 줄 뿐이었다. 카를롯타는 그에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빗을 내려놓은 2황비가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그녀의 목에 무언가를 채운 순간, 꿈에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다.
[어, 어머니? 이게 무슨…….]
[자, 다 됐다. 어여쁘구나.]
카를롯타가 당황해 2황비를 불렀으나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 맞추었다.
레이스 초커 안쪽에서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졌다. 혼란스럽게 눈을 깜박이던 카를롯타가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직후 들려온 2황비의 말에 그녀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행동을 멈추었다.
[함부로 손대지 말려무나. 자칫했다가는 목이 잘릴지도 몰라.]
[……네? 장난, 하시는 거죠? 왜…….]
카를롯타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뒤를 돌아 2황비와 눈을 맞췄다.
그녀는 2황비와 눈을 맞추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 깨달았다.
[아…….]
그녀가 한동안 다정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다정의 껍데기를 쓴 광기였음을.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덜컥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목에 마도구가 채워진 후였다.
2황비는 벌벌 떠는 카를롯타의 얼굴을 양손으로 소중히 감싸 억지로 딸과 시선을 맞췄다. 자상한 웃음이 더없이 섬뜩했다.
[로티, 내 딸아.]
[흐윽, 어, 어머니. 대체 저한테 왜…….]
[3황자는 멍청하리만치 미련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네가 죽는 걸 마냥 두고 보지 못할 거란다. 설령 네가 내 딸이라고 해도 말이지.]
2황비가 평온한 어조로 말을 늘어놓으며 카를롯타의 볼을 쓰다듬었다.
카를롯타는 그 손길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두려움으로 몸이 굳어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2황비는 그런 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명령했다.
[그러니 가서 3황자를 데려오렴. 은밀하고, 조용하게. 그 누구도 알 수 없게.]
[흐으으…….]
[그래서 그가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그 행방을 알 수 없도록.]
그것이 카를롯타가 행진을 앞둔 케이든을 찾아온 이유였다.
그녀는 하급 정령의 도움을 받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 이곳까지 왔다.
살기 위해서.
“하…….”
카를롯타는 한마디 설명도 없이 울기만 했지만, 그녀의 태도와 마도구로 대강의 상황을 짐작한 케이든이 헛웃음을 터트리며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손바닥 아래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졌다.
‘지독하군, 정말로.’
케이든 세이릭 블루벨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어머니의 사랑에 취해 있다가 봉변을 당한 카를롯타를 외면할 수 없다.
2황비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디아나의 회귀 전, 레베카가 그를 꾀어내기 위해 애꿎은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태웠던 것처럼.
“제발 같이 가 줘…….”
카를롯타가 흐느끼듯 말하며 케이든의 소매 끝을 살짝 쥐었다.
케이든은 심란한 낯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할 테니까, 그때 놀라지 말고…….”
문밖, 복도 저편에서 파트라슈가 제4연대의 기사들에게 행진 시 주의할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기사들이 주의 사항을 모두 숙지하고 나면 파트라슈는 케이든을 찾아 방으로 들어올 것이다.
[거슬리게 눈에 띄지 말라고 했지.]
울고 있는 카를롯타의 얼굴 위로, 그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던 어린 카를롯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파트라슈의 목소리, 그리고 카를롯타의 차가운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어지러이 뒤섞였다.
[케이든.]
그 위로 돌연 디아나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그 순간 케이든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디아나의 얼굴이 떠오른 순간, 그는 속으로 ‘미안하다’라는 말을 가장 먼저 내뱉었다.
머리는 한없이 복잡했으나, 그의 마음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것이다.
“……젠장.”
작게 욕지거리를 뱉은 그가 직후 카를롯타의 팔을 움켜쥐고 창밖으로 뛰어내렸다.
건국제 행진이 시작되기까지 두 시간이 남은 시점의 일이었다.
* * *
행진이 시작하기 한 시간 반쯤 전. 디아나는 단상 앞에 앉아 엘리엇, 플뢰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꿈은 아니겠죠? 케이든 전하께서 정말로, 황제 폐하와 더불어 건국제를 이끌게 되시다니…….”
“흑…….”
“엘리엇? 당신 울어요?”
“그, 그렇지만…… 케이든이 이렇게 장성해서 행진을 도맡게 되는 걸 보니까 눈물이…….”
……사실상 대화라기보다 두 사람의 팔불출을 들어 주는 것이나 다름없긴 했다.
디아나는 난감한 웃음을 띠며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케이든을 아끼고 있다는 것이 느껴져 마음만은 한없이 따듯해졌다.
특히나 엘리엇은 근처의 귀족들이 그를 희한한 눈으로 힐끔거리는데도 좀처럼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케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