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크에엑!
목숨의 위협을 느낀 우두머리가 비명을 내지르고는 케이든을 피해 달아났다. 그리고 막을 틈도 없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를 향해 입을 벌렸다.
“안 돼!”
레베카가 경악해 외쳤다. 우두머리가 저 시체를 삼키면 또다시 제자리였다.
그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초승달 형태의 바람이 우두머리의 머리를 반으로 갈랐다. 우두머리는 비명조차 없이 절명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우두머리의 시체 너머로 윅스빌 공작을 앞세운 제5연대의 기사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제1연대와 제3연대의 기사들이 절반 가까이 희생된 후였다.
* * *
“2황자 페란트를 황실 계보에서 제한다!”
대체로 국정에 관심이 없는 황제마저 페란트의 독단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진노를 감추지 않았다.
그로 인해서 능력 있는 기사들을 상당수 잃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페란트를 황실 계보에서 제외하겠다며 날뛰었지만, 황후가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장례를 치를 기회만큼은 빼앗지 말아 달라며 사정해 겨우 무마되었다.
레베카 또한 황제의 분노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너는 고작 2황자 하나 제대로 막지 못해 이 사달을 내었느냐!”
황제는 페란트가 레베카의 수족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페란트를 통제하지 못한 죄, 제1연대의 기사들을 절반이나 희생시킨 죄로 레베카에게 근신령을 내렸다.
1황비는 레베카의 근신령 소식을 듣고 쓰러진 후, 며칠을 앓아누웠다.
지금까지는 흔들림 없이 레베카를 지지하던 귀족들마저 불안하게 저들끼리 시선을 주고받았다.
사실 피해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조차도 약한 처벌이었으나, 지금껏 가장 유력한 황위 계승 후보였던 레베카가 공식적인 ‘처벌’을 받았다는 사실에 귀족들이 크게 술렁였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 2황비 궁은 극도의 고요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거라도 좀 드세요.”
카를롯타는 묽은 수프를 들고 2황비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2황비는 카를롯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멍하니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죽은 사람처럼 바싹 말라 있었고, 눈은 퀭했다.
카를롯타는 그 모습에 본능적인 오싹함을 느꼈으나 그런 마음을 애써 내리누르며 2황비의 앞에 수프 그릇을 내려놓았다.
“주방에 부탁해서 묽게 만든 수프예요.”
“…….”
“뭐라도 드세요, 제발. 이러다가 잘못되시면 어쩌시려고요.”
카를롯타가 하소연하듯 말했으나 2황비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그녀는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오라비인 페란트가 레베카에게 큰 피해를 안기고 죽었으니, 그녀와 2황비 또한 그 대가를 치르게 될까? 아니면…….
생각을 이어 갈수록 절망만 늘어갔다. 카를롯타는 울음을 꾹 참고 몸을 돌렸다.
“……수프는 여기 두고 갈게요. 이번엔 제발 한 술이라도 뜨세요.”
그녀가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서려던 차였다. 앙상한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붙들었다.
그 바람에 작게 휘청거린 카를롯타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뒤를 돌아보았다.
“……어머니?”
다음 순간. 2황비가 카를롯타를 당겨 제 품으로 끌어안았다. 카를롯타는 난생처음 안겨 본 어머니의 품에 당황했다.
“어, 어머니?”
“로티.”
이렇듯 다정한 부름 또한 처음이었다. 그러나 2황비는 아랑곳 않고 물기 어린 목소리를 내며 카를롯타의 등을 쓰다듬었다.
“너는 네 오빠처럼 되면 안 된다.”
“…….”
“너는 네 오빠처럼 되면 안 돼…….”
그 중얼거림을 듣는데 불현듯 눈물이 울컥 차올랐다.
카를롯타는 황급히 눈을 깜박이며 울음을 참아 내려 했지만, 이내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흐으…….”
카를롯타는 손을 뻗어 2황비의 옷자락을 그러쥐었다.
2황비가 이렇게 갑자기 다정하게 구는 것이 미쳐서는 아닐까 싶어 무서웠지만, 난생처음 맛본 따뜻한 온기가 너무도 달아서 차마 뿌리칠 생각이 들지 않았다.
2황비는 아이처럼 우는 카를롯타를 달래 주며 딸아이의 머리카락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버석하게 메말라 있었다.
‘……그래. 두 번이나 실수할 수는 없지.’
2황비는 페란트가 죽고 나서야 그를 몰아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반대로 행하면 되지 않을까?
마냥 몰아세우는 대신, 다정하게 품어 준다면.
감히 그녀를, 1황비를 배신할 생각 따위 할 수 없지 않을까?
‘……너만큼은.’
2황비는 카를롯타를 다독이며 그녀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너만큼은 반드시 엇나가지 않게 하마, 아가.’
* * *
근신령을 받은 레베카 대신 루드비히가 애쓴 덕에, 2황자는 간소한 장례식이나마 치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시신은 마물들이 남김없이 해치운 탓에, 빈 관을 두고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틸리아시여, 부디 이 가엾은 영혼을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고…….”
사제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망자를 위한 기도문을 읊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일부 황족, 그리고 일부 귀족이었다.
2황비와 2황녀 카를롯타가 사제의 가장 앞에 서 있었고, 그 뒤로 황후와 1황자 부부, 3황자 부부가 나란히 서 있었다.
플뢰르는 손수건을 입에 댄 채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엘리엇 또한 일그러진 얼굴로 눈물을 참으려 애썼다.
“…….”
케이든은 심란한 표정으로 빈 관을 응시했다.
‘……기쁘지가 않군.’
정적이었고, 페란트가 그리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가 아니긴 했지만.
한평생 도구로 낳아져 도구로 길러지고, 도구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움직이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니 그의 죽음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그때 디아나가 그러한 심정을 알고 있다고 말하듯 조용히 케이든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케이든이 디아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베일 너머로 엷은 미소를 띠며 그의 손을 토닥였다.
그에 케이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따라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이윽고 관이 땅에 묻히고 장례식이 마무리되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내내 눈짓을 주고받은 귀족들이 하나둘 케이든에게 다가서 말을 붙였다.
“3황자 전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이번 토벌에서도…….”
“활약을…….”
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케이든의 활약상을 칭찬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2황자의 장례식에는 황제조차 참석하지 않았다.
레베카는 근신령 때문에 백염궁에 매인 채였고, 1황비는 앓아누운 탓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부재가 귀족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었다.
레베카는 기울어지는 태양이고, 케이든이야말로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하지만 페란트의 장례식에서조차 제게 줄을 대려 애쓰는 귀족들의 모습에 케이든은 약간의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디아나의 손을 힘주어 맞잡은 그가 간신히 미소를 띠고 그들을 밀어냈다.
“다들 고맙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들을 말은 아닌 듯하여 먼저 돌아가겠네. 다음에 보지.”
케이든은 그 말을 끝으로 디아나와 함께 무덤가를 벗어났다. 그 뒤를 1황자 부부와 황후가 따랐다.
케이든 일파가 사라지자 장례식에 굳이 남아 있어야 할 이유도 사라졌다.
귀족들은 묘비 앞에 앉아 있는 2황비와 그녀의 등 뒤에 서 있는 2황녀의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 슬그머니 사라졌다.
이윽고 사제마저 무덤 앞을 떠나고, 남은 것은 2황비와 2황녀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계시려나.’
카를롯타는 슬슬 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발목을 돌리며 2황비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2황비는 묵묵히 고개를 숙인 채 무덤 앞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아델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2황비가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입에서 한숨 같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1황비 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