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세드릭 하이에른이 피오나 옐링을 해하려 했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마침 사교 시즌이 한창이었기에 소문이 퍼져 나가는 속도는 이례적일 정도로 빨랐다.
사람들은 그간 천사처럼 웃고 다니던 세드릭이 약혼녀나 다름없는 피오나를 계획적으로 해하려 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소름이 다 끼치네요. 그저 순박한 소년인 줄로만 알았는데…….”
“전신을 마비시키는 독화를 선물이랍시고 건네다니, 어지간히 악질이로군요.”
“그러니까요. 심지어 가문의 상징화를 몰래, 직접 개량한 거라면서요? 그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제 파트너를 죽일 생각을 하다니, 섬뜩해서 원.”
디아나는 세드릭이 피오나를 해하려다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재빠르게 뮈젤을 통해 거리에 소문을 퍼트렸다.
‘사실은 세드릭이 레베카의 명을 받아 옐링 공작가를 집어삼키기 위해 이런 일을 벌인 거라더라.’
명확한 증거는 없었으나 지극히 사실에 가까운 말이었다.
게다가 레베카가 방어전에서 디아나를 공격하려 했다가 실패했던 일 때문에, 사람들은 1황녀가 또다시 황위와 아무 관련이 없는 이를 희생시키려 했다고 생각했다.
“저는 억울합니다! 저는 1황녀이신 레베카 듄 블루벨 전하의 명을 따랐을 뿐이라고요! 전하를 불러 주십시오!”
세드릭은 옐링 공작저의 지하 감옥에서 매일 감옥이 떠나가라 제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 사실이 소문을 부추겼다.
하지만 그의 억울함은 말뿐이었다. 그가 피오나에게 보냈던 서신, 피오나에게 건넸던 독화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나, 레베카가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세드릭이 옐링 공작저에 붙잡힌 후에야 그가 일을 저질렀다는 소식을 접한 레베카 일파는 격렬하게 그의 말을 부정했다.
“1황녀 전하께서 이번 일에 관련되어 있다는 증거가 어디 있답니까!”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증거가! 만약 하이에른 공자가 저 살자고 무고한 전하를 끌어들인 것이라면 책임지실 수 있겠습니까?”
지지부진하던 공방은 결국 세드릭의 사형 선고로 끝이 났다. 그의 주장이 전부 말뿐이고,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은 세드릭의 사형이 결정되자 해당 사건에 대해 더 말을 얹지는 않았으나, 어렴풋이 그의 말이 전부 거짓은 아닐 거라 짐작했다.
방어전 때까지만 해도 ‘전투 중에 실수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입장을 고수했던 이들마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고개를 흔들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2황비 아델라의 인내심을 남김없이 앗아 갔다.
* * *
“이런, 늦었네.”
케이든은 급하게 셔츠의 단추를 잠그며 3황자궁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뒤를 파트라슈가 따랐다.
파트라슈는 희희낙락한 얼굴로 그에게 말을 붙였다.
“역시 이래서 사람이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요. 옐링 공작님께서 대놓고 저희를 지지하겠다 선언하셨으니, 아마 상당수의 귀족이 저희 쪽으로 돌아설 겁니다. 벌써 두 공작의 지지를 차지한 거라고요, 크으.”
파트라슈는 잔뜩 흥분해 발마저 동동 굴렀다. 아이처럼 신나 하는 그 모습에 케이든은 결국 피식 웃음을 흘려 버렸다.
‘좋을 만도 하지.’
그는 지금 위버 공작, 옐링 공작과의 식사 약속을 위해 궁을 나서는 참이었다.
옐링 공작은 레베카가 제 딸을 노렸다는 사실에 극히 분노하며 그녀의 정적인 케이든을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이라 선언했다. 케이든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우군을 얻은 셈이다.
“전하, 아시죠? 아무리 그래도 너무 기쁜 티는 내지 마시고…….”
“시끄럽다. 지금 여기서 제일 신나 보이는 건 너야.”
“하핫, 나름 자제한다고 한 건데 잘 안 되네요.”
케이든은 파트라슈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소란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3황자 궁에서 황궁의 정문으로 이어진 길에는 2황비 궁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1층 회랑에서 사람들이 양쪽으로 대치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가 눈을 크게 떴다.
“2황비 전하, 제발……!”
“속히 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2황비 궁의 사용인들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2황비를 불렀다.
하지만 페란트의 앞을 막아선 2황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팔에서 흐르는 피가 대리석 위로 뚝뚝 떨어졌다.
고통스러울 법도 한데, 2황비는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로 페란트를 응시하며 물었다.
“갈 거니?”
“어머니, 제발 좀……!”
“갈 거니?”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벌써 한 시간째란 말입니다! 이러다가 약속이 다 끝나 버리겠……!”
“갈 거니?”
“어머니!”
페란트가 분통을 터트리며 발을 굴렀으나 2황비는 고장 난 축음기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 모습이 더없이 섬뜩했다.
목 안으로 신음을 삼키며 제 머리를 엉망으로 헤집던 페란트가 사용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대체 뭘 하는 거야! 억지로 붙잡아서라도 치료해 드려!”
“아, 알겠습니다!”
사용인들이 울상을 지으며 2황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2황비는 사용인들이 제 팔을 붙잡는 것을 강한 힘으로 뿌리치며 재차 페란트의 앞을 막아섰다.
“갈 거니?”
버티다 못한 페란트가 이를 악물며 그녀를 밀쳤다.
“예. 갈 겁니다. 비키세요.”
2황비가 페란트의 힘에 밀려 크게 휘청였다. 하지만 이내 바르게 선 그녀가 오른손을 높이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핀이 햇빛에 반짝였다. 그녀는 그것으로 망설임 없이 제 팔을 내리찍었다.
푹―!
“꺄아악!”
“어머니!”
사용인들이 비명을 지르고 페란트가 욕설 섞인 고함을 뱉었다.
케이든과 함께 그 광경을 목격한 파트라슈가 경악했다.
“아니, 저게 무슨…….”
놀란 것은 케이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위버 공작, 옐링 공작과 약속이 있다는 것조차 잊은 채 제자리에 붙박여 2황비를 바라보았다.
2황비는 찡그림 한번 없이 핀을 뽑아냈다. 새로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그녀는 또렷한 눈으로 페란트를 응시하며 담담히 말했다.
“내가 말했지.”
“아, 제기랄……. 작작 좀…….”
“네가 쓸데없는 인간들을 만나려 할 때마다 나 스스로 1황비 전하께 용서를 빌겠다고.”
2황비는 그리 말하며 또다시 핀을 든 손을 치켜들었다. 케이든은 저도 모르게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그만두십시오!”
케이든이 목소리를 높이며 2황비의 팔을 잡아챘다. 그 바람에 그녀의 손이 엇나가며 핀의 끝이 그의 팔을 찔렀다.
“윽.”
케이든은 아릿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신음을 삼켰다. 페란트와 사용인들이 얼어붙었다.
그러나 2황비는 불쾌한 얼굴로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그의 팔을 뿌리쳤다.
“감히 어디다가 더러운 손을 올리시는 겁니까.”
“그만두십시오, 2황비 전하.”
“당신이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전하.”
2황비는 케이든의 부름을 무시하고 그의 어깨너머로 페란트를 응시했다.
“갈 거니?”
“하…….”
흡사 광인과도 같은 모습에 페란트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바닥 아래로 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1황비와 1황녀의 존재가 내 어머니를 미치게 만들고 있다.’
날이 갈수록 레베카를 따라서는 안 되는 이유만이 생겨났다.
그가 호흡을 가다듬고 사용인들에게 2황비를 포박하라고 명령하려는 순간이었다.
“급보입니다!”
황제가 머무는 본궁 쪽에서 사용인 하나가 달려왔다. 그는 2황비 궁 앞에서 벌어진 아수라장을 보고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잘 되었다는 기색으로 외쳤다.
“핀들레이 지방에서 변종 마물이 대거 출현했습니다! 각 연대장은 지금 즉시 본궁으로 집합하라는 황명입니다!”